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96)
296. 아픈 손가락
“왜 울고 난리야. 야, 너…… 내가 지금 승률 지키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전원을 뽑아?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넌 이따 두고 보자.”
시우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 전원 선을 다시 연결하려 했다.
1분 내로 들어가면 약간의 페널티만 받고 게임을 재개할 수 있다.
전원 선을 찾는 시우를 시윤이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나와.”
“뭐?”
“나오라고!”
시윤이 시우의 몸을 잡아끌 때, 엄마 방에서 시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빠들…… 또 싸워?”
시윤은 얼른 눈물을 닦고 애써 웃는 얼굴로 시아에게 말했다.
“아니야~ 시아야. 형이랑 이따 설거지 누가 할까 얘기하려고 그러는 거야. 방에 들어가서 엄마랑 TV 보고 있어.”
“웅…… 오빠…… 싸우지 마. 나는 큰오빠랑 작은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사랑해!”
시아는 일부러 활짝,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활짝 웃었다.
시우와 시윤은 그런 시아의 노력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아를 향해 어색하게 마주 웃어 주었다.
시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오빠들의 눈치를 살피다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 밖으로 형을 데리고 나간 시윤은 한숨을 길게 내쉰 뒤, 시우를 불렀다.
“형.”
“왜.”
“형 고등학교 졸업한 지도 한참 됐잖아. 대체…… 언제까지 게임만 할 거야?”
시윤의 추궁에 시우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시선을 돌렸다.
“몰라. 내가 게임을 좋아서 하냐? 나도…… 됐다. 됐어. 너는 너만 힘들지. 야. 나도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하루 종일 게임하느라?”
시우는 날카롭게 시윤을 노려봤다.
시윤은 피하지 않고 똑같이 형을 노려봐 주며 입을 열었다.
“집안일도 안 하고. 시아랑 놀아 주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데. 도대체 형이…… 난 형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잘 모르겠어. 우리 돈 없어. 엄마 우리 셋 키운다고 밤낮없이 일하다 허리 다친 뒤로는…… 이모랑 할머니들한테 겨우 생활비 받아서 사는데…… 형 어른이잖아. 스무 살이잖…….”
“나도 알아!!!”
“…….”
“누군 속이 편해서 게임만 하고 있는 줄 알아?! 내가 프로게이머 데뷔해서 대회 몇 번만 참가하면 그깟 돈 몇 천만 원? 야! 몇 억도 벌어! 너 프로게이머 연봉이 얼만지 알아?”
“아아악!!”
시윤은 그만 참지 못하고 시우의 몸을 두 손으로 밀치고 말았다.
시우는 휘청하고 벽에 등을 부딪쳤다.
“이 새끼가……!”
학교에서도, 친구들 앞에서도 늘 차갑고 어른스럽던 시윤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이모가…… 이모가 우리 때문에 글 쓰는 것도 포기하고……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데…… 형은 뭐야…… 형은 왜 일 안 해…… 차라리 나랑 바꾸자…… 차라리 내가 형이었으면 좋겠어……!”
시윤은 펑펑 울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골목길에 혼자 남겨진 시우는 발로 담벼락을 찼다.
퍽!
퍽!
퍽!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너 대학도 내가 보내 줄 거고! 엄마랑 시아도 내가…… 내가 지킬 거야…… 근데 내가 그렇게 큰돈 벌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잖아.”
시우는 담벼락 밑에 주저앉았다.
지친다.
그냥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가 좀 아플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불행해지고 비참해지는 건가.
시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참고 있을 때, 앞쪽에서 한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부부가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를 데리고 행복한 얼굴로 골목길을 지나갔다.
시우는 그 가족의, 특히 어린 아들을 업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시윤이는 그때 어렸고, 시아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자신은 열세 살이었다.
아빠와의 추억이 많았던 만큼 상실감도 컸다.
“아빠…….”
열세 살, 그날 아침 이후 시우는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자라지 못한 채로 그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샌가 중학생이 된 시윤이에게 자신이 역전을 당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시우는 흐릿하게 지워 놓은 아빠와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다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두고 봐. 이번 챌린지 기간에 연습생들 중에 승률 1위 찍으면 바로 정식 팀원으로 승격시켜 준댔으니까. 딱 일 년이야…… 일 년 안에 무조건 결과 낸다…….”
8개월 후-
현주는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조심조심 주방으로 향했다.
[괜히 무리하지 말고 앉아서 쉬지~]스피커폰에서 언니 희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주는 한숨을 푹 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누워만 있으면 오히려 병나. 한 번씩 움직여야지. 시윤이 공부하는데 간식이라도 좀 챙겨 주려고.”
[하아…… 어떻게 된 게 수술받고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거 같냐. 물리 치료라도 꾸준히 받으면 좀 나으려나…….]“별로 효과도 없는데 한 번 갈 때마다 10만 원이야. 그 돈으로 애들 옷이나 한 벌 살래.”
[……언니가 미안해. 우리 현주, 언니가 부자여야 되는데. 그치.]희주가 슬프게 웃었다.
현주는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며 같이 웃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언니 등에 빨대 꽂고 살고 있잖아. 미안해서 할 말이 없어.”
[가족끼리 무슨. 돈을 뭐 하러 버냐. 내 가족 지키려고 버는 거지. 우리 현주. 내 동생. 걱정하지 마. 언니가 옛날부터 얼굴은 너보다 딸려도 몸 하나는 너보다 백배 건강했어. 하하하. 우리 조카들 이 언니가 책임진다. 언니만 믿어라!]“……응.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기면서 일해. 돈 다 보내지 말고 언니도 좀 쓰고.”
[시윤이는 방에서 공부해?]“응.”
[시아는?]“만들기 숙제해.”
[그렇구나.]“…….”
“응. 시우가 말은 툭툭거려도 착해. 전에는 밤에 나 자려고 누워 있는데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엄마, 미안해 그러고 나가더라고. 내가 식겁해서 뭐 사고 쳤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라고. 그냥 미안하대.”
[그래. 시우 착하지. 언니도 알아.]“응. 시우는 아픈 손가락이야. 시우만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 그냥 나는…… 시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게이머가 되든 뭐가 되든…… 어릴 때처럼, 행복하게 웃는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안 되네.”
[나중에 잘될 거야. 우리 시우, 아빠 닮아서 얼굴도 잘생겼고…… 음~ 현주야. 요즘도 도진이 자꾸 생각나고 그립고 그래?]현주는 의외의 질문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뭐. 도진 오빠도 보고 싶고. 복실이도 보고 싶고. 그러고 보면 복실이 떠날 때도 시우가 제일 많이 울었어. 아무래도 아기 때부터 같이…….”
뚜- 뚜- 뚜-
“언니, 잠깐만. 전화 온다.”
[그래. 들어가. 다음에 또 전화할게.]현주는 사과를 접시에 담고, 손을 닦은 후 휴대폰을 확인했다.
……지호?
발신자는 시우의 제일 친한 친구인 지호였다.
의아한 마음으로 현주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 지호야.”
[…….]“여보세요?”
[아줌마…….]“응. 그래.”
전화 너머에서 지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가…… 시우가…… 사고가 났어요…….]“……뭐?”
* * *
지호와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여자아이를 향해 달려오는 오토바이도 보였다.
시우는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자신은 달려 나갔다.
왜 그랬을까.
너무 가까워서?
그 여자아이가 시아랑 비슷한 또래라, 아마도.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멋지게 여자아이를 구한 대신, 자신의 몸은 오토바이와 강하게 부딪쳤고 허공으로 떠오른 자신은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쿵 찧으며 떨어졌다.
그때, 누워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래.
아들은 아빠 닮는다더니…….
나도 아빠처럼 되는 건가?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끝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
시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현주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입을 열 기운도 없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그래서 남편도 떠나고, 아들도 떠나는 걸까.
내가 전생에 너무 못되게 살았나.
큰 죄를 지었나.
현주는 가만히 앉아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렸다.
숨도 쉬어지지 않고, 지금 무슨 정신으로 자신이 이곳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시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현주는 시우가 처음 걸음마를 떼던 순간을 떠올렸다.
– 시우야! 아빠 여깄다! 딱 열 걸음만 걸어 볼까? 어어! 그래! 현주야! 시우 걷는다! 찍고 있어?!
– 응, 오빠! 찍고 있어! 잘 걷네. 우리 아들. 어떡해. 기분 되게 이상해. 눈도 못 뜨고 누워 있던 아기였는데…….
벚꽃 아래.
남편과 같이 아장아장 걷는 시우를 안아 들던 그 순간.
시우의 몸은 따뜻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차갑지 않았는데.
– 엄마아~~! 샤앙해애애~~!
짧은 팔로 엄마와 아빠에게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하던 모습.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던 날.
함께 아쿠아리움에 가서 물고기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던 작고 귀여운…….
아들.
“…….”
현주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그때, 시윤이 말리는 직원을 뿌리치고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시윤은 시우의 얼굴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진짜 왜 그래! 정말! 형 진짜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건데에!”
시우에게 소리를 지르던 시윤이 시우의 몸을 끌어안았다.
“……내가 잘못했어. 형한테 나쁜 말 한 거 다 진심 아니야. 나한테는…… 나한테는 형이 아빠니까…… 그래서 의지하고 싶어서…… 내가 미안해 형. 잘못했어. 내가 빌게. 그러니까 이러지 마. 나랑 엄마 놔두고 죽지 마…… 형 없으면 엄마랑 나는 어떻게 살아…….”
형의 몸이 너무 차서, 시윤은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도 다 얼어붙어 버리는 것 같았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전부 조각난다.
“왜 이렇게…… 아프게 만들어…… 형…… 가지 마…… 제발…….”
시우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시윤을.
시우는 보고 있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시우의 눈앞으로 스쳐 갔다.
그리고-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우를 잃은 남겨진 가족들의 삶도 시우의 눈앞으로 스쳐 갔다.
* * *
시우는 새하얀 눈 위를 휘청휘청 걸어갔다.
자신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0번째 생의 기억들이 깨어났다.
100번의 환생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살았던 삶.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비참하게 죽어 간 가족들의 모습.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정신과 마음이 수도 없이 파괴되고, 깨진 유리 조각을 이어 붙이듯 다시 회복하기를 반복하며…….
돌고 돌아 시간을 거슬러 올 자격을 얻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름다운 북극의 오로라 아래서, 시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오열했다.
시우의 슬픈 얼굴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