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48)
48. 본투비 염라
“네 살 애들이 특히 많이 우네. 나랑 눈 마주치면 울어. 내가 눈을 이렇게 가리고 있을까? 하하하.”
피곤한 얼굴로 최민철 감독이 농담을 던졌다.
손으로 자신의 부리부리한 두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하면서 한숨을 푹 쉰 그는 마지막 아이의 프로필에 눈길을 줬다.
“윤시우…… 이한수 선배님한테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내가 눈이 너무 높은가?’
35세에 감독으로 데뷔해 3년 간격으로 작년까지 네 작품을 개봉시켰고, 전부 흥행에 성공했다.
성공률 100%.
다만, 그 많은 경험 속에서도 지금까지 캐스팅해 본 아역 중 가장 어린 친구가 류승현이라…….
이 정도 연령대의 아역 오디션은 자신도 처음이었다.
‘기준을 낮출까? 머리 아프네.’
어른으로서의 가치관과 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그때, 문밖에서 스태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지막! 30번~ 윤시우 군입니다~!”
문이 열렸다.
작은 아이가 오디션장 안으로 귀엽게 걸어 들어왔다.
최민철 감독을 포함해 오디션을 진행하던 모든 관계자들이 입가에 자동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아, 귀여워. 너무 예쁘다.”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걷던 시우는 어쩔 수 없나 싶었다.
‘뭐…… 생긴 걸 어쩌겠어. 내가 극복해야 할 숙제로군.’
네 살짜리가 굳이 연기로 귀여움을 극복하려 들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달랐다.
‘재밌는 캐릭터야. 나랑 닮은 부분도 있고. 이건 메소드 연기가 가능할지도.’
꼭 맡고 싶은 역할이었다.
시우는 이런 감정이 든다는 게 꽤 신기하고 즐거웠다.
“안녕하세요~! 윤~ 시~ 우~ 입니다아~!”
스태프 형이랑 연습한 대로 배꼽 인사!
꾸벅!
심사 위원들이 박수를 쳐 줬다.
“씩씩하게 인사하는 거 봐. 얘는 느낌 좋은데?”
“그러게. 아역은 주눅 안 들면 이미 반 먹고 들어가는 거야.”
“근데 얼굴이 너무 천사같이 예뻐서 될까 모르겠다.”
우락부락 제법 무섭게 생긴 최민철 감독과 눈이 마주치고도 태연하게 인사를 하는 시우를 보며 캐스팅 디렉터는 테이블 밑에 있는 자신의 양손을 맞잡았다.
부디 잘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캐스팅 디렉터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정수…… 시우야.”
30명을 상대로 똑같은 인사말을 계속 뱉다 보니 가끔 이름이 헷갈릴 때도 있었다.
캐스팅 디렉터의 말이 이어졌다.
“엄마랑 떨어져서 불안해?”
“괜차나요~”
“괜찮아. 아저씨들이랑…… 아, 괜찮니? 그래, 다행이다. 그럼 감독님께 인사…… 했구나. 인사도 했고. 다 했네? 하하.”
“연기시켜, 연기.”
옆에서 최민철 감독이 말했다.
네 살 아이의 당당한 모습에 최민철 감독의 눈에도 호기심이 돌고 있었다.
딱히 긴장을 풀어 주거나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에 익숙해지게 만들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캐스팅 디렉터는, 감독의 말대로 시우에게 바로 연기를 요구했다.
“시우야, 집에서 연습해 온 거 지금 보여 줄 수 있겠니? 물 한 잔 줄까?”
“아뇨~ 괜차나요~ 지금 해요~?”
“그래. 네 살인데 존댓말도 잘 쓰고, 말을 되게 잘하네. 자, 시우야 해 볼까?”
“네에~”
시우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고 집에서 엄마와 함께 연습해 온 연기를 시작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대본 연기일 테니, 자유 연기는 평범하게 할 생각이었다.
심사 위원들도 네 살짜리 애가 뭔가 엄청난 연기를 준비해 왔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성의 없이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많은 관계자들의 관심 속에 오디션장 중앙에 선 시우는 먼저 표정 연기부터 들어갔다.
결국 모든 것은 집중력이다.
스킬은 다음 문제다.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조차도 흉내 낼 수 없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몰입을 마친 시우의 눈빛이 스르륵 변화를 일으켰다.
약간 풀이 죽은 얼굴로 시우가 입을 열었다.
“아빠…….”
움찔.
최민철 감독은 순간 대답할 뻔했다.
자신을 부른 것도 아닌데, 아이의 눈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오려는 것을 최민철 감독은 눌러 참았다.
‘씬 스틸러라더니, 애가 흡인력이 있네. 아빠 한마디로 사람들을 휘어잡았어.’
네 살짜리가?
슬쩍 주변을 보니 관계자들이 모두 아빠 미소를 지은 채 시우의 입에서 나올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뭘까.
장난감 사 달라고?
동물원 가고 싶다고?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 좀 벌어 와…….”
쿠쿠쿠쿵-!
관계자들의 마음속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요란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이것은 작년 왕의 길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MBS 드라마 [돈 벌러 왔습니다>에 나온 아역 배우의 대사였다.
원래는 약간 건방지면서 귀여운 느낌을 주는 아이의 신세 한탄 장면이었으나, 시우는 엄마와 연습했을 때와 다르게 애처로운 분위기로 말을 이어 갔다.
“친구들이…… 나보고 머라 그러는지 아라~?”
끝에는 살짝 밝게, 원래의 귀여운 느낌을 잠깐 살려 주고-.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시우의 예쁜 얼굴이 차츰 어두워졌다.
“애라고…….”
울먹-.
대사를 뱉다 슬펐는지, 시우가 찰나지간 짧게 울먹였다.
연기인지 진짜 울먹인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아…….”
심사 위원 한 명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가 이내 실수를 깨닫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시우는 그 심사 위원을 향해 한 차례 웃어 주고 다시 배꼽 인사를 했다.
“감사~ 합니다아~!”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이야! 잘하네! 지금까지 들어온 애들이랑 비교가 안 되는데?”
“내가 말했잖아. 커리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나 방금 확 몰입됐었어. 애가 재능이 있어. 하하! 감독님, 어떠세요?”
최민철 감독은 볼펜을 손으로 돌리며 짧게 한마디만 뱉었다.
“……와우.”
네 살 애가 이런 게 되는구나.
연기를…… 하네?
의자를 바짝 당겨 앉은 최민철 감독이 캐스팅 디렉터에게 손짓을 보냈다.
다음, 대본 연기 시키라는 뜻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감독의 의욕적인 모습에 캐스팅 디렉터는 활짝 펴진 얼굴로 말했다.
“원래 평가라는 게 같이 일해 본 사람들 평가가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얘가 그렇게 현장 평가가 좋더라고요. 다 극찬 일색이라서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우리 시우, 잘하는구나! 이제 대본 연기…… 대본이 뭔지 아니?”
시우는 문 쪽에 서 있는 젊은 남자 스태프를 가리켰다.
“그래~ 그렇지. 저 형이 알려 준 거. 연습 많이 했어?”
“네~”
“혹시 시간 더 필요하면 가서 연습 조금 더 하고 올래?”
“괜차나요~”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연습하고 오자. 시우가 꼭 잘했으면 해서 그래.”
재오디션이 열리느냐, 아니냐가 시우에게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
후다닥.
시우는 귀엽게 스태프 형에게 달려갔다.
몇 분 뒤, 시우가 돌아왔다.
“벌써? 이제 할 거야?”
묻는 캐스팅 디렉터에게 시우는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그래, 좋다. 제발 잘해라, 시우야. 안 그래도 일 많으니까, 우리를 구해 다오. 빠뿌야아~’
응원의 주문을 외운 캐스팅 디렉터가 시우에게 말했다.
“자! 그럼…… 해 봐!”
자유 연기를 볼 때와는 관계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감독이 찾는 아이인지 아닌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시우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행히, 엄마도 없고……
해 볼까?
시우는 최민철 감독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우웅-
동시에 시우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 기운이 강한 이를 흔히 기가 센 사람이라 하고, 반대의 경우를 기가 약한 사람이라 한다.
배우들은, 일반인들보다 그 기운이 강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우의 기운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아이답게 기의 일부만을 방출했을 뿐이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좀 전까지 귀엽게 후다닥 뛰어다니던 시우가 표정을 딱 굳히고 최민철 감독을 쳐다본 순간, 최민철 감독은 숨이 덜컥 멎는 느낌이 들었다.
‘……뭐, 뭐지? 네 살 애가…… 눈빛이…… 허…….’
최민철 감독의 손이 볼펜을 꽉 쥐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때, 자신이 쓴 대본에서 살아나온 듯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에 묘하게 공포감이 느껴지는 염라가 입을 열었다.
“일 처리를…… 자꾸 그러케…… 한심하게 할 거야? 아니~ 오! 또! 케! 악귀들이 저승에 구멍을 뚤코! 도망가는데…… 아무도 모를 수가 있냐.”
쪼끄만 네 살 아이 시우가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옥 가는 티. 켓. 끈어 줄게! 가서 쫌 구르다 오자!”
심사 위원들은 턱관절이 걱정될 정도로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시우를 보고 있었다.
아까 아이가 ‘아빠’를 불렀을 때, 대답할 뻔했던 것처럼 저 작은 아이의 호령에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지옥 바닥을 굴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넋이 빠진 얼굴로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심사 위원들을 향해 시우가 마지막 대사를 툭툭 던졌다.
“멀 봐. 소멸되고 시퍼? 당장 구멍 막고, 조사팀 꾸려서 이승으로 보내!”
“네!”
……누군가 대답을 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아까 자유 연기를 할 때 시우를 달래려 했던 심사 위원을 쳐다봤지만, 그는 자기가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캐스팅 디렉터의 눈은…… 옆에 앉아 있는 최민철 감독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독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감독이 말했다.
“너, 왜 애가 연기하는데 대답을 하고 그래. 아무리 애가 잘해도 그렇지.”
“……네?”
“방금 네가 대답했잖아. 애한테.”
“…….”
“아니야?”
아, 이렇게…… 그런 거군요.
캐스팅 디렉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맞습니다! 제가 그랬죠! 제가 방금 대답을 했어요! 하하하! 애가 연기를 너무 잘하네! 네 살이 어떻게 대사를 한 번에 다 외워서…… 와아! 어떠세요, 감독님! 감독님이 찾던 바로 그 아이 아닙니까!?”
감독은 품위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잘하네. 얘로 할까?”
캐스팅 디렉터는 얼빠진 표정으로 시우의 연기를 지켜보다 네! 라고 외치던 감독의 모습은…… 잊기로 했다.
* * *
며칠 뒤.
설거지를 하고 있던 현주의 휴대전화로 오디션 합격 문자가 날아왔다.
“시우야! 합격이래!”
시우는 바둑판 앞에 앉아 네로와 알까기를 하다 엄마에게 뛰어갔다.
“진짜~?”
“응! 우리 시우가 너무 잘해서 사실 그날 결정됐대! 엄마가 시우 하는 거 못 봐서 걱정했는데 정말 잘했나 보다!”
“응~ 나 잘해~ 엄마, 사랑해~!”
“그래~ 엄마도 사랑해! 어머, 어떡해. 어떡하지? 누구한테 알려야 되지?”
먼저 남편인 도진에게, 그 후에는 승현 엄마에게.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건 현주는 응원을 해 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억나는 대로 전화를 돌려 합격 사실을 알렸다.
그중에는 승현도 있었다.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예상외로 승현은 전화를 받았다.
“승현아, 네가 응원해 준 덕분에 시우 영화 합격했어. 내년에 촬영할 때 시우 잘 부탁할게~”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왕의 길 때는 같이 출연하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몇 장면 같이 찍겠네요. 아, 시우 혹시 킥보드 잘 타나요? 송준영 선배님께서 물어봐 달라고 하셔서…….]“킥보드? 엄청 잘 타지! 킥보드 없으면 밖에 안 나가.”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맞다. 혹시 다음 주말에 한번 놀러 가도 될까요?]현주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언제든지 와. 환영이지. 혼자 올 거니? 아님, 엄마랑?”
“소, 송준영 배우님하고 같이 온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