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52)
52. 다섯 살
12월 초, [어촌하루> 첫 편이 방송되었다.
힐링 예능에 특화되어 있는 이효은 PD의 신작으로 첫 화부터 평균 시청률 10%를 돌파.
대박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단한 구성은 각계각층의 유명인을 초대해 어촌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놀기도 하고, 밥도 해 먹고, 밤에는 마당의 평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다 함께 힐링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효은 PD는 TV에서 평소 만나기 힘든 게스트들을 잔뜩 섭외해 그들의 직업적인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12월 말.
온 세상에 연말 분위기가 한창일 무렵, 드디어 삼덕구가 출연한 4화가 아시아 전역의 송준영 팬들과 이효은 PD의 힐링물을 사랑하는 많은 시청자들의 기대 속에 베일을 벗었다.
“시우다~! 시우야! 엄마! 시우 나와~!”
2년 전, 눈썰매장에서 시우와 처음 만난 이후 현재는 아파트 옆 동에 살면서 시우와 제일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는 지호가 소리를 질렀다.
지호 엄마는 귤을 까던 손을 멈추고 TV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안개가 살짝 낀 어촌 마을의 언덕길을 오르는 준영과 승현, 시우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각 연령대의 미모를 대표하는 남자와 소년과 아이가 멋지게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는 가운데, 신비로운 분위기의 배경음악이 흘렀다.
[딩동딩동~ 딩동딩동~ 씨~ 야~ 네버 곤 마이 웨이~]삼덕구의 얼굴 밑으로 자막이 떴다.
[알고 보면 서열 막내 준영] [순둥순둥 2인자 승현] [보스 베이비 시우]“푸하하!”
지호 엄마가 웃음을 터트렸다.
“방송국 사람들이 시우를 파악했네.”
지호를 소파에 앉힌 지호 엄마는 아들의 입에 귤을 넣어 주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내미, 어디야? 어촌하루 지금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예요. 금방 올라갈게요.]잠시 뒤,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지연은 이제는 은은한 후광까지 느껴지는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깨에 멘 기타를 방에 놓아두고 얼른 소파로 뛰어와 앉았다.
“시우 나왔어요?”
“지금 닭 잡으러 간대.”
“다, 닭을 잡는다고요?”
“아니, 아니. 호호! 달걀 꺼내러 닭장 간다고. 그나저나 저 류승현이가 너랑 동갑이지?”
“네.”
“우리 딸도 외모는 완전 연예인인데…… 호호호호! 쟤, 준영이 쟤…… 저런 이미지 아닌데? 되게 웃기네?”
TV에서는 닭에게 쫓겨 다니는 준영이 나오고 있었다.
[계란 먹으려는 거 아냐! 구경만 하려는 거야! 우와악!]지연과 지호도 웃음을 터트렸다.
뒤이어, 용감하게 들어간 승현이 3초 만에 닭장 밖으로 다이빙하는 장면이 나왔고.
준영이 넘어진 승현을 보며 “하하하! 야, 그것 봐! 무섭지? 무섭지?” 하고 깨방정을 떨며 웃던 장면은 편집이 됐는지 나오지 않았다.
이효은 PD가 소속사 측의 요구를 절반 정도는 들어준 것이다.
“누나! 시우 나와!”
지호가 외쳤다.
시우는 드라마 왕의 길에서 준영이 왕위에 오를 때 나온 음악을 배경으로, 닭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화면 밑에는 귀여운 필체의 자막이 흘렀다.
[빙구 형아들……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한다…….]빠뿌야 CF 때처럼 아우라 CG를 온몸에 두른 시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닭장 문을 열었고, 그 뒤를 준영이 쫓았다.
아시아 꽃미남 준영의 샤방샤방한 얼굴 밑으로 자막이 나왔다.
[4살느님 시우야…… 너만 믿는다…….]시우도 자막으로 대답했다.
[나만 믿어…… 28살짜리 준영아…….]준영과 시우의 머리 위로 ‘28살♡’, ‘4살♡’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꼬꼬꼬~! 빡! 빡빡빡! 빠악-!]시우가 닭과 닭 소리로 대화하는 것을 본 지호 엄마와 지연은 배를 잡고 웃었다.
이후, 낚시 장면과 저녁 식사 준비 장면 등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즐겁고 행복한 영상들이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영상 순서가 바뀌어 승현의 인터뷰 장면이 먼저 나오고, 끝으로 시우의 인터뷰가 나왔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안뇽!]“아~ 어떡해~ 시우 웃는 거 봐~!”
지연은 손을 흔드는 시우가 너무 귀여운지 발을 동동 굴렀다.
시우의 웃는 얼굴로 어촌하루 4화가 끝났다.
이제 다음 화 예고편 차례였다.
현수와 동훈, 준영이 방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수가 말했다.
[애들 가니까 되게 쓸쓸하다. 명절 끝난 뒤에 남겨진 할아버지 기분이랄까.]맥주 한 캔을 꿀꺽꿀꺽 들이켠 근육맨 동훈이 살짝 취한 목소리로 준영에게 말했다.
[자, 하나둘셋 하면 시우로 변신. 하나~ 둘~ 셋! 짠! 시우 나와라! 짠!]준영은 점잖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몸을 앞으로 기울인 다음, 시청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개그를 쳤다.
[시우 흉내 갑니다…… 빡~! 빡빡빡! 빠, 빠아…… 빠아악…… 하하하하!] [……뭐 하는 거야?] [너 취했니?]갑자기 빡빡거리는 준영을 보고 놀란 동훈과 현수였다.
준영은 숨이 넘어갈 듯이 웃다가 선배들에게 말했다.
[방송 보세요. 그럼 이해되실 거예요. 하하하.]준영의 웃음소리가 끝나 갈 때쯤, 노래가 흘러나왔다.
[커 쥬 얼 마이 걸~ 유 어 더 원 댓 아이~ 인비젼 인 마 드림~] [제작지원 커피바나]지호 엄마는 입가에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분위기가 너무 좋다. 정현수랑 강동훈도 애들 챙기는 거 보니까 사람 참 괜찮고. 시우도 너무 예쁘다. 갑자기 시우 보고 싶네. 오늘 아빠도 늦게 들어오는데 시우네 가서 같이 볼 걸 그랬나?”
말을 알아들은 지호가 폴짝폴짝 뛰었다.
“지금~ 가면~ 안 돼?”
“지금? 지금은 늦었지. 이제 자야 돼.”
“시우랑 전화하고 시퍼~ 전화해 줘~”
지호가 엄마를 졸랐다.
“알았어.”
지호 엄마는 방송 잘 봤다고 말도 전할 겸, 시우 엄마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지연은 휴대전화를 들고 오늘 방송된 어촌하루의 시청자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와, 시우 얘기 엄청 많다.”
– ㅋㅋㅋㅋㅋㅋㅋ 빡빡빡빡빡빡빡!
– 물고기를 지배하는 아이가 아니라 TV를 지배하는 아이…… 광고 드라마 영화에 이어 예능까지…… 4살에 이렇게까지 뜬 애가 지금까지 있었나?
– 낚시 투어 피디야 뭐 하냐! 빨리 섭외해! 연예인 나와서 잡담하는 거 보기 싫다! 우리는 낚신을 원한다!
– ㅋㅋㅋㅋㅋ 이거 백퍼 조작이지 위에 완전 흑우네 무슨 애가 손만 대면 감성돔이 잡혀 ㅋㅋㅋ 무편집 영상 공개하면 인정함
– 낚시 무편집 영상 홈피에서 확인하라고 나왔잖아 이 백우야 방송을 안 본 거냐 글자를 못 읽는 거냐?
– 승현이랑 둘이 밥 먹여 주는 거 너무 예쁘더라♡ 우리 준영 오빠도 시우 엄청 챙기고…… 얘 아직 어려서 팬카페 없나? 팬카페 가입하고 싶은데 못 찾겠음ㅠㅠㅠㅠ
– 얘는 인싸가 팬카페임. 인싸 가 봐라. 이수진도 댓글 엄청 남기고 거기 한태수도 있고 승현이도 있고 작년부터는 현재 울나라 여배우 투톱인 한유리도 좋아요 열심히 누르고 다니더라. 거의 연예인들의 연예인임. 같이 작업한 배우들이 다 얘 이뻐 죽음.
– 실물 보고 싶다. 진짜 딱 한 번만 만나 보고 싶다. 얘가 세상에 진짜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 ㅠㅠ 너무 이뻐 ㅠㅠㅠㅠ
* * *
시우는 달력을 봤다.
1월이었다.
느리긴 해도 시간은 언제나 멈추는 법 없이 앞으로, 앞으로 계속 흐르고 있었다.
‘다섯 살 됐네. 개월 수로는 44개월인가.’
늦은 새벽, 거실로 나온 시우는 소파 팔걸이 위에 걸터앉아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바깥 야경을 구경했다.
5층이라 보이는 거라곤 단지 앞에 있는 큰 상가의 24시간 켜져 있는 몇몇 불빛들뿐이었다.
시우의 방에서 함께 자던 복실이와 네로가 시우가 없어진 걸 깨닫고 뒤늦게 거실로 쫓아 나왔다.
– 멍멍~
– 냐앙~
“이리 와. 형이 간식 줄게.”
잠이 덜 깬 채로 걸어 나오던 복실이와 네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다 일어나서 이렇게 간식 먹고 그럼 안 돼. 새해 선물로 오늘만 특별히 주는 거다.”
– 냐아앙~
치유 마법 있으니까 괜찮지 않냐고 묻는 네로였다.
복실이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둘이 서로 앞발 한쪽을 들고 하이 파이브를 했다.
어릴 때 시우에게 배운 하이 파이브를 이젠 시우의 지시 없이도 알아서 해내는 복실이와 네로였다.
“헐…… 복실이가 지금 여섯 살이고, 네로가 네 살이지? 처음 만났을 때는 세 살이랑 한 살이었는데 아주 많이 컸다. 웃기는 녀석들이네. 나중엔 말도 하겠어. 따라와. 간식 먹게.”
주방으로 간 시우는 아이들의 간식을 꺼내 주고, 자신의 간식도 챙겼다.
부모님이 저녁에 두 마리 세트로 시킨 순살 지토스 치킨들 중 한 마리가 그대로 남아 냉장고에 들어가 있었다.
“네 조각만 먹자. 음…… 사실 다섯 살이면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치킨을 빼먹었다고 해도…… 괜찮은 나이 아닌가? 좋아. 일곱 조각 먹자, 일곱 조각.”
세 조각이 늘었다.
시우는 아이들과 함께 베란다로 나가 창밖에 뜬 달을 보며 간식 타임을 가졌다.
“진짜 세상엔 맛있는 게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너희도 그래?”
– 멍~!
– 냥~!
“그치. 하루에 세 끼씩 계속 먹어도 세상 음식을 다 못 먹을 거야. 빨리 어른 돼서 맛집 다니고 싶다.”
시우는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맛있었다.
어촌하루에서 현수 삼촌이 했던 말처럼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한 끼를 먹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말이 공감이 됐다.
“내일은 엄마랑 형이랑 밖에 나가서 아마 늦게 들어올 거야. 아빠 퇴근하실 때까지 형아 거 미끄럼틀도 타고 축구공도 가지고 놀면서 사이좋게 있어. 알았지?”
– 왈?
“동물원 가. TV에서 본 동물원. 형이 동물들이랑 좀 놀아 주고 와야지.”
치킨 일곱 조각을 먹은 시우는 치킨 박스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간식 파우치와 캔을 치우기 위해 베란다로 다시 나가려는데, 갑자기 시우의 심장이 쿵- 거칠게 뛰었다.
우웅-
머리가 위잉 울려 왔다.
잠시 휘청인 시우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 머리 흔드니까 더 어지럽잖아. 뭐지? 벌써 그 시긴가?”
거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있던 시우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또 한 차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시우는 가만히 서서 몸 안에서 날뛰기 시작한 마나를 차분히 다스렸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쉰 시우가 조그만 몸을 힘차게 일으켜 세웠다.
복실이와 네로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신색을 회복한 시우는 밝게 웃으며 베란다로 나갔다.
“괜찮아. 간식 다 먹었어?”
– 멍~!
– 냐앙~!
“괜찮다니까. 다 먹었음 치우자.”
간식 캔과 파우치를 깨끗이 치운 시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복실이, 네로와 오랜만에 드론을 가지고 놀아 줬다.
이튿날.
시우는 엄마와 동물원 갈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 앞으로 나왔다.
“시우야, 안 추워?”
“응~ 안 추워!”
열기 마법이 있는 한 시우가 추위를 탈 일은 없었다.
주차장으로 가자 지호 엄마가 지호와 함께 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동물원에 가는 멤버는 이렇게 네 명이었다.
이번 주에 날이 유독 따뜻하다는 예보를 듣고, 시우와 지호를 위해 같이 외출을 하기로 한 현주와 지호 엄마였다.
원래는 눈썰매장에 갈 생각이었는데 지호와 시우가 눈썰매장은 너무 자주 가서 싫다며 동물원을 강력히 원해 행선지가 바뀌었다.
“어휴, 한겨울에 동물원이라니. 동물들 다 추워서 들어가 있는 거 아냐?”
지호 엄마가 말했다.
“이번 주 날씨가 워낙 따뜻하다니까 나와 있을 수도 있죠. 애들이 가고 싶다면…… 가야죠, 뭐.”
현주가 웃었다.
“시우야~!”
다섯 살이 되어 더욱 귀여워진 지호는 시우에게 달려와 손을 꽉 잡았다.
“안뇽!”
시우가 장난스럽게 인사를 하자 지호도 손을 들고 외쳤다.
“안뇽! 히히!”
“동물원 갈까~?”
“응! 가자! 엄마~! 시우랑 사진 마니 찍어 줘!”
지호 엄마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현주는 시우와 지호를 데리고 뒷좌석에 탔다.
네 사람이 탄 차가 동물원을 향해 출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