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37)
37. 신동이라고?
6월 초.
도진의 비번을 맞아 시우 가족은 차에 몸을 실었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도진이 현주에게 말했다.
“참기름 받으러 다 같이 출동을 하네. 평소처럼 그냥 보내 달라고 하면 되는데.”
“시우가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전에 촬영장에서 처음 보는 분들한테 하아부지, 하무이 하고 안겼다니까. 그리고 지난 생신 때도 우리 못 갔잖아.”
“그건 내가 바빠서 그런 거고.”
“그래도, 우리 아빠 생신 때 가고 아버님 생신 때 못 가서 좀…….”
“알았어. 뭐, 손자 얼굴 보고 싶으실 테니까 가서 보여 드리고 오자.”
“응.”
와그작.
카시트에 앉은 시우는 비타민을 씹으며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 설날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올라오셨으니까, 시골집은 추석 때 이후로 처음인가. 그때가 16개월…… 참 어릴 때였구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25개월 아기 시우였다.
시우 가족이 탄 차는 몇 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목적지에 다다랐다.
‘경치 좋네. 도시랑은 다른 매력이 있어.’
시우는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을 감상했다.
시골이라고 해도 깡시골은 아니었고,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번화한 읍내도 있고 제대로 된 병원도 있는 그런 산 좋고 물 좋은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귀농을 선택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곳에 아담하고 예쁜 전원주택을 짓고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고 계셨다.
편백 숲을 가로지른 시우네 차는 작은 앞마당을 가진 붉은 벽돌집 앞에 도착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집 참 예쁘다.”
시우를 안고 차에서 내린 현주는 집을 보며 감탄했다.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하시던 일이 이런 거니까.”
“응. 오빠, 우리도 나이 들면 이렇게 시골로 내려와서 집 짓고 살까?”
“나 정년퇴직할 때쯤 생각해 보자. 그때 되면 시우도 다 컸겠다.”
도진이 가서 마당 문에 달린 벨을 누르자 곧 붉은 벽돌집의 현관이 열리고,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유~! 우리 새끼들 왔어! 여보! 얼른 나와!”
할머니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도 등장했다.
할아버지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한달음에 마당을 뛰어왔다.
“허허허! 아니, 뭐 하러 이 먼 데를 왔어. 시우 피곤하게.”
말과 다르게 할아버지의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시우는 자신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아부지~ 안아~”
요즘 시우에게 존댓말을 조금씩 가르치고 있는 현주가 말했다.
“주세요~ 해야지.”
“주예요~”
할아버지는 시우의 예쁜 목소리에 얼굴이 벌게진 채 손을 맞부딪쳤다.
“아이고~ 아이고~ 이뻐~ 우리 새끼~ 이제는 컸다고 말도 잘하고~”
도진은 어린 시절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고, 누구보다 엄했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를 비교하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같은 아버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 나비랑 복실이는 안 데리고 왔어?”
할머니가 현주에게 물었다.
여기서 나비란 네로였다.
현주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고양이는 멀리 낯선 곳 와서 자고 그러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서…… 복실이랑 둘이 하루 놀라고 두고 왔어요.”
할머니는 약간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래? 설날에 올라갔을 때 보니까 귀엽더구먼. 아 참! 우리가 아직 말 안 했지?”
“네?”
“시우야, 이 할머니랑 안에 들어가자. 할머니 집에도 강아지 있어.”
시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을 잡고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마당을 아장아장 걸었다.
발밑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시어머니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는 예쁜 정원을 걷던 현주가 입을 열었다.
“어머님, 너무 예뻐요. 정원 관리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며느리의 정원 칭찬에 할머니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지금은 괜찮아. 여름 되면 그때가 힘들지. 매일 풀 뽑고, 물 주고, 잔디 깎고…… 맘에 드는 정원이 어디 그냥 얻어지나. 다 땀 흘린 만큼 얻는 거지.”
할머니가 문을 열어 줬다.
할아버지와 시우가 먼저 집으로 들어갔고, 도진과 현주가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며 들어온 할머니가 모든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그 대사를 입에 담았다.
“밥은 먹었어?”
도진이 대답했다.
“아침 먹었어요.”
“그럼 점심 먹어야지. 내가 다 해 놨어. 금방 꺼내 주마. 당신은 방에 가서 시우 저기 강아지 보여 줘. 시우 좋아할 거야~ 도진아, 너도 현주랑 가서 봐! 아주 귀여워어~”
“아, 어머님. 저도 도울게요.”
“저도…….”
현주와 도진이 돕겠다고 나서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일단 보고 와~ 내가 시우 온다고 애들 다 이쁘게 씻겨 놨어.”
할머니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떠났다.
“시우야, 강아지 좋아해?”
손자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하면서 할아버지가 물었다.
“웅~ 강아지 조아~ 이쁘니~”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강아지가 이쁘니야~?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이뻐, 안 이뻐?”
“하아부지도 이쁘니~ 하무이도 이쁘니~”
할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할아버지와 시우는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걸어 한 방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면 전체가 통유리인 아늑한 방이 나타났다.
통유리 너머로 높게 솟은 무화과나무가 보였다.
“와…….”
시우가 무화과나무를 올려다보며 입을 살짝 벌리고 감탄하는 사이, 할아버지는 방 한편에 놓인 미니미니한 강아지 집으로 다가갔다.
“얘들아, 나와 봐라. 서울에서 형님 왔다. 쭈쭈쭈~”
강아지 집 안에서 작은 무언가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 멍~
눈처럼 새하얀 조그만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 멍~
그리고 또 한 마리.
– 멍~
마지막 한 마리까지.
세 마리의 하얀 새끼 강아지들이 꼬리를 바쁘게 흔들며 시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귀엽잖아?’
시우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세 마리의 새끼 강아지들이 한꺼번에 시우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 멍멍멍~!
맹수 무리처럼 맹렬하게 덤벼드는 강아지들의 기세에 시우는 엉덩이를 뒤로 찧으며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시우가 발라당 드러눕자 몸 위로 올라온 강아지들은 시우의 옷을 앙앙 물고 얼굴을 핥고, 머리를 비비면서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꺄아~!”
시우는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여 자지러지게 웃었다.
찰칵! 찰칵!
도진과 현주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휴대전화를 꺼내 시우와 강아지들을 찍었다.
“우리 아들, 아주 신났는데? ……사진이 다 흔들렸어. 아~”
도진이 흔들린 사진을 보고 아쉬워할 때, 현주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현주가 연속 촬영으로 찍은 사진들 속에는 시우와 강아지들이 한 점의 흔들림 없이 깨끗하게 담겨 있었다.
“걱정 마. 내가 잘 찍었어. 나 이제 거의 프로야.”
“오~ 우리 여보, 인싸 계정 처음 만들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촬영 전문가가 됐어. 사진 보내 줘.”
“응. 그리고 밤에 시골 풍경이랑 같이 인싸에도 올려야지. 시골 간다고 하니까 팔로워분들이 시골 사진 올려 달라고 하셨거든.”
“하하. 그래. 우리 시우 완전히 인싸 대스타네.”
다다다다-!
인싸 대스타 시우는 강아지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방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밥을 먹고 마당에서 강아지들과 뛰어놀던 시우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하아부지~ 이거 모야?”
“이거? 전봇대. 집에 TV 나오게 해 주는 거야.”
“이거느은?”
“논두렁이야. 여기 보면…… 보자. 어이구, 저기 개구리 있다. 할아버지가 잡아 줄게.”
할아버지가 논두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현주가 외쳤다.
“아버님, 조심하세요.”
“괜찮아. 괜찮아.”
할아버지는 몸을 숙이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개구리 한 마리를 가볍게 낚아챘다.
‘역시 할아버지. 고수의 손목 스냅이로군.’
평생을 손재주로 먹고 살아온 할아버지였다.
개구리 잡는 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아, 시우야~ 개구리다!”
할아버지의 손바닥 위에 개구리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개구리가 멀뚱멀뚱 시우를 쳐다봤다.
현주는 휴대전화로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본 시우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띠고 개구리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안녀엉~ 개구리야~ 이리 와~”
개구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온~”
시우는 손을 내밀어 봤다.
개구리가 흘끗 시우의 손을 봤다.
그러더니, 아랑곳 않고 그냥 밑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바로 그때.
스르륵.
시우의 손이 본능적으로 살짝 움직였다.
원래대로라면 시우의 발밑으로 내려갔어야 할 개구리가 시우의 손 위에 정확히 착지를 했다.
– …….
“…….”
개구리도 당황했고, 시우도 당황했다.
개구리가 손 옆으로 뛰기에 자기도 모르게 받았다.
도진이 현주에게 물었다.
“찍었어? 시우가 받은 거 맞지?”
“응. 시우 반사 신경 진짜 좋다.”
여름 이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 시우의 여러 인기짤들 중 또 한 가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제목은 [덕구의 놀라운 반사 신경>.
참고로 다른 인기짤은 시우가 백숙을 먹다 꾸벅꾸벅 조는 짤.
시우가 물수제비에 실패하고 울먹이는 짤.
시우가 [더쿠 아부지이~>를 외치는 짤 등이었다.
사실 이쯤 되면, 시우가 눈만 감았다 떠도 인기짤이 탄생한다고 봐야 했다.
개구리는 시우의 손에서 폴짝 뛰어 논두렁으로 돌아갔다.
“잘 가아~ 바이바이~”
시우는 할아버지와 함께 개구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푸른 하늘과 산과 논밭을 감상하며 한가롭게 논길을 걷다 보니 마음이 무척 평화로웠다.
‘이런 삶도 좋지. 모든 것이 느리게 평온하게 흘러가네.’
구름조차도 여유롭다.
“시우야, 민들레 불어 볼까? 후~ 해 봐~ 씨앗들아, 멀리멀리 날아가라~ 하고 후~”
할아버지가 민들레를 시우의 입 앞에 댔다.
시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바람을 불었다.
“푸우!”
민들레의 앞부분이 바람을 타고 예쁘게 허공으로 날아갔다.
“푸! 푸우!”
그러나 뒷부분은 잘 날아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도와줄까? 후우!”
남은 민들레 씨앗들까지 전부 논길 이곳저곳으로 하늘하늘 날아가기 시작했다.
찰칵!
이 순간들 역시 현주는 사진으로 남겼다.
오늘 밤, 인싸 70만 팔로워분들께 선물 보따리를 안겨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서울에서 손자가 내려왔어? 이야, 이쁘다~! 잘생겼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녹색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시우의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왔다.
시우의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이쁜 손자가 더 잘 보이도록 시우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자랑하듯이 말했다.
“이쁘지? 얘가 나 닮아 가지고 아주 이쁘고, 머리도 엄~청 똑똑해~!”
“닮은 거는 모르겠고…… 그 배우 한다는 아기 맞지? 그러면 아기가 막 대사도 하고 그러나?”
“그럼~! 우리 손자가…… 그 뭐야. 요즘 말이라 알랑가 모르겠는데…… 감독들이 신수틸러라고 칭찬을 그렇게 많이 한다더라고~!”
녹색 모자 할아버지가 손뼉을 딱 맞부딪치더니 말했다.
“아, 맞다. 지금 종수 할배네도 손자가 와 있던데? 걔랑 얘랑 나이가 비슷하겠구먼. 그 애가 말을 아주 그렇게 잘한다고 신동이라잖어. 얘는 말 좀 할 줄 아는가?”
“……뭐, 하 참 나. 말 못하는 애도 있는가?”
“아니, 걔는 겁나게 잘하던데? 머리가 아주 비상해. 보통이 아니더라고. 이웃들이랑 지금 종수 할배네 모여 있으니까 함 가서 봐 봐. 똑똑해서 깜짝 놀랄 거야~”
녹색 모자 할아버지가 떠났다.
시우의 할아버지는 시우를 안고 가만히 서 있다가 할머니와 시우를 향해 말했다.
“그 할배 볼 때마다 우리 시우보다 자기 손자가 더 똑똑하다고 아주 자랑을 있는 대로 했잖아. 가서 한번 볼까? 시우야, 어때. 할아버지랑 갈래?”
“웅~ 조아~”
시우도 궁금했다.
‘신동이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