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32)
32. 과자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해가 저물기 시작한 늦은 오후.
시우 가족과 지연, 지호의 가족이 함께 눈썰매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란히 주차해 놓은 차로 돌아가면서 지호 아빠가 말했다.
“오늘 반가웠습니다. 애들끼리 아주 실컷 놀았네요.”
도진도 인사를 했다.
“네. 저희도 덕분에 오늘 하루 즐겁게 보냈습니다. 시우랑 지호가 너무 잘 놀아서, 집에 가기가 아쉽네요.”
“그러게요. 우리 지호도 시우를 신기할 정도로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어떻게, 헤어지기 아쉬우시면 애들 더 놀라고 저녁 식사도…… 어디 보자. 아직 밥 먹을 때는 아니니까. 일단 동네로 간 다음에 거기서 같이 저녁 먹고, 아빠들끼리 술 한잔? 여보, 나 시우 아빠랑 술 마셔도 되지?”
지호 엄마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나야 좋지. 당신이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올수록 좋아.”
반어법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집에 가면 또 지연이랑 둘이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도진이 대답했다.
“제가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해서 술은 어렵고, 애들끼리 더 놀게 식사 같이하시죠.”
“아쉽네. 그래요, 그럼. 경찰관이신데 술 덜 깨서 근무하고 그럼 안 되죠.”
그때, 주차장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지호 엄마를 불렀다.
“어이~ 지연네~!”
초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온 가족이었다.
지호 엄마가 손을 흔들었고, 지연도 꾸벅 인사를 했다.
지호 엄마가 말했다.
“뭐야, 지금 오는 거야? 좀 있으면 썰매장 문 닫을 텐데?”
“몰라. 애들이 잠깐이라도 타고 싶다잖아. 그냥 한 시간 타고 가려고~ 그래도 가까운데 이런 거 생기니까 좋네.”
“그래~ 잘 놀다 가~”
지호 아빠가 물었다.
“누구야?”
“104동 엄마.”
“무슨 반상회도 아니고, 동네에 썰매장 하나 생기니까 여기서 다 마주치네.”
“원래 그렇지 뭐. 지난번에 시장에서 전어 축제 할 때도 줄줄이 다 만났잖아.”
지호 엄마는 현주에게 말했다.
“그럼…… 저녁에 애들에게 뭘 먹여야 하나. 스퀘어몰에서 만날까요? 거기 3층 오므라이스 집에 애들 먹을 만한 거 있는데.”
현주의 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우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지호 엄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맛있지…….’
입가로 침을 또르르 흘리면서 시우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동네의 랜드 마크인 복합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고 지하의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본 시우 가족은 많이 친해진 지호 가족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시우야! 나중에 지호랑 또 놀자!”
지호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시우도 두 손을 흔들며 외쳤다.
“바이바이~”
시우랑 헤어지기 싫다고 지호가 떼를 쓰며 우는 상황이 잠시 벌어졌지만, 시우가 아장아장 걸어가 꼬옥 안고 볼에 뽀뽀를 해 주자 거짓말처럼 지호가 떼쓰기를 멈췄다.
그 광경을 본 지연은 썰매장에서 자신을 위로해 주던 시우를 떠올리면서, 정말 신기하고 예쁜 아기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나는 뽀뽀까진 못 받았는데.’
지연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대신 지연은 시우와 인싸 맞팔을 한 사이였다.
“누나~ 안녀엉~”
“응. 안녕. 아프지 마.”
지연과도 인사를 마친 시우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눈썰매장까지의 실제 거리는 얼마 안 됐지만, 차도 좀 막히고 썰매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탓인지 꼭 고속도로 타고 네버랜드라도 다녀온 느낌이었다.
긴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온 시우는 엄마의 가방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과자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연이 선물로 사 준 과자들이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유기농 아기 과자였지만, 현주는 어른 과자를 절대 시우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시우가 입의 심심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공식적으로 이것밖에 없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솔직히 밤에 시리얼 같은 거 조금씩 빼먹긴 한다.
어른 과자보다 훨씬 비싼 아기 과자 일곱 봉지가 매트에 놓였다.
도진이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우리 시우 좋겠네. 과자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생겨서.”
시우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가까이 있는 과자 봉지 하나를 집어 들자, 현주가 과자를 뜯어 주었다.
“중학생이라 용돈도 얼마 안 될 텐데. 시우만 사 주면 동생 서운해한다고 지호 과자까지 자기 돈으로 샀잖아. 애가 진짜 너무 예쁜데, 너무 착하기까지 하더라.”
도진도 인정했다.
“그러게. 난 일하면서 진짜 별별 애들 다 보거든. 그러다 오늘 지연이 보니까 완전히 신세계였어.”
사고 치고 경찰서 끌려와서, 반성은커녕 친구들한테 자랑 전화 돌리는 어린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짭새, 짭새 거리면서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중딩들도 많았다.
도진은 머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떠올릴수록 속만 터진다.
도진은 현주에게 물었다.
“우리 시우도 나중에 사춘기 오겠지? 제발 무사히 지나가면 좋겠다.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나?”
시우는 사랑스러운 얼굴로 과자를 하나씩 빼먹고 있었다.
현주가 대답했다.
“아직 10년 남았어. 그리고 우리 시우는…… 사춘기 안 올 수도 있어.”
“그건 이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건 우리의 희망일 뿐이라고 말하려던 도진은 굳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어 말을 바꿨다.
그러나 시우에 한해서 만큼은 사춘기가 안 오는 쪽이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걱정 마세요. 사춘기 훌쩍 넘어서 백춘기 겪고 있는 중이니까. 뭐, 너무 싸돌아다니느라 집에 늦게 들어올 것 같긴 하지만…….’
중학생만 되면 그때부턴 완전한 자유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성적도 전교 1등 딱딱 찍고, 자기 할 일 완벽하게 해 놓고, 그 후엔 그냥 열심히 놀면 된다.
‘뭐 하고 노느냐가 문제로군. 일단 연기도 좀 하고, 가수? 전생에 음악 스탯 쌓아 놓은 게 아까우니까 그것도 해 볼까?’
와그작.
그러나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지금은 누나가 사 준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20개월 아기 시우였다.
* * *
두 달 뒤.
현주는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부터 깨서, 곤히 자고 있는 시우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심장이 자꾸 두근거리고 너무 떨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배 속에 품고 있던 열 달까지 포함하면, 거의 3년이었다.
3년 동안 붙어 있던 시우와 떨어진다는 게…… 시우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엄마인 자신이 더 힘든 느낌이었다.
괜히 보내기로 했나.
보내지 말까.
아침에 바로 전화해서 못 가게 됐다고 할까.
시우가 많이 울면 어떡하지.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시우가 울면…….
그땐 그냥 바로 데리고 들어와야지.
긴장 탓에 차가워진 손으로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현주는 마음이 계속 욱신욱신 아팠다.
한 시간- 두 시간-
몇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현주는 퀭한 얼굴로 아침 준비를 했다.
남편이 아침에는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일어난 도진이 안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여보, 오늘 우리 시우 어린이집 가는 날이지? 첫날이니까 내가 데려다주면 좋은데 출근 때문에…… 여보, 괜찮아?”
현주의 퀭한 얼굴을 본 도진이 놀라서 다가왔다.
“왜 그래?”
현주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불안해서…… 엄마랑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혹시 다치거나 그러진 않겠지?”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요즘 뉴스 보면 어린이집 안 좋은 얘기들이 자꾸 보이니까.”
“…….”
도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서 아내를 꽈악 안아 주었다.
그리고 등을 천천히 쓸어 주었다.
엄마의 말을 들은 시우는 복실이와 네로를 좌우에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거실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하아…… 어머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자는 보통 아기가 아니니까요.’
요즘 사극 말투에 빠져 있는 시우였다.
주방에서 도진이 현주를 위로하는 사이, 시우는 부모님이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만에 영아무흔보를 펼쳤다.
과거, 아기 시절에 몇 차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후 직접 창안한 영아 전용 무공이었다.
파파팟!
시우는 매트를 밟으며 쏜살같이 몸을 날려 소파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시우의 경공을 본 네로는 잠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가 마치 경쟁하듯 파파팟 도약해 시우의 옆으로 따라 올라왔다.
복실이만…….
– 끼잉. 끼잉.
자기도 올려 달라고 밑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비행 마법으로 복실이도 올려 준 시우는 오동통한 다리를 어른처럼 꼬고, 소파 꼭대기에 앉아서 오연하게 거실을 내려다봤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복실이와 네로도 뭘 하는지는 몰라도 시우를 흉내 내며 턱을 들고 똑같이 거실을 내려다봤다.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거실을 보며 시우는 마나를 손끝에 모았다.
그리고-
타앗!
소파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체조 선수처럼 공중제비를 돌면서 시우는 손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슈슈슈슈슛-!
팍팍팍팍팍-!
어젯밤에 쌓아 놓은 블록들이 뭔가에 맞은 듯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공룡 모양의 로봇 장난감이 머리에 뭔가를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복실이의 장난감인 노란색 엽기 닭이 배에 뭔가를 맞고…….
꽤애애애액-!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흠칫.
엽기 닭은 너무 시끄러운 놈이라 건드려선 안 됐는데.
공중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놈의 묘한 눈빛에 무심코 탄지공을 날리고 말았다.
거실 매트 위에서 슈퍼 히어로 랜딩 자세를 취하고 있던 시우는, 멋지게 몸을 일으키다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러고 놀려고 100번을 살았나.’
노란색 어린이집 차량이 도착했다.
차에서 젊은 여자 선생님이 내렸다.
“어머님, 시우가 한동안 많이 울 수 있어요. 아이 우는 거 보면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보내 주셔야 애가 덜 불안해하거든요. 다 적응하는 기간이니까…….”
“엄마~ 안녀엉~ 샤앙해~!”
시우의 활기찬 인사에 선생님은 당황했다.
시우는 두 손을 머리 위에 모아 어설프게 하트를 그리고, 누가 시키기도 전에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아, 아니. 으응? 시우, 어린이집 처음 아닌가요?”
“네에…… 처, 처음이에요.”
현주도 당황했다.
하지만 시우의 밝은 모습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시우야, 잘 다녀와. 엄마도 사랑해.”
“응~ 샤앙해~ 샤앙해~”
“선생님, 시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손을 휙휙 흔든 시우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차량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자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곰돌이 경호였다.
카시트에 앉은 경호는…….
엉엉 울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쩔쩔매며 아이들을 달랬다.
“얘들아, 얘들아. 울지 마세요. 괜찮아요. 놀러 가는 거예요.”
“으아앙-!”
“엉엉엉-!”
“엄마아-!”
엄청났다.
시우는 올라타자마자 바로 다시 내리고 싶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건 뭐야. 심한데?’
어린이집에 익숙한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심지어 경호는.
“흐억! 흐억! 흐억!”
너무 울어서 소리도 잘 못 내고 있었다.
“우리 시우는 여기 경호 옆에 앉을게요. 친구 맞죠?”
선생님은 시우를 경호 옆 카시트에 앉혔다.
안전벨트를 매는 내내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던 시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엄마의 육아 시간이 끝나자, 자신의 육아 시간이었다.
시우는 주문을 외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