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76)
76. 진통
시우가 한껏 밝게 웃자, 시우를 보고 있던 스태프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 이의 행복한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는, 미러링 효과였다.
루시도 일어난 시우를 향해 대본과는 상관없이 미소를 지었다.
어린 루시의 눈에는 시우의 웃음이 꼭 촬영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환한 빛처럼 느껴졌다.
시우는 루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루시와 마주 선 시우는 카메라가 자신들을 충분히 담을 수 있도록, 잠시 멈춰 루시와 아이컨택을 하고, 자연스럽게 루시를 에스코트했다.
헬렌 감독과 스태프들은 시우의 표정과 이어지는 여유로운 움직임에 감탄했다.
‘이 아이, 뭐지?’
슬슬 시우에게 빠져들기 시작한 헬렌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피아노 쪽으로 향하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
루시는 시우와 함께 걷다가 자기도 모르게 시우의 얼굴을 한차례 확인했다.
너무 신기한 아이였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척 든든해지고, 긴장도 풀리고, 용기도 생겼다.
시우와 맞닿은 손이 따뜻했다.
자신을 잡고 있는 루시의 손을 통해 마나를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던 시우는 루시가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자 가볍게 한 번 더 웃어 주었다.
시우의 미소에 루시는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까지 전부 털어 낼 수 있었다.
루시는 시우의 도움을 받아 그랜드 피아노 앞에 놓인 의자 위로 올라갔다.
피아노 앞에 앉은 루시가 시우에게 말했다.
“고마워, 에디.”
“응~ 언제든지 말만 해!”
시우는 야구를 좋아하는 명랑한 소년답게 씩씩하게 외쳤다.
시우의 눈웃음에 루시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손을 흔들었다.
할 일을 마친 시우는 몸을 돌렸다.
단역은 단역답게 빛나야 한다.
주연처럼 빛나려 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역할과 상황 내에서 최선의 표정들을 열심히 드러낸 시우가 자리로 돌아갈 때.
“멋지구나, 에디.”
안나 엄마 역의 배우가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시우에게 한마디를 더 걸어 주었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베테랑 배우인 그녀나 헬렌 감독 등은 시우가 얼마나 깔끔한 동선으로, 루시와 발까지 정확히 맞춰 가며, 카메라 위치까지 고려한 연기를 했는지 한눈에 알아봤다.
이 아이는 어리지만 이미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시우의 표정이 진지한 분위기로 갑자기 슥 변했다.
실은 이대로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마지막에 모험 하나 해 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안나 엄마가 기대치 않은 밥상까지 차려 주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편집하기 쉽도록 동선을 바꿔 자신을 찍을 촬영 카메라를 바꿔 버린 다음, 조그만 아이의 몸으로 젠틀하고 멋지게 마치 중세 시대 귀족들처럼 몸을 숙여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약간 오버스러울 수도 있지만, 막내딸이 드레스 입고 티아라 얹고 2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집안 분위기를 고려하면 안나 엄마 캐릭터가 좋아할 인사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안나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좋아하네.
몸을 편 시우는 다시 자리로 돌아간 뒤, 장난기 많은 남자아이로 돌아갔다.
‘표정이 정말 좋네.’
헬렌 감독은 자리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시우를 보고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 루시에게 선물을 주는 씬을 찍을 때도 아이가 귀엽다는 느낌은 받았다.
줄을 서서 선물 건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마치 피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아이들처럼 전부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혼자만 파티에 온 아이답게 앞뒤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면서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애가 성격이 활발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컷을 외친 후, 약간 촐싹대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 스륵 바뀌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아이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한국에서 유명한 아역 배우라곤 들었지만,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었던 헬렌은 표정을 순식간에 바꾸는 시우를 보고 그래도 현장 경험이 있긴 한가 보다 싶었다.
아이가 연기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 귀엽고 대견해 보여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손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후, 울고 있는 루시를 진정시키고 루시가 피아노를 치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보면서 헬렌은 완전히 시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 * *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신영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민도 스케줄 때문에 미국 방송사에 다녀온 참이었다.
영민은 우선 시우에게 고생했다고 칭찬을 해 준 다음, 시우를 방으로 올려 보내고 태우에게 물었다.
“어땠어? 약속대로 원샷은 주든?”
갓 엔터의 다른 직원들도 태우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아…… 그게 말이죠…….”
“뭐야, 안 줬어?”
“처음에 주긴 했어요. 그런데 시우가 나오자마자 거의 동시에 컷 해 버리더라고요.”
“…….”
영민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태우는 당황해서 얼른 말했다.
“아뇨! 처음에만 그랬고. 나중에 시우가 감독 눈길을 사로잡아서 대사랑 이름까지 받아 냈어요.”
“으잉? 대, 대사랑 이름을?”
“네!”
“……자세히 말해 볼래?”
태우는 오늘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시우가 울고 있는 루시를 진정시키고 루시와 함께 피아노를 친 일.
애들끼리 뭐라고 소곤소곤 대면서 피아노를 계속 치다 보니 루시가 안정을 찾고 피아노를 잘 치게 된 일.
그 광경을 유심히 보던 헬렌 감독이 자신을 불러 두 아이가 함께 있는 그림이 동화처럼 예쁘다며, 시우를 엑스트라에서 단역으로 승격시켜 준 일.
“잠깐만, 시우가 피아노를 쳤다고? 그것도 꽤 잘 쳤다고?”
“네. 곡을 통째로 들은 게 아니라 짧게 짧게 들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잘 치던데요. 루시랑은 비교도 안 되게. 그쪽 스태프들도 다들 수군수군할 정도였습니다.”
“여섯 살인데? 아니지, 난 네 살 때부터 쳤구나. 나도 한번 배우면 거의 다 따라 쳤어. 주변에서 막 신동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잘 치냐고…….”
“…….”
“미안. 내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 시우는 피아노를 어디서 배웠대?”
“이모님께 들었는데, 시우 어머님이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분이셨다고 합니다. 집에 있는 피아노로 엄마랑 아기 때부터 종종 치고 놀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잘 치는 줄은 이모님도 모르셨대요.”
“무슨 음악 쳤어?”
“글쎄요, 어린이용 행진곡 같은…… 제가 그쪽은 잘 몰라서.”
“그래그래. 나중에 한번 들어 봐야지. 우리 시우는 진짜 뭐든 잘해. 딱 엄친아 스타일이야.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거 같아.”
“……네.”
태우는 시우를 두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는 왠지 모르게 망발처럼 느껴지는 영민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능력 면에서는 도저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영민은 신 나게 웃다가 물었다.
“그래서, 연기는 어떻게 했는데? 물론 잘했겠지?”
“어디까지나 단역이니까, 그냥 잠깐 나왔고요. 대사는 세 마디 정도 했죠. 연기는…… 음…….”
“뭐야, 실수했어? 영어 대사라 낯설었나?”
“잘하긴 잘했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하아.”
“아니, 왜?”
“시우가 너무 한국에서 연기할 때처럼 했나 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영민이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미국에 와서 넓은 세상도 보고, 자신의 콘서트를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 음악에 열광하는 모습도 보고, 또 미국 촬영 현장에 직접 참여도 해 보면서 여러 경험들을 쌓으라고 불렀는데, 혹시 실수하고 상처라도 받으면 오히려 역효과였다.
태우가 말했다.
“한국에서처럼…… 너무 매력이 넘쳤는지, 감독님께서 다음에 인연 닿으면 또 함께하자고 그러시더라고요.”
“……너 이 자식, 지금 대표한테 장난치냐?”
비록 단역이긴 했지만, 미국 드라마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시우였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시우는 미국에서 촬영한 드라마 XOXO를 떠올리며 점점 작아지는 LA 국제공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왜, 아쉬워?”
희주가 시우의 표정을 보고 말을 걸었다.
“쪼끔?”
“어떤 점이 아쉬워?”
“…….”
시우는 평소와 다르게 희주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희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시우를 불렀다.
“시우야?”
“응.”
“기분이 안 좋아?”
“아니~ 미국에서 드라마 찍는 거~ 재밌었어!”
“재밌었어? 잘됐네. 영민 아저씨 콘서트 같이한 건?”
“그것두 재밌었어. 근데 드라마 찍는 게 더 재밌었어.”
“그랬구나.”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희주가 물과 간식 등을 꺼내기 위해 작은 가방을 여는데, 옆에서 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모~”
“응?”
“뭐가 아쉬운지 알았어.”
“그래? 우리 시우, 뭐가 아쉬울까? 놀이동산 못 가서?”
도리도리.
“미국에 더 오래 있고 싶어서?”
“그런 거 말구. 나~ 배우 될 거야!”
희주는 시우의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도 배우잖아. 우리 시우.”
“그냥 배우 말구!”
“그럼 뭐?”
“티~ 오~ 피~ 배우!”
“응?”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고, 제일 멋있는 배우 될래! 그래서…… 대사도 더 많이 하고~ 연기도 더 많이 많이 하고 싶어!”
“그래?”
“응! 사실은 이번에 대사 별로 없어서…… 슬퍼써.”
“오구오구, 그래써? 우리 시우가 슬펐구나. 우리 시우 세계 최고 배우 꼭 되자!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디서든 다 주연 맡자! 이모가 미리 사인 받아 놔야겠네~”
“지금 해 주까?”
“응? 그, 그래!”
희주가 한바탕 웃고 가방에서 꺼낸 하얀 연습장을 내밀자, 시우는 귀엽게 한글로 ‘슈슈~♡’라고 적었다.
시우의 1호 사인이었다.
* * *
11월 4일.
시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동생이 태어날 날이 가까워진 터라 최근 집안 분위기는 다들 초긴장 상태였다.
시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인지 요즘 들어 아기들이 나오는 꿈을 자주 꾸곤 했다.
아파트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간 시우 가족은 돗자리를 깔고 즐겁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복실이와 네로도 함께였다.
실제로 네로가 산책에 동행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꿈속이라 네로도 함께였다.
– 멍멍~!
– 냐앙~!
그리고……
“아부부부~!”
자신의 오른편에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돌쟁이 아기도 있었다.
아무래도 동생인 것 같았다.
시우가 조심스럽게 아기를 불러 봤다.
“꼬물아~!”
“부우~?”
아기는 시우를 보더니 까르륵 웃고는 시우의 무릎 위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왔다.
“꼬물아, 이리 와!”
시우가 아기를 꼬옥 안아 주자, 아기는 시우의 얼굴에 자신의 보들보들한 볼을 부빈 다음 시우의 얼굴을 신기한 듯이 빤히 쳐다봤다.
아기가 너무 귀여워 시우가 이마에 뽀뽀를 해 주려는 찰나.
아기가 시우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빠뿌야아아~!”
화들짝.
잠에서 깬 시우는 벽에 달려 있는 야광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6시.
하품을 크게 한 시우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날까, 더 잘까 고민하고 있는데 안방 쪽에서 엄마의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응?”
시우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뛰어갔다.
“엄~ 마~!”
안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만삭의 배를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여보…… 여보…….”
엄마는 힘없는 손길로 아빠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어젯밤 음주 단속을 하고 새벽 늦게 들어온 아빠는 거의 기절한 상태였다.
“아빠아아-! 일어나-!”
시우가 외치자, 도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 왜! 왜! 시우야! 왜!”
“엄마가! 배 아푸대!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도진은 얼른 아내의 상태를 살폈다.
“여보! 현주야! 가자, 얼른 병원 가자!”
현주와 시우에게 옷을 입힌 도진은 혹시 몰라 한 달 전부터 준비해 놓은 입원 준비물이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주를 부축했다.
“시우야, 지호 아줌마. 지호 아줌마한테 전화해.”
“아라써요!”
시우는 키즈폰으로 지호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우선은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떠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