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68)
68. 계약
“시우야, 얌전히 쉿~ 하고 있어야 돼.”
“응! 쉿~”
시우는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갖다 대고 아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시우가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아빠의 무릎 위에 앉은 시우는 아빠, 엄마와 함께 긴장된 눈빛으로 까만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중년의 여자 의사가 말했다.
“10주니까 아기가 많이 자랐을 거예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네에.”
현주는 떨리는 마음으로 대답을 했다.
최근 영화 신의 이름으로 개봉과 이후 시우에게 쏟아진 수많은 러브콜로 인해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느라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아채는 게 늦고 말았다.
초음파 검사가 시작되었다.
잠시 뒤, 시우는 화면에 나타난 작고 하얀 무언가를 보며 놀란 나머지 입을 살짝 벌렸다.
‘와아…….’
검은색 아기집 안에 누운 작고 하얀 아기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임신 10주를 전후해서 태아 크기가 3cm가 넘어가면 유산 가능성이 많이 낮아지거든요. 지금 아가가…… 태명 아직 안 지으셨죠?”
도진이 말했다.
“네. 알게 된 지가 얼마 안 돼서.”
그때, 화면에서 쉴 새 없이 꼬물대고 있는 곰돌이 젤리 같은 작은 아가를 지켜보던 시우가 무심코 한마디를 뱉었다.
“꼬물이~?”
아들의 귀여운 목소리에 누워 있던 현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동생 이름 꼬물이로 할 거야?”
“응. 계속 꼬물꼬물하니까~”
꼬물이는 아기집 안에서 발차기도 하고, 손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활발하게 놀고 있었다.
시우는 너무 신기했다.
의사가 말했다.
“우리 꼬물이가 키가 3cm가 넘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안심을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수치들도 다 괜찮고…….”
여러 수치들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며 보다 자세한 설명들을 해 준 의사는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말에 안도하는 부부에게 마지막으로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쿵! 쿵! 쿵! 쿵! 쿵!
시우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3cm밖에 안 되는 조그만 동생의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은 밤톨 크기만 한 동생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시우가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있을 때,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주와 도진이었다.
“아빠~ 엄마~ 울지 마아~”
시우는 작은 손으로 눈물을 훌쩍이고 있는 아빠와 엄마의 몸을 토닥여 주었다.
* * *
일주일 후.
현주는 오랜만에 승현 엄마를 만났다.
“축하해~ 시우 엄마! 여기 선물!”
“감사해요. 이렇게 많이 안 사 오셔도 되는데…….”
예쁘고 고급스러운 배냇저고리 몇 벌과 아기 손수건, 아기 손싸개와 발싸개 세트를 선물로 가져온 승현 엄마였다.
현주는 감사히 선물을 받았다.
“타! 출발하자! 우리 염라대왕님도 어서 타시고요!”
“네에~”
힘차게 대답한 시우는 엄마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승현 엄마가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아이와 임산부가 있으니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을 할 생각이었다.
시우는 안전벨트를 매고 승현 엄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승현이 형아는 뭐 해요?”
“승현이? 오늘은 화보 촬영하러 갔어. 새 옷 입고 사진 찍는 거. 왜? 보고 싶어?”
“네~!”
“알았어. 아줌마가 승현이 형아한테 전해 줄게.”
신의 이름으로의 대흥행으로 출연 배우들의 스케줄이 전부 엄청나게 빽빽해진 상황이었다.
차는 한참을 달려 갓 엔터테인먼트 사옥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승현 엄마, 현주, 시우는 1층으로 올라갔다.
“시우야, 진짜 이 회사 좋아?”
현주가 엘리베이터에서 시우에게 물었다.
“응. 영민 아저씨두 재밌고~ 승현이 형아랑 같은 회사라서 좋아!”
“그래, 알았어. 최소한 10살 될 때까지는 엄마가 데리고 다니려고 했는데.”
승현 엄마가 말했다.
“다른 아역 배우 같으면 그래도 아무 문제 없는데, 시우는 인기가 너무 높아졌어. 인기만이 아니라, 업계 평가도 그렇고. 내가 승현이를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혼자 데리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승현이가 지금처럼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 지금의 시우는 전문적인 관리를 받는 게 더 도움이 될 거야.”
시우의 인기 대폭발로 인해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많아진다면 다행이겠지만, 분명 파리들도 많이 꼬일 것이다.
승현 엄마도 그러한 순간들을 겪었고, 그 시기가 왔을 때 믿을 만한 소속사를 구해 승현이가 전문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시우의 경우에는 회사의 서포트가 필요한 그 시기가 다른 아역 배우들보다 훨씬 이르게 찾아온 것 같았다.
1층에서 내린 시우는 갓 엔터 직원과 함께 회장실로 향했다.
예전에 치즈 돈가스를 맛있게 먹은 그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영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우~ 우리 베이비! 잘 지냈어?”
가까이 온 영민이 허리를 숙이고 손을 내밀자 시우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갈수록 예뻐지네.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야아아~ 너 연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니? 이 아저씨도 연기 한번 해 보겠다고 주연 영화 몇 번 만들었다가…….”
중간부터는 현주를 보며 말을 잇는 영민이었다.
“150억 날렸거든요. 진짜…… 농담 아니고 진짜로. 그리고 주주들한테 내가 무릎 꿇었지. 하하하! 이건 농담이에요. 무릎까진 안 꿇었어요.”
조용-
조금 난해한 포인트를 가진 개그였나 보다.
영민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자~! 우리 윤시우 배우님! 여기 앉으세요! 어머님들도 앉으시고! 우리 직원님은 계약서 가지고 오시고!”
자리에 앉은 시우와 현주, 승현 엄마는 직원이 계약서를 가지고 오는 동안 근황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요즘에도 많이 바쁘시죠?”
현주가 묻자 영민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짐짓 거만하게 다리를 꼰 다음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저를 자꾸 찾아서요. 참 나, 하하하. 마흔부터 시작하는 월드스타 생활에 아주 몸이 죽어납니다. 그래도 꿈을 이루고 있어서……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역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꿈과 사랑이죠! 죽을 때 돈 가지고 가는 거 아니잖아요! 이런…… 크아, 이런 추억 가지고 딱 저승 가는 거죠. 그럼 이제 우리 시우가 염라대왕 옷 입고…….”
“대표님, 계약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케이. 자, 어머님들. 원래 계약은 제가 직접 진행 안 하고 따로 담당하는 팀이 있는데요.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제가 항상 이렇게 부모님과 얼굴을 맞대고 설명을 드려요. 아이를 맡겨 주시는 거니까 대표가 이렇게 해야 그래도 최소한의 신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후 영민과 갓 엔터 직원이 계약서를 보여 주며 여러 가지 설명들을 해 줬고, 이런 계약이 처음인 현주를 대신해 경험 많은 승현 엄마가 한마디씩 질문을 하면서 시우에게 불리한 독소 조항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저희 회사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국내보다는 또 세계를 향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차근차근 노력해 가는 회사거든요. 그래서 당장의 수익을 위해 소속 아티스트를 쥐어짜 내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재능이 빛나기 위해선 재능을 가진 사람이 즐거워야 하는 거니까요.”
영민은 자기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역시 하기 싫은 일은 안 해요. 물론 어른으로서 대표로서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만, 그 틀 안에서 평생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민의 눈이 시우에게 향했다.
“우리 시우한테도 하기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영민을 보던 시우가 배시시 웃자, 영민도 따라서 방긋 웃었다.
영민이 말했다.
“항상 시우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할게요. 바로 이렇게 말이죠. 시우야. 너 혹시 야구 좋아하니?”
“야구?”
영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우는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5월 초, 시우는 친구들과 같이 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우윳빛 생크림 케이크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고, 친구들이 불러 주는 축하 노래를 들으며 시우는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다.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찾아와 준 친구들의 모습에 시우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돈이 아닌 추억을 가지고 저승에 가는 거라던 신영민 대표의 말처럼, 여러 번의 생을 겪은 시우에게 남아 있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뿐이었다.
“시우야! 생일 축하해!”
진아가 외쳤다.
“시우야! 아푸지 마아!”
경호가 외쳤다.
“시우야~! 편지!”
지호는 시우에게 초록색 편지지를 건넸다.
그곳에는 맞춤법이 조금씩 틀린 삐뚤삐뚤한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시우야 나랑 친구 해 줘서 고마워]편지를 읽은 시우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나두 고마워!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자~”
“알았어!”
좋은 친구들 속에서 오늘도 행복한 기억을 하나 만든 시우였다.
생일이 끝나자 곧바로 어린이날이 찾아왔다.
생일과 어린이날이 붙어 있어 매년 부모님으로부터 선물을 연속으로 받는 시우였다.
“시우야! 오늘 기분 좋아?”
“응!”
“선물 받는 게 좋아, 아니면 야구장 가는 게 좋아?”
“야구장!”
모든 연예인들이 한 번쯤 꼭 해 보고 싶어 하는 것.
바로 시구!
갓 엔터에서 시우를 위해 잡아 준 첫 스케줄은 어린이날 열리는 야구 경기에서 염라대왕 옷을 입고 시구를 하는 것이었다.
영화 [신의 이름으로>가 15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일일 관객 수와 개봉관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막판에 영화 홍보도 할 겸 윤시우라는 이름도 사람들에게 알릴 겸해서 잡힌 일정이었다.
이 시구 한 번으로 포털 사이트 연예란을 윤시우라는 이름으로 도배할 수 있다는 게 갓 엔터 직원들의 판단이었다.
지금까지는 윤시우가 아닌 ‘신의 이름으로 염라’, ‘왕의 길 덕구’ 등 맡은 역할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시우 가족은 집 앞으로 찾아온 회사 직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 함께 야구장으로 향했다.
“시우 매니저는 대표님께서 좀 더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시겠다고 하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일반 매니저와 다르게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지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자유로운 영혼 같으면서도 은근히 세심한 영민이었다.
야구장에 도착한 시우 가족은 회사 직원을 따라 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반 관중들이 이용하는 통로와는 다른, 선수들이 오가는 통로로 들어간 시우는 신기한지 연신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시우 공 던지기 연습 많이 했어?”
회사 직원이 물었다.
“네!”
“그래. 잘하는지 이따 한번 볼까? 여기서 야구 선수 아저씨랑 연습 조금만 더 하고, 이따 야구장 마운드라고 하거든? 거기서 공 던지자.”
“네에~”
‘애들은 마운드에서 안 던져요. 앞에서 던져요~’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온 시우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연습장 안에 발을 들였다.
인조 잔디를 밟고 폴짝폴짝 신 나게 뛰는 시우를 보며 따라온 도진과 현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 염라대왕님!”
이때, 키가 190cm에 육박하는 덩치 큰 남자가 시우 앞에 나타났다.
쥬월드 동물원에서 만난 웅비와 웅식이가 떠오르는 체구였다.
“안녕하세요~”
시우는 예의 바르게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 아저씨는 서울 슈퍼스타즈 팀의 투수 김진수라고 해.”
다른 야구 선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토종 에이스야. 토종 에이스.”
“애가 토종 에이스란 말을 어떻게 알아. 저리 가라. 방해된다.”
장난을 치는 다른 야구 선수를 손으로 밀어내 보내고, 진수는 시우의 앞으로 돌아왔다.
“아저씨가 공 던지는 법 가르쳐 줄게. 먼저 간단하게 던져 볼래?”
“응!”
잠시 후, 서울 슈퍼스타즈 덕아웃에 토종 에이스 진수가 나타났다.
진수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백업 3루수인 동료 멤버가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 뭐 하다 왔어?”
“뭐 하긴요. 어린이날이니까 시구하러 온 애 가르치다 왔죠.”
“아아, 그 신의 이름으로? 염라대왕? 우리 와이프가 걔 진짜 좋아하는데, 이따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까? 근데 너 표정이…….”
“아니, 형.”
“왜?”
“여섯 살짜리가 보통 몇 킬로 던지죠?”
“글쎄, 지금 광주에서 뛰고 있는 이번에 입단한 그 야구 신동이 여섯 살 때 시속 60km 던졌다던데. 갑자기 그건 왜?”
동료가 진수에게 되물을 때, 야구장 안으로 염라대왕 옷을 입은 예쁘게 생긴 여섯 살 남자아이가 손을 흔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수는 별다른 설명 없이 동료에게 짧게 말했다.
“형, 쟤 던지는 거 한번 봐 봐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