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30)
30. 아빠와 딸
눈썰매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현주가 말했다.
“아까 그 여자애 정말 예쁘더라.”
도진이 대답했다.
“응. 연예인처럼 생겼더라. 남자 아기도 귀엽던데.”
도진과 현주는 아까 본 가족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던 시우는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예쁜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기준을 일반인에 두느냐, 연예인에 두느냐에 따라 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시우는 관심을 거두고 눈앞에 펼쳐진 설원을 바라봤다.
시우에게 중요한 것은 주차장에서 스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눈썰매장이었다.
뭔가 해방감이 느껴졌다.
“우와아-!”
시우는 두 팔을 벌리고 하얀 설원으로 뛰어갔다.
눈은 현생에서도 전생에서도 여러 차례 봤지만, 그래도 좋았다.
좋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시우가 해맑은 얼굴로 신나게 눈밭을 뛰어다니고 있는데, 근처에서 시우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와아~!”
시우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 아이는 역시 만세를 한 채, 눈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새하얀 설원에서 시우와 남자아이가 딱 맞닥뜨렸다.
키도 비슷한 두 아이는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자신만 보고 있자 시우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안녀엉~”
아이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고 엄마를 찾다가, 뒤늦게 시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녀엉…….”
아이의 곁으로 부모가 다가왔다.
“지호야, 친구 만났어?”
부모의 얼굴을 본 시우는 아이가 낯이 익은 이유를 깨달았다.
주차장에서 본 그 가족이었다.
비슷하게 주차하고, 비슷하게 입장한 모양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예쁘다고 칭찬한 아이의 누나도 부모님 뒤에 서 있었다.
“몇 살이야?”
아이의 엄마가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는 유아용 방한 마스크 속에서 입을 움직여 대답했다.
“세 사아~”
말을 뱉은 시우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줌마가 ‘몇 살이야?’ 하고 물었을 때, 팔짱 딱 끼고 ‘20개월인데요.’라고 대답해 보고픈 욕망이 살짝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아, 별 감독이 만든 CF를 너무 봤어. 엉뚱한 행동이 하고 싶어지잖아.’
병맛이란 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었다.
“세 살이야? 나이도 말할 줄 알고 똑똑하다. 우리 지호도 3살인데.”
“네에~”
“아유, 귀여워. 대답도 잘하네?”
현주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 엄마가 인사를 받았다.
“네에,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냥, 서로 웃으면서 한 번 더 머리를 숙이고 돌아섰다.
엄마들이 양쪽 다 낯가림이 있었다.
“아가야, 안녕~ 재밌게 놀아!”
아이 엄마가 시우에게 바이바이를 했다.
지호라고 불린 아이도 엄마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시우와 현주도 손을 흔들었다.
“바이바이~”
지호 가족은 놀기 전에 식사부터 하려는지 썰매장 푸드코트 쪽으로 떠났다.
현주가 시우의 털모자와 마스크를 다시 점검해 주고 있을 때, 뒤에 선 도진이 말했다.
“이따 저 가족이랑 또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현주는 의아한 얼굴로 도진을 봤다.
“응? 무슨 소리야?”
“내가 시우랑 아쿠아리움 갔을 때 그랬거든. 입구에서 마주치면 안에서도 계속 마주쳐. 봐 봐. 나중에 시우랑 저 남자애랑 둘이 눈싸움하고 있을 거야.”
“……그, 그래?”
도진은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민서 아빠를 떠올렸다.
이곳도 썰매장이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오다가다 계속 마주칠 것이다.
애들끼리 인사를 했기 때문에 이제 모른 척하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도진의 말대로 됐다.
시우는 두 손에 눈을 가득 담고 아장아장 다가오는 지호를 보며 생각했다.
‘그 녀석, 참 귀엽게도 생겼다. 과자라도 한 봉지 사 주고 싶네.’
지호는 시우가 지금까지 본 아이들 중에서 단연 가장 귀여웠다.
성격은 안 맞아도 어쨌거나 외모는 정태가 1순위였는데, 오늘 바뀌었다.
지호가 시우의 패딩에 눈을 휙 뿌리고는 까르륵 웃었다.
시우도 바닥의 눈을 장갑에 묻히고 지호에게 던지는 시늉을 했다.
지호는 즐겁게 웃으며 도망을 갔다.
“이쪽에서 놀아~ 거긴 썰매 내려와서 위험해~”
지호의 누나, 지연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아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위험한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넘어지면 일으켜 주는 게 지연의 일이었다.
부모님들은 근처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연이가 애들 잘 보네요. 예쁘고, 착하고. 저희도 지연이 같은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주가 말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었다.
이상적으로 보이는 말 잘 듣는 예쁜 딸이었다.
함께 음료를 마시면서 조금 가까워진 지호 엄마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니에요. 아주…… 하아…….”
갑자기 한숨을 푹 쉬는 지호 엄마였다.
도진과 현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호 엄마가 다른 얘기로 말을 돌리려는 찰나, 눈치 없이 지호 아빠가 입을 열었다.
“어우, 중학생이 되더니 애가 거 뭐야, 중2병인가 그게 와 가지고. 무슨 얼어 죽을 가수가 되겠다고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집에서 기타 띵띵 거리고 있어요. 속 터져 죽겠어요.”
지호 엄마가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딸 욕을 하고 싶냐는 의미였지만, 남편은 애초에 남의 시선 따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왜? 어휴, 진짜. 초등학생 때까지는 공부 잘했거든요. 근데 중학교 들어가서는 이상한 바람이 들어 가지고…….”
“여보!”
이번에는 지호 아빠도 움찔했다.
지호 엄마는 남편을 ‘할많하않’의 표정으로 노려보다 도진과 현주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도진과 현주도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집에 돌아가서 부부 싸움을 하리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도진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저…… 지연이가 노래를 잘하나 보네요.”
현주는 깜짝 놀라 도진을 돌아봤다.
이쪽 남편도 그렇게 눈치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날아온 장작에 기다렸다는 듯이 지호 아빠가 불을 붙였다.
“말도 마세요. 잘하긴요. 노래 한번 불러 보라고 하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무슨 노랜지 알아들을 수도 없어요. 그래서야 무슨 가수를 한다고…….”
“여, 여보…… 여보오~?”
지호 엄마가 남편을 다시 불렀다.
아까와 다르게 어쩐지 당황한 목소리였다.
“왜?”
지호 아빠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등 뒤로 향한 것을 보고, 몸을 돌렸다.
지연이 동생 지호와 함께 서 있었다.
“……엄마, 지호 기저귀.”
지연은 지호를 부모님 앞에 두고, 도망치듯 시우에게 돌아갔다.
지호 아빠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들었나?”
곧바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애 표정 보면 몰라?”
지연이 끙아를 한 동생을 엄마에게 데려다주는 사이, 시우는 눈밭에서 청력을 올려 어른들이 나누는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음, 부모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말이 좀 심하네. 이게 현실적인 건가.’
돌아온 지연은 시우의 손을 잡고 부모님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흰 눈을 밟으며 걸음을 옮기던 지연이 시우에게 물었다.
“너도 엄마한테 갈래? 데려다줄까?”
시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시져~ 놀 꺼야~”
엄마에게 안겨 있는 것은 매일매일 하는 일이었다.
시우는 앞으로 고꾸라지듯 눈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팔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한낮의 자유였다.
패딩에 눈이 다 묻도록 시우는 눈밭을 뒹굴뒹굴 굴렀다.
지연은 그런 시우를 내려다보다 근처 눈 위에 엉덩이를 대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눈밭에 누운 시우는 멀리서 썰매들이 쌩쌩 내려오는 광경을 보면서, 또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기의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릴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이튜브에서 본 워터슬라이드도 꽤 재밌어 보였는데, 아빠가 안고 타도…… 아기는 안 된다고 하겠지?’
이 세계는 정말 역대급으로 먹을 것도 많고, 놀 것도 많았다.
그런데 아기라서 먹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한다.
‘하…… 나중에 두고 보자. 아주 몸이 부서져라 즐겨 주겠어.’
아빠, 엄마의 휴식이 끝나면 썰매 타러 가자고 말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지연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는 몸을 반대로 데구루루 굴려 지연이 앉아 있는 쪽을 봤다.
‘……아니야. 얘야. 그러지 마. 울지 말라고.’
지연이 손으로 바닥의 눈을 슥슥 파헤치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아빠에게 인정받지 못한 15살 여자아이가 상처를 깊게 받은 것이다.
“훌쩍…….”
“…….”
말없이 지연을 보던 시우가 눈이 잔뜩 묻은 조그만 몸을 일으켰다.
작은 눈사람 같은 모습으로 시우가 지연을 불렀다.
“누나아~”
시우를 본 지연은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급히 닦고 입을 열었다.
“왜. 놀아 줘? 훌쩍. 눈싸움해 줄까?”
아장아장 걸어온 시우는 앉아 있는 지연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우지 마아~”
“응? 아냐. 누나 안 울었는데?”
지연은 태연히 말하며 웃으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3살 아기의 위로에 눈물방울이 또 한 차례 굴러떨어졌다.
시우는 추위 때문인지 울음 때문인지 빨개진 지연의 양 볼을 향해 손을 올렸다.
눈물을 닦아 주려는 시우의 손이 지연의 뺨에 닿았다.
“앗, 차거!”
지연이 얼굴을 움츠렸다.
시우는 실수를 깨닫고 뻗은 손을 어정쩡하게 허공에 멈춰 세웠다.
장갑을 낀 채였다.
장갑에 묻은 눈들이 지연의 얼굴로 옮겨 갔다.
조금 당황한 듯 보이는 시우의 눈빛에 지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풋, 귀여워. 에잇.”
지연도 자신의 장갑에 붙은 눈들을 시우의 얼굴에 묻혔다.
“꺄아~!”
시우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도망을 쳤다.
지연도 언제 울었냐는 듯이 일어나 시우를 쫓아갔다.
울적한 기분을 털어 낸 지연이 시우와 재밌게 놀아 주고 있는데, 동생 지호가 엄마 손을 잡고 돌아왔다.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도진과 현주도 함께였다.
그리고-
지연의 아빠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지연의 표정이 굳었다.
“누아~”
누나를 부르며 걸어온 지호가 지연의 손을 잡았다.
다른 한 손은 옆의 시우에게 뻗었다.
시우는 역시 귀여운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지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지연은 너무 예쁜 두 아가들의 얼굴에, 속상한 마음을 참고 그냥 몸을 돌렸다.
그런데 아빠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중에 크면 아~ 그때 아빠 말 듣고 공부할걸~ 그런다니까.”
“…….”
“너 후회하지 말라고 인생 먼저 살아 본 아빠가…… 어휴, 됐다. 됐어.”
지연의 시선이 시우의 부모님인 도진과 현주에게 잠시 머물렀다.
너무 창피했다.
왜 여기서 자기 진로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지연은 이해가 안 됐다.
참으려던 지연의 입이 무심코 열렸다.
“……저 노래 잘해요.”
“뭐?”
“노래 잘한다고요. 친구들이 다 잘한댔어요.”
지연의 아빠는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야, 노래방 수준이랑 프로 가수들이랑 같냐? 걔네가 뭘 알아. 친구니까 물어보면 잘한다, 잘한다 하는…… 야! 지연아! 아빠가 말하는데 어디…….”
지연은 아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몸을 획 돌려 반대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너 거기 안 서?!”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혼자 썰매장을 가로질러 떠나는 지연이었다.
지연의 아빠는 화가 난 얼굴로 딸을 쫓아갔다.
그때, 안전 요원의 외침이 들렸다.
“어어! 거기 위험해요!”
지연이 얼굴을 들었다.
썰매장 꼭대기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온 커다란 튜브가 지연에게 향하고 있었다.
“꺅!”
지연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순간, 지연의 아빠가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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