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59)
59. 갓 엔터테인먼트
악귀 석구는 두려운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기마 자세를 취했다.
아까 열심히 연습했던 아빠산이 나올 차례였다.
‘아빠산’이란 아빠가 아이와 놀아 주는 방법 중 하나로, 아빠와 두 손을 맞잡은 아이가 아빠의 몸을 밟고 올라가는 놀이었다.
석구도 집에서 유치원생 아들과 자주 아빠산 놀이를 했다.
석구 아들의 경우 아빠의 유도에 따라 아빠 몸을 끝까지 타고 올라간 뒤 멋지게 한 바퀴 돌아 내려오기도 했다.
이 놀이를 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은-
아이가 빙글 한 바퀴 돌아 내려올 때, 아빠가 신경 써서 내려 줘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석구와 시우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것만 하면 돼! 시우야!’
‘응! 알았어요!’
시우가 뛰어왔다.
석구는 자연스럽게 시우의 공격을 막으려는 척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우는 석구의 두 손을 단단히 잡고, 왼발을 위로 올려 석구의 한쪽 허벅지를 밟았다.
그리고 오른발을 마저 올려 나머지 허벅지 위를 밟으려는 찰나-.
석구의 몸이 순간 휘청였다.
땅에 튀어나온 돌부리를 밟은 석구가 중심을 잃은 것이다.
석구는 가까스로 발에 힘을 줘 버텼다.
퍼억.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석구가 휘청이면서 몸의 위치가 조금 틀어진 탓에, 허벅지로 올라가야 할 시우의 발이 힘차게 다른 곳을 밟았다.
다른 곳을…….
석구의 몸을 타고 올라가던 시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다섯 살 시우와, 서른여덟 석구는 서로 마음을 열고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미안해요, 아저씨. 허벅지인 줄 알았어요.’
‘응…… 괜찮아, 시우야. 집에서 아들한테도 가끔 밟혀.’
석구는 시우의 손을 놓고, 대신 시우의 몸을 붙잡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우선 시우를 안전하게 내려놓는 것이 의식이 남아 있는 동안 해내야 할 석구의 사명이었다.
시우를 땅에 착지시킨 석구는 마음껏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입 밖으로는 되레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뻐끔뻐끔.
석구의 눈 주변이 파르르 떨려 왔다.
온몸의 근육들이 수축을 시작했고, 곧 다리의 모든 힘이 풀렸다.
시우에게 밟힌 곳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던 석구가 스르륵 땅 위에 엎드렸다.
…….
스태프들도, 최민철 감독도, 흙바닥에 누워 실눈을 뜨고 액션 씬을 지켜보던 한유리도, 현주와 지호 엄마, 그리고 지연이도.
다들 입만 살짝 벌린 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촬영장은 조용했다.
나무 위의 새들조차도 분위기를 아는지 숙연히 지저귐을 멈추었다.
무거운 적막이 찾아온 가운데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석구를 향해 시우가 주춤주춤, 오랜만에 아장아장 걸어서 다가갔다.
석구 옆에 쪼그려 앉은 시우는 조막만 한 손으로 석구의 등허리를 두드려 주었다.
툭…… 툭툭툭……
석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까지 참고 얼어붙어 있었다.
시우는……
치유 마법을 아낌없이 시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지호 엄마가 말했다.
“오늘 시우 멋있더라~! CG 처리까지 해서 영화에 나오면 진짜 멋있을 거 같아! 다음 촬영 때도 또 응원하러 오고 싶다!”
“헤에~”
시우는 촬영장 부근의 분식집에서 산 김밥을 먹으며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지연이 시우와 지호의 입에 김밥을 번갈아 넣어 주고 있었다.
“그 무술 감독님 아까 쓰러졌을 때 나는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어. 안 그래, 시우 엄마? 구급차 불러야 되는 거 아닌가 했다니까.”
“푸웁-.”
시우의 입안에 있던 김밥이 날아갔다.
“괜찮아, 시우야. 누나가 치워 줄게.”
지연은 티슈를 꺼내 김밥이 떨어진 카시트와 시우의 입을 닦아 주었다.
치유 마법으로 기적처럼 부활한 석구는 무사히 촬영에 복귀를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최민철 감독이 정말 미안한 얼굴로 다가와 석구에게 조심히 말을 꺼냈다.
“너도 프로고 나도 프로잖아. 우리 그 장면…… 살려 볼까? 솔직히…… 인간으로서 그러면 안 되는데, 좀 웃기긴 했거든?”
“…….”
석구는 영화에 나온다는 보장도 없이, 염라에게 급소를 맞은 악귀 연기를 이후 십여 차례 반복했다.
석구 아저씨의 열연을 떠올리며 시우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기란…… 정말 어려운 거야.’
* * *
두 달 뒤.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벚꽃들이 지고, 화려한 장미들이 개화하는 시기였다.
시우는 세 살 때부터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경호, 진아와 함께 놀기도 하고, 또 동네에서는 지호와 킥보드와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한 가지 변화한 점이라면, 지난 액션 씬 촬영 날 이후 지호가 시우랑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엄마를 졸라 두 아이가 함께 태권도 학원에 등록을 한 정도였다.
원래는 시우를 음악 학원에 보낼까 했던 현주는 5살 아이에게 학원 세 곳은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시우의 의사를 물어보고 우선은 태권도 학원과 바둑 학원만 보내기로 했다.
바둑 학원 바로 밑에 있는 태권도 학원.
현주와 지호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태권도 관장님이 시우와 지호에게 외쳤다.
“시우! 지호! 부모님께 인사!”
도복을 갖춰 입은 예쁘게 생긴 다섯 살 남자아이 둘이서 엄마를 향해 입을 모아 인사를 했다.
“태애! 궈언! 부모님께에~! 효도하게씁니다아~!”
파팟!
절도 있게 멋진 팔 동작을 취하는 시우와 지호였다.
현주와 지호 엄마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함박웃음을 짓고 말았다.
요즘 태권도 학원은 현주와 지호 엄마가 어릴 때 알던 태권도 학원과 많이 달랐다.
딸기 농장, 양 떼 목장, 피자 만들기 체험 등등 수시로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고, 또 주말 저녁에는 태권도장에서 피자&치킨 파티, 그간 모은 포인트로 장난감을 살 수 있는 포인트 파티, 온갖 게임 진행 등을 하며 1박 2일로 아이들을 돌봐 주기도 했다.
“다른 데는 어떤지 몰라도 여긴 진짜 애들 잘 봐준다. 진작 보낼 걸 그랬어.”
“다섯 살이면 일찍 보낸 거죠. 몸으로 노는 건 다 해 주는 거 같아요.”
현주와 지호 엄마가 학원 홍보 대사라도 된 것처럼 대화를 나누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갈 때, 시우의 키즈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 바나나챠챠~ 바나나챠챠~
승현이었다.
시우가 전화를 받았다.
“형아~ 안녕!”
[안녕! 시우야. 잘 지내고 있어?]“응! 형아는~?”
[형도 영화 잘 찍고 있어. 이번 달 말에 우리 또 같이 찍겠다. 형아, 안 보고 싶어?]시우는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뭘 또 그런 걸 묻고 그러시나.
“우음…… 우으음…… 보고 시퍼!”
[하하, 나도. 주말에…… 아, 혹시 엄마 옆에 계셔?]“응!”
[엄마 바꿔 줄래?]“안 돼애~ 키즈폰이야~ 팔 안 닿아~”
[아! 알았어. 형이 다시 전화할게.]잠시 뒤, 현주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응, 승현아. 무슨 일이니?”
[네. 어…… 별일은 아니고요. 원래 저희 소속사가 올해 초에 갓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된 거 아세요?]“그럼, 알지.”
승현 엄마에게도 들었고, 기사로도 봤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긴 왜?
휴대전화 너머에서 승현의 말이 이어졌다.
[그 갓 엔터의…… 그러니까 저희 새 대표님께서 시우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할 얘기도 좀 있다고 하시는데. 혹시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으으응?! 갓 엔터 대표님이면…… 신영민 대표님?!”
승현이 원래 소속되어 있던 중소 규모의 배우 전문 엔터테인먼트를 전격 인수한 갓 엔터테인먼트는 현존하는 수많은 연예 기획사들 중에서도, 양대 기획사라 불리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다.
원래는 K-POP 아이돌 전문이었으나, 라이벌인 MGS 엔터테인먼트가 연기 파트에서 몇 해 전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자 최근에는 갓 엔터테인먼트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배우 수집과 육성에 발 벗고 나선 상황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촬영이 없는 5월의 어느 토요일 오전.
승현과 승현의 매니저가 시우와 현주를 데리러 왔다.
검은색 밴 한 대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 탄 현주가 차 안을 둘러보다 매니저에게 말했다.
“차가…… 뭔가 바뀐 거 같은데요?”
“아, 갓 엔터 들어간 배우들 새 차 한 대씩 뽑아 주더라고요. 승현이는 미성년자라 밴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배우들 다요?”
“모든 배우들은 아니고, 데뷔한 지 5년 이상 된 배우들만.”
시우는 생각했다.
‘난 미스터 문라이트로 한 살 때 데뷔했으니까…… 4년 됐네? 나도 꽤 오래됐구나.’
이십 대가 되면 거의 데뷔 20년차다.
어마어마하다.
차는 부드럽게 안전 운행을 하며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갓 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향했다.
“와…… 여기가 그 유명한…….”
현주는 차창 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갓 엔터 사옥을 보며 신기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K-POP 아이돌의 산실이었다.
“건물 진짜 멋있네요.”
현주의 말에 매니저가 대답했다.
“원래 엔터 회사들 건물이 화려한 편이긴 한데, 갓 엔터랑 MSG…… 아니 MGS 엔터는 좀 심한 편이죠. 조금 더 가면 MGS 사옥도 있어요. 둘이 딱 붙어서 10년 넘게 으르렁거리고 있죠.”
규모도 규모지만, 사옥 외벽부터 아주 번쩍번쩍했다.
사옥 위쪽에는 G O D 라는 세 글자가 다이아몬드처럼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 갓 엔터야-!”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건물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매니저는 시우와 현주를 위로 안내했다.
시우와 현주, 승현은 입을 벌리고 이곳저곳을 계속 두리번대고 있었다.
“형아는 형아 회산데~ 왜 신기해해?”
“어, 사실 형도 처음 와 봐. 형은 일 있으면, 예전 회사 사무실로 가거든.”
승현의 스케줄이 바빴던 이유도 있고, 아직 갓 엔터의 배우 파트가 확실히 정돈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인수한 기존 배우 회사들의 인력과 환경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안내 데스크로 올라가자 엔터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대표님과 약속하셨죠? 류승현 군, 만나서 반가워요. 그리고 우리 시우도 만나서 반가워.”
미모의 여직원이었다.
시우와 승현은 둘이 손을 잡고 꾸벅 인사를 했다.
“40분 정도 일찍 오셨네요. 대표님 아직 연습하고 계시거든요. 연습실로 올라가셔서, 잠깐 구경하시는 거 어떨까요?”
현주나 매니저가 대답하기에 앞서 시우가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직원 누나에게 말했다.
“좋아요~!”
연습 구경?
흥미가 있었다.
시우는 승현의 손을 잡고 연습실이 모여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끝에 있는 제일 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영민 대표 전용 연습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땀 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우와~!”
시우는 댄서들의 현란한 움직임에 눈길을 빼앗겼다.
‘와, 이거 직접 보니까 무공보다 신기한데?’
무공은 이미 할 줄 아는 거고, 이런 댄스는 실제로 처음 봤으니까.
이번 생에 처음이 아니라, 모든 생에 걸쳐 처음.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많은 댄서들을 이끌고 맨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남자.
양대 기획사라는 갓 엔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소속된 쟁쟁한 스타들을 다 제치고 본인이 제일 스타인 남자.
아이돌 제국의 왕이면서 사십 대 나이에 본인이 소속 아이돌들보다 먼저 세계로 강제 진출을 당한 남자.
신영민.
바로 그였다.
시우는 영민으로부터 강한 아우라를 느꼈다.
내공 같은 것은 아니지만, 본인만의 기운이 상당히 강했다.
존재감이 거대했다.
“이런 거 저희가 이렇게 봐도 괜찮나요?”
현주는 갓 엔터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뮤직비디오 출연 때문에 오신 거니까, 이따 설명만 듣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시우와 승현은 연습실 의자에 앉아 댄서들의 춤을 계속 감상했다.
영민은…… 자세히 보니 존재감에 비해 춤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다만 개성이 강해 같은 춤을 춰도 오히려 댄서들보다 눈이 갔다.
잠시 후, 치열했던 연습이 끝났다.
시우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 정확히 10분 전이었다.
댄서들 한 명, 한 명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며 악수를 나눈 영민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시우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현주와 승현에게 인사를 한 영민이 시우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시우가 고개를 돌리자 영민의…… 개성 강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사업 방식도 그렇고 개성 덩어리였다.
“안녕, 아저씨 누군지 알아?”
시우가 웃는 얼굴로 영민에게 말했다.
“응~ 알아요. 승현이 형아가 알려 줬어요. 더 갓~ 영민신~”
승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번에는 시우가 반대로 물었다.
“아저씨는 내가 누군지 알아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