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39)
39. 여보시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들었다.
가끔 제작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만드는 드라마들도 있었지만, 왕의 길은 달랐다.
초반 부분부터 엄청난 영상미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하고 있는 희주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영상 봐. 장난 없다. 이 퀄리티로 마지막 화까지 뽑아낸다고?”
희주의 혼잣말에 함께 TV를 시청하던 눈 밑이 퀭한 다른 보조 작가가 말했다.
“이홍균 감독님이시잖아요. 그나저나 언니 조카는 언제 나와요? 빨리 보고 싶은데. 빠뿌야아~!”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며 궁궐 암투 부분이 끝났다.
손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몰래몰래 TV를 훔쳐보던 어린 작가가 입을 떡 벌리고 감탄사를 뱉었다.
“와, 이홍균 감독님도 시대에 맞춰 퓨전으로 변화를 시도하시네요. 나이도 많으신데 대단하시다. 동생들 다 죽이는 사이코 패스 세자라니. 진짜 충격적이다.”
희주도 동의했다.
“그러게. 권력 때문에 형제 죽이는 거야 많이 있는 얘기지만, 이건 캐릭터들이 은근히 현대적인데? 이룰 거 다 이룬 감독님께서도 이렇게 계속 도전을 하시는구나.”
TV에서는 황동식 배우가 아기를 안은 채, 궁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물러서라-! 감히…… 감히 네놈들 따위가-!]황동식의 열연으로 희주와 보조 작가들은 숨을 멈추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가서…… 전해라. 언젠가 이 모든 일들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잡아!]추격 씬이 이어졌다.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박진감이 넘쳤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상황들이 일단락되고 극 중에서 시간이 흘렀다.
[와~ 날씨 좋다! 안 그러냐, 덕구야? 사냥 나가기 딱 좋은 날씨네! 흐흐흐!]“연기를 너무 잘하셔.”
희주는 극과 극을 오가는 동식의 연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바로 그 순간.
[아~ 부~ 지~]낡은 삼베옷을 입은 작은 아기가 등장해 환한 얼굴로 아부지를 불렀다.
멈칫.
노트북과 TV를 번갈아 보면서 바쁘게 손을 놀리던 보조 작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타이핑을 멈췄다.
느닷없이 찾아온 적막 속에, 덕구가 아장아장 걸어 아빠 대길에게 안기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이 한 번 더 클로즈업되었다.
보조 작가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TV 앞으로 뛰어갔다.
“어떡해~! 얘, 어쩜 좋아! 너무 귀여워!”
“언니 조카 왜 이렇게 예뻐요!? 빠뿌야 때보다 더 예뻐졌어!”
“저렇게 허름하게 입혀 놨는데도 애가 딱 왕이 될 상이네~!”
희주가 보조 작가들을 말렸다.
“쉿~ 다들 자리에 앉아. 빨리! 작가님 나오시면 어떡하려고 이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벌컥!
작가 사무실 안쪽에 있는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한 중년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희주야! 네 조카 왜 이렇게 예쁘니! 사무실로 한번 데리고 와라!”
메인 작가도 방에서 혼자 드라마를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태 엄마는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아~ 부~ 지~]TV 속에서 해맑게 웃는 시우의 예쁜 얼굴을 본 정태 엄마는 심경이 복잡했다.
시우가 정태보다 쭉쭉 앞서 나가는 게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시우가 잘되면 조금이나마 덕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뭐, 적당하네. 아직 3살밖에 안 돼서 저런 간단한 대사밖에 못 할 거야.”
딱히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을 하는 정태 엄마였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아둔 커피를 손에 들고 입안으로 한 모금을 넘겼다.
약간 마음이 편해졌다.
“후우, 우리 정태도 일이 늘긴 했다만, 연기 일은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시우는 저런 대작 드라마에 한류 스타 송준영 아역으로 나오고…….”
다시 심마가 찾아왔다.
정태 엄마는 또 커피를 홀짝홀짝 마셔 댔다.
드라마 속 장면이 바뀌었다.
대길이가 사냥을 나가기 전, 덕구를 이웃집에 맡기러 가는 상황이었다.
[하아부지~ 하무이~]“애들 평소에 다 하는 말이지. 저런 건 대사도 뭣도 아냐. 우리 정태가 했으면…… 하아…….”
……커피나 마시자.
정태 엄마는 거의 다 식은 커피를 물을 마시듯 목 안으로 꼴깍꼴깍 넘겼다.
그때.
드라마 속 덕구가 너무너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귀엽게 소리를 쳤다.
[더쿠 아부지이~ 다녀와유~~~]“푸우우우웁-!”
이것은 대사인가, 애드립인가.
커피가 거실 카펫 위로 분수처럼 뿜어졌다.
정태 엄마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꺄아악! 이, 이게 얼마짜리 카펫인데-!”
방에서 학원 숙제를 하던 지연도 잠시 쉬면서 태블릿으로 왕의 길 1화를 시청하고 있었다.
지연은 시우가 정신없이 백숙 먹방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그 순간 친구들로부터 톡이 무더기로 날아왔다.
– 지연쓰~! 네 동생 친구 너무 커엽다!
– 얘랑 네 동생 지호랑 친구랬지? 그럼 3살?
– 지연아, 네 동생이랑 얘랑 놀 때 우리도 한 번만 따라감 안대?
“다들 보고 있었군. 홍보하길 잘했네.”
지연은 번개 같은 속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 진짜 예쁘지? 실제로 보면 더 예뻐!
바로 답장들이 날아왔다.
– 그럼 보여 줘
– 우리도 보여 줘
– 당장 최대한 빨리
지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그래.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나도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지연의 말이 멎었다.
그리고 시끌벅적하던 단톡방도 거짓말처럼 메시지가 뚝 끊겼다.
드라마 속에서, 시우가 백숙을 입에 물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지연은 멍한 표정으로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았다.
“…….”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저 너무 사랑스러웠다.
1분 뒤.
영상이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자마자 시우 얘기로 단톡방에 메시지가 폭주했다.
뒤에 나올 송준영을 보기 위해 왕의 길 첫방을 챙겨 본 전국의 수많은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방영 다음 날.
한류 드라마 대장군의 제작진과 아시아에서 가장 핫한 스타인 송준영의 만남으로 기획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왕의 길 1화가 인터넷을 통해 발 빠르게 해외로 퍼졌다.
[덕구야아~ 아부지 소리 내는 거 잘 듣고 따라 해 봐~ 알겄지?] [응!] [자아, 하늘 천~ 땅 지~] [……하느리~ 이뿌다~] [그, 그려. 하늘이 이뿌지. 다시 들어 봐. 하늘 천~!] [하느~ 전~] [땅 지~!] [따~ 지~?] [그려! 이렇게 하나씩 따라 하다 보면 되는 거여. 이거를…… 어디서 아부지가 가르쳐 줬다고 하고 다님 안 되는데…… 아부지는 지금 사냥꾼이라…… 쓰읍…….]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멀리 유럽과 미국의 한국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도.
시우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기존의 사극 팬들은 물론이고, 송준영이 끌어모은 국내외의 젊은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시우였다.
그리고 며칠 뒤, 시우의 집.
시우는 엄마와 함께 앉아 왕의 길 1화를 VOD로 다시 보고 있었다.
이미 4번째 시청이었다.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네. 무서운 아내 때도 10번 정도 보시더니.’
특히 현주는 시우가 밥을 먹다 조는 씬과 마지막 물수제비 씬을 좋아했다.
원래는 초반에 배치되어 있던 냇가 세수 씬이 애드립에 의해 물수제비 씬으로 바뀌면서, 이홍균 감독의 판단 아래 1화 엔딩으로 옮겨졌다.
시우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엔딩 씬이 나오고 있었다.
[우으……]물수제비에 실패한 시우가 울먹이는 장면이었다.
국내외 시청자들의 마음에 귀여움 폭탄을 투하한 명장면이었으나, 시우는 슬그머니 외면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표정 연기와 목소리 톤 연기를 조금 진지하게 시도해 봤다.
반응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TV를 통해 자신이 울먹이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솔직히 약간 민망했다.
‘연기자로서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인가. 더 연마를 해야겠군.’
동식이 울기 직전인 시우를 달랜 다음, 돌 던지기를 자상하게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퐁당퐁당.
이 장면은 시우도 마음에 들었다.
부자간의 따뜻한 케미가 느껴졌다.
이제 1화도 끝이었다.
냇가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간 시우가 동식의 도움 없이 돌멩이를 혼자 휙 던졌다.
날아간 돌은 물 위에 퐁당 떨어졌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음악이 보다 경쾌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 하나가 빠른 속도로 수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냇가에서 돌을 던진 한 소년이 보였다.
“아부지~!”
활짝 웃는 얼굴로 동식을 돌아보는 잘생긴 소년.
매니저로부터 물수제비를 연습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고, 자신만만하게 엄마에게 수제비 끓이는 방법에 대해 배워 온 아역 배우 승현이었다.
“와~ 끝났네. 1화 시청률도 엄청 높았고. 잘됐다. 우리 시우 정말 고생했어.”
현주는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지 이번에도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아니에요. 어린이집 가서 하는 고생이랑 비교하면 이 정도는 놀이죠.’
시우는 현주를 따라 박수를 치면서 방긋 웃었다.
짝짝-!
뭔가 일 한 가지를 마친 기분이었다.
그때, 현주의 휴대전화가 위잉 울렸다.
“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왕의 길 방영 이후 이곳저곳의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에게까지 전화가 많이 걸려 오고 있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던 내겐 너무 무서운 아내 때와는 확실히 파급력이 달랐다.
“네. 감사합니다. 아이 잘 키울게요.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현주는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휴대전화 알림창에도 인싸 메시지가 수도 없이 떠 있었다.
“우리 시우가…… 인기 폭발이네.”
오늘 아침, 인싸 팔로워가 100만을 돌파했다.
말도 안 되는 숫자라고만 생각했는데 한번 바람이 부니 순식간이었다.
요 며칠간 외국어로 달리는 댓글들도 많았다.
현주는 인싸 앱을 열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 유아복 업체 키즈왕국입니다. 연락을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 유모차 브랜드 잉글레나입니다. 평소에도 인싸를 팔로우하고…….
– 저는 드라마 캐스팅…….
– 아기 과자 모델 제의를…….
– 팬이에요! 선물 보내고 싶은데…….
“아…… 일이 너무 커지는데…….”
방금 전까지 드라마 보고 기분이 좋았는데,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하나하나 정중하게 거절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이제는 좀 벅찼다.
“휴우, 시우야. 엄마 화장실 다녀올게.”
잠깐 사이 신경을 너무 쓴 탓인지 배가 살짝 아파졌다.
“화장실~?”
“응. 엄마 금방 올게. 화장실 앞에서 복실이랑 네로랑 놀고 있어.”
“네에~ 엄마 안녕~ 끙아 잘해~”
“아, 아니야. 엄마 끙아 하는 거 아니야~”
현주가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시우는 뭘 할까 고민하다 네로의 낚싯줄 장난감을 찾아들었다.
이걸로 애들이랑 좀 놀아 주고 있어야겠다.
시우가 낚싯줄을 흔들자 네로와 복실이가 뛰어왔다.
원래 고양이 장난감인데 복실이도 네로를 보고 노는 법을 배웠는지 제법 좋아했다.
“자~ 놀아 줄…….”
위이잉-!
복실이와 네로가 놀기 위해 몸을 움찔거리는 찰나, 현주의 휴대전화에 또 전화가 왔다.
한숨을 푹 쉰 시우는 이번엔 또 누군가 하고 낚싯줄 장난감 대신 소파에 놓인 엄마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으응?”
발신자는, 정태 엄마였다.
시우는 화장실 쪽을 흘끗 보고는 장난기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손가락을 휴대전화 액정에 가져다 댔다.
스윽.
그리고 직접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