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71)
71. 환생
“이름이 수호야? 오~ 이름 멋있는데? 일단 들어가서 따뜻한 우유라도 한 잔 마실까?”
만식은 수호에게 구름다리를 건너오라고 손짓을 했다.
멀리 보이는 호텔 레드문과 발밑 구름 아래 펼쳐진 이승의 야경을 내려다보던 수호가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뗐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여길 손님으로 오게 될 줄이야.”
“응? 뭐라고 했니?”
만식이 묻자 수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환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아저씨~ 딸기 우유 있어요?”
“그럼! 있지! 바나나 우유도 있고, 초코 우유도 있어. 여기는…….”
만식은 비밀 얘기라도 해 주듯이 소곤거리는 시늉을 했다.
“멜론 우유도 있어.”
“…….”
“왜? 멜론 우유는 안 좋아해? 아, 혹시 너 살아 있을 때는 멜론 우유 없었니? 그럼 맛을 못 봤겠구나. 이번에 한번 먹어 봐. 맛있어.”
“호텔 블루문은 죽음을 맞은 영혼들이 올라오는 저승의 입구죠. 호텔 레드문은 할 일을 마친 영혼들이 환생하러 내려가는 출구고.”
여섯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예기치 못한 전문적인 말에 최근 이승에서 새로 출시된 멜론 우유를 열심히 광고하던 만식이 순간 멈칫했다.
수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블루문은 혼란에 빠진 영혼들의 저승 적응을 돕기 위해, 이승의 물건을 서비스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레드문은…… 허락을 못 받은 걸로 아는데…….”
흐으음-!
치이잇-!
“혹시 환생 앞둔 영혼들에게 이승 물건 팔아서 포인트 장사하는 건 아니겠죠?”
우우움-!
찌이일-!
만식과 레드문 직원은 마치 염라대왕이라도 만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애, 애가 무슨 소리를…… 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소소한…… 소소한 일탈이라고!”
“흐음~ 머~ 돼써요. 나도 이제 일 안 하니까.”
수호는 뒷짐을 딱 지고 만식을 지나쳐 구름다리를 건너갔다.
만식은 십년감수한 얼굴로 직원에게 물었다.
“뭐야, 쟤 뭐냐고? 여기랑 블루문은…… 저승 나이랑 상관없이 무조건 저승에 왔을 때 모습으로 오게 되어 있잖아.”
“그렇죠. 블루문이랑 레드문에서만큼은 나이 많을수록 어려 보이고 그런 거 없죠.”
“어쨌든! 저 나이에 저승 왔는데 기록지도 깨끗한 거 보면 거의 오자마자 바로 환생한다는 얘긴데, 저승 시스템을……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수상합니다. 감시할까요? 혹시 이승 가서 문제 일으키면 곤란하잖습니까.”
만식은 자신의 안내도 없이 호텔로 걸어가고 있는 어린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말했다.
“감시라기보다는…… 관심 손님으로 분류하자. 혹시 수상한 행동 같은 거 안 하는지 까마귀들 시켜서 잘 살펴봐.”
“넵!”
만식과 직원은 얼른 수호를 쫓아 달려갔다.
호텔 안으로 먼저 발을 들인 수호는 입을 헤벌리고 호텔 내부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와…… 김만식이…… 이 자식…….”
가관이었다.
“자자자! 여기! 여기! 강남! 강남! 청담동이랑 대치동 열일곱 자리 남았어요! 단돈 99만 8천 포인트로 균일가! 딱 오늘 자정까지만!”
“지금
만 포인트 있는데! 일단 환생 걸어 놓고 환생 때까지 나머지 모아 오면 안 됩니까!?”
“외상 사절! 일시불만 받아요~!”
“할부 없어요? 크크크!”
“에이, 환생에 할부가 어디 있어! 환생도 할부로 할래요?”
그때, 뒤늦게 따라온 만식이 수호의 눈치를 보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내가 이런 거 하지 말랬지-! 여기가 도박장이야-! 어? 환생이 경매야!? 이러다 저승차사님께서 만약 몰래 감사라도 오시면! 다들 환생 취소당하는 거 알아 몰라!”
“…….”
영혼들이 바글바글한 넓은 호텔 식당이 단숨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1초, 2초, 3초.
사장님의 카리스마는 유통 기한이 3초였다.
“여기도 잠깐 주목해 주세요~! 지금 피겨 신동 자리가 하나 생겼거든요. 물론 환생해서 노력하기 나름인데 일단 천재성 달고 태어나요.”
“성별은요?”
“남자아이고, 집에 돈은 별로 없어요. 유년기 운이 안 좋아. 근데 고진감래. 후에 대성할 가능성이 큰 운명을 가진…….”
타악-!
수호가 한쪽 발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러자-
발이 몹시 아팠다.
“악……!”
수호는 아픈 발을 붙잡고 한 발로 토끼처럼 제자리 뛰기를 했다.
갑작스러운 여섯 살 아이의 몸 개그에 만식은 멀뚱히 수호를 쳐다보다, 몰래 찾아온 저승차사는 아닌 거 같다는 확신을 가졌다.
“……여긴 환생을 준비하는 거의 이승에 가까운 곳이라서, 저승보다 통증이 잘 느껴지거든? 근데…… 바닥은 왜 찬 거니?”
“몰라도 돼요! 습관이에요!”
아픈 발을 꾹꾹 주무른 수호가 다시 시끄러워진 영혼들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다 몸을 휙 돌려 떠났다.
만식의 옆에 서 있던 직원이 말했다.
“하하, 애가 귀엽네요. 습관이래요. 그나저나 이 상황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정리할까요?”
만식은 수호가 나간 문을 한차례 보고 입을 열었다.
“아니, 계속하라고 둬.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난 돈 벌 거야. 포인트 잔뜩 벌어서…….”
“그분 만나러 가시려고요?”
“응. 늦기 전에 가야지. 가서 복수할 거야.”
“사장님, 너무 무리하시다간 타락해요.”
“하면 어때. 아니, 이미 했지. 어휴, 쟤네랑 나랑 다를 게 뭐냐. 하하.”
만식은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겠다고 서로 밀치고 싸우는 영혼들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수호, 멜론 우유나 갖다 줘.”
* * *
이승의 멜론 우유를 사랑하게 된 어린 영혼 수호는 매번 상징처럼 멜론 우유를 손에 들고 호텔 레드문을 돌아다녔다.
가끔 이승에 나들이를 갈 때도, 만식과 환생에 대한 진로 상담을 할 때도 멜론 우유에 빨대를 탁 꽂은 채였다.
PPL로 시작된 컨셉이었지만 중간부터는 멜론 우유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수호가 너무 귀엽다는 촬영 스태프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 아예 수호 캐릭터의 정체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표 노출 횟수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상표는 가렸다.
“날씨 좋다아~!”
오늘도 수호는 자신의 친구인 멜론 우유와 함께 이승 나들이 중이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을 돌아다니던 수호는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환생도 귀찮고. 레드문에 눌러앉아서 만식이나 놀리면서 이렇게 지낼까~?”
쪽쪽-!
멜론 우유 한 입 먹고.
“에휴~ 진짜 날 기억하는 영혼이 한 명도 없네! 하긴~ 염라는 소멸됐고, 난 그 일부인 인간일 때 영혼이니까. 정확히는 염라도 아니지. 손에서 칼도 안 나오고…… 악귀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다.”
그때였다.
한강공원을 쏘다니던 수호의 두 눈이 한껏 커졌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멜론 아이스크림이었다.
멜론 우유를 즐겨 먹는 자신에게 다른 영혼들이 알려 준 이승의 유사템.
만식이가 들여놓겠다고 약속만 하고 자꾸 까먹는 멜론 아이스……
“……응?”
멜론 아이스크림을 든 어린아이 너머로 한 젊은 부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수호의 표정이 넋이 나간 아이처럼 멍해졌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월순 차사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가 아랫배에 손을 살며시 올린 채, 남편과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염라…… 살려…… 살려…… 주세요……] [대왕님! 저희 진짜 열심히……] [이승까진 뭐 하러 내려 오셨어요? 혹시 저 구하려고? 헤에~] [제 전생은…… 왜 없는 거죠!?] [아, 안 돼! 안 돼애-! 사라지지 마…… 가지 마……]이것은 염라의 기억.
이후 인간 아이 수호의 기억이 더욱 강하게 차올라 염라의 기억을 차례대로 밀어냈다.
드라마는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과거로 넘어갔다.
도적 떼가 휩쓸고 간 마을에는 닭 한 마리, 개 한 마리조차 살아남은 존재가 없었다.
그런데 한 초가집의 아궁이에서 온몸에 검은 재를 잔뜩 묻힌 작은 어린아이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온 어린아이, 수호는 몸을 떨면서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터트렸다.
호텔 레드문 드라마 대본 작업에 특별 참여한 최민철 감독이 시우의 연기력을 믿고 마음껏 써 내려간 장면이었다.
마당에는 엄마의 기지로 독을 먹은 도적 십여 명이 떼죽음을 당한 상태였고, 그들 사이로……
월순의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수호는 비틀비틀 걸어가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엄마…… 엄마…….”
“수호야…….”
“응! 엄마…… 괜찮아? 많이…… 많이 아파?”
여인은 아이를 찾아 초점 잃은 눈동자를 움직이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아가…… 가서…… 밥 먹어…….”
“시러…… 시러…… 엄마 죽지 마아…… 흐윽…….”
“…….”
“엄마? 자면 안 돼…… 엄마아!”
엄마가 잠들었다.
엄마를 흔들던 수호는 눈물을 훌쩍이며 엄마의 팔을 들어 올린 다음, 엄마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엄마를 꼭 끌어안은 채 엄마가 일어나길 몇 날 며칠 동안 기다렸다.
엄마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수호도……
잠시 후-
멜론 우유가 땅에 떨어졌다.
아이는 천 년 동안 저승을 관장하던 염라가 아니었다.
천 년 동안 엄마를 그리워한 여섯 살 수호였다.
스르륵.
수호의 영혼이 여의도 한강공원에 현신했다.
허가받지 않은 현신에 포인트가 무자비하게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으나, 쌓인 포인트가 산더미였기에 문제없었다.
수호는 쭉쭉 내려가는 포인트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월순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여자는 자신에게 뛰어오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이내 그녀 앞에 멈춰 선 수호가 얼굴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 둔 말.
“엄마~!”
여자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가 싶어 뒤를 돌아봤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보고 외친 말이 맞았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예쁘게 생긴 아이가 두 뺨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왜…… 왜 울어? 엄마 잃어버렸니? 엄마 찾아 달라고?”
아이는 도리도리 얼굴을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찾았어요. 이제 만날 수 있어요.”
“그래? 그렇구나. 다행이다. 엄마 어디 계셔?”
그녀가 아이 엄마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아이를 봤을 때, 아이는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남편에게 물었다.
“애 어디 갔어?”
“몰라? 방금 여기 있었는데? 와, 애들은 진짜 눈 깜빡할 새 사라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어? 아니, 여보! 여보는 왜 울어?”
“응? 내가 운다고?”
월순의 얼굴을 한 여자의 뺨에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눈물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 * *
호텔 레드문.
사장실로 들어간 수호가 직원들 몰래 숨어서 혼자 조랭이떡국을 먹고 있던 만식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환생할게요!”
“쿠엑! 콜록! 케엑! 무, 물…… 무울…….”
놀란 만식이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조랭이떡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수호는 도도도 뛰어가 물을 건네줬다.
“고, 고맙다.”
“맛있는 거 혼자 몰래 먹음 체해요~”
“에이~ 아저씨 그런 못된 사장님 아니야! 내가 먼저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직원들한테 한턱…… 크흠. 그래. 환생하고 싶다고? 넌 어디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단다. 어디로 가고 싶니?”
“응. 엄마한테 갈래요~”
며칠 뒤.
호텔 레드문 뒤뜰에 위치한 환생문 앞에 만식과 수호가 직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자,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의 전생의 기억과 저승의 기억은 모두 사라질 거야.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 있니?”
수호는 작은 손으로 환생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뒤에 두고 수호가 만식을 돌아봤다.
“아저씨~”
“응?”
“너무 조급해하지 마요. 운명은 결국 먼 길을 돌아 다 이어지는 거예요.”
수호의 의미심장한 말에 만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응~ 귓속말할래요!”
“……저승에 남길 마지막 말을 귓속말로 하는 영혼은 처음인데? 그래. 말해 봐.”
만식이 수호의 앞으로 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호는 만식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저씨가 찾는 그 여자는…….”
만식의 눈이 점점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귓속말을 마친 수호는 환생문 앞에 섰다.
“너, 너 뭐야! 너 누구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만식이 놀란 얼굴로 수호를 향해 외쳤다.
수호는 처음 레드문에 왔을 때처럼 밝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누구냐고? 음~ 전직~”
“저, 전직?”
“염라야.”
“……!”
“안뇽!”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는 만식과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수호는 이승과 저승에서의 수많은 기억들을 뒤로하고, 환생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 * *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엄마와 행복하게 놀고 있는 여섯 살 아이 시우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호텔 레드문> 14화가 끝났다.
대한민국과 아시아 전역의 시청자들은 댓글 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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