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66)
66. 영화 개봉
손바닥 뒤집기 게임.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손바닥을 책상이나 바닥에 댄 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상대의 손등을 때리는 게임이었다.
공격자가 손바닥을 뒤집을 때, 수비자가 같은 방향에 있는 손바닥을 따라 뒤집으면 맞는다.
동네마다 조금씩 규칙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역을 불문하고 한 가지 공통적인 결과는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한 명이 계속 맞는다는 거.
명태는 자기보다 한참 동생인 시우를 진심으로 때리거나 괴롭힐 마음까지는 없었다.
그랬다간 하윤이한테 미움만 더 받을 테니까.
그저 얄미워서 가볍게 때찌때찌 놀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고 3분.
명태는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는 중이었다.
주변 아이들과 자기가 좋아하는 하윤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 계속 맞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는 시우의 초인적인 방어 능력 앞에 초등학생 형아의 자존심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조금만 더 분노하면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명태의 두 눈이 시우를 매섭게 노려봤다.
시우도 씩 웃는 얼굴로 시선을 맞부딪쳤다.
타악!
시우의 양 손바닥이 벼락처럼 뒤집어졌다.
명태의 눈에는 그 모든 광경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보인다-! 보여-!’
명태는 눈으로 본 그 광경을 좇아, 자신도 양 손바닥을 벼락처럼 뒤집었다.
잘 보고 다른 손을 뒤집어야 하는데, 잘 보고 같은 손을 따라 뒤집는 명태였다.
‘으아악-!’
시우의 양손이 튕기듯 바닥에서 올라왔다.
쫘악-!
찰진 타격음이 명태의 양쪽 손등에서 터졌다.
제자리로 돌아온 시우의 손이 이불이 깔린 바닥을 두 번 두들겼다.
탁탁-!
명태는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시우의 양손이 다시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두 대다.
쫘악-! 쫘악-!
다섯 살이 이렇게 손이 맵다니!
아니, 그 전에……
이렇게 게임을 잘하다니-!
손등에서 올라오는 얼얼한 통증을 느끼면서 명태는 다섯 대짜리 공격과 열 대짜리 공격은 안 가르쳐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우가 너무 어려서 간단한 규칙만 가르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대결을 지켜보던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시우에게 말했다.
“시우야, 손을 이렇게 세워서 명태 손 가운데로 넣으면 다섯 대야. 그리고 손을 명태 손등 위로 이렇게 휘저으면 열 대…….”
시우와 게임을 하던 명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한 살 위 형아에게 명태는 소리를 빽 질렀다.
“말하지 마-!”
그 후로도 명태는 계속 맞았다.
시우가 힘 조절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팠다.
“형아, 이제 그만하자~”
“안 돼! 왜 그만해! 빨리해!”
맞으면서도, 너무 아프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오직 한 대.
딱 한 대라도 좋으니 때려 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한데 도저히 공격권이 넘어오질 않았다.
시우는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한 대 맞아 주기로 했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너무 많이 때리고 말았다.
이렇게…… 이렇게 못할 줄이야……
타악!
시우는 일부러 실수를 해서 공격권을 명태에게 넘겨주었다.
‘가볍게 한 대 맞고 끝내야지.’
그 순간 명태의 눈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지금까지 수십 대 맞은 것에 대한 복수를 할 기회였다.
시우의 철벽 방어에 번번이 막혀 왔지만 이번 공격 기회는 절대 실패할 수 없었다.
신중하게.
욕심부리지 말고.
많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
딱 한 대면 된다.
명태는 손바닥을 움직이지 않은 채, 시우의 손등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시우는 그런 명태의 얼굴을 보고 그만 배시시 웃고 말았다.
좋아하는 여자애 때문에 열을 내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애가 그냥 웃기고 귀여웠다.
그때.
명태의 양 손바닥이 뒤집어졌다.
혼신의 힘을 담은 공격-!
맞아 주려고 마음먹고 있던 시우는 웃다가 그만 따라 할 타이밍을 놓쳤다.
“…….”
“……이제 다시 내 차례야?”
“시우야…….”
“응?”
“그만하자…….”
“……응.”
믿기지 않았지만, 명태는 울고 있었다.
* * *
4월의 첫째 날.
감독 최민철, 주연 하승석이라는 흥행 보증 수표를 두 장이나 앞세운 영화 [신의 이름으로>가 개봉했다.
최민철 감독의 첫 판타지 도전과 하승석의 안주하지 않는 연기 변신 등으로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신의 이름으로 개봉 사흘 만에 120만 돌파!>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평론가들의 비판 뚫고 신의 이름으로 300만 달성!> [열흘 동안 700만 관객 모았다! 신의 이름으로 경쟁작 없는 비수기 극장가를 완전히 점령!> [신의 이름으로 1000만 초읽기! 최민철 감독의 3번째 1000만 영화 탄생 임박!>개봉한 지 정확히 15일이 지난 시점에, 신의 이름으로는 1000만 스코어를 찍었다.
손익분기점이 700만인 영화라 대박을 논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순조롭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드라마 집필을 마치고 한 달간 유럽으로 휴가를 다녀온 노진희 작가는 오랜만에 들른 자신의 사무실에서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것저것 끄적이긴 했는데, 전작을 마친 직후라 에너지가 떨어졌는지 별반 건진 것이 없었다.
“후우…… 웰메이드. 웰메이드. 그놈의 웰메이드.”
본 사람은 만족하는데, 대부분의 시청자가 안 보는, 호불호 갈리는 웰메이드 드라마 두 편 쓰고 몸값이 뚝 떨어진 그녀였다.
잘 만들었는데 손이 안 가는 드라마.
분명 엉성한데 손이 잘 가는 드라마.
작품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매일 씨름하다 전작에서 시청률 5%를 찍고 자존심을 왕창 구겼다.
이제는 작가 이름값이나 주연배우의 인기로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봐주는 시대가 아니었다.
드라마 자체가 흥미를 끄느냐, 못 끄느냐 오직 그것뿐이었다.
컴퓨터를 켠 노진희 작가는 포털 사이트 연예란으로 들어갔다.
영화 신의 이름으로 관련 기사들이 곳곳에 보였다.
노진희 작가는 혀를 찼다.
“온 세상이 판타지네. 내면에 대한 성찰과 깊이 있는 고민 따윈 점점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만 가득해. 내가 늙은 건지, 세상이 너무 젊어지는 건지.”
판타지는 질색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주가 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왜곡당한다 느끼는 노진희 작가였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많이 본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신의 이름으로 1000만 돌파 기사를 클릭했다.
스크롤을 내리자 댓글들이 떴다.
‘나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은 없나.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건가.’
그런데-
베스트 댓글 1위.
– 염라대왕 너무 귀여워!
베스트 댓글 2위.
– 염라 진짜 애가 연기도 잘하고 나올 때마다 심장 폭행당하고 왔음 ㅠㅠㅠㅠ 그리고 마지막에…… ㅠㅠㅠㅠㅠㅠㅠ
베스트 댓글 3위.
– 승현이랑 같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한유리랑 있는 것도 케미 좋더라. 난 둘이 전생에 커플인 줄 ㅋㅋㅋㅋㅋㅋ 커플인 줄 알았던 사람 찬성 눌러 봐.
그리고 최신 댓글들이 이어졌다.
–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염라가 악귀를 터트려 버린 거다. ㅋㅋㅋㅋㅋㅋ 염라 귀여운 얼굴로 잔인함이 아주…… ㅋㅋㅋ
– 하승석이야 늘 최고고. 한유리는 끝에 가선 괜찮았는데 연기력 기복 겁나 심해 보이고. 승현이 전투 씬은 존멋. 염라는…… 영화 보다가 빠뿌야 외치고 싶어지더라. 진짜 이쁘게 컸어. ㅠㅠㅠㅠ 이모가 행복하다.
– 염라 지금 여섯 살 아닌가? 영화 찍을 땐 다섯 살이었고? 연기를 왜케 잘함? 그리고 다섯 살한테 연기로 밀리는 한유리 너란 배우…… 그래도 끝에 가서 늦게라도 감 잡은 거 같아 다행이었다. 솔직히 연기 못하는 거 알지만 이뻐서 응원한다.
– 빠 빠 빠 빠뿌야 댄스~ 난 화날 때 빠뿌야 댄스를 춰. 염라대왕님 코미디 메이저리그 나와 주세요.
“……염라? 댓글에 염라 찾는 얘기가 왜 이렇게 많아? 영화 얘기보다 염라 얘기가 더 많네.”
노진희 작가는 의아한 얼굴로 검색창에 [신의 이름으로 염라]를 쳐 봤다.
“……아, 이홍균 감독님 작품 왕의 길에 나왔던 애구나.”
그녀는 시우의 얼굴을 알아봤다.
왕의 길은 그녀도 인상 깊게 본 작품이었다.
그런데 애가 연기를 뭘 어떻게 했다고 다들 저렇게 난리지?
촬영할 때 고작 다섯 살이었다면서?
그럼 대사나 제대로 이어 갈 수 있나?
그냥 짧게 한두 마디 하고, 귀여운 얼굴 살짝 비추고 들어가는…… 그 정도 역할일 텐데.
염라 옷을 입은 시우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노진희 작가는 밀려드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유럽에서 로마를 배경으로 한 정통 멜로를 구상해 왔지만 뭔가 부족했고 한때 인기였던 파리 연인이나 프라하 연인과 같은 철 지난 작품을 답습하는 느낌도 들었다.
사극 거장인 이홍균 감독이 정통 사극을 벗고 왕의 길로 퓨전 사극에 도전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뭔가 다른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했다.
“……한번 보러 갈까.”
영화관도 오랜만이었다.
이제 40대 후반을 눈앞에 둔 노진희 작가는 표를 끊고, 커피를 마시며 젊은 친구들이 오가는 모습을 구경하다 영화관으로 입장을 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혹시나 흘릴까 품에 소중히 안아 든 팝콘을 한 개씩 입에 넣으며 상영관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곧이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오프닝은 지옥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악귀 여러 마리가 저승에서 탈출을 하는 장면이었다.
노진희 작가는 기대심과 반발심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자신이 내키지 않아 하는 두 가지, 판타지와 상업성으로 점철된 영화 신의 이름으로를 집중해서 지켜봤다.
악귀 탈출 사건으로 저승이 발칵 뒤집힌 와중에, 갓 저승차사가 된 하승석이 저승에서 헌병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류승현의 팀에 신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승석의 신참 연기에 관람석에서 웃음소리들이 간간이 터져 나왔다.
승석이 한참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동안, 다른 저승차사가 나타나 승현에게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승현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악귀…… 악귀들이 이승으로 탈출했습니다!]승현과 의성, 유리와 재훈 등 기존 팀원들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신참 승석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 대박……]노진희 작가는 승석의 표정 연기에 조금 웃고 말았다.
웃으면 지는 건데.
장면이 넘어갔다.
드디어-
노진희 작가가 궁금해했던 그 염라 아이가 등장할 차례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느냐면……
“꺅~”
“나온다.”
“쉿쉿.”
아직 장면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약간 소란스러운 말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흠, 애가 애지. 덕구 연기는 아이가 워낙 귀여우니까 자연스럽게 나온 거고, 대사를 받아서 연기를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텐데. 어디 볼까.’
저승의 중심부.
염라대왕의 집무실로 화면이 이동했다.
시우는 책상 앞에 앉아 작은 손으로 보고서를 넘겨보다 입을 앙다문 화난 얼굴로 앞에서 열중쉬어를 하고 있는 저승이들을 노려보았다.
저승이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시우의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노진희 작가는 아이가 도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 주려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스크린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보고서도 엉망~ 진창~ 급했구나?]한참 나이 많은 어른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으나, 어색함이라곤 1도 느낄 수가 없었다.
눈빛부터가 상대를 딱 깔아 보고 있는 것이 스크린 밖의 그녀에게까지 확실하게 전달이 되었다.
[아, 하하하. 악귀가 탈출한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럼~ 너네 정신없다고~ 막 살 사람 죽이고, 죽을 사람 살려 놓고…… 그럴 거야? 우와아! 그냥 너네가 염라 할래?] [죄송합니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시우가 의자에서 폴짝 내려왔다.
노진희 작가는 그제야 이 아이가 정말 어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 살 아이답게 몸도 작고, 얼굴도 너무 귀엽고 아기 같았다.
그때.
집무실 중앙을 왔다 갔다 하던 작은 아이 시우가 발로 땅을 한 번 쿵! 굴렀다.
시우가 서 있던 바닥이 쩌저적 갈라졌다.
그리고 시우가 고개를 탁 드는 순간, 노진희 작가는 시우의 눈빛을 보고 깜짝 놀라 헛숨을 흡 들이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