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31)
31. 눈꽃이 내린다 샤라랄라랄랄라~
속상하고 화난 마음에 땅만 보고 빠르게 걷던 지연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안전 펜스 앞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감속 구간을 향해 내려 오던 튜브가 지연 쪽으로 무섭게 미끄러졌다.
튜브에 탄 남자와 지연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으악!”
“꺅!”
바로 그때.
시우의 손이 움직였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앞은 보고 다녀라-!’
모든 이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안전 수칙을 속으로 외치며, 시우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슬로우-!’
[감속 마법 – 레벨 3] [대상의 속도를 일시적으로 30% 하락시킵니다.]순간, 지연을 덮치던 튜브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시우는 자유로운 다른 한 손을 한 번 더 움직였다.
‘헤이스트-!’
[가속 마법 – 레벨 3] [대상의 속도를 일시적으로 30% 상승시킵니다.]지연은 튜브의 속도가 느려지자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헤이스트 마법이 걸린 지연의 몸은 평소보다 훨씬 민첩하게 반응을 했다.
퍼억-!
지연이 튜브를 피하자 튜브는 무사히 감속 구간으로 접어든 뒤, 안전 펜스와 가볍게 충돌을 했다.
튜브에 타고 있던 남자가 얼른 내려 지연에게 달려왔다.
“괜찮아요?!”
“네, 네에.”
“아니, 여길 막 걸어 다니면 어떡해요! 진짜 무슨 일 나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연은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남자에게 사과했다.
100% 자신의 잘못이었다.
“어쨌든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조심하세요. 와, 정말 소름이 확 돋았어요.”
안전 요원들에게도 연이어 사과를 한 지연은 가슴에 손을 얹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가족들 쪽을 돌아봤다.
그런데-
자신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아빠가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었다.
지연은 너무 의아해 몇 걸음 다가간 뒤, 입을 열었다.
“……아, 아빠?”
잠시 조용히 누워 있던 아빠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부터 다리까지 몸의 앞면이 전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푸우- 페페-.”
아빠는 입안의 눈을 뱉어 내고 얼굴에 묻은 눈을 쓸어 냈다.
드러난 얼굴이 왠지 시뻘겠다.
“아니…… 뭐…… 위험해 보여서…….”
몸을 날렸다.
멀리서.
“…….”
“…….”
딸과의 거리 따윈 무시하고, 마음만 앞서 냅다 몸을 날린 아빠였다.
아빠와 마주 보다 몸을 돌린 지연은 이번에는 주위를 잘 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가 뒤에서 지연을 불렀다.
“유지연! 어디 가! 위험하게 막…… 앞도 안 보고 다니고…… 너는 네가 다 큰 줄 알지? 너 아직…….”
“화장실 가요.”
“……그, 그래? 그럼 갔다 와라. 어디 가는지 말을 하고 다녀야 부모가 걱정을 안 하지.”
걱정 안 하셔도 괜찮다고 말하려던 지연은 그것은 너무 버릇이 없는 것 같아 말을 삼켰다.
대신,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저…… 저 겉멋 들어서 연예인 되고 싶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냥 음악이 너무 좋아서, 후회하기 싫으니까 도전이라도 해 보려고…….”
“어우, 됐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집에 가서 해라. 이제 아빠도 머리 아프다.”
“……그럼 처음부터 집에 가서 하지 그러셨어요.”
“뭐가 어째?”
“왜 처음 보는 아저씨, 아줌마 앞에서 제 얘기 함부로 하세요?”
“그게 왜? 어차피 다시 만날 사람들도 아니고, 너무 속이 상해서 나도 모르게 말이 좀 나왔다.”
지연은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그냥…… 미안하다 한 마디만 해 주면 되는데.
묵묵히 서 있던 지연은 다시 걸음을 뗐다.
지연의 등에 대고 아빠가 자신 역시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야, 지연아. 너는 공부를 잘하잖아. 아빠는 못 배워 가지고 이러고 사는데, 너는 가르쳐 주겠다는데도 편한 길을 놔두고 왜…… 가수는 무슨…….”
지연은 도망가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달려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던 아빠는 한숨을 푹 쉬었다.
* * *
“이야~ 우리 남편, 나는 무슨 슈퍼맨 보는 줄 알았어. 갑자기 혼자 다이빙을 하네.”
“아니, 나는 지연이가 위험하니까…….”
“그 멀리서 뛴다고 애한테 닿아? 가까이 가서 뛰어야 닿지. 이게 딱 당신이랑 지연이 관계야. 애를 위하려고 해도 평소에 애랑 거리가 가까워야 위하든가 말든가 하는 거야.”
“…….”
“……으이구, 몸 날려서 애 구하기 전에 애한테 상처 주는 말이나 하지 마. 둘 사이에서 내가 아주 늙어 죽겠어.”
지호 엄마는 남편에게 한소리 한 후, 도진과 현주에게 와서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놀러 왔는데 괜히 우리 때문에…….”
도진은 민망해하는 지호 엄마에게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아뇨. 저희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하아…… 제가 애를 셋을 키워요…….”
지호 엄마가 이 난리 통에도 예쁘게 꼭 붙어 있는 시우와 지호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시우는 너무 멀리 있는 대상에게 급하게 마법을 거느라 조금 흐트러진 마나를 가벼운 운기를 통해 가다듬고, 어두운 얼굴로 서 있는 지호 아빠에게 눈길을 던졌다.
‘안 거르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아빠와 예민한 사춘기 중학생 딸이라니, 이것은 힘든 조합이로군. 여자애 노래나 한번 들어 보고 싶네.’
복잡한 가족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시우는 지연의 노래 실력이 궁금했다.
본인 말대로 의외로 잘할 수도 있고, 아빠 말대로 정말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들어 보면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시우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자신의 귀를 살짝 만졌다.
‘여기서는 음의 높낮이만 알아맞혀도 절대 음감이라지? 그럼 내 귀는…… 초절 음감? 초월 음감? 더 멋있는 이름 없나. 핵인싸 음감…… 아니, 이건 너무 갔다.’
잠시 후-
시우는 다시 신나게 썰매를 타고 있었다.
밑부분이 막힌 원형 튜브에 아빠와 함께 몸을 실은 시우는 썰매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직원이 뒤에서 튜브를 강하게 밀어 주었다.
“시우야! 가자!”
무거운 튜브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도진이었으나, 어른인 그도 이 순간만큼은 시우와 똑같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밑으로 내려가던 시우는 불현듯 드는 생각에 튜브에 손을 갖다 댔다.
이걸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지연을 구한 덕분이었다.
‘헤이스트으으-!’
슈우우우웅-!
시우의 가속 마법에 의해 썰매의 속도가 쑥쑥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 우아아아아-!”
도진은 갑작스럽게 빨라진 속도에 소리를 질렀고-
“꺄아아아아-!”
시우도 털모자에 붙은 토끼 귀를 휘날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너무 예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은 채 내려오는 시우였다.
“뭐, 뭐야! 저 튜브 왜 저렇게 빨라!?”
친구들과 경쟁하며 썰매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무게중심을 앞에 두고 몸을 흔들거나, 썰매 위로 발을 올리는 등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던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의 충격에 빠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 저 튜브-! 개쩐다-!”
시우는 적당한 타이밍에 슬로우로 튜브의 속도를 조절했다.
두두두두-! 퍼억!
감속 구간을 지나 안전 펜스에 튜브가 부딪쳤다.
넋이 나간 도진은 튜브에 누운 채 일어나질 못했다.
몰려온 초등학생 아이들이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형아들의 박수 세례에 시우도 자신의 장갑을 맞부딪치며 화답했다.
바람의 영향으로 시우의 양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저씨!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내려와요?!”
“저 그 튜브 타게 해 주세요!”
“야! 나도! 나랑 같이 타자!”
시우를 안고 멍하니 튜브에서 내린 도진은 아이들에게 튜브를 양보했다.
아이들은 먹잇감을 앞에 둔 한 무리의 맹수 떼처럼 달려들었다.
‘훗, 백날 타 봐라, 어린이들아. 그것은 그저 평범한 튜브일 뿐이야.’
아빠의 어깨너머로 형아들의 치열한 튜브 쟁탈전을 보면서 20개월 아가 시우는 방긋 웃었다.
이후 엄마 현주에게도 진정한 속도와 스릴의 세계를 보여 준 시우는, 대여섯 차례 더 썰매를 타고 나서야 부모님에게 이제 그만 타겠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무엇보다도 튜브를 들고 계속 언덕을 오르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물론 자신을 안고 여러 차례 언덕을 오른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만 타시려고요?”
지호에게 썰매를 태워 주느라 튜브를 들고 도진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던 지호 아빠가 물었다.
“아, 네에. 시우가 이제 그만 타겠다고 해서요.”
지호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호에게 말했다.
“지호야. 친구도 이제 그만 탄대. 지호도 잠깐 쉬자.”
도진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지호 아빠는 거의 녹초였다.
부모님의 간절한 합동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던 지호는 엄마의 핑크포로로 보자는 말에 환한 얼굴로 휴식에 동의를 했다.
사람들은 핑크포로로를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부업이고 본업은 부모님들의 메시아였다.
시우 가족과 지호 가족은 함께 푸드코트 앞에 마련된 휴식 공간으로 향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던 지연은 그곳에 혼자 앉아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가족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본 지연은 휴대전화를 쥔 채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지, 지연아!”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도 지연은 빠른 걸음으로, 아까 동생들과 놀아 주던 눈밭으로 떠났다.
쫓아가려는 아빠를 엄마가 막았다.
“놔둬. 당신이 쫓아갈수록 애가 자꾸 도망가잖아. 내가 말했지? 몸 날려서 구하기 전에 거리부터 좁히라고.”
“후우…… 모르겠다…… 응?”
아장아장.
누군가 지연을 쫓아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털모자에 달린 토끼 귀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시우였다.
“시우야, 어디 가? 누나랑 놀고 싶어서 그래? 누나 지금…….”
도진이 시우를 막으려는 찰나, 시우가 눈처럼 뽀얀 얼굴로 아빠와 엄마를 돌아봤다.
그리고 앙증맞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나 우어~ 잉잉 해애~”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시우.
도진은 약간 고민하다 시우를 잡기 위해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현주를 보자 현주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호 엄마가 현주에게 말했다.
“……시우, 영재 검사 한번 받아 봐요.”
지연은 아까처럼 손가락으로 눈을 파헤치고 있었다.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었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보다, 함께라서 외로운 게 더 힘들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눈밭에 앉아 있는데, 바로 앞에 보이는 흰 눈 위로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연이 얼굴을 들자 오늘 처음 만난 아기가 꼭 천사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지연은 밑으로 시선을 떨궜다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며 다시 시우를 바라봤다.
지연이 물었다.
“왜. 또 놀아 줄까? 아까 누나랑 노는 거 재밌었어?”
지연은 슬퍼 보이는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시우는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다 두 팔을 올려 지연을 꼬옥 안아 주었다.
멀리 있는 어른들의 눈에는 시우가 지연에게 안기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지연은 이 아기가 자신을 위로해 주려 한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시우의 몸을 끌어안은 지연은 3살 아기의 작은 어깨에 얼굴을 살며시 기댔다.
아빠는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기대와 어긋나서 이제 싫은 걸까.
모르겠다.
아빠의 말들이 마음 깊숙이 차갑게 떨어져 내렸다.
시우는 마법을 이용해 지연과 자신이 있는 작은 공간 안에 온기를 불러일으켰다.
눈썰매장의 찬 공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치 계절이 따뜻한 봄으로 변한 것처럼 사방에서 온기가 밀려와 지연을 포근하게 감싸 주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지연의 마음도 조금씩 진정이 됐다.
시우를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은 채, 약간의 떨림이 담긴 목소리로 지연이 입을 열었다.
“누나 꼭 가수될 거야…… 가수돼서…….”
지연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아빠한테 인정받을래…… 우리 딸…… 잘했다고…….”
시우는 이 상냥한 여자아이가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를 떠나, 언젠가 아빠와 마음이 제대로 연결되길 바라면서 미래의 아빠를 대신해 좀 더 자상하게 지연을 안아 주었다.
하늘에서 하얀 눈꽃들이 하나둘 흩날리기 시작했다.
시우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따스한 봄바람이 지연의 얼굴을 간질이며 끊임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