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4)
4.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네에……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실력에 비해 과분한 상을 주신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촬영하는 내내 함께 고생한 훌륭한 연기자 선배님들, 또 후배님들, 스태프분들, 감독님, 작가님. 그리고 눈물의 엔딩 씬 같이 만들어 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우리 아기 배우 시우 너무 고맙고…… 회사 직원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연말 방송사 연기대상은 예상대로 이수진에게 돌아갔다.
남자 주인공과 공동 수상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결국 단독 수상으로 결론이 났다.
미스터 문라이트가 아니라 미스 문라이트라는 우스갯소리가 등장할 정도로 존재감이 워낙 컸다.
집에서 TV로 시상식을 시청하던 도진과 현주는 시우의 이름이 언급되자 왠지 시우가 상을 받은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내가 십 년 가까이 연기하면서도 어디 가서 배우 소리를 못 들었는데, 시우는 돌도 안 지나서 사람들한테 배우 소리를 듣네. 이거 지금 현실 맞아?”
넷상에서는 지금 ‘대한민국 아기 배우의 흔한 연기력’ 이라며 시우의 연기가 움짤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도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현주에게 물었다.
“응. 오빠. 현실 맞아. 집에 쌓여있는 것들을 봐. TV에 나오고 있는 대상 연기자분께서 보내 주신 것들이잖아.”
온갖 장난감들이 집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미끄럼틀, 그네, 미니 축구 골대, 농구 골대, 볼 풀장, 가정용 정글짐 등등.
이젠 집이라기보다 실내 놀이터였다.
도진이 말했다.
“……선물받은 걸 되팔 수도 없고, 이수진 씨한테 우리 집 평수를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 울고 촬영 잘 끝내면 선물을 주겠다던 시우와의 약속을 지킨 수진이었다.
“그래도 시우는 되게 좋아해. 나중에 크면 전부 잘 가지고 놀 거야.”
“그렇겠지. 어쨌든 고맙네. 잠깐 하루 본 건데도 이렇게 챙겨주고.”
* * *
정신없이 바빴던 연말연시가 지나가고 2월이 왔다.
시우는 한국 나이로 2살이 되었다.
개월 수로는 이제 9개월이었다.
“시우야, TV는 일주일에 한 번만 보는 거야. 알았지? 오늘은…… 지난주에 [드래곤 조련하기> 봤으니까, 오빠 이거 볼까? [보스는 베이비>? 아니면 [장난감 이야기>?”
도진과 현주, 시우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도진이 말했다.
“난 애니메이션은 별로. 영화는 액션이지.”
“가족끼리 같이 보는 게 중요한 거라니까. 시우를 위해서.”
“알았어. 보스는 베이비든 장난감 이야기든 아무거나 틀어. 근데 장난감 이야기는 나 어릴 때 2편까진가 봤어. 몇 편 볼 건데?”
“1편 보려고 했는데, 그럼 보스는 베이비 보자.”
“그래. 우리 시우, 아빠 무릎에 앉을래?”
도진이 무릎을 탁탁 치자 시우가 아빠 무릎 위로 올라왔다.
아직 9개월인데 말 트이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고, 말귀도 정말 잘 알아듣는 시우였다.
“시우는 뭔가 남달라. 나중에 공부시켜서 서울대 보내야겠어.”
“언니는 배우 시키라던데.”
도진은 시우가 앉아 있는 무릎을 위아래로 흔들어 주면서 말했다.
“시우야.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면 아빠가 배우 되는 거 허락해 줄게.”
현주가 리모컨으로 애니메이션을 틀고 시우에게 말했다.
“그럼 엄마는 우리 시우가 배우 되면 서울대 가는 거 허락해 줄게.”
현주와 도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복실이도 달려와 소파 밑에 자리를 잡았다.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보스는 베이비를 보던 중, 도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무슨 7개월짜리 아기가 말을 저렇게 잘해? 혀 구조상 불가능한 거 아냐? 뇌 발달도 안 됐을 텐데?”
현주가 시우와 함께 팝콘 대신 쌀 튀밥을 먹으며 대꾸했다.
“왜? 할 수도 있지. 우리 시우도 사실은 엄마, 아빠 안 볼 때 말 다 하고 뛰어다니고 그러는 거 아냐? 응? 아냐? 아냐? 시우야, 대답해 봐. 너 밤에 아기 주식회사 출근했다가 아침에 퇴근하고 그러니? 응?”
현주가 미소 띤 얼굴로 시우의 옆구리를 간질이며 물었다.
시우는 소름이 쫙 돋았다.
‘뭐야, 이 영화는? 감독이 약을 빨고 만들었나, 아님 이 감독도 혹시 나랑 똑같은 환생자?! 드, 들키면 안 돼.’
몇 번의 초창기 환생 때 부모에게 들켰더니, 그때마다 거의 몇 년 동안 사제들이 찾아와 멀쩡한 자신을 붙들고 엑소시즘을 행했다.
– 나가라! 아기의 몸에서 나가라!!
[나가긴 어딜 나가! 내 몸이라니까!]– 이런 악령 놈이! 썩 나가지 못할까! 성수를 더 가져와!
[야, 이 새끼들아! 그냥 내 몸이라고! 이 몸에 태어났을 뿐이라고!]– 이런 지독한! 오랜 세월 엑소시스트로 살아 왔지만 너 같은 악령은 처음이다. 내 목숨을 걸고 널 아기의 몸에서 내쫓을 것을 신께 맹세한다.
[……하, 진짜. 너 내가 나중에 커서 찾아간다. 검술로 죽여 줄까. 마법으로 죽여 줄까. 골라.]–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이 비열한 악령 놈!! 사제들이여!! 신력을 모아라!! 구마 의식을 거행하라!!
시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이 안…… 마리암…… 맘맘마…….”
“응? 시우 배고파? 맘마 먹고 싶어?”
큰일 날 뻔했다.
무심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제들에게…… 아니지, 여기는 무당인가?
한바탕 굿판이 벌어질 뻔했다.
시우는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맘마!”
“알았어. 엄마가 맘마 줄게.”
현주가 시우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에서 시우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거실로 돌아오자, 그사이 도진은 복실이를 배 위에 올린 채 소파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화 뒷부분은 나중에 봐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애니메이션 장르는 현주 취향이고 도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혼자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같이 보고 싶었다.
뭐, 부부니까?
“시우도 아빠처럼 코오 잘까? 아니다. 방금 밥 먹었으니까 조금만 놀다 자자.”
짝짝짝!
시우는 좋다는 뜻으로 손뼉을 쳤다.
희한하게 싫을 때 도리도리는 편하게 할 수 있는데, 좋을 때 끄덕끄덕은 너무 어른스러워서 못 하겠다.
둘 다 고갯짓에 불과한데 이 미묘한 느낌의 차이는 뭘까.
“시우 뭐 하고 놀까? 보행기 탈까? 아니면, 엄마랑 피아노 칠까?”
“아부붑! 비아!”
“응. 엄마랑 같이 피아노 치러 갈까?”
현주는 시우를 데리고 작은방으로 갔다.
자고 있는 남편을 위해 방문을 닫고, 오래된 구형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아 볼륨을 낮췄다.
이 정도면 거실에서 안 들리겠지.
“어차피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지만…… 엄마가 자장가 쳐 줄게.”
현주는 무릎에 앉은 시우를 자신의 팔 안에 가두고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렀다.
잔잔한 선율이 방 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현주였다.
졸업을 앞두고 형편 문제로 음대 진학을 포기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었지만, 그래도 종종 남편과 아들을 위해 지금도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어릴 때 언니는 연기로, 나는 음악으로 반드시 성공하자고 했는데 결국 둘 다 잘 안 됐네. 도진 오빠도 그렇고, 우리 집안은 전부 꿈을 못 이뤘구나.’
시우만큼은 원하는 삶을 꼭 살길 바라면서 현주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아름다운 음들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시우는 엄마의 품에 기대 눈을 감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좋다. 잠이 오네.’
아기의 몸은 신기했다.
아직 어려서인지 이성보다 본능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안고 흔들어 주면 버티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이 졸려진다거나, 입에 공갈 젖꼭지를 물려 주면 마치 어른이…… 그 연기 나는 막대기를 무는 것처럼 스트레스가 쫙 풀린다거나, 자다 깨면 갑자기 막 울고 싶어진다거나 그런 경우들이 있다.
지금도 그랬다.
별로 자고 싶지 않은데 피아노 소리를 들으니 급격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꾸벅 하고 인사하듯 머리가 휘청이는 찰나 현주가 시우에게 말했다.
“시우도 쳐 볼까? 이런 거 자꾸 해야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소근육 발달이 된대요.”
현주는 시우의 두 손을 건반 위에 올려 주었다.
“눌러 봐, 시우야. 딩동딩동 소리 나네? 신기하다. 그치?”
딩딩딩!
엄마가 이끄는 대로 건반을 누르면서 시우는 생각했다.
‘9개월인 내가 여기서 느닷없이 엄마보다 잘 쳐 버리면 엄마가 기절하겠지?’
두 손까지도 필요 없었다.
어차피 아기라서 손가락이 넓게 펼쳐지지도 않으니까.
그냥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간단한 선율로 엄마를 경악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일곱 번의 생에서 음악을 업으로 삼았고 그중 네 번의 생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이곳처럼 평범하게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 죽이는 음공 계열 음악이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지난 99번째 생도 음악 하다 죽었지.’
바로 이전 생은 처음으로 음공이 아닌 순수 음악을 시도해 본 삶이었다.
때문에 수련을 너무 게을리해서 다른 생이었다면 물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겼을 식량에 불과한 드래곤 한 마리랑 양패구상하는 수모를 겪었다.
‘너무 방심했어.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그 생에서 자신이 다루던 악기는 이곳의 피아노와 닮은 점이 무척 많았다.
때문에 음이 단순하고 속도가 빠르지 않은 곡일 경우 9개월 아기의 몸이라도 약간 겸손하게 말해 엄마와 비슷한 수준의 연주가 가능했다.
‘그래도 최소한 유치원 정도는 간 다음에 치자. 작은 의심이 큰 의심된다. 무당이 내 이마에 부적을 붙일 수도 있어.’
딩딩딩! 동동동! 땅땅땅!
건반을 두들기며 놀던 시우는 잠시 후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 * *
일어났을 때는 창밖이 어두워진 저녁이었다.
시우는 아기 침대 안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다음, 기저귀를 확인했다.
축축함이 느껴졌다.
‘쌌네. 쌌어. 이런 것도 조절이 안 된다니까. 춥다.’
젖은 기저귀 때문에 체온이 떨어졌다.
보일러가 돌고 있지만 그래도 2월이라 공기가 차가웠다.
시우는 머리를 감싸고 있는 팬더 우주복의 모자를 뒤로 잡아당겨 벗고 양반다리 자세를 취했다.
혹시 엄마, 아빠가 불쑥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 부자연스러운 가부좌는 하지 않았다.
‘이제 3개월 지나면 돌이다. 그때부터는 대천문이 닫히기 시작할 거야. 그전에 천기를 최대한 많이 끌어모아 놓아야 나중에 놀 수 있다.’
대천문이 닫히기 전에 하는 수련은 어른이 되어 하는 수련보다 열 배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대천문은 보통 12개월에 닫히기 시작해 늦어도 24개월 안에는 완전히 닫힌다.
더 늦게 닫히게 만들 수도 있으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아기 몸의 변화 속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득보다 실이 컸다.
가볍게 운기를 하자 몸이 따뜻해졌다.
‘부모님 눈치 안 보고 계속 수련만 하면 빨리 강해지긴 할 테지만 내가 뭐 싸우는 기계도 아니고. 게다가 이 세상은 몬스터나 전쟁도 없는 것 같던데 마지막 생이니까 제발 평화롭게……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놀다가 지쳐 쓰러져 죽자.’
시우가 마지막 생의 꿈, ‘놀다 죽기’를 다짐하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오빠~! 언니 왔나 봐! 문 좀 열어 줘!”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현주가 외쳤다.
야간 출근 준비를 마친 도진이 안방에서 나왔다.
“알았어.”
도진은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희주가 서 있었다.
“야, 도진아. 문에 전단지 엄청 붙어 있다. 집주인한테 공동 현관이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
“우리가 돈 벌어서 이사를 가는 게 더 빠를걸. 들어와. 오늘 자고 간다고? 난 이제 밥 먹고 지구대 출근할 거야. 내일 아침까지 현주 잘 부탁해.”
“그래. 민중의 지팡이야. 밤새 대한민국의 평화를 잘 부탁한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희주를 향해 현주도 인사를 건넸다.
“언니, 왔어? 손 씻고 시우랑 놀아 주고 있어. 밥 금방 돼. 시우 아직도 자나? 너무 오래 자네. 밤에 안 잘 수도 있으니까 깨워.”
희주는 외투를 벗고 손을 씻은 다음 아기 침대로 갔다.
“시우야~! 이모 왔다~!”
애착 인형을 끌어안고 침대 안에서 뒹굴고 있는 시우를 본 희주는 팔을 뻗어 조카를 안아 들었다.
“시우 코오 했어? 이모가 우리 시우 많이 보고 싶었어.”
“맘마.”
“너는 이모 얼굴만 보면 맘마야? 맨날 맘마만 찾아요? 다른 말도 얼른 해 봐. 이모, 안녕하세요. 요즘 컨디션은 어떠세요. 응? 이런 말도 할 줄 알아야지.”
시우에게 농담을 던진 희주는 시우를 안고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도진과 현주에게 말했다.
“자아, 주목. 어텐션 플리즈. 도진이 출근한다니까 지금 말할게. 시우 아버님. 시우 어머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