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79)
79. 돌려보낼꼬야……?
“컷! 오케이!”
인어 슈트를 입은 시우가 욕조 안에서 대사를 쳤고, 수현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클로즈업된 뒤 컷 사인이 났다.
이것은 드라마의 첫 장면이었다.
이후, 수현의 얼굴 밑으로 한 달 전이라는 자막이 나오고-
시우와 수현이 처음 만난 한 달 전 상황으로 돌아가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수고했어!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아. 우리 벌써 드라마 절반 찍은 거야.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이상철 감독이 첫 촬영을 마친 수현과 시우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 줬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현은 감독과 함께 모니터링을 하고, 침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시우는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시우야, 춥진 않아?”
“네. 하나도 안 추워요.”
소속사 직원들이 시우의 옷을 갈아입히고, 수건과 드라이기로 몸을 말려 주었다.
늦봄의 따뜻한 날씨에 물 온도도 신경을 썼기에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수현의 대사처럼 정말 스파라도 하는 기분이라, 더 들어가 있고 싶을 정도였다.
몸을 말린 시우가 욕실에서 나오자, 세트장 침대에 앉아 있던 수현이 시우를 불렀다.
“시우 선배님~ 여기 앉으세요.”
시우는 다음 씬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을 뒤로하고 수현의 옆에 가서 앉았다.
수현이 주머니에서 마이츄 한 개를 꺼냈다.
“이거 먹을래? 누나가 너 나온 어촌하루 보고 마이츄 사 왔어. 지금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해요.”
시우는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수현이 껍질을 까서 시우의 손 위에 마이츄를 올려 주었다.
“맛있어?”
“응~”
시우는 젤리 캔디를 입안에서 굴리며 수현의 얼굴을 봤다.
‘보니까 잠도 잘 못 잔 거 같고. 밥은 먹었나 모르겠네. 뭐, 차차 나아지겠지.’
선배답게 후배를 걱정하며 마이츄를 얌얌 먹다 보니 이상철 감독이 시우를 찾았다.
“시우야, 잠깐 이리 와 볼래? 우리 시우 [호텔 레드문> 때는 어려서 안 시켰는데, 일곱 살도 어리긴 하지만 주연 배우니까 감독님이 모니터링하는 거 가르쳐 줄게.”
두둥-!
모니터링-?
촬영 영상을 어른들에게 안겨 뒤에서 구경하듯 본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의견을 내는 모니터링을 같이한 적은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시우는 이상철 감독에게 가서 모니터링에 대해 배웠다.
이미 여러 차례 어깨너머로 봐 온 일이라 별로 어려운 것은 없었다.
“이렇게 찍은 거 보고 혹시 시우가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감독님한테 말하면 돼. 레드문 때도 그렇고 감독님이 너 연기 잘하고 애드리브 잘 치는 거 아니까, 그냥 편하게 얘기해. 알았니?”
“네!”
시우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뭔가 진짜 배우가 된 거 같네. 할리우드에서도 이런 대우받으면 기분 좋겠다.’
현장이 일곱 살 시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가서 수현 누나랑 대본 읽으면서 준비 좀 하고 있어. 금방 촬영 들어간다.”
“네~”
시우가 침대 쪽으로 돌아갈 때, 스태프들 사이에 섞여서 구경하고 있던 남주 임지석이 외쳤다.
“윤시우 파이팅! 힘내라!”
이상철 감독이 지석에게 말했다.
“지석이 너는 시우 하는 거 진짜 잘 봐라. 어? 대사 치는 거. 몸짓 하나. 표정 하나. 잘 보고 연구해.”
“넵! 감독님! 똑같이 아주 복사기처럼 복사하도록…….”
“아니야, 복사하면 되냐? 몸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포인트를 기억해서 적재적소에 그 포인트를 보여 주는 거지.”
“…….”
“무슨 말인지 알지?”
“……아, 네.”
모르는군.
“후우, 예를 들면 말이야. [신의 이름으로>에서 염라의 버릇이 뭐였어?”
지석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바닥…… 차기?”
“그래. [호텔 레드문>에서 수호가 처음에 호텔 난장판인 거 보고 어떻게 했어.”
“바닥을…… 찼죠.”
“발을 굴렀지. 그런 포인트를 센스 있게 잡아내서 시우랑 싱크를 맞추란 말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왜? 말해.”
“시우가 연기를 잘하니까, 저를 보고 시우가 따라 하는 건 어떨까요? 시우가 캐치를 잘 해낼 거 같은데…….”
“시우가…… 잘하니까…… 네가 시우를 따라 해야…… 드라마가 잘되지 않겠니…….”
“아아~ 그렇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런 의욕으로…… 열심히 하자. 지석아! 배우로 자리 잡자!”
“네!”
시우는 마이츄 포도 맛을 까며 살짝 한숨을 뱉어 냈다.
‘……부담스럽구려.’
촬영은 계속 진행되었다.
이상철 감독은 수많은 레디 액션과 컷을 외쳐 가며 현장을 능숙하게 이끌어 갔다.
“레디, 액션!”
장소는 여전히 원룸 세트장이었다.
오늘은 첫 촬영이니만큼 부담 없이 원룸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초반 상황들 위주로 찍을 예정이었다.
시우와 수현은 바닥에 앉아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우는 정태 엄마가 선물해 준 ‘프린스 오브 더 씨’라는, 작은 영어들이 예쁘게 수십 곳에 적혀 있는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바닥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밥 내놔. 밥 내놔. 밥 내놔.”
수현은 가스레인지의 냄비에서 미역국을 푸다 고개를 휙 돌리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야! 내가 니 시녀야? 앉아서 ‘밥 내놔’거리지 말고 숟가락이랑 젓가락 정도는 네 손으로 갖다 놔!”
시우는 계속 발을 동동거리며 말했다.
“키가 안 닿아. 키가 안 닿아. 키가 안 닿아.”
“키가……! 키가…… 안 닿는구나.”
“신은수. 넌 방금 한 인어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써~”
발을 동동대며 애교스럽게 조르다가, 일순간 표정을 싹 굳히고 대사를 치는 시우를 보며 이상철 감독은 속으로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야아, 저 일곱 살 애가 표정 딱 바뀌는 거 봐라. 이건 명백히 노력이 아니라 재능의 영역이야.’
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하며 입술을 삐죽거리는 시우의 귀여운 모습에 스태프들이 입을 막고 웃음을 참을 때, 수현의 대사가 이어졌다.
“모욕감은 무슨~! 너 먹이고 재우느라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아?”
시우는 짐짓 화난 얼굴로 말다툼을 준비했다.
“먹여 주고 재워 주면 함부로 대하고, 노예처럼 부려도 되는 거야? 인간들 나쁘다! 실망스러워!”
“무, 무슨 실망. 인간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아니! 내가 너를 언제 노예처럼 부렸는데? 말해 봐. 말해 보라고.”
“숟가락이랑 젓가락 놓으라고 했자나…… 우리 왕국에서는 식사할 때 손가락 한번 까딱해 본 적 없는데…….”
“…….”
“왜? 여기 내 옷에 글자 봐. 프린스- 오브- 더- 씨- 나 인어 왕자님이야.”
짧은 다리를 건방지게 꼬고 바닥에 드러누워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우를 본 수현은 썩은 미소와 함께 코웃음을 쳤다.
“……알 게 뭐야. 바닷속에 가 본 적이 없는데. 네가 인어 왕자인지 인어 거지인지 어떻게 알아. 아니, 그보다 너 방금 영어 읽은 거야? 요즘 인어는 영어도 할 줄 알아?”
시우는 코웃음을 그대로 되돌려주며 말했다.
“흥. 인어라고 외국인 없겠어? 그리고 너. 잘 생각해 보라고. 바닷속에…… 아니다.”
“뭐야? 뭔데?”
“몰라도 돼. 인간의 기억력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보다 빨리 밥이나 먹자! 광어랑 도미 너무 맛있겠다! 신 나~ 신 나~”
미역국이 담긴 그릇과 어묵 구이를 테이블 위에 올린 수현은 어림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웃기시네~ 광어랑 도미? 꿈. 도. 꾸. 지. 마.”
띵동-!
벨소리가 울렸다.
“응? 누구지?”
수현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뒹굴거리던 시우가 벌떡 일어났다.
시우는 테이블 앞에 앉은 수현에게 다정히 말했다.
“은수야. 내가 너~ 꼭 지켜 줄게! 나는 너를 보호하고, 너는 나를 먹여 주고. 우리는 완벽한 파트너야.”
“너 설마…… 아니지? 오호호~ 호호~ 아니라고 말해. 당장.”
“내가 받아 올게.”
“뭘…… 뭘 받아 와.”
“광어회랑 도미회 시켜써~ 전화로.”
“……어린아이가 전화하면 장난인 줄 알고 안 갖다 줄 텐데?”
“어른스럽게 말했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광어랑 도미 한 접시 부탁~ 드립니다.”
“…….”
“돌려보낼꼬야……?”
시우가 두 손을 턱밑에 모으고 간절하고도 슬픈 눈빛으로 수현을 쳐다봤다.
이제 씬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시우의 표정 연기 다음은 수현의 표정 연기 차례였다.
수현은 치사하게 자기 필요할 때만 아이인 척하는 시우를 가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다, 이내 시우의 치명적인 사랑스러움에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머, 먹어라. 먹어. 너도 고향 음식이 먹고 싶겠지! 으휴! 내가 일을 더 하면 되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애가 참 순수하고 신비로웠는데…….”
시우의 양 볼을 잡고 가볍게 꼬집은 수현은 배달 음식을 받으러 현관으로 나갔다.
이상철 감독이 외쳤다.
“컷! 오케이!”
짝짝짝-!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마다 어린 시우와 신인 수현이 자신감을 갖도록 스태프들이 손뼉을 열심히 쳐 줬다.
“예전에 시우랑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한테 듣긴 했는데, 대사 진짜 길게 외운다. 연기도 잘하고. 시우랑 일하면 촬영 시간이 확 준다더니 진짜네.”
“아까 표정 정말! 너무 귀엽더라! 이모티콘~! 이모티콘~! 인어 이모티콘도 갓 엔터에서 내주나?”
“한유리랑 연기할 때처럼 애가 다른 배우들이랑 케미가 좋다. 손수현이 신인치고 잘하는 거지 원래 저 정도 연기력은 아니었는데, 되게 물 흐르듯이 둘이 주고받지 않았어?”
스태프들은 방금 전 씬에 대해 서로 이런저런 의견들을 나누며 감탄을 했다.
시우는 간이 의자에 앉아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중이었다.
쪽쪽-
“시우야, 혹시 배고프면 말해. 간식 있으니까.”
주연 배우로서의 첫날을 잘 보내고 있는 시우를 향해 태우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잠깐만 시우야, 누나 볼까?”
스타일리스트가 오랜 촬영으로 살짝 흐트러진 시우의 머리를 다시 정돈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유, 인사도 잘해요. 우리 시우는. 이제 얼마 안 남았네. 힘내.”
“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움직여 주고 있는 만큼 책임감 또한 컸다.
주스를 다 마신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본 책을 품에 안고, 수현에게 갔다.
“맞춰 볼까?”
“네~”
시우는 수현과 간단히 리허설을 하며 오늘 찍을 마지막 촬영분을 점검했다.
잠시 후, 이상철 감독의 외침이 또 한 번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레디- 액션-!”
오늘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이상철 감독의 목이 조금 쉬어 있었다.
시우와 수현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시우가 먼저 대사를 쳤다.
“어린애한테 장바구니를 들게 하다니…… 너무해.”
“너무하긴 뭐가. 계속 내가 들고 오다가 계단 올라올 때만 잠깐 들어 놓고.”
“내가~ 바다에서는…….”
“여긴 육지야. 그리고 진짜 애도 아니면서 엄살은. 나보다 힘도 백배 세잖아.”
“치.”
“그리고 거의 다 너 먹을 거 아냐? 너…… 너 오늘 나랑 얘기 좀 하자. 이대로는 안 돼. 거덜 나겠어.”
“내가 전에 준 돈은 쓸모가 없어~?”
시우가 약간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현은 기가 막혀서 뒷목을 잡을 것 같은 표정으로 외쳤다.
“그…… 바다 세계 돈? 조개껍데기?”
“그냥 조개껍데기가 아냐. 왕국에서 직접 제조해서 공식 발행한 조개껍데기라고…… 하아, 진주를 챙겨 올 걸 그랬나.”
“그래! 진주라도 가지고 나왔어야지!”
“급하게 나오느라.”
“휴우, 됐고. 여기 앉아 봐.”
장바구니를 싱크대 밑에 내려놓은 수현은 시우를 데리고 바닥에 앉았다.
“나도…… 이런 얘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가 물불 가릴 때가 아닌 거 같아서…… 전부터 생각했는데 진짜 어렵게 말 꺼내는 거야…….”
“으, 으응. 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수현이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수현의 눈이 어쩐지 희번덕 빛나고 있었다.
“……네 비늘이 영롱하고 반짝이고 너무 예쁘더라.”
“…….”
“아름다웠어. 너 비늘 칭찬받는 거 좋아한댔잖아.”
“응…… 그래서…….”
“딱! 하나만! …… 떼어다 팔면 안 돼? 목걸이 만들까? 팔찌?”
시우는 두려운 표정으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반대로 수현은 비어 가는 통장 잔고 앞에 차츰 이성을 잃고,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한 개만~ 얼른…… 욕실로 가자…… 안 아프게 떼 줄게!”
“아니, 별로 아프진 않지만…….”
“그래!?”
“헙!”
말실수를 한 시우가 두 손으로 입을 막을 때였다.
쾅쾅쾅-!
누군가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