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73)
73. LA
10월.
미국 서부 LA 국제공항에 비행기 한 대가 도착했다.
난생처음 외국을 방문한 시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쉼 없이 둘러봤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외국인들이 잔뜩 보였다.
다양한 문화권이 융합된 대표적인 다인종 도시답게 백인, 흑인은 물론이고 히스패닉과 동양인들도 많았다.
“우와~”
시우는 신기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한국에서 오직 한국 사람만 보며 살다 이렇게 세계로 나오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어느 대륙이었지? 도시 이름이 메타였나? 그 분위기 나는데~’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 메타.
여러 종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도와 가며 즐겁게 살아가던 평화로운 도시였다.
‘흐음, 그곳은 조금 그립네.’
첫 요리 스승님인 작은 마법사 생쥐 이투타라 님도 계셨고, 자신의 대저택 근처에 있는 호수 밑바닥에 집을 짓고 살던 인어 아줌마, 벨 누르고 도망가는 초등학생 아이들처럼 담벼락에 자란 담쟁이덩굴에 대고 심심할 때마다 화염 브레스 쏘고 도망가던 철없는 동네 용족 어린이 녀석들.
재밌는 기억들이 많은 장소였다.
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 시우는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잠시 추억을 회상했다.
“시우야, 기분 좋아?”
싱글벙글하고 있는 시우를 보고 희주가 물었다.
시우가 쑥쑥 자란 만큼, 나이가 들어 이제 서른여덟이 된 희주는 최근 웹드라마 대본 집필을 마무리 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응. 미국 오니까~ 많이 많이 신기해. 좋아.”
택시에 함께 타고 있는 매니저 권태우가 희주에게 말했다.
“원래 애들은 이것저것 보고, 겪는 게 중요하죠. 특히 시우는 연기하니까 더 그렇고요. 작가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배우나 작가는 경험이 재산이잖아요.”
호텔 레드문의 PD와 불족발 대결을 벌이다 나란히 복병 시우에게 패배했던 태우는 이번 미국 일정을 앞두고 정식 매니저로 아예 자리를 잡았다.
원래 아역 배우 매니저를 할 짬이 아니었으나, 오기로 한 A급 남자 배우가 지지부진 시간만 끌다가 다른 회사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시우의 임시 매니저로 대기하던 태우도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마침 시우와 합도 잘 맞고, 정도 많이 들어 우선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태우가 맡아 돌보기로 신영민 대표와 이야기가 되었다.
신영민 대표와 갓 엔터 스태프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짐을 푼 시우 일행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LA 관광에 나섰다.
여행은 6박 7일 일정이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관광, 셋째 날에는 공연 연습을 하고, 넷째 날에는 LA 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도시 잉글우드에서 열리는 영민의 콘서트에 잠시 올라간다.
다섯째 날에는 휴식, 여섯째 날에는 뭔가 촬영을 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늘이랑 내일은 마음껏 놀죠. 저도 휴가 온 기분으로 즐기려고요. 신영민 대표님은 이따 연습 끝나고 돌아오시면 밤에 호텔에서 뵙고 인사드리면 될 것 같아요.”
“아, 네에. 안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 두세요. LA는 익숙하니까요.”
태우는 자신만만하게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다운타운 유니언 역으로 이동한 시우 일행은 그곳에서부터 여유롭게 도보 관광을 즐겼다.
“다운타운 구경하다가 근처에 시장 있거든요. 그랜드 센트럴 마켓이라고. 거기서 이른 저녁 식사하고 산타 모니카 해변으로 가서 느긋하게 음료 마시면서 해 지는 거 보죠. 아, 이거 느낌이 왠지 짠맛투어 설계자 된 기분인데? 하하하.”
시우는 두 손으로 희주 이모의 손과 태우 아저씨의 손을 잡고 가운데서 신 나게 걸음을 옮겼다.
시우는 이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모든 게 다 색다르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뻥 뚫렸다.
끝없이 펼쳐진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우와~!”
현대 미술관 MOCA에서 다양한 전시물들도 구경하고, 활짝 핀 장미꽃을 닮은 기하학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도 보고, 또 먼발치서나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팀인 LA다저스의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의 웅장함도 느끼고, 동대문 시장 같은 느낌이 나는 자바 시장에서 옷 구경도 했다.
사실 옷 구경은 희주 이모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모 어때? 어울려?”
“응! 예뻐어! 이모 최고!”
“이 옷은? 이 색깔은 잘 안 받나?”
“그것도 예뻐! 이모는 다 예뻐!”
시우는 만나는 사람도 없이 매일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희주 이모를 위해 열심히 옷 구경을 함께해 줬다.
그러나 희주는 구경만 열심히 하고, 끝에는 값싼 티셔츠 두 벌만 사 들고 나왔다.
“됐다, 좋은 거 사서 뭐 하냐. 보여 줄 사람도 없는데. 편한 옷이 최고지.”
“…….”
시우는 조그맣고 따뜻한 손으로 이모의 조금 외로워 보이는 손을 꼬옥 쥐었다.
“시우야! 작가님! 이 모자 어때요?”
매니저 태우는 자바 시장에서 구입한 전혀 안 어울리는 멕시칸 밀짚모자 솜브레로를 머리에 쓰고, 손에는 길거리에서 산 치킨 부리토와 스테이크 나초 박스를 들고 있었다.
“작가님 드세요! 시우야, 너도 먹어. 작가님, 슬슬 배고프지 않습니까? 이거 드시면서 식사하러 가시죠!”
시우 일행은 부리토와 나초를 간식 삼아 맛있게 먹으며 그랜드 센트럴 마켓 쪽으로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 시우는 불나초 사 줄 걸 그랬나?”
태우의 농담과 어리둥절해하는 이모의 얼굴에 시우는 한바탕 웃음소리를 내고, 고기가 올라간 나초를 바사삭 씹어 먹었다.
위에 올라가 있는 으깬 콩들이 꽤 별미였다.
“맛있어~!”
“그래? 다행이네. 더 먹어.”
태우는 나초에 스테이크를 듬뿍 올려 시우의 입에 쏘옥 집어넣었다.
꽤 사이좋은 모습이라 희주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부리토와 나초가 거의 사라져 갈 때쯤, 희주의 눈에 큰 서점 하나가 보였다.
마치 중세 시대에서 튀어나온 듯이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특별한 분위기를 가진 서점이었다.
“와, 예쁘다. 여기 잠깐 들렀다 가도 될까요?”
희주가 태우에게 물었다.
“네. 그러세요. 역시 작가님이셔서 그런가, 책 냄새를 지나치지 못하시네요.”
“직업병이죠. 시우야, 책 구경할까?”
“응~! 나도 책 냄새 좋아!”
시우의 의사까지 확인한 희주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뭐지, 이건?’
서점에 입장한 시우는 입구 왼쪽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이게 LP라는 건가? 와아, CD도 있네?’
시우는 태어나 처음 보는 LP와 CD를 만지작거리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어른 키만 한 책장이 보였는데, 책장 주변으로 책들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듯 펼쳐진 채 장식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마법의 책장 같은 느낌이었다.
“우와! 예쁘다!”
시우는 그 책장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태우와 희주도 시우를 쫓았다.
“[할리와트와 드래곤의 알>?”
책장 앞에 선 시우는 책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푸른색 표지의 책들을 올려다봤다.
시우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태우가 책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시우, 아직 영어로 된 책은 못 읽지? 온 김에 아저씨가 기념으로 영어 책 한 권 사 줄까? 읽을 수 있게 열심히 공부할래? 영어 트레이너, 아니 선생님 말씀 들어 보니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어 마스터할 기세라던데.”
“읽을 수 있어요~”
시우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읽을 수 있어? 벌써?”
“쪼끔~”
“어이구, 이런 천재 소년 같으니라고. 나중에 서울대 배우 되자, 시우야. 하하. 그럼 이 책 사 줄까? 작가님 이거 읽어 보셨어요? 책 진짜 안 읽는 저희 조카가 이 책은 아주 각 잡고 앉아서 읽더라고요.”
희주가 대답했다.
“읽진 못하고 들어만 봤어요. 세계적으로 엄청 인기잖아요. 애들만 나오는 소설이 어른들 보기에도 재밌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돼서 읽어 봐야지 마음은 먹고 있었어요.”
“주인공만 애들이고 여기 [할리와트 마법학교>의 어른 선생들이랑 학부모들은 아주 뭐 정치질 장난 아니에요. 그게 절묘하게 섞여서 남녀노소에게 다 통한 거죠. 이 작가가 거의 7천억 넘게 벌었다고…… 이번에 완결도 났고, 영화 제작도 결정됐다니까 아마 수입도 더 늘겠죠?”
“그렇겠죠. 너무 높아서 와닿지가 않는 금액이네.”
“맞다. 여기 주인공 애들 네 명 중에서 한 명이 동양인인데…… 음……?”
태우의 눈이 슬그머니 밑으로 내려갔다.
귀엽게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동양인 남자아이.
1권에서 애들이 몇 살이었더라?
태우는 책을 꺼내 앞부분을 살펴봤다.
시우보다 두세 살이 더 많았다.
“……어려우려나.”
태우와 희주는 시우를 데리고 20여 분 정도 더 서점 구경을 했다.
희주는 평소에 좋아하던 미국 SF소설 작가의 책 몇 권을 바구니에 담았고, 태우는 시우에게 줄 선물용으로 할리와트 시리즈 1부 전권을 집어 들었다.
* * *
둘째 날의 관광 목적지는 세계 영화의 수도, 할리우드였다.
태우는 먼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들러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들도 시우에게 구경시켜 주고, 각종 유명 캐릭터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기로 했다.
시우는 희주와 태우의 손을 꼭 붙잡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시우야, 이거 어때?”
“응. 좋아!”
“이거 먹을래?”
“응!”
“시우야 재밌어?”
“재밌어~!”
작은 열차를 타고 어둠의 미로를 지나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스피드 보트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폭탄이 쾅쾅 터지는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고, 미니미한 귀여운 영화 캐릭터들과 댄스도 추며 시우는 영화로 가득한 꿈의 테마파크를 신 나게 즐겼다.
끝에는 트램을 타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핵심인 스튜디오 투어를 시작했다.
유명한 영화 세트들을 재현해 놓고 화려한 쇼를 보여 주거나, 실제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의 촬영 현장을 직접 견학하고 체험하는 어트랙션이었다.
운이 좋을 때는 인기 배우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시우는 운이 좋았다.
“데이빗 로버슨!? 크리스 테일러!? 엘레나 그레이엄!?”
태우는 오늘 이곳에서 촬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품까지는 몰랐다.
기막힌 우연…….
아니다.
오늘 유니버설 스튜디오 투어를 하면 촬영이 있을 거라고 알려 준 것은 신영민 대표였다.
‘다 알고 있었군.’
태우는 놀라지 않기로 했다.
놀라면 지는 거다.
그러나 옆에 있는 희주는 입을 한껏 벌리고 놀라는 중이었다.
“나 이 드라마 완전 팬인데! 전 시즌 다 봤어요!”
희주의 소녀처럼 신 난 모습에 시우가 질문을 던졌다.
“이모~ 이 드라마가 뭔데?”
희주와 태우가 동시에 대답했다.
“엑스오엑스오.”
시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엑~ 쏘오?”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이런 표현까지는 모르는 시우가 무슨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희주가 설명을 해 줬다.
“그냥 미국에서 친구끼리 편지랑 문자 같은 거 보낼 때, 끝에 인사처럼 쓰는 말이야.”
태우가 말을 덧붙이기 위해 입을 슬쩍 달싹이다 다시 닫았다.
XOXO.
현재 미국 젊은 층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드였다.
그리고-
며칠 뒤, 시우가 촬영하게 될 수도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상황이 좀 복잡했다.
촬영 전날이 되어야 결정이 날 것 같았다.
만약 하게 된다면 시우의 역할은……
여주인공 엘레나 그레이엄의 막내 여동생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친구23’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