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38)
38. 워떠빠악~?
종수 할배네 집은 슈퍼마켓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종수 할배랑 너네 아버지랑 라이벌이야, 라이벌.”
할머니가 도진에게 말했다.
“네. 들었어요. 두 분이 시간 나실 때마다 바둑 두신다고.”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라이벌은 무슨. 내가 승률이 확실히 더 높은데. 그 할배는 딱 내 바로 밑이야. 나한테 안 돼~”
도진과 현주는 할아버지의 너스레에 미소를 지었다.
건강하고 즐거워 보이셨다.
시우 할아버지네 집처럼 종수 할배네도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이었다.
꽃이 예쁘게 핀 정원은 없었지만 마당의 넓이는 시우 할아버지네보다 컸다.
마당에 있는 평상을 가운데 두고 몇몇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여어~ 종수 할배! 손자가 놀러 왔어?”
시우네 할아버지는 스웩 넘치게 마당으로 들어서며 손을 흔들었다.
손자 재롱에 그저 좋아라 입을 벌리고 있던 종수 할배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자신의 숙적이 열려 있는 마당 문을 통과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 석호~! 소문도 빠르네. 안 그래도 전화해서 부르려고 했는데 벌써 왔어? 그리고 왜 꼬박꼬박 반말이여. 내가 한 살 많으니까 형님 대접하라고 했어, 안 했어?”
“난 빠른이라고 했어, 안 했어?”
“뭐래는겨.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빠른을 따지냐. 친구 시켜 줍쇼 하고 깍듯하게 부탁을 해야 내가 생각을 함 해 보든가 하지.”
“친구 시켜 줍쇼~”
“오냐~”
석호 할배와 종수 할배의 만담에 동네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우의 할아버지, 윤석호는 시우를 데리고 평상 쪽으로 향했다.
“우리 손자도 왔어~ 아가들끼리 함 같이 놀라고 할까?”
시우를 본 종수 할배가 흔쾌히 대답했다.
“좋지~! 아, 고놈 잘~ 생겼다! 너네 할아버지 하나도 안 닮았다. 천만다행이구먼.”
“뭔 소리야. 나를 쏙 빼닮아서 잘생겼지.”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평상 위로 올라간 시우는 얼굴을 들고 앞을 쳐다봤다.
아이언맨의 얼굴이 그려진 멋진 반팔 티셔츠를 입은 아기가 시우도 즐겨 먹는 핑크포로로 비타민 한 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웁스, 일단 의상에서 1패다.’
시우는 인정했다.
지금은 사이즈 때문에 입지 못하는 정태 엄마가 사 준 황금 해골 티셔츠가 문득 그리워졌다.
그거라면 아이언맨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눈앞의 아기…….
‘……아기라기엔 좀 큰데.’
시우보다 개월 수가 있어 보였다.
여하튼 어른들 눈에는 똑같은 꼬물이인 눈앞의 아기가 두 손으로 낱개 포장되어 있는 비타민 껍질을 잡고, 단숨에 쫙 깠다.
주변 어른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와~ 저 손 야무진 거 봐라. 혼자 까먹네.”
“아기가 아주 똘똘하구먼. 얘가 몇 살이라고 했지?”
평상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아기 엄마가 호호 웃으며 대답했다.
“세 살이에요~”
정확히는 29개월로 시우보다 4개월 형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이번에는 현주에게 물었다.
“얘는 몇 살이여?”
“저희 애도 세 살이에요.”
“그럼 둘이 친구구먼. 얘는 말 좀 하는가. 여기 종수 할배네 애는 말을 아주 어른처럼 하던디.”
“아…… 네에. 조금씩 해요.”
동네 어른들은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새로 등장한 꼬물이 시우에게 말했다.
“아가야~ 너도 말 한번 해 봐라~ 목소리 함 들어 보자~”
종수 할배네 손자의 활약으로 눈이 높아진 동네 어른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시우의 입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시우는 우물우물 입을 뗐다.
“아부부부~”
어릴 때나 하던 옹알이가 시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직은 탐색의 시간이었다.
상대의 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전력을 노출할 수는 없었다.
“아직 말을 못하나?”
“에이, 아가들이 다 천차만별이지. 세 살이면 아직 한참 어려~ 종수 할배네 손자가 별나게 똑똑한 거여~”
종수 할배네 며느리가 자신의 아들에게 물었다.
“영수야~ 비타민 맛있어?”
영수가 입을 열었다.
“응~ 마시써. 또 줘.”
“알았어. 영수 힘드니까 엄마가 까 줄까?”
“내가~ 내가 까머글 꺼야~”
“할 수 있어?”
“하 쑤 이써~ 영수 잘해애~”
“비타민 먹고 싶을 때는 어떻게 말해야 돼?”
“비타민 주세요~”
시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접수했다.
이 정도로군.
사실 말이 빠르다고 똑똑하거나, 말이 느리다고 안 똑똑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다만 시골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할아버지 기나 좀 살려 드리고 가자.’
시우는 숨을 흡 들이켠 다음, 엄마를 향해 말했다.
“엄마아~ 나두 비타민~ 주세요~”
“……!”
동네 어른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어이구야, 얘도 말할 줄 아네?”
현주도 놀랐다.
아까 할아버지 집에서만 해도 주예요~ 라고 발음을 했는데, 영수라는 아이가 말하는 걸 듣더니 주세요~ 라고 보다 또렷하게 발음이 나왔다.
어른이 가르치는 것보다 또래 친구나 형, 누나를 흉내 내며 배우는 게 더 많다는 얘기를 다른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시우도 비타민 줄까요?”
시우는 손뼉을 치면서 대답했다.
짝짝!
“네에~!”
갑자기 시우의 존댓말이 폭발했다.
“네에 하는 거 봐! 아유, 이뻐!”
동네 어른들의 관심이 시우 쪽으로 쏠리자 영수 엄마는 현주를 한번 슥 보고, 다시 영수에게 말을 걸었다.
“영수야, 이따 할아버지한테 경운기 태워 주세요 할까?”
“겨운기? 겨운기가 모야~?”
“밖에 있는 빨간 붕붕이~ 영수가 멋있다고 한 거~ 타고 싶어?”
“응! 타고 시퍼~”
“그럼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말해야 돼?”
영수가 종수 할배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아부지~ 겨운기 타고 시퍼요~ 붕붕이 태어 주세요~”
동네 어른들이 또 감탄을 했다.
“이야, 세 살짜리 쪼그만 아기랑 대화가 다 통하네. 신기하다~ 신기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시우에게 향했다.
시우는 영수와 자신을 오가는 어른들의 시선을 보며 생각했다.
‘드랍 더 비트-.’
레벨을 살짝 올려 보자.
종수 할배와 영수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시우가 꾀꼬리 같은 아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붕붕이 이엄해~ 붕붕이 조시매야 대~ 꿍 하면 아야 해~ 피 나아~”
“……!”
동네 어른들의 눈이 한계치까지 커졌다.
“허허, 그래~ 네 말이 맞다! 붕붕이 조심해야 돼~!”
“요 쪼끄만 애가 뭔 말을 이리 잘한다냐?”
“이야아~ 놀랄 노자네 그려~”
영수 엄마는 약간 당황했다.
분명히 개월 수가 영수보다 어려 보이는데, 이 정도 말을 하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다.
영수 엄마가 아들에게 다시 말을 걸려는 찰나.
영수가 스스로 말했다.
“갠차나~! 하아부지 붕붕이니까 안 무서~ 안 이엄해~”
영수의 말에 시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올렸다.
‘안 무서워와 안 위험해. 안을 제대로 활용하는군. 말을 잘하긴 하네. 귀여운 녀석.’
“안 이엄해? 그럼 나두 가치 타두 돼?”
영수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조아! 나랑 손잡고 타자아~”
세 살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약속을 잡는 걸 보고 동네 어른들은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영수 엄마가 영수에게 재차 물었다.
“영수야, 친구랑 같이 놀 거야?”
“응. 가치 노 꺼야.”
“뭐 하고 놀 건데? 경운기 타고 어디 가고 싶어?”
“어터팍~ 어터팍 가꾸야~”
영수의 말에 동네 어른들이 물었다.
“어, 어터팍? 어터팍이 뭐다냐?”
영수 엄마가 설명했다.
“아~ 워터파크라고~ 수영장이에요. 수영장을 영어로 워터파크라고 하거든요~”
“영어를…… 영어를 할 줄 알아!? 와아~ 뭔 세 살짜리 아기가 영어를 하고 그런데?”
종수 할배가 껄껄 웃었다.
“내가 우리 손자 똑똑하다고 말했잖아~ 우리 영수는 세 살인데 벌써 2개 국어를 한다니까~ 어이, 석호~ 어때? 우리 손자 똑똑하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때였다.
시우의 깜찍한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워떠빠악~~?”
“풋!”
영수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시우가 너무 귀여워서 서로 경쟁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아이가 말도 안 되게 예뻤다.
영수 엄마의 웃음을 시작으로 동네 어른들도 왁자하게 한바탕 웃어 젖혔다.
“얘도 2개 국어 하는구먼~! 둘 다 신동이네! 둘 다 신동이야!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영수가 일어나 시우에게 갔다.
일어나니까 확실히 시우보다 키가 컸다.
영수는 시우 옆에 앉더니 시우를 꼬옥 한번 끌어안고 나서 말했다.
“가치 놀자아~ 붕붕이 타러 가까~?”
시우는 밝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응~ 그래~ 붕붕이 조아~”
종수 할배는 두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야, 기다려 봐라. 내가 애들 간식이라도 좀 가져올 테니까.”
“아버님, 제가 가져올게요. 영수랑 놀아 주세요.”
영수 엄마가 한발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다시 앉은 종수 할배는 친구인 석호 할배에게 말했다.
“이왕 왔으니까 애들 놀게 더 있다 가~ 이제 사람들은 보내고…… 어이, 잠깐만! 어터파크 여기도 있잖어. 날도 따뜻하니까 애들이랑 다슬기나 잡으러 갈까?”
시우의 할아버지가 말을 받았다.
“좋지~! 애들 다슬기죽 해 주면 잘 먹을 거야~! 경운기에 우리 가족까지 다 탈 수 있나?”
“너네 가족들은 내가 다 태워 주는데, 너는 안 태워 줄 거니까 혼자 뛰어와야 할 거야. 하하하!”
“에라이~! 하하하!”
* * *
시우는 눈을 떴다.
어린이집 천장이 보였다.
양옆에는 진아와 경호가 누워 있었다.
둘 다 꿀잠 마법의 영향으로 편하게 쿨쿨 자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시간 맞춰 낮잠을 제때제때 자 주는, 축복받은 별님반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시우는 기지개를 켜면서 방금 전에 꾼 꿈을 떠올렸다.
두 달 전,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서 영수 가족과 함께 다슬기를 잡던 꿈이었다.
‘다슬기…… 뭔가에 홀린 듯이 계속 잡았지.’
아빠도, 엄마도, 영수네 가족도 다슬기를 잡기 위해 시골에 내려온 사람들처럼 몇 시간을 하천에서 계속 다슬기만 잡았다.
부르르.
몸을 살짝 떤 시우는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운가 싶어, 열기 마법을 이용해 공기를 살짝 데웠다.
‘아가들 냉방병 걸릴라. 온도 차에도 신경을 써야지.’
살인적인 무더위가 절정에 달해 있는 8월이었다.
‘벌써 8월이네. 다음 달이면 추석이고. 이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올라오신댔지. 흠……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왕의 길 첫방 날인가? 잘 나왔으려나?’
사극 거장이라는 이홍균 감독의 명성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린이집에서 하루 업무를 마친 시우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시우야~ 어린이집 재밌었어?”
“응~ 재미써써~”
“우리 시우 오늘 티비 나오는 날이네~ 엄마는 엄청 긴장된다.”
“갠차나~ 엄마~ 뽀오~”
복실이, 네로와 함께 놀다 보니 금세 밤이 됐다.
퇴근한 도진은 시우의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린 다음, 친할머니께도 전화를 드리는 중이었다.
“네, 어머니. 좀 이따 나와요. 아뇨. 내일은 2화라서 안 나오고요. 오늘만요. 내일부터는 시우보다 큰 중학생 아이가 연기해요.”
전화를 끊은 도진은 소파에 앉아 있는 현주에게 말했다.
“……동네분들 마을 회관에 다 모여서 지금 시우 나오는 거 기다리고 계신다는데?”
“헉…….”
“시우야, 이리 와.”
시우는 다다다 뛰어 소파 위로 올라갔다.
왕의 길 1화가 전국에 방영되기 직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