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58)
58. 액션신
석구는 눈앞의 다섯 살 아이를 바라보며 또다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고민되는 일이 있거나, 잘 모르겠다 싶을 때마다 나오는 오랜 습관이었다.
“악!”
석구는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시우는 준비운동을 하듯 혼자 양팔을 활짝 벌리고 휙휙 휘두르다 석구의 고함을 듣고 팔을 멈췄다.
뭐지? 기합?
연습이 시작된 건가?
인상을 딱딱하게 굳힌 석구가 자기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탁탁탁 치면서 말했다.
“아~ 놔, 머리에 뭐가 났는데 긁었어. 아…… 쓰읍…….”
“…….”
시우는 멍하니 무술 감독 석구를 바라봤다.
왠지…… 석구의 위압감 넘치던 근육들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왜? 아, 걱정돼서? 괜찮아. 아저씨 싸나이야, 싸나이.”
석구는 두피에서 느껴지는 뾰족한 고통 속에 호흡을 가다듬고, 자못 진지한 얼굴로 시우를 봤다.
“그래. 시작해 보자!”
조그만 시우 앞에 선 석구는 시우와 눈을 마주쳤다.
액션 연기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액션?
아니다.
이것은 진짜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연기의 한 분야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눈빛이다.
“자, 시우야. 아저씨를 노려봐 봐. 아주 무섭게! 표정을 무섭게 하라는 게 아니야. 딱! 눈만 무섭게…… 알아듣겠어?”
“네에~!”
시우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응? 아니 아니, 그렇다고 웃으라는 얘기는 아니고…….”
파아아-!
시우의 눈동자 속에서 응급실 의사 선생님을 놀라게 만들었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석구의 말이 멎었다.
“…….”
“…….”
시우와 석구는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작나무 아래서 강렬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3초.
5초.
10초.
석구는 생각했다.
‘무슨 어린애가 누, 눈빛이…… 하, 진짜 어이가 없네?’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만, 단련된 석구의 감각은 계속해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스멀스멀 기분 나쁘게 기어 올라오는 이 느낌의 정체는, 두려움이었다.
석구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좋아! 아주 잘했어! 와, 완벽하진 않지만 정말 잘하는구나!”
석구의 목소리가 어딘가 어색했다.
‘……아, 몇 초만 더 버텼으면 다섯 살짜리한테 눈 깔 뻔했어. 이, 이게 말이 안 되는데? 얘 도대체 뭐야?’
석구가 슬그머니 시우의 눈을 다시 쳐다봤다.
반짝반짝.
예쁜 별이 떠 있었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까칠까칠한 머리를 쓱쓱 쓰다듬은 석구는 온몸을 옭아매고 있던 묘한 기분을 떨쳐 내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눈빛 합격. 자, 액션이다! 시우야, 집에서 아빠랑 칼싸움 같은 거 해 본 적 있어?”
“네!”
“그래, 해 봤구나. 그거랑 똑같아. 영화에서 아저씨랑 그렇게 놀면서 연기를 하는 거야. 아저씨 하는 말 이해되니? 알아듣겠어?”
“네!”
“좋아. 이제부터 아저씨 하는 거 잘 봐. 얼마나 느리게 움직이는지 한번 봐 봐.”
석구는 시우 앞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매우 느렸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들어 있는 슈퍼 슬로우 모션 기능을 자체 적용한 느낌이랄까.
석구가 달리는 동작과 몸을 숙이는 동작 등을 보여 주면서 외쳤다.
“자, 이렇게 느리게! 우리는 나무늘보가 되는 거야! 너는 나무늘보 염라! 아저씨는 나무늘보 악귀! 알겠니?”
“그런데…… 느리면~ 멋이 없자나요. 빨리하면 안 돼요?”
“에이, 안 돼. 위험해. 너 다섯 살이잖아. 그리고 느리다고 멋없는 거 아냐~ 나중에 영화 다 만들어지면 엄청 멋있게 나올 거야. 그러니까 이 아저씨랑 재밌게 해 보자. 시작한다! 윤시우 배우! 준비됐나요!?”
“네에! 주운비이!”
석구는 오른 주먹을 꽉 쥐고, 아까와 같은 초슬로우 모션으로 시우에게 향했다.
“자, 아저씨 간다! 주먹이 날아가요~ 슈웅~ 얼굴 쪽으로 천천히 날아갑니다. 손바닥으로 톡~ 쳐 주세요!”
시우는 자신을 향해 민달팽이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다, 자그마한 손바닥을 펼쳐 석구의 주먹을 툭 쳤다.
“아니야~ 빨라. 시우야. 다시 다시. 아저씨처럼 더 느리게.”
2차 시도.
이번에는 시우도 슈퍼 슬로우 모션으로 손바닥을 움직였다.
토오~ 오옥~
시우의 손바닥이 석구의 주먹에 닿자 석구가 입을 열었다.
“좋아! 감독님 말씀대로 진짜 이해를 잘하는구나! 계속해 볼까? 시우야, 아저씨 쫓아서 천천히 뛰어와.”
석구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오버스럽게 연기를 하며 느릿느릿 옆으로 몸을 날렸다.
시우는 까르륵 자지러지게 웃고는 석구를 쫓아 바다거북처럼 느리게 발을 땅에서 떼었다.
시우와 석구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듯, 한 쌍의 나무늘보가 되어 자작나무 밑을 돌아다니며 손바닥 밀치기 놀이도 하고, 장풍 쏘기 놀이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하이라이트로 등장할 유일한 고난도 기술-
집에서 아빠들과 아이들이 쉼 없이 반복하는, 아빠산 기술을 집중 연습한 뒤 즐겁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 * *
“천재예요, 천재. 너무 똑똑해. 그냥 척하면 척이에요. 다섯 살짜리가 아주 센스갑이야. 열다섯 살만 됐어도 우리 팀에 들어오라고 내가 무릎 꿇고 사정했을 거 같은데, 다섯 살이네?!”
석구는 최민철 감독에게 시우 칭찬을 입이 닳도록 늘어놓고 있었다.
최민철 감독이 말했다.
“그럼 똑똑하지. 애가 바둑 신동이라더라.”
“그래요? 이야, 어쩐지. 애가 보통 다섯 살이 아니다 싶었어요.”
“대본도 달달 외우고 NG도 안 내. 쟤는 연기도 신동이야.”
“사실, 무술 쪽도 신동의 기미가 보였습니다.”
“아주 문무 겸비의 신동이네. 근데 심지어 외모까지 겸비했어. 게임 끝난 거야. 저대로만 딱 크면 나중에 연예계는 그냥 초토화된다.”
“아, 미리미리 잘 보여 놔야겠어요. 하하.”
“나도 계약서 한 열 장 미리 써 놓을까 고민된다. 하하.”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최민철 감독과 석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석구야, 촬영하자.”
“네~ 알겠습니다~”
석구는 악귀 분장을 한 채, 몸을 풀면서 시우를 찾아갔다.
“좋아! 가즈아! 시우야!”
석구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앗, 빵 먹고 있었는데에…….”
“……그래!? 그럼 먹고 가즈아!”
시우는 석구의 입에도 빵 한 조각을 뚝 떼어 넣어 주었다.
빵 하나를 우물우물 나눠 먹은 시우와 석구는 응원을 받으며 카메라 앞으로 떠났다.
촬영 준비는 모두 끝나 있었다.
시우와 석구가 산속 공터에 마주 서자, 스태프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산 위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이 고즈넉하게 시우의 귓가로 내려앉았다.
“잠깐!”
그 고요함을 깨고 석구가 갑작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시우야.”
“응?”
“아까 연습할 때처럼 하면 되는데…… 그 눈 노려보는 거…… 좀 덜 무섭게, 살짝만 덜 무섭게 하자. 할 수 있어?”
시우는 배시시 웃었다.
……많이 무서웠나 보다.
‘나름대로 살살한다고 한 건데.’
“네에~”
최민철 감독이 한유리의 위치를 재조정했다.
“너무 멀다! 조금만 더 시우한테 가까이 가서 눕자!”
시우의 액션씬에서 유리의 역할은 시우 뒤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누워 있는 것이었다.
이따 깨어나면 대사를 치겠지만, 당장은 누워만 있어야 했다.
땅에 쓰러진 와중에도 미모는 포기할 수 없기에 유리는 긴 머리를 스스로 한 번 더 정돈하고 손거울로 메이크업 상태까지 확인한 다음, 시우의 뒤편에 조심조심 몸을 눕혔다.
“아…… 머리에 흙 묻을 거 같은데…… 얼굴을 그냥 땅에 대는 건 좀 그러니까, 팔베개하면 안…… 되겠죠. 죄송합니다.”
최민철 감독의 부리부리한 눈을 본 유리는 조용히 땅에 한쪽 얼굴을 대고 누웠다.
“시우야, 조심해서 해. 다치지 말고.”
바닥에 누운 채로 시우를 응원한 유리는 눈을 감았다.
최민철 감독이 외쳤다.
“레디! 액션!”
“크아아아아-!”
악귀 석구가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린 채, 괴성을 내질렀다.
상대역인 시우가 어린아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소리를 좀 작게 지르거나, 따로 촬영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시우를 만나 보기 전 최민철 감독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애가 혹시 겁먹고 울면 어떡하냐고.
최민철 감독은 그냥 “훗.” 웃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석구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무술 감독이지만 연기 열정도 있는 석구는 시우가 무서워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최선을 다해 연기를 펼쳤다.
“크르르-!”
성난 개처럼 으르렁대며 석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납게 시우를 노려보았다.
인간의 탈을 벗고 실체를 드러낸 악귀는 피칠을 한 듯 붉은 낯빛에, 마치 한 마리 좀비와도 같은 기괴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형상이었지만 시우에겐 꽤 귀여웠다.
최민철 감독이 혹시라도 무서우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을 때, 오히려 악귀 빨리 보고 싶다고 보챈 시우였다.
석구의 으르렁 연기가 끝나자, 시우의 차례가 왔다.
시우는 아이답지 않은 침착하고 여유로운 몸짓으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툭툭 털어 정리했다.
귀엽고 예쁜 얼굴을 들고 악귀를 나른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아, 내 기운도 못 알아보는…… 수준 떨어지는 하! 찮! 은! 녀석 때문에…… 내가 내려왔어요. 쯧쯧.”
최민철 감독과 모든 스태프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수준 떨어지는 하찮은! 발음 완벽해!’
찰지게 나왔다.
다섯 살 아이가 이 대사들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스태프들은 신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시우가 외운 대사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대사가 계속 이어졌다.
“악귀야~”
해맑은 미소를 띤 시우가 귀여운 목소리로 악귀를 불렀다.
“크르르르-?”
“밥은 먹고 다니냐? 이승의 사람들 먹지 말고, 올라가서 지옥밥 먹자. 너네 그거 좋아하자나~ 그치?”
“크아아아아-!”
지옥밥이 상상만 해도 너무 싫었는지 요란하게 고함을 내지른 악귀가 시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우는 귀찮다는 듯이 볼에 바람을 볼록하게 집어넣었다가 “푸우-.” 터트리고, 땅에 쓸리고 있는 염라 옷을 절도 있게 뒤쪽으로 탁 넘긴 뒤 악귀 석구를 봤다.
시우가 여유를 부리는 동안 석구는 단숨에 시우와 거리를 좁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석구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몸의 속도를 늦추며 슬로우 모션에 들어갔다.
시우는 석구의 기어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보고, 훌륭한 기술이라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닌데, 상당히 단련되어 있네. 그렇다면 나도-!’
시우는 귀여운 눈웃음과 함께, 마지막 대사를 뱉어 냈다.
“그래, 와라. 이 몸이 잠시 놀아 주마.”
어린 염라 시우는 뒷짐을 지고 악귀 석구의 공격을 기다렸다.
초슬로우 펀치가 날아왔다.
연습 때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진행을 했지만, 지금은 촬영 중이었다.
모두가 진지했다.
시우의 손바닥이 석구의 주먹에 닿았다.
“크아악!”
시우의 손이 닿자 석구가 몸을 뒤로 날렸다.
시우는 석구를 쫓았다.
뒷걸음질 치다 멈춰 선 석구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먹을 마구 뻗어 왔다.
물론 나무늘보보다 느렸다.
시우는 주먹들을 쳐다보며 오른쪽, 왼쪽으로 몸을 숙여 공격을 피했다.
석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재다! 이 아이는 진짜 천재야!’
공격을 피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지 않다.
전 세계의 그 어떤 다섯 살이라도 쉽게 피할 수 있는 속도로 공격을 했으니까.
문제는 뭐냐 하면, 바로 자신의 속도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었다.
원래는 아이의 들쭉날쭉한 속도에 자신이 맞추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우는 자신이 처음에 설정한 이상적인 속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지금 겪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연습 때의 그 눈빛도 그렇고…… 아니, 무슨…… 다섯 살이 이래-!’
제자리에 선 시우가 손바닥을 내밀고 스윽 미는 시늉을 했다.
장풍이었다.
“크아악-!”
석구는 온몸을 뒤로 내던지며 땅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이어서 시우가 두 손을 앞으로 번갈아 가며 내뻗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석구의 눈에는 염라의 기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석구는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낮은 포복으로 땅을 기며 공격을 피하다 가끔 얻어맞았는지 “크아악-!” 하고 소리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집에 1가구 1석구의 보급을 국가 차원에서 고려해 봐야 할 분위기였다.
이제 액션씬도 막바지였다.
악귀를 소멸시키는 마무리 공격!
유일한 고난도 액션!
하이라이트!
시우가 석구를 향해 달려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