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70)
70. 레드문
“시우야, 엄마가 자주 보는 드라마 있잖아. 한태수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레드문~?”
“응. 거기 잠깐 나오는 거래. 해 보고 싶어?”
“우으음…… 좋아! 그 드라마 재밌어!”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박 드라마 한 편이 시우의 필모그래피에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미스터 문라이트>. [내겐 너무 무서운 아내>. [왕의 길>. [신의 이름으로>.그리고……
[호텔 레드문>.여섯 살 나이로 웬만한 성인 배우들을 넘어서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만들고 있는 시우였다.
시우가 동의하자 일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며칠 후, 시우는 호텔 레드문의 이상철 PD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 와, 연예인 만나는 기분인데?”
이상철 PD가 활짝 웃는 얼굴로 시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동석한 시우의 임시 매니저가 마주 웃으며 말했다.
“연예인 맞습니다.”
“하하, 연예인은 맞는데. 제 말은 연예인들의 연예인 같은 느낌이란 얘기죠. 출연한다고 해 줘서 고마워. 시우야. 짧게 나오는 거지만 잘해 보자.”
“네에~!”
시우는 힘차게 대답하고 작은 몸으로 혼자 의자를 끄집어낸 다음, 그 위로 올라가 앉았다.
의자를 꺼내 주려던 매니저는 손을 거뒀다.
“우리 시우는 이렇게 뭐든지 혼자 잘합니다. 일단 식사 주문부터 할까요?”
시우는 갑작스럽게 입덧이 시작된 엄마를 집에 두고, 임시 매니저와 단둘이 이상철 PD를 만나러 왔다.
“우리 윤시우 배우님은 뭐 드시겠어요. 이 아저씨가 사 줄 테니까 뭐든 다 골라 봐.”
이상철 PD의 말에 시우는 메뉴판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우으음…… 불…….”
“불?”
“……불족발.”
“……!”
눈이 휘둥그레진 이상철 PD가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야. 불족발 먹어 봤어?”
도리도리.
“이거, 이거 엄청 매워! 입에서 불 나. 그래서 불족발이야.”
시우는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꿀피스도…….”
“……꿀피스는 어떻게 아는 거야?”
“티비에서 봐써요~ 매울 때는 꿀피스!”
귀엽게 웃는 시우의 얼굴을 보던 매니저는 휴대폰을 꺼내 펜으로 슥슥 메모를 했다.
[시우 꿀피스 광고 접촉]매니저가 메모를 하는 동안 이상철 PD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니, 애가 이런 거 먹어도 되나? 시우야. 여기 파전이랑 계란말이도 있어. 불족발은 너 매워서 큰일 나. 안 돼. 안 돼.”
“하아…….”
이상철 PD는 여섯 살 아이도 한숨을 쉰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시우는 메뉴판에 그려진 불족발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도진과 현주가 밤에 종종 시켜 먹는 메뉴였는데, 속 버린다며 시우에게는 절대 한 입도 주지 않았다.
남으면 새벽에 몰래 맛이라도 볼 테지만, 도진이 좋아하는 메뉴라 남는 일도 없었다.
시우에게 기회는 오늘뿐이었다.
“제가 시우 어머님께 시우 불족발 먹어도 되는지 전화로 한번 여쭤 볼까요?”
지나치게 세심한 매니저의 말에 시우가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안 돼요~ 엄마 아파요~”
“아, 맞다. 어머님 지금 입덧하시지. 음식 얘기 꺼내면 안 되겠다.”
“그냥~ 한 입만~ 따악~ 한 입만 먹으면…… 안 돼요? 네에? 궁금한데…… 후으응…….”
시우가 울상을 짓고 조르자 매니저는 못 이기겠다는 듯이 PD에게 물었다.
“혹시 PD님 불족발 어떠세요? 저는 매운 거 굉장히 좋아해서 있으면 잘 먹거든요.”
이상철 PD는 호탕하게 웃고는 대답했다.
“저도 매운 거 좋아합니다. 음식이 매워야 음식이지. 사실 불족도 웬만한 데는 말만 불족이야. 근데, 여기는 진짜 매워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권하고 싶진 않은데…….”
권하고 싶지 않다는 이상철 PD의 말꼬리에서 묘한 도발을 감지한 매니저는 입가에 웃음기를 띤 채 말했다.
“저는 원래 캡사이신 같은 것도 좋아해서, 기대되네요. 그럼 일단 불족 시키죠. 시우는 물로 씻어서 맛만 살짝 보여 주거나 하고.”
매니저는 손을 들고 가게 직원을 불렀다.
초대형 계란말이와 해물파전, 시우를 위한 새우볶음밥 등등 여러 메뉴들을 주문한 매니저는 이상철 PD와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시작했다.
“사무실 말고 이렇게 밖에서 뵙는 것도 좋네요.”
“아아, 밥 먹을 때 말고는 시간이 잘 안 나서요. 저희 드라마 시청률 아시죠? 잘되면 또 잘되는 대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일이 많아요.”
“아주 대박이 났죠. 시우 출연 분량 대본 오늘 주신다고 하셨는데, 일단 음식 오기 전에 훑어볼 수 있을까요?”
이상철 PD가 가방에서 쪽대본 몇 장을 꺼냈다.
“시우도 줄까? 글자 읽을 줄 아니?”
시우는 대본 달라고 손을 당당히 뻗고, 입을 열었다.
“한자도 읽을 줄 알아요~”
“한자? 한자를 어떻게 알아? 어디서 배웠니?”
“매. 직. 천. 자. 문.”
“……그, 그게 뭐야?”
매니저가 이상철 PD에게 설명했다.
“애들 보는 만화책 있어요. 그 만화를 몇 번을 읽었나 봐요. 시우가 아주 한자 고수예요.”
“허어, 요즘은 애들이 만화로 공부를 하나 보네. 세상 좋아졌네.”
만화책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태블릿으로 게임하듯 한글 공부, 숫자 공부, 알파벳 공부 등등 거의 모든 학습들을 다 할 수 있었다.
줄 긋기, 미로 찾기, 심지어 퍼즐 맞추기조차도.
‘거기까지 알면 더 놀라실 텐데. 우선 대본이나 읽어 봐야지~’
시우는 자신의 등장 부분만 출력된 쪽대본들을 확인했다.
진지한 얼굴로 대본을 들여다보는 여섯 살 아이를 이상철 PD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집중력이 대단한데?’
어린애가 저렇게 스스로 대본을 읽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 표정이 더 충격적이었다.
캐릭터를 분석하는 프로의 얼굴이랄까.
그런 얼굴이 어떤 얼굴이냐고 물으면 이상철 PD도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잠시 테이블이 조용해진 가운데, 가게 직원이 음식들을 하나둘 내왔다.
이상철 PD가 가게 직원에게 말했다.
“아이 있으니까 뜨거운 거는 이쪽으로 주세요. 앗, 뜨거! 앗, 뜨거!”
안 도와줘도 되는데 굳이 냄비 손잡이를 직원으로부터 건네받으려다 화들짝 놀라 냄비를 테이블에 탕 내려놓는 이상철 PD였다.
빨간 짬뽕 국물이 이상철 PD의 팔에 튀었다.
“앗, 뜨거! 앗, 뜨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상철 PD가 자신의 팔을 손으로 슥슥슥슥 문질렀다.
많이 덴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놀랐다.
“……괜찮으세요?”
시우의 매니저가 물었다.
“아저씨~ 다쳤어요~?”
시우도 물었다.
이상철 PD는 자신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힌 채, 자리에 앉았다.
“하하…… 하하하…… 먹죠. 시우도 여기 포크랑 숟가락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 많이 먹어라. 아, 깜짝 놀랐네.”
“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크게 다치신 줄 알고. 근처 약국에서 화상 연고라도 사 올까요?”
“아뇨, 진짜 괜찮습…… 어? 아니, 시우야. 너 뭐 먹니?”
대본을 옆에 내려놓은 시우는 먹고 싶은 거 많이 먹으라는 이상철 PD의 말대로 포크로 불족발을 찍어 먹고 있었다.
그것도 두 개를 한꺼번에.
“얌~!”
“안 돼!”
“안 돼!”
매니저와 이상철 PD가 동시에 외쳤다.
그러나 시뻘겋다 못해 검은 기운까지 감도는 소스로 뒤범벅된 불족발은 시우의 입으로 쏙 사라진 뒤였다.
시우는 놀라 굳어 버린 매니저와 이상철 PD에게 귀여운 눈웃음을 날리고, 입안에 퍼지는 불족의 맛을 느껴 보았다.
이것이-
이 세계의 매운맛인가!
……
입안이 고요하다.
의외로 맵지 않았다.
전생의 어느 삶이었던가.
미식을 탐구하는 요리사로 활약하며, 대륙의 온갖 매운맛을 찾아다닌 바 있는 시우는 이 싸늘한 고요가 폭풍 전야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곧, 혀끝에 비수가 날아와 꽂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매운맛을 왜 찾아다녔더라? 그래. 황제와의 내기가 있었지. 한번 맛보면 평생, 아니 죽어서도 잊지 못할 맛을 느끼게 해 달라고. 그 대신 나는 어떤 요리든 반드시 끝까지 먹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고. 아, 내가 그때 반항기였나 보다. 성격이 악마였어.’
인간이 100년을 살면서 나이에 따라 성격이 변화하는 것처럼, 시우도 100번을 살면서 시기에 따라 성격이 여러 형태로 변화해 왔는데 그 시절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질풍노도의 예민한 시기였던 거 같다.
시우는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폭군 녀석에게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하며, 불족발을 얌얌얌 씹었다.
후욱-!
매운맛이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하며 치고 올라왔으나, 역시 예상대로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매운맛일 뿐이었다.
“괘, 괜찮니? 시우야. 안 매워?”
평온한 얼굴로 불족을 삼킨 시우는 매니저의 질문에 환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하나두 안 매워요. 떡볶이랑 비슷해요.”
“어, 그래?”
매니저는 의아한 얼굴로 불족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집 되게 매운데? 주인이 바뀌었나?”
이상철 PD도 불족을 몇 개 집어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우는 가게 직원 형아를 부르고 있었다.
“형아~ 형아~ 물 주세요! 많이!”
매니저와 PD는 벌게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운맛 지옥에서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시우는 그런 두 사람을 보다 태연히 불족 하나를 또 콕 찍어 입에 쏙 넣었다.
이상철 PD는 무슨 이런 아이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혼이 반쯤 빠져나간 채 시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 * *
호텔 레드문.
영혼들이 환생을 앞두고 묵어가는 장소이자, 무엇으로 환생하게 될지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저승의 출구와도 같은 곳이었다.
김만식은 호텔 레드문의 신임 사장이었다.
원래는 이수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여사장이 부임할 예정이었으나, 일이 틀어져 임시로 잠깐 맡았다가 어느샌가 눌러앉게 된 김만식이었다.
“자자, 여러분! 달이 떴어요~ 붉은 달이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업을…… 영업…….”
호텔 로비에서 들러붙어 싸우고 있는 두 영혼이 보였다.
“참 부지런하시네. 기운도 좋아.”
만식은 한숨을 내쉬고 터덜터덜 걸어가 두 영혼을 뜯어말렸다.
“아니, 저…… 그, 그만해~ 그만하라니까. 이런다고 해결되는 거 없잖아. 아우, 진짜 산 넘어 산이야. 여긴 어떻게 조용한 날이 없냐! 규칙을 고치든가 해야지. 환생 앞두고 덕 쌓으라고 모아 놨더니 네 덕이네 내 덕이네 싸우고 있어!”
레드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다투고 있는 중년 남자와 젊은 청년을 겨우 떼어 놓은 만식은 손님들의 옷을 탁탁 털어 주며 그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손님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중년 남자가 만식에게 외쳤다.
“이놈이 말입니다! 내가 분명히 애들 괴롭히는 못된 귀신을 찾아서 먼저 쫓아내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놈이 갑자기 껴들어서…….”
젊은 청년이 말했다.
“아, 진짜. 쫓아내려고 한 거지 쫓아낸 건 아니잖아! 잡긴 내가 잡았는데 무슨 억지야!”
“이, 이 싸가지 없는 놈이…….”
만식이 두 영혼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만! 그만! 블랙박스 가지고 계시죠? 제가 나중에 영상 판독할게요. 일단 싸우지 말고…….”
젊은 청년이 중년 남자를 확 밀치고 만식에게 물었다.
“근데 이런 잡귀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사장님! 제가 소문을 들었는데…… 이번에 S그룹 거기 집안에 애 태어난다면서. 그거 그 자리 가려면 포인트 얼마나 필요해요?”
정보가 늦었던 중년 남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S, S그룹!? 거기 나도 지원할 수 있어요? 나도 거기 가고 싶은데!”
만식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소문이 또 어디서 흘러 나간 건지.
그놈의 재벌가 자리는 한번 TO가 나기만 하면 아주 대란이 일어난다.
호텔 레드문이 제일 바빠지는 시기였다.
“진정. 진정. 아시다시피 재벌가는 환생하기가 굉장히 빡세요. 경쟁률 아시죠? 사실 나는 재벌가보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 탈 없고 사랑 넘치는 그런 가정이 오히려 여러 케이스를 봤을 때 영혼의 만족도가 높았…….”
만식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는지 청년 영혼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런 얘긴 됐고! 얼마면 되냐고요! 포인트 얼마면 돼!”
“그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 환생 자리를 원하는 영혼의 수에 따라 포인트가 달라지는데 그걸 우리가 어떻게 벌써 알아.”
만식이 곤란한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날 때, 호텔 직원이 다가왔다.
“사장님. 새로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만식은 자리를 피하려는 듯이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리고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도망을 쳤다.
“어우, 저 젊은 손님은 도대체 언제 나가? 재벌가 가겠다고 아예 환생을 안 하고 포인트만 쌓고 있잖아. 저 욕심으로 전생에 죄 안 짓고 여기 온 게 용하다. 저런 마음으로 선행을 하니까 포인트가 잘 안 쌓이는 건데 말해 줘도 소용이 없어.”
“제가 보기엔 저러다 나중에 여기 취직할 거 같습니다.”
“……싫어. 싫어. 싫어. 그나저나 새로 온 손님은 전생에 뭐 했대?”
만식이 물었다.
직원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린 뒤 대답했다.
“글쎄요. 안 쓰여 있던데요. 어린 나이라 직업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뭔데?”
“어린 나인데, 보유 포인트가 장난 아니에요.”
“헐. 진짜? 전생에 덕 많이 쌓았나 보다.”
만식은 직원 몇 명을 데리고 호텔 입구로 나갔다.
붉은 달이 고고하게 뜬 밤하늘 아래, 저 멀리 지상의 불빛들이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만식이 하늘 위 허공에 발을 내딛자 자신이 통 크게 포인트 소비해 깔아 놓은 인테리어 구름들이 스르륵 마법처럼 나타났다.
만식은 구름을 밟으며 새로운 손님을 맞으러 갔다.
구름으로 만들어진 다리 끝에 저승과 이어진 언제 봐도 칙칙한 커다란 검은 문이 보였고, 그 문 밑에 작은 영혼 하나가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안녕~ 기록 보니까 환생 처음이네? 걱정 말고, 아저씨 따라가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뭘로 환생할지 같이 고민해 보자~ 이름이 뭐야?”
“…….”
아이가 얼굴을 들자,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천사 같은 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붉은 달빛이 내린 구름다리의 끝에서 아이가 만식을 보며 웃었다.
“제 이름은 수호예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