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98)
298. 초코파이
“…….”
시윤은 멍한 얼굴로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사실 TV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옆에 앉아 자신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는 형이 너무 어색해 견딜 수가 없을 뿐이었다.
꾹- 꾹-
형의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공부하느라 쌓인 어깨의 피로가 싹 풀리긴 했지만…….
“아, 그만해!”
“왜~ 아파?”
“처음에야 북극에 가서 많이 힘들었나 보다 하고 이해했는데……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 형이 북극에 가 보니까 참, 인생 뭐 없더라고. 가족이 최고야. 우리 동생. 형이 사랑…….”
“그만~ 하라고오~ 제발!”
시윤은 몸서리를 치며 시우의 손아귀에서 어깨를 빼냈다.
“어딜 도망가시나!”
자신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형을 피해 시윤은 엉금엉금 소파로 내려가 후다닥 도망을 쳤다.
“됐어! 진짜 더는 못 참겠어!”
사과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오던 현주가 우스워 죽겠다는 얼굴로 소리 내 웃었다.
“윤시윤, 왜 그래. 형이 동생 마사지도 해 주고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다정하니 보기 좋네.”
시윤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엄마가 몰라서 그래! 전에 내가 자다가…… 뭔가 이상해서 눈 떴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형에 내 침대 끝에 앉아서 내 머리를……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고!!”
현주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시우는 한마디를 더 추가했다.
“볼도 꼬집었어.”
시윤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싫다고! 내가 애야? 나 초등학생 때 하던 걸 왜 지금 하냐고! 나 이제 고2야! 내가 진짜…… 밤에 형 그러고 있는 거 보고 귀신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시우는 진지한 얼굴로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시윤이가 올해로 고2네. 잘 컸다. 형은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넌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동생이야. 우리 시윤이 형이 많이 많이 사랑해~!”
시우는 두 팔로 하트를 그렸다.
물론 자신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지금은 시윤이의 질색하는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일부러 계속 그러는 부분도 있었다.
시윤은 너무 무서운 호러 영화를 본 것처럼 할 말을 잃고 시우를 쳐다보다 도망치듯 방으로 사라졌다.
시우와 현주는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아는 그런 두 오빠를 번갈아 보다가 시우에게 물었다.
“큰오빠, 나는 안 사랑해?”
“우리 시아도 사랑하지~ 사과 먹을까? 아~”
시우가 건네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은 시아가 자신의 포크로 사과를 찍은 뒤, 시우에게 내밀었다.
“큰오빠도 아~ 해! 내가 먹을 걸 양보하는 건~ 진짜 사랑한다는 증거야!”
“그래? 와, 정말 고마워 시아야.”
시우가 사과를 물었다.
현주는 미소를 띤 채 시아에게 말했다.
“시아가 양보하는 거 아니고, 이거 오빠랑 시아랑 같이 먹으라고 가져온 건데?”
“……어? 한 사람당 한 접시 아니야?”
“…….”
현주는 무서운 딸아이를 바라보다 사과를 더 깎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우가 그런 엄마를 막았다.
“제가 깎아 올게요. 엄마는 쉬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집안일도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살아?”
“저랑 아빠랑 시윤이랑 집에 힘센 남자가 셋이나 있어요. 엄마는 허리가 약하니까 자꾸 앉았다 일어나고 뭐 들고 그럼 안 돼요.”
“……엄마, 허리 괜찮은데? 살면서 허리 아픈 적 없어.”
그것은 파워 오브 매직.
시우는 엄마를 조심히 앉히고 혼자 일어났다.
주방으로 향한 시우는 그곳에서 아빠 도진과 마주쳤다.
주방 다용도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초코파이를 까먹던 도진은 큰아들을 발견하고, 머쓱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니…… 시아한테 들키면…… 네 엄마한테 혼나니까.”
“…….”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들을 마주 보다, 도진은 주머니에 넣어온 초코파이 하나를 더 꺼내 시우에게 건넸다.
시우는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말없이 미소를 짓고, 아빠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시아가 단 걸 너무 먹어. 이빨 썩게.”
“그러게요.”
“숨어서 먹어야 돼. 시우야 너도 디저트 같은 거 적당히 먹어라. 알았지?”
“네.”
“맛있냐? 아들이랑 이러고 앉아서 먹으니까 덜 외롭네.”
“아빠, 이따가 저랑 게임하실래요?”
“그래. 모처럼 쉬는 날이니까 우리 아들이랑 격투 게임 한판 할까? 아빠 때는 말이야, 동네에 오락실이란 게 있었어. 동전 쌓아 놓고 아빠가 철…….”
도진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오빠를 찾으러 온 시아가 말했다.
“아빠랑 오빠 뭐 먹어?”
* * *
겨울의 끝에 봄이 왔다.
그리고 그 봄도 지나고, 어느덧 여름의 막바지.
네로는 거실의 높은 책장 위에 드러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중이었다.
시우가 네로와 시아를 위해 공방에서 직접 만들어 준 캣타워 겸용 원목 책장이었는데, 좋은 나무 향기가 솔솔 났다.
새근새근-
꿈속에서 쥐돌이 장난감을 쫓고 있는 네로의 입가가 꿈틀꿈틀 씰룩였다.
즐거운 모양이었다.
책장 밑에서는 복실이가 자신도 캣타워에 올라가고 싶다는 듯이 폴짝거리고 있었고, 플렉스는 그런 복실이의 성화에 못 이겨 발판으로 삼을 만한 물건이 없나 거실 소품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어차피 높은 층까지는 못 올라갈 테고.
밑에 2층 정도는 올라가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한 플렉스는 복실이의 기대감 어린 눈동자에, 위이잉 기계음을 내며 캣타워와 복실이 사이에 엎드렸다.
[나를 밟고 가라!]복실이가 친구를 밟긴 좀 그렇다는 듯이 뒷걸음질을 칠 때.
플렉스의 눈에 캣타워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시우가 포착됐다.
[시우! 복실이 좀 올려 줘!]시우에게 달려간 플렉스는 시우의 다리에 앞발을 올리고 외쳤다.
시우는 휴대폰을 한 손에 든 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실이도 이 캣타워가 좋아? 형이 네 장난감도 만들려고 재료 주문해 놨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 왈!
시우는 복실이의 코에 뽀뽀를 해 주고, 최상층에서 자고 있는 네로의 몸을 손으로 슥슥 만져 주었다.
“응? 아니. 집에 아무도 없고 네로랑 복실이만 있어. 응.”
시우는 누군가와 영어로 통화를 하면서 네로를 몇 차례 더 쓰다듬고, 복실이와 네로를 향해 말했다.
“형이랑 같이 오래 살자.”
시우가 쓰다듬던 손을 거두자 네로는 잠결에 그 손길을 찾아 몸을 빙글 돌렸다.
안전 가드가 없는 기둥형 스크래처 쪽으로 돌아누운 네로의 몸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파파파파팍-!!
갑자기 바닥이 사라진 느낌을 받은 네로는 네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닥치는 대로 스크래처에 발톱을 박아 넣었다.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기둥형 스크래처를 끌어안은 네로가 부릅떠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란 시우와 복실이, 플렉스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로는 희한한 자세로 스크래처 기둥에 매달린 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팔을 핥았다.
시우는 부끄러움에 억척스럽게 딴청을 피우는 네로의 행동과 표정이 너무 웃겨, 통화 중이라는 것도 잊고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 냐앙!
“알았어. 안 웃을게. 어휴, 진짜. 영상으로 못 찍은 게 한이다. 아! 어릴 때처럼 우리 다 같이 또 SNS에 올릴 영상 한번 만들어 볼까?”
– 멍멍!
– 냐앙~
시우는 헨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네로를 붙잡아 다시 캣타워 위로 올려 주었다.
네로와 복실이를 쓰다듬어 준 시우는,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플렉스의 머리도 쓰다듬어 준 뒤 몸을 돌렸다.
“응. 아니. 네로가 몸 개그를 해서.”
“내 영화라고 하지 말라고~ 내가 쓴 이야기긴 하지만 영화는 내 영화가 아니라니까. 우리~ 모두의~ 영화!”
[알았어. 알았어. 내가 말실수했어. 수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영화지. 어쨌거나…… 하준이 맞지?]“응. 하준.”
[루시, 니콜라스랑 같이 하준이 생일 선물 준비해서 보냈어. 태우 아저씨랑 희주 아주머니께도 안부 전해 드려.]“알았어. 챙겨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가 또 같이 영화를 할 기회가 생겼네. 시리즈물이지 이거? 할리와트처럼.]“글쎄, 그냥 뭐 가볍게 트릴로지로…… 3부작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하는데…….”
[3부작이 가볍게야? 하하.]“몰라. 소설 후속작은 곧 나올 테지만, 영화는 잘 안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영화만 1부작 되는 거지.”
헨리는 시우가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시우와 함께한 딥 러닝과 대즐링의 연이은 대박으로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제작사와 배급사로 성장한, 능력을 충분히 증명한 뉴 노멀 시네마와 코스모스 픽처스가 다시 손을 맞잡았고.
감독은 판타지 영화 연출의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 거장, 잭 와일더다.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잭 와일더 감독을 도대체 어떻게 섭외한 건지 헨리는 정말 지금도 믿기지가 않았다.
시우의 책, 네메시스를 읽고 그분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고 하니…….
어메이징.
그런데…….
영화가 실패한다고?
헨리는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환생을 거듭하며 신비한 힘을 얻은 버림받은 이민족 아이 역의, 주인공 시우가 보여 줄 연기력.
그리고 시우와 대륙의 운명을 걸고 대립할 악마 같은 여사제 역의, 루시.
이 두 사람이 세상의 영화 팬들에게 보여 줄, 네메시스의 스토리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영화는 잘되느냐, 안되느냐가 문제가 아냐. 난 솔직히…… 잘만 만들어지면 작품성과 대중성 다 잡으면서 흥행 역대 1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봐.]시우는 격려해 주는 헨리가 고마우면서도,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실제 내 이야기라 그런가. 칭찬하는 말만 들으면 왜 이렇게 다 부끄럽냐. 으으~’
그러고 보니…….
북극에서 자신의 온전한 기억을 되찾은 후, 시우는 자신의 감정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왠지.
지금 이 상태로 연기를 하면, 전보다 더 나은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빨리 연말이 와서, 또 레디 액션 소리를 듣고 싶네.’
시우는 샘솟는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화될 연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두 남자가 차에서 내린 순간.
온 세상이 밝게 빛났다.
뚜벅. 뚜벅.
멋진 슈트를 입고, 손목에 찬 시계를 매만지며 현재 시각을 확인한 두 남자는 구두 소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둘 다 이 세상의 외모가 아닌 듯, 마치 어둠을 뚫고 어디선가 나타난 도깨비처럼 나란히 걸어오는 두 남자의 등 뒤에서 강렬한 효과음이 터져 나왔다.
빵-! 빵-!
단정한 차림새로 비현실적인 외모를 땅에 흩뿌리며 걷던 두 남자가 동시에 흠칫 놀라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저희 차 나가야 되니까 좀 저쪽으로 붙어서 걸어 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준영과 승현은 얼른 주차장 사이드로 이동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머쓱하게 웃고는 지하의 엘리베이터를 찾아갔다.
승현이 얼른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고, 둘은 함께 고개를 위로 들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형, 시우도 우리랑 똑같이 입고 오는 거 맞지?”
승현이 물었다.
준영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우리 셋은 형제야.”
“아니. 시우도 이렇게 입은 거 맞냐고…….”
띵!
지하 2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준영과 승현은 화보 촬영 때나 입을 법한 자신들의 멋진 슈트 매무새를 다듬고, 뚜벅뚜벅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