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75)
75. 피아노
“…….”
시우는 아까 엘레나 그레이엄이 연기를 했던 소파에 앉아 스태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뭘까.
마음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감정은.
승부욕? 분함? 아쉬움? 허무함?
화려한 뷔페에 들어왔는데 이용 시간이 3분인 느낌?
물론 분량과는 상관없이, 단 한 컷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프로로서의 당연한 자세였다.
1살 때부터 연기를 해 온 시우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원샷을 살리기 위해, 단순히 얼굴이 나왔다가 아닌 연기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에디.
야구 선수 아빠를 둔 밝고 명랑한 아이.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햇살 같은 미소로, 단 한 컷이라도 좋으니 미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뿌셔버리려 했건만…….
“우음~”
소파에 앉아 발을 앞뒤로 흔들면서 약간 골이 난 목소리를 내는 시우였다.
시우의 눈에 한 중년 여성이 보였다.
작년 시즌부터 XOXO를 맡고 있다는 감독 헬렌이었다.
그녀는 여주인공 엘레나와 엄마 역의 배우를 앞에 두고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었는데, 때마침 고개를 돌리던 헬렌 감독과 시우의 눈이 맞닥뜨렸다.
헬렌 감독은 미소를 띠고 시우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시우의 상상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 엑스트라는 처음이지?’
시우도 헬렌 감독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때, 스태프가 다가와 말했다.
“여기 앉아 있지 말고 저쪽으로 가렴. 소파 흐트러지면 안 되거든.”
“……네.”
시우는 소파 밑으로 내려왔다.
스태프는 소파를 살피며 혹시 소품 위치가 달라지진 않았는지 확인을 하고 있었다.
시우는 그런 스태프를 보다 조용히 뒤로 돌아섰다.
‘……한국에서 연기할 때랑은 많이 다르네.’
자신이 아무리 친구23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성격을 만들고, 부모님의 직업을 설정해도……
이곳에선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았다.
“아기~ 사자야~”
누군가 시우를 불렀다.
루시였다.
루시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시우를 부르고 있었다.
시우가 조금 가까이 가자 루시가 물었다.
“네가 사자 가족 춤 보여 줬으니까 나는 사자 가족 노래 피아노로 쳐 줄까?”
이 무시무시하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랜드 피아노로 사자 가족을?
너무 쳐 주고 싶다는 듯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루시의 눈을 본 시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아이와 한국 아이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 아이는 한국 유치원에서 늘 보던 같은 반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지 영어를 되게 잘하는.
“응~ 그래. 너 피아노 잘 쳐?”
쿠궁-
별 뜻 없이 가볍게 던진 시우의 질문에 갑자기 루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왜 이래?’
루시는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아, 아니. 드라마에 나오는 안나는 피아노를 잘 치는데, 나는 잘 못 쳐. 그래서…… 연습을 많이 해.”
피아노 연습이라…….
루시의 표정만 봐도 꽤 힘든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게 전해졌다.
시우가 말했다.
“한번 쳐 봐. 사자 가족 말고, 다른 거. 네가 잘하는 거.”
“다른 거……? 으으음…… 오늘 칠 거 연습해야 되는데, 그거…… 해 볼까?”
이따 촬영 때 아이들 앞에서 칠 곡이었다.
악보를 펼친 루시는 심호흡을 한 뒤,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렸다.
시우의 뒤로 어느샌가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와 있었다.
다들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루시를 쳐다봤다.
멈칫-
아이들의 표정을 본 루시의 얼굴에 다시 부담감이 번졌다.
연기는 재밌었지만, 피아노는 무서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엄한 선생님 밑에서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는데, 잠까지 줄여 가며 열심히 해도 칭찬보다는 지적을 더 많이 받는 루시였다.
그래서-
루시는 피아노가 싫었다.
“…….”
건반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멈춰 있던 루시가 시우를 돌아봤다.
“그냥 사자 가족 쳐 줄까?”
시우는 루시의 마음을 알아챘다.
‘회피하고 있군.’
시우가 입을 열려는 찰나, 스태프가 지나가다 말했다.
“루시 연습 안 하니? 곧 촬영이야. 열심히 해야지~”
“네에.”
정신을 차린 루시는 한숨을 짧게 쉰 다음, 손으로 건반을 눌렀다.
따라란-!
루시의 표정처럼 조금 어색하게 첫 음이 울려 퍼졌다.
루시는 또래 아이들을 또 흘끗 보고는 입을 꾹 다물고 손을 움직였다.
루시의 조그만 손이 건반을 누르자 낭랑한 피아노 소리가 거실을 채워 나갔다.
아이들과 함께 온 일부 부모들과 스태프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시우는 루시의 뒤편에 비스듬히 서서, 귀로는 루시의 피아노를 듣고 눈으로는 악보를 훑었다.
파티 분위기에 어울리는 경쾌한 곡이었다.
행진곡 느낌도 섞여 있었다.
다만, 문제는-
파티의 풍성함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어린아이가 치기에 음이 좀 많았다.
‘……다 틀리고 있잖아. 헐.’
귀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도 뭐가 이상한지 정확하게 집어내진 못해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루시는 굳은 얼굴로 건반을 열심히 꾹꾹 누르고 있었다.
‘주법부터가 엉망이네.’
시우는 답답한 나머지 의자 위로 달려 올라가서 루시의 손등을 잡고 대신 쳐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루시의 연주가 끝났다.
1분 30초 정도의 짧은 연주였지만, 한 10분 들은 느낌이었다.
루시는 부끄러운지 쑥스럽게 웃고는 변명하듯 말했다.
“워, 원래는 더 잘하는데…… 애들 있어서…….”
스태프들이 외쳤다.
“오~! 잘하네! 루시! 많이 늘었다! 멋진데?”
“루시야! 잘했어. 촬영 때도 그렇게만 해.”
“와우, 루시. 정말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같았어.”
한국 촬영장에서 시우가 뭘 하든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받는 것처럼, 루시도 스태프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차이가 있다면 시우는 정말 잘해서 그런 것이고 루시는 위로와 격려 차원의 칭찬이었다.
드라마에서 손 싱크와 표정 연기만 해 주면 되는데, 피아노 칠 때 표정 연기가 잘 안 되는 게 루시의 단점이었다.
기를 살려 줘야 했다.
루시가 조금 안도할 때였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린아이는 솔직했다.
시우의 뒤쪽에 서 있던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아닌데. 엄청 못 치는데.”
……
왜일까.
스태프들이 열심히 칭찬을 하고 있었고 주위가 조용했던 것도 아닌데, 한 어린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유독 크게 모두의 귀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시우도 그 아이를 돌아봤고, 모든 스태프들과 부모들, 루시도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는 쏟아지는 시선에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하다 다른 아이들의 등 뒤로 숨어 버렸다.
루시는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해 준 그 아이를 한참 보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흑…… 흑…… 나도 알아. 나도 못 치는 거 알아. 우으…… 흑흑…….”
상처받은 여섯 살 어린아이 루시가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루시의 엄마가 달래기 위해 다가왔다.
루시가 외쳤다.
“엉엉! 엄마 가! 엄마 시러! 피아노도 시러! 피아노 치기 시러! 어허엉!”
“루, 루시…….”
루시의 엄마는 루시를 달래려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엉엉! 피아노 시러요! 맨날 선생님한테 혼나요!”
결국 헬렌 감독이 나섰다.
헬렌 감독은 몸을 낮춰 루시와 눈을 맞추고 자상하게 말했다.
“루시, 진정해. 아무도 너에게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말하지 않았어. 피아노 치는 연기만 하면 돼. 너는 연기자야.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하자.”
촬영이 중단되었다.
루시는 혼자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루시의 엄마는 뒤에서 그런 딸을 속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시우는 다른 엑스트라 아이들과 함께 거실 구석으로 이동하다, 루시를 한차례 돌아봤다.
‘괜히 내가 잘하는 거 쳐 보라고 해서 그런가. 그냥 사자 가족이나 치라고 할걸. 아니지. 어차피 연습 때문에 쳐야 하는 곡이었으니까.’
한국에서 배우 겸 유치원 아이 돌보미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시우는 계속 훌쩍이고 있는 루시가 신경이 쓰였다.
시우는 이곳에서 자신을 가장 반겨 주었던 루시를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훌쩍…… 훌쩍…….”
띵-!
그랜드 피아노 앞으로 다가간 시우는 어른들의 눈치를 살짝 보고, 건반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 있던 루시가 얼굴을 들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여기 앉아도 돼?”
시우가 묻자, 루시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 위로 올라간 시우는 허리를 곧게 펴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시우의 왼손이 건반 위로 올라갔다.
빠- 밤- 빠- 밤-
웅장한 낮은 음이 무겁게 울렸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시우의 손가락이 점점 속도를 올렸다.
사자 가족이었다.
시우는 일부러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루시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시우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빤히 보다 무심결에 자신의 오른손을 피아노 위로 가져갔다.
시우가 왼손으로 낮은 음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쳐 주자, 루시는 타이밍을 맞춰 사자 가족의 멜로디를 오른손으로 치기 시작했다.
딴딴- 딴딴따단 딴따단- 딴딴- 딴딴따단 딴따단-
루시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시우와 즐겁게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곡이 끝났을 무렵에는, 루시가 웃고 있었다.
“너 피아노 잘 친다!”
루시의 말에 시우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너도 잘하네! 아까 것도 쳐 볼까? 내가 도와줄게.”
“응? 아까 거?”
루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우는 헬렌 감독과 루시 엄마를 비롯해 모든 스태프들과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 손이 아닌, 두 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우선 긴장하지 말고. 틀리는 거 신경 쓰지 마.”
평소에 잘 치던 아이들도 원래 콩쿠르 가서 죽을 쑤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부담감과 압박감이 제 실력을 가로막는 것이다.
시우는 우선 아까 루시가 친 곡의 앞부분만 살짝 쳐 주기로 했다.
시우가 연주를 시작하자 아까 루시가 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맑고 깨끗한 음들이 시우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경쾌하고 화려한 원곡이 가진 매력이 한껏 살아났다.
루시는 입을 크게 벌리고 시우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시우의 작은 손이 빠른 속도로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우는 마치 피아노 소리만이 아닌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듯이, 너무 즐거운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뚝-
신 나게 이어지던 피아노 음이 갑자기 끊겼다.
시우는 루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여기까지만~ 해 볼…….”
시우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루시가 말이 터졌다.
“와아! 너 진짜 진짜 잘한다!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어떻게 그렇게 피아노를 잘 쳐!? 너 피아노 치는 애야?”
“아니, 그건 아니구. 엄마가 피아노 잘 쳐서 엄마한테 배웠어. 너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정말? 어떻게?”
간절한 표정으로 묻는 루시에게 시우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전적으로 나를 믿어야 해.”
* * *
“안나의 피아노 연주회에 온 것을 환영해! 우리 모두! 안나에게 박수를 쳐 주도록 할까?”
안나의 엄마가 말하자, 생일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은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예쁜 드레스에 티아라까지 머리에 올린 안나가 2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시우는 안나로 변한 루시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 한국에 가서 이 드라마를 시즌 1부터 정주행을 좀 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굳이 딸을 2층으로 올려 보내고, 드레스에 왕관까지 다시 입힌 다음 입장시키는 것은 모두 드라마 속 엄마 캐릭터가 벌이는 일이었다.
‘캐릭터가 특이해.’
마침내 안나가 계단을 내려왔다.
안나는 아이들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다.
안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엄마 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정이었다.
안나가 계단을 다 내려온 것을 본, 안나의 엄마가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한 남자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에디! 안나를 좀 도와줄래?”
에디.
야구 선수 아빠를 둔 밝고 명랑한 아이.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햇살 같은 미소로, 단 한 컷이라도 좋으니 미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뿌셔버리려 했건만…….
너무 이른 컷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그 아이.
“네!”
시우는 환한 미소와 함께 미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뿌셔버리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카메라가 일제히 시우를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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