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80)
80. 밥차
“컷! 오케이! 둘이 케미가 너무 좋은데?”
원 테이크로 끝낸 씬이 몇 번인지 나중에 세어 봐야겠다.
이상철 감독은 [호텔 레드문> 이후 오랜만에 진행한 열정적인 촬영에 쉬어 버린 목을 손으로 매만지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자, 다들 박수!”
짝짝짝짝-!
오늘 촬영은 스태프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끝이 났다.
방문자는 바닷속에서 시우를 찾아 육지로 올라온 충성스러운 인어 무관 강동훈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강동훈이 없으니 여기까지.
스태프들은 작은 원룸과 집 앞 복도를 배경으로 이런저런 장면들을 만들어 낸 세 주연 배우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석이는 연습 조금 더 열심히 해 오자. 오늘 NG 낸 거는 이미 지난 일이니까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네! 감독님!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석도 수현과 합을 맞춰 몇 씬을 찍었는데, 연기할 때 평상시 자기 말투를 쓰던 지석은 시우의 느낌을 살리려고 애를 쓰다 많이 헤매고 말았다.
다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드라마 초반에는 주인공이 시우의 모습으로 지낼 때가 압도적으로 많아 다행이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시작부터 시청자들에게 계속 지적을 당했다면, 지석의 멘탈이 아마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이상철 감독이 첫 촬영 기념이라며 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 시우, 수현, 지석을 보면서 다음 촬영 일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무렵, 조연출이 촬영장 스태프들을 향해 외쳤다.
“밥차 왔습니다-!”
“오오오~!”
촬영장이 술렁였다.
어느 직장이든 사람들이 일터에서 첫 번째로 기다리는 시간은 일 끝나는 시간이었고, 두 번째로 기다리는 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일 끝내고 밥 먹는 시간이라면?
지친 스태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원래는 저녁 식사 후에 시우를 돌려보내고 지석과 수현의 씬을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시우의 활약으로 촬영 시간이 단축된 덕분에 이미 그 분량들을 다 찍었다.
밥 먹고, 끝이다.
“오늘 밥차는! 영광스럽게도 하승석 배우님께서 우리 윤시우 배우님의 첫 주연 데뷔를 축하하는 의미로! 쏘셨습니다! 참고로 하승석 배우님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밥차나 커피차 등을 쏘신 적이 없고,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십니다!”
“오오오~!”
대한민국 넘버 원 카리스마 배우 하승석의 첫 밥차 소식에 스태프들이 술렁였다.
“시우야, 이쪽으로 와. 인증샷 찍자.”
매니저인 태우가 시우를 불렀다.
시우는 밥차 앞으로 가서 두 손을 머리 위에 토끼처럼 붙이고, 손가락으로 V를 만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SNS와 포털 연예란에 올라갈 사진이 예쁘게 잘 찍혔다.
촬영을 마친 시우는 몸을 돌려 승석이 보낸 밥차를 구경했다.
염라 시절의 시우와 저승이 시절의 승석이 함께 찍은 사진 옆으로, ‘먹고! 연기하고! 대박나라! 귀요미 막내 차사 하승석 올림!’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촬영 끝난 지 2년이나 됐는데 잊지 않고 이렇게 챙겨 주시네. 와, 벌써 2년이나 됐구나.’
어디서~ 가암히~ 염라한테 꼬맹이래? 하고 승석에게 장난을 치던 게 다섯 살 때였다.
엊그제 같은데 2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번 생에도 차곡차곡 추억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이니까 이번 생의 기억들과 감정들은 전부 다 온전히 가지고 갈 수 있겠네. 배우가 되기로 했으니 열심히 여러 인생을 살고, 추억을 잔뜩 만들어 가야겠다.’
시우가 몸을 돌리자 지석과 수현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서 하승석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형아~ 누나~ 밥 먹어요!”
시우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그래. 우와. 하승석 선배님! 나 진짜 팬인데! 대~ 박! 하승석 선배님께서 보내 주신 밥을 먹다니…… 너무 감동적이야. 나 밥 먹으면서 계속 손 떨 거 같아.”
수현도 입을 열었다.
“시우야, 좋겠다. 하승석 선배님이 이렇게 챙겨 주시고…… 부럽다. 우리 시우. 진짜 스타구나.”
밥을 먹기 위해 마침 두 배우들의 뒤로 지나가던 이상철 감독이 한차례 웃음을 터트렸다.
“얘들아, 놀라긴 이르다~ 시우 주연 맡았다고 밥차 예약이 아주 미어터져. 다음 촬영 때는 이수진, 그다음에는 한태수, 송준영, 덕구 아부지 황동식, 한유리에 류승현에 갓 엔터 신영민 대표에 왕의 길 이홍균 감독님에…… 최민철 감독님, 이한수 감독님. 다 말하기도 힘들다.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어. 우리 매번 코스 요리 먹게 생겼다.”
잠시 다물어졌던 지석과 수현의 입이 다시 떡 벌어졌다.
멋쩍게 웃고 있는 시우를 내려다보며 지석이 물었다.
“너 일곱 살이지?”
“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니.”
“우응~ 열심히~?”
태연히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시우였다.
“……그치. 너 진짜 열심히 했더라. 형이 바지에 오줌 싸고 엄마한테 등짝 맞을 나이에, 너는 필모그래피를 만들었지. 진짜 무시무시한 필모야.”
지석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시우 스무 살 됐을 때 필모가 궁금해요. 이런 페이스면 스무 살 때는 정말…….”
“그때는 시우가 20년차 아냐? 우리는 감히 눈도 못 마주치겠다.”
“저희도 그때는…… 경력…… 꽤 쌓였겠죠?”
수현의 불안한 물음에 지석은 불필요할 정도로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럴 수도 있고…… 연기판에서 사라졌을 수도…….”
“……오빠.”
“미안해. 너는, 너는 남아 있을 거야. 하하하. 밥이나 먹자!”
시우는 이번 드라마가 잘돼서 이 두 사람이 연기 판에서 오래도록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석과 수현의 손을 잡고 밥차 쪽으로 걸어갔다.
* * *
찜통더위가 매일같이 이어지는 여름.
복실이는 소파 밑에 축 늘어진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기 시우와 신 나게 장난치고 놀던 복실이도 어느덧 두 달 후면 만 아홉 살이었다.
시우의 케어로 인해 신체 나이는 여전히 팔팔했지만, 예전보다 활발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품을 하자 시우가 스케일링까지 깔끔하게 해 준 치석 하나 없는 건강한 이빨이 살짝 드러났다 사라졌다.
입맛을 다신 복실이는 자세를 바꿔 다시 꿈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아부- 아부부-.”
복실이의 눈이 뜨였다.
몬스터가 기어 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던 복실이를 시윤이가 덥석 잡고 끌어안았다.
9개월 아가 시윤이의 품에 안긴 복실이는 정수리로 떨어지는 침 폭탄을 느끼며, 유체이탈이 일어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마침 소파 꼭대기에 우아하게 누워 세수를 하던 네로와 복실이의 눈이 부딪쳤다.
– …….
– …….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갑자기 펄쩍 뛰어 소파 밑으로 달려 내려온 네로가 거실에서 우다다를 시작했다.
왜 저러는 걸까.
갑자기 왜 뛰는 거지?
몇 년을 같이 살았어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친구였다.
“아바바~! 푸푸~!”
시윤이는 토실토실한 볼을 복실이의 등에 비비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시우를 부르려던 복실이는 시우가 오늘 아빠와 함께 야구장에 갔다는 걸 떠올리고, 엄마를 찾았다.
– 끼잉~ 끼잉!
복실이의 낑낑대는 소리에 드라마 [바다아이> 본방을 틀어 놓고 근처에 앉아 빨래를 개던 현주가 몸을 일으켰다.
“시윤아. 복실이가 아까 저녁에도 놀아 줬잖아. 지금은 복실이 코~ 자고 싶대.”
“아부부부! 후응…… 후응…… 으아앙!”
“울지 말고. 엄마가 안아 줄까? 엄마 안아?”
시윤이는 울먹이면서 현주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현주는 시윤이를 안고 일어서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진동을 좋아하는지 앉아서 안아 주는 것도 싫어하고, 가만히 서서 안아 주는 것도 싫어했다.
살살 흔들면서 계속 돌아다녀 줘야 만족을 했다.
자유를 되찾은 복실이는 다시 잘까 했으나, 이미 잠이 깨 버린 상태였다.
복실이는 타타타 발소리를 내며 거실 구석으로 이동한 다음, 현주가 보고 있던 TV로 눈길을 돌렸다.
– 끼잉?
사람보다 시력이 떨어지고, 색깔을 보는 데도 제약이 있긴 했지만 영상을 인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복실이가 반갑게 꼬리를 흔들어 댔다.
TV에서-
시우 형아가 나오고 있었다.
* * *
“진주-! 우와-!”
인간이 발음하기 어려운 인어의 이름을 그대로 직역해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인어 아이, 바다는 은수의 노트북으로 진주의 시세를 알아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노트북 옆에는 자신의 오른팔과 같은 근육 인어, 어부 아저씨가 바다 왕국에서 가져다준 최상품 진주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대박이다~! 큰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겠어! 아, 맞다. 아저씨가 함부로 갖다 팔면 절대 안 되고 진짜 필요할 때만 쓰라고 했는데…… 집은 몰라도 음식은 마음껏 먹을 수 있겠지?”
바다는 고등어의 등푸른 빛을 닮은 유아용 츄리닝을 입고 원룸 안을 배회하다 창밖을 봤다.
하늘이 깜깜했다.
“이 소식을 빨리 알려 줘야 하는데, 얘는 왜 안 와? 나도 휴대폰 있었으면 좋겠다…….”
바다는 테이블을 끌고 와, 창 밑에 놓고 발을 딛고 올라갔다.
조그만 아이 바다는 창문 위로 빼꼼히 귀여운 얼굴을 내밀었다.
어둠이 내린 골목길은 인적도 드물고, 고요했다.
“……걱정되게.”
조용-
고장 난 가로등 하나가 스산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골목길과 벽시계를 번갈아 본 바다는 테이블 밑으로 폴짝 뛰어 내려왔다.
“인어 냄새는 안 나지만, 왠지 오늘은 예감이 안 좋네. 인어의 감은 꽤 정확하지.”
바다는 왕자님답게 고등어 빛 츄리닝의 매무새를 단정하게 정리한 뒤, 신발을 신고 잰걸음으로 원룸을 나섰다.
은수는 불안한 얼굴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내가…… 내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은수가 걸음을 빨리할수록 쫓아오는 걸음도 빨라졌고, 걸음을 늦추면 쫓는 걸음도 느려졌다.
은수는 밝게 빛나고 있는 한 가로등 아래 멈춰 섰다.
‘어떡하지? 화를 내야 하나? 달래서 보내야 하나?’
속으로 갈등을 하던 은수는 지금까지 달랬는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몸을 휙 돌리면서 화를 냈다.
“선배! 왜 쫓아오는 거예요! 저 선배…… 안, 안 만나고 싶다니까요!”
어둠 속에서 체격 좋은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웬만한 드라마에 꼭 나오는 여주인공 쫓아다니는 악역 스토커다운 얼굴로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야~ 은수야. 내가 그동안 좋게 말했잖아. 데이트 한 번만 하자고. 딱 한 번 데이트하고, 그때도 싫으면 내가 안 쫓아다닌다니까?”
“데…… 데이트하기…… 싫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내가 젠틀하게 말했는데 네가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너 알아들을 때까지 더 젠틀하게. 매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앞으로 나랑 다니자. 너 알바 끝날 때마다 내가 가게 앞에서 너 기다려 줄게.”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은수는 뒤로 물러나면서 여차할 시 무기로 쓰기 위해 자신의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았다.
“왜, 그걸로 때리게? 그래~ 때려~ 때려 봐. 때려 봐. 확!”
남자가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자 은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꺅!”
“야, 신은수. 솔직히 너 얼굴 말고 볼 것도 없잖아. 못 이기는 척 데이트 한번 하자. 오빠 집 잘살아요. 내가 외제차 태워 줄게.”
그때, 가로등 뒤에서 키가 아주 작은 일곱 살 아이의 얼굴이 반쯤 스윽 드러났다.
음습한 분위기 속에 낭랑한 아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집 잘살아~ 난 거북이도 태워 줄 수 있어~”
남자와 은수가 동시에 바다를 봤다.
“뭐야, 이건 웬 꼬맹이야? 너 엄마 어디 있어?”
불안에 떨던 은수는 안심한 얼굴로 바다의 뒤로 숨었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신은수. 뭐 하냐? 너 지금 유치원생 뒤에 숨은 거야?”
기세가 등등해진 은수가 일부러 턱을 위로 치켜올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선배, 얘가…… 얘가 그냥 유치원생이 아니거든요? 얘, 얘 형이 싸움을 되게 잘해! 엄청 세!”
“형? 무슨 형?”
의아해하는 남자를 두고 은수가 바다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형 불러와. 형한테 저…… 사람이랑 얘기 좀 해 달라고 말해 줘. 누나 못 쫓아다니게.”
바다는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꼭~ 그렇게 해야 돼? 그냥 내가…….”
은수가 바다에게 귓속말을 했다.
“유치원생이 대학생을 이기는 건 이상하잖아. 빨리 파워모드로 돌려.”
“파워모드~?”
“어른, 어른으로 변하라고.”
“그럼…… 난 절전모드냐…….”
바다는 한숨을 쉬면서 골목 귀퉁이로 총총 돌아 들어갔다.
사라지기 직전, 바다가 은수를 보며 한마디를 남겼다.
“절전모드 해제하러 간다~”
모퉁이를 돌아 바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은수와 선배의 긴장된 표정이 몇 초간 흐르고-
고등어 츄리닝을 입은 키가 180 중후반에 달하는 엄청나게 잘생긴 한 남자가 어린아이가 사라진 모퉁이에서 돌아 나왔다.
“뭐, 뭐, 뭐야?”
등장한 남자는 연기하듯 아무도 없는 모퉁이 쪽을 보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라. 동생아. 형이 해결할게.”
성큼성큼 은수의 옆으로 온 남자, 파워모드 바다가 방긋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