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44)
44. 천재바두하원
“킥보드 탈 거야?”
“응!”
도진은 트렁크에서 킥보드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연초에 대상 배우 송준영이 선물한 킥보드였는데, 직접 꾸민 건지 알록달록하게 색이 입혀져 있었고, 발판 위에는 ‘시우꺼’라는 세 글자가 정자로 적혀 있었다.
구매한 그대로 줬으면 더 예뻤을 거라는 말은, 마음속에만 담아 두기로 했다.
……승현이 자전거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시우는 킥보드에 발을 올리고 쌩~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솜털만 한 몸으로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쭉쭉 뻗어 나가는 시우였다.
“몸 기울여서 방향까지 바꾸는 거 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타고 노는 시우를 도진은 뿌듯한 눈길로 바라봤다.
“진짜 잘 탄다. 애가 운동 신경이 있어. 나 닮았나?”
“좋은 건 다 자기 닮았대. 그나저나…… 다음 달부터는 우리도 여기 주민이네.”
“응, 지호 아버님이 아주 강력 추천하셨잖아. 살기 좋다고. 어디 한번 살아 보자.”
“그래~ 살아 보자~ 시우도 방 생긴다니까 좋아하는 눈치였어.”
도진과 현주는 씽씽 달리는 시우를 데리고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집 계약 기간 만료가 가까워지면서 새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도 몇 차례 방문했지만, 막상 이제부터 살게 될 곳이라고 생각을 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더 좋아 보였다.
“시우야, 아파트 어때? 좋아?”
“응~ 조아~ 근데 지금 사는 집도 조아써~”
“그래? 좁지 않았어?”
“좁아도 엄마, 아빠랑 가치 사니까 조아써~”
도진과 현주는 시우의 대답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씽씽씽씽-!
도진이 시우를 향해 외쳤다.
“……시우야! 위험해! 천천히 달려!”
산책을 마친 시우 가족은 다 같이 단지를 빠져나왔다.
길 건너에 있는 커다란 상가 건물이 오늘의 목적지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킥보드를 한 손에 든 현주가 상가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와, 우리 동네엔 이런 큰 상가 없었는데.”
도진은 현주가 든 킥보드를 건네받으며 대답했다.
“아파트 상권이잖아. 여긴 소아과도 가까워.”
“맞아. 유명한 곳이랬어. 근데 우리 시우는 너무 건강해서 접종할 때랑 검진할 때 빼고는 병원이랑 진짜 안 친하니까…….”
“그래도 앞으로 무슨 일 생길지 모르잖아. 가까우면 좋지.”
“응, 당연하지~”
시우는 부모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두 분의 얼굴을 힐끗 번갈아 쳐다봤다.
‘병원이라…… 흠, 그러고 보니 다쳐 본 적은 많아도 아파 본 적은 까마득하네…….’
독 먹었을 때 빼고.
뭐, 독도 알아서 해독했지만.
‘독도 은근 맛있었어. 아니구나. 맛있는 거에다 독을 타니까 그런 거지. 아, 내가 바보가 되어 가고 있어.’
실없는 생각을 하다 눈을 꽉 감고 머리를 흔드는 시우였다.
올해 들어 좀 나른한 일상을 살았더니 머리도 함께 나른해진 느낌이었다.
시우 가족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멈췄다.
내리자마자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꽤 큰 규모의 음악 학원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도진이 말했다.
“오, 시설 진짜 좋다. 우리 여보도 어릴 때 이런 데서 피아노 쳤나?”
벽이 통유리로 이뤄져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넓은 공간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가운데 큰 테이블에서는 여러 아이들이 공책을 펴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아마도 이론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랜드 피아노 옆으로는 개인 연습실로 보이는 여러 개의 문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현주와 시우도 유리 벽에 붙어 잠시 안을 구경했다.
“나 어릴 때는 이렇게 좋은 피아노 학원 없었어. 인테리어 되게 신경 써서 했네. 예쁘다. 이따 여기도 한번 들를까?”
“그래. 온 김에 가 봐. 시우, 피아노 소리 듣는 거 좋아하지?”
“응~!”
도진은 힘차게 대답하는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주가 말했다.
“우선은 바둑 학원이나 찾자. 바로 맞은편에 있다고…… 아…….”
현주의 음성이 멎었다.
바둑 학원은 지호 엄마에게 들은 대로 음악 학원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허름했다.
같은 건물에 같은 층, 코앞에 붙어 있는 학원이 뭐가 그리 다를까 싶기도 하지만…….
달랐다.
일단 ‘천재바둑학원’이라는 이름에서 둑의 ㄱ과 학의 ㄱ이 아예 떨어져서 없었다.
“……천재바두하원. 다니기도 전에 하원하고 싶게 만드는 이름이네.”
도진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설설 저었다.
“어, 어떡해? 들어갈 거야?”
현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5층에 다시 멈췄다.
띵!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가 내렸다.
키가 꽤 큰, 상당히 잘생긴 미청년이었다.
남자는 저벅저벅 도진과 현주 쪽으로 걸어왔다.
도진과 현주, 시우는 젊은 남자에게서 풍기는 잘 다듬어진 기품과 차분하게 정돈된 분위기에 감탄을 했다.
슥-
시우 가족을 지나친 남자는 바둑 학원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 도진과 현주를 돌아봤다.
“…….”
“…….”
찰나의 정적 뒤에 남자가 낮게 착 깔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바둑 배우러 오셨나요?”
도진과 현주는 동시에 대답했다.
“네.”
“아이고~ 이쁘기도 해라~ 바둑이 배우고 싶어서 왔어~?”
젊은 남자의 아버지라는 최훈 관장은 시우의 친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최 관장은 함박웃음을 짓고 시우 가족을 맞이했다.
매번 음악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만 보다, 오랜만에 바둑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아이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도진과 현주는 소파에 앉아 최 관장으로부터 간단하게 바둑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최 관장은 세계 인공지능 개발 관련 책자들을 테이블 위에 펼친 뒤, 입을 열었다.
“저는 집중력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뻔한 얘기 말고,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큰~ 회사들이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 인공지능에게 항상 뭘 가르치는지 아십니까?”
책자들을 내려다보던 도진이 대답했다.
“바둑요……?”
“맞습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도 바둑을 가르치는데, 우리 아이…… 이름이 뭐니~?”
“시우~”
“그래, 시우구나. 너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낯이 익네. 어쨌거나 우리 시우의 두뇌를 개발해 주기 위해……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치면 좋지 않겠습니까?”
최 관장의 짧고 굵은 설득에 도진과 현주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왠지…… 빠져든다……
바둑을 가르치면 시우가 막 천재가 될 것 같고……
아까 본 젊은 남자처럼 멋진 분위기를 풍기는 예의 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고…….
현주가 물었다.
“아직 4살이거든요. 이르지 않나요?”
“기초부터 탄탄히 다지기 좋은 나이입니다. 실제로 다니고 있는 4살 친구도 있고요.”
“아, 그래요?”
“이렇게 얘기만 나눌 게 아니라, 한번 들어가서 살짝 배워 보시죠~ 사실 4살 아이들에게는 저희가 바둑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예의범절과 숫자, 한글 이것저것 다양하게 가르칩니다. 시우야~ 어때, 해 보고 싶어~?”
“응~ 해 보고 시퍼~”
“시우야. 네~ 해 보고 싶어요~ 해 볼까?”
“네~ 해 보고 시퍼요~”
“이렇게 존댓말도 가르칩니다. 우리 시우 말도 잘 알아듣고, 똑똑하네~”
최 관장은 앞장서서 초급반 교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교실 안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예닐곱 명쯤 앉아 차분히 바둑을 두고 있었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도 두 명 정도 있었다.
유치원생 아이 둘을 돌보고 있던 젊은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까 밖에서 본 그 남자였다.
최 관장이 정식으로 소개를 했다.
“제 아들입니다. 이름이 최택이에요. 응답하라 1987 보셨어요? 거기 나오는 바둑 두는 친구랑 이름이 똑같아요.”
최택 사범은 쑥스럽게 웃었다.
“최 사범이 원래는 선수반 선생님인데 오늘 초급반 선생님이 쉬시는 날이라 도와주러 나왔어요. 택아, 얘는 이름이 시우야. 4살이고. 한번 간단하게 가르쳐 봐.”
“네, 관장님.”
“그럼 이따 수업 끝나고 뵙겠습니다.”
최 관장은 최 사범에게 시우를 맡기고 교실을 떠났다.
“아버님, 어머님. 이쪽에 앉으세요.”
최 사범이 도진과 현주에게 자리를 권했다.
도진과 현주는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의자를 꺼내 앉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말소리 하나 안 들리는 게 너무 신기했다.
한편, 최 사범과 마주 앉은 시우는 귀엽게 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긴 시간을 뛰어넘어 간만에 바둑판 앞에 앉으니, 옛날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어쩐지 즐거웠다.
‘자, 가르쳐 보시게! 최 사범! 이 4살짜리 아이님께서 몸소 배워 드리지!’
시우가 눈을 이글거리며 자신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칠지 기대하고 있을 때, 최 사범이 시우에게 바둑돌을 보여 줬다.
“시우야, 이 돌은 무슨 색이야?”
“……검은색.”
“이 돌은?”
“……하얀색.”
‘아니, 저기……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군요. 네에.’
과거 중원에서 바둑의 신이라 불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현재…… 어린이 바둑 학원에서 검은 돌과 흰 돌을 배우는 중이었다.
시우에게 몇 가지 간단한 것들을 알려 준 최 사범이 슬슬 본격적인 수업에 나섰다.
“자, 시우야. 이제 돌 잡아먹는 법을 배워 보자.”
최 사범은 시우를 앉혀 두고 조곤조곤 열심히 설명을 한 다음, 바둑판 위에 몇 개의 문제들을 만들었다.
“방금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처럼 해 볼까? 이 하얀 돌을 잡아먹으려면 검은 돌이 어디 와야 할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든 4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최소한 자신이 한 말을 전부 알아듣고 이해해야 풀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시우의 총기가 넘치는 눈을 보고 있자니, 한두 문제 정도는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아이답지 않게 집중해서 잘 듣던데…… 할 수 있을까?’
최 사범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볼 때, 시우는 바둑판에 놓인 다섯 개의 문제들을 보며 내심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것은…… 수학을 전공한 대학생에게 ‘1 더하기 1’ 문제를 낸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음…… 어떻게 할까나…… 바둑은 나이 상관없이 재능이 깡패인 분야니까, 굳이 또래 애들이랑 비슷하게 맞출 필요 없겠지? 좋아. 풀지, 뭐.’
시우는 앙증맞은 손으로 검은 돌을 집어 한 개씩 바둑판 위에 내려놓았다.
바둑알들이 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최 사범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어, 어어?”
다섯 개의 돌 잡아먹기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 버린 시우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최 사범을 올려다봤다.
최 사범은 바둑판과 시우를 번갈아 보다가 조금 당황한 손길로 더 어려운 문제들을 새로 만들었다.
“해, 해 볼까?”
이번에도 다섯 개의 문제가 시우의 앞에 놓였다.
하지만 잡아먹을 돌의 수가 많아졌을 뿐, 푸는 방법은 똑같은 문제였다.
슥슥슥-
시우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