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45)
45. 너는 이미 죽어있음
전부 맞았다.
최 사범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시우야…… 다 알겠어?”
시우는 귀엽게 대꾸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줘쓰니까~ 다 알죠~”
“…….”
시우의 대답에 최 사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생각에 잠긴 최 사범은 손가락으로 바둑알 통을 톡톡톡 몇 차례 두드리다 바둑판 위의 문제들을 정리했다.
그 후, 이번에는 여러 문제가 아닌 단 한 개의 문제만을 출제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절도 있게 돌을 집어 든 최 사범이 세 개의 하얀 돌을 바둑판에 올려놓았다.
흔히 빈삼각이라 불리는 형태였다.
지금까지의 문제들은 시우가 돌 하나만 놓고 잡아먹을 수 있도록, 최 사범이 도움을 준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시우야, 이 하얀 돌 잡아먹으려면 검은 돌들이 어디 어디 어디 있어야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시우가 혼자 해결해야 되는 문제였다.
최 사범은 시우의 작은 손을 주시했다.
시우는 최 사범을 향해 “히이~” 하고 가볍게 웃어 보인 뒤, 작은 두 손으로 검은 돌들을 가득 쥐어 통 바깥으로 꺼냈다.
돌들을 자신의 앞에 쏟아 놓은 시우는, 그중 정확히 일곱 개의 돌을 골라내 바둑판 위로 옮겼다.
“여기~ 여기~ 여기~”
“헉……!”
최 사범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터졌다.
‘단수의 원리를 순식간에 이해했어.’
이렇게 쉽게……?
약간의 전율과 함께 오소소 팔에 소름이 돋았다.
시우의 신비하기까지 한 두 눈을 조용히 응시하던 최 사범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바둑판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 넓은 중앙을 놔두고 구석의 귀퉁이 쪽에 새로운 문제 하나를 만들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딱 한 번, 푸는 방식을 짧게 아주 살짝 보여 주기만 할 것이다.
앞부분만 잠깐 보고 혼자 원리를 깨우쳐서 끝까지 풀어낸다면…… 이 아이는 천재다.
“시우야. 선생님 하는 거 잘 봐.”
최 사범은 짧게 시범을 보였다.
4살 아이를 상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알려 줘도 모자랄 판에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천재란 원래 기존의 상식으로 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자신이 연구생 시절 겪었던 바둑 천재들은……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녀석들뿐이었다.
치밀한 계산 능력과 순간적인 판단 능력, 형세를 읽고 상대의 머리를 지배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구축해 가는 능력.
무서운 것은 그렇게 인간 같지 않은 녀석들도 프로가 되지 못하고 죄다 낙마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인즉.
프로가 되는 사람은 인간 같지 않은 수준을 넘어, 신처럼 느껴질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 선생님이 도망갈게. 시우가 잡아 봐.”
흑돌과 백돌을 합쳐 10수를 시우에게 보여 준 최 사범은 문제를 초기 상태로 되돌렸다.
‘내가 보여 준 이 10수를 보고 축의 원리를 이해해서, 나머지 40수를 더 만들어 봐라.’
시우는 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최 사범이 보여 준 10수를 통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이미 파악했다.
시우의 관심사는 최 사범의 리액션이었다.
점잖고 얌전한 분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헉!’을 외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래도 기본 리액션이 작아. 버릇이겠지. 놀라서 벌떡 일어날 때까지 해 볼까?’
“시우야, 선생님 도망갔는데? 안 해?”
“해~ 요~”
시우는 바둑판을 봤다.
잡아먹히기 직전의 백돌 두 개가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도망을 치고 있었다.
시우의 조그만 손에 들린 흑돌이 부드럽게 추격을 시작했다.
도진과 현주는 진짜 바둑 시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번갈아 돌을 놓는 최 사범과 시우를 보며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뭘 하는지는 몰라도 뭔가 시우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왠지 마음이 벅찼다.
시우는 계속해서 최 사범의 백돌을 쫓고 있었다.
백돌은 뱀처럼 빠르게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꾸불꾸불 도망치고 있었다.
‘뱀의 머리만 딱딱 때려 주면 끝이지. 이럴 때 쓰는 대사를 내가 알지. 너는 이미 죽어 있음. 아, TV바둑에 이 말 자주 쓰는 해설자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살아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우의 눈에는 이 돌의 도주 방향과 추격 방법 최후의 사망 순간까지의 모든 길이 훤히 내다보였다.
30수. 40수. 50수.
바둑판 위에 두 사람이 놓은 돌들이 쌓여 갔다.
단 한 번의 착각도 없이 정확한 수순으로 집요하게 쫓아오는 시우의 흑돌에 최 사범이 결국 손을 멈췄다.
더 이상의 진행은 의미가 없었다.
몸집이 엄청나게 불어난 백의 대마는 4살 아이의 손에 의해 완벽하게 몰살을 당했다.
시우는 태연히 밝은 미소를 띠고, 최 사범의 리액션을 기다렸다.
‘자~ 최 사범님~ 천재바두하원에 천재가 왔소~ 리, 액, 션~!’
그러나 최 사범은 시우의 예상보다 좀 더 신중한 사람이었다.
“하, 하나만…… 하나만…… 더, 더 해 보자. 기다려 봐. 선생님이 이번에도 간단하게 보여만 줄게.”
‘헐…… 돌다리도 삼세 번 두드리고 건널 인물일세.’
물론 시우는 최 사범이 낸 추가 문제까지 쉽게 풀어냈다.
관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노크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찾아왔나 하고 고개를 돌린 최훈 관장은 문에 아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예의 따지기 좋아하는 선비 녀석이 노크를 안 하고 들어와?
아들의 안색이 파랬다.
“왜, 왜 그러냐. 누가 다치기라도 했냐?”
혹시 아이들이?
불안해진 관장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킬 때, 최택 사범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시우, 시우요.”
“걔, 걔가 다쳤어? 얼마나!”
“아뇨! 다친 게 아니고! 4살이…… 축과 장문을 한 번 보고 따라 합니다!”
“뭐? 무슨 소리야? 흉내를 낸다고?”
“이해해서! 구사를 한다고요!”
몇 년 전, 군복 입고 전역 신고할 때 이후로 가장 큰 목소리로 말을 하는 아들이었다.
“4살이 무슨…… 택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가서! 직접! 보시죠!”
천재바둑학원 선수반 교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아이들 몇 명이 바둑판 앞에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한 칸 뛰는 수는 행보가 느려. 끊길 위험이 있더라도 두 칸 가야 해.”
“형세가 어렵지 않은데 너무 조급한 거 아냐? 우선 안전하게 연결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중앙으로 한 칸 뛰는 수에 악수 없다는 말도 있잖아.”
형들 사이로 중학생 아이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나쁘지 않은 수가 아니라 좋은 수를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여기서는 날 일 자나 눈 목 자도 고려해야죠. 너무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돼요.”
“중앙으로 눈 목 자는 진짜 인공지능스러운 수법인데 뒷수습이 되겠어? 어설프게 모방했다가 대형 사고…….”
선수반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중급반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들어와 타잔처럼 외쳤다.
“4살이 축이랑 장문 쓴다아~~!”
초급반 교실이 바글바글해졌다.
도진과 현주는 아이들에게 의자를 양보하고 뒤쪽으로 빠졌다.
현주가 도진에게 귓속말을 했다.
“……되게 작고 허름해 보였는데 은근히 원생이 많다.”
“그러네.”
“오빠. 우리 시우 진짜 천재야?”
“그, 그런가 본데. 이렇게 다들 몰려와서 볼 정도면.”
“축이랑 장문이 뭐야?”
“몰라.”
“우리 어른인데, 시우랑 같이 듣고 배웠는데, 왜 우리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
도진은 의젓하게 앉아 바둑돌을 놓고 있는 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시우가…… 우리보다 똑똑한가 보다. 똑똑한 거 알고는 있었는데 그래도 너무 아기라서 우리가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봐.”
“……우리 시우 나중에 커서 김세희처럼 되는 거야?”
김세희는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며 이수진, 한유리의 이전 시대를 지배한 카이스트 출신 여배우였다.
위이잉-!
도진과 현주가 귓속말을 나누고 있을 때, 현주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응? 승현이 어머님이네? 나가서 전화받고 올게. 시우 보고 있어.”
“알았어. 다녀와.”
현주가 교실 밖으로 나갔다.
도진은 혼자 남아 우글우글한 아이들의 머리 너머로 아들을 지켜봤다.
시우는 관장과 다른 사범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원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여러 가지 형태의 장문 문제를 풀고 있었다.
“우와~!”
“오~!”
“와~!”
시우가 바둑돌을 내려놓을 때마다 곳곳에서 감탄성이 들려왔다.
문제풀이가 끝나자 모든 원생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와~ 천재다 천재!”
“대박! 4살짜리가 교묘하게 장문 치는 거 봐! 뇌가 우리랑 다른가 봐!”
“사범님~ 환격도 가르쳐 봐요~! 정석이랑 포석은 아직 못 해요?”
최 사범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처음 왔어. 시우야, 선생님이랑 환격까지만 해 보자. 피곤하겠다.”
최 사범은 시우에게 자신의 돌을 희생시켜 상대의 돌을 잡는, 이를테면 매 한 대 맞아 주고 상대의 뼈를 부수는 기술인 환격을 보여 줬고, 시우는 곧바로 자신의 돌을 이용해 환격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우와아~! 얘, 진짜 레알 천잰데? 한 번 보면 배우네?”
“몇 년 뒤에 신동발굴단 나오고 그러는 거 아냐? 티비에…… 응? 나 얘 어디서 봤는데? 허억! 왕의 길……!”
“으아악! 야! 얘 덕구잖아-! 덕구 아부지이~! 빠뿌야아~!”
천재 겸 스타, 시우의 등장으로 바둑 학원이 발칵 뒤집혔다.
한편, 밖으로 나온 현주는 바둑 학원과 음악 학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승현 엄마와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잘한다고는 하시는데 저는 잘 모르니까…….”
[내가 시우 천잰 거 같았다니까. 상황 판단 같은 게 엄청 빠르고, 어른들 분위기도 잘 읽고, 애가 센스가 남달랐어.]“아, 그, 그런가요.”
[으구, 모르는 척은. 다 알면서. 그럼 바둑 배우고 집에 가려고?]“앞에 음악 학원 있어서 구경 삼아 들를까 했는데, 시우가 지금 너무 피곤할 거 같아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응, 그러면…… 내가 할 얘기가 있는데 지금 하는 게 좋을까, 아님 이따 집에 가서 시우 엄마가 나한테 전화 줄래?]“지금 말씀하셔도 돼요.”
[요즘 시우 계속 작품 고르고 있지?]“음…… 시우가 좋아하고, 또 시우한테 추억도 되는 그런 작품을 찾으려고 하는데…… 잘 안 보여서 요즘엔 솔직히 그냥 쉬고 있어요.”
현주는 음악 학원 유리벽에 등을 기댔다.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등을 타고 들려왔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승현 엄마가 말했다.
“정말요? 축하드려요. 언제 촬영하는데요?”
[내년 초쯤?]“승현이한테도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고마워. 그런데 축하받으려고 꺼낸 얘기가 아니라, 거기 감독님이 유치원생 정도 되는 아이를 찾고 계신대. 이번에 오디션 일정이 나왔다고 승현이가 알려 주더라. 승현이가 시우랑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해서.]“승현이가요?”
[걔는 외동이라 외로운가 봐. 시우 같은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번 그 소리야.]“시우도 승현이 같은 형 있으면 좋죠.”
[내가 승현이가 보낸 문자 전달해 줄게. 일단 그거 보고 얘기하자.]“네.”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몇 초 후, 현주의 휴대전화로 오디션 일정과 승현이 직접 쓴 듯 보이는 간단한 영화 소개가 담긴 톡이 날아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