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81)
81. 윤슈슈
갑자기 나타난 어른 바다를 향해 은수의 선배가 목소리를 높였다.
“너 뭔데? 은, 은수랑 무슨 사인데 끼어들고 난리야. 안 비켜?”
“무슨 사이냐고?”
바다는 고개를 옆으로 꺾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같이 사는…….”
퍼억!
은수의 가방이 바다를 덮쳤다.
느닷없이 한 대 맞은 바다는 화가 난 얼굴로 은수를 돌아봤다.
“왜 때려!”
은수는 선배에게 외쳤다.
“같이! 같은 건물에 살아요! 옆집에 사는…… 사이! 옆집 사람! 이상한 오해하지 마세요!”
선배가 은수와 바다를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볼 때, 바다가 말했다.
“왜 거짓말해? 우리 같이 살잖아.”
“……!”
“왜?”
“너…… 너 혹시…… 어종이 붕어냐?”
“무슨 소리야?”
“왜 분위기 파악을 못해-!”
저 입 싼 선배에 의해 내일이면 학교에 퍼질 소문들을 떠올리며 은수는 고함을 질렀다.
예상대로 선배는 진짜 꼴 보기 싫은 표정을 지은 채 은수를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와~ 하하하! 우와…… 이야…… 신은수…… 그렇게 얌전한 척을 하더니. 남자랑 같이 살고 있었어? 대박. 대애바아…… 아아악…… 아퍼! 아퍼! 마이 아퍼…… 놔! 안 놔!?”
바다가 은수를 손가락질하던 선배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바다의 악력에 선배는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빼기 위해 애썼지만, 도저히 손을 뺄 수가 없었다.
“나랑 은수랑 같이 사는데 너한테 피해 준 거 있어?”
“아, 아니…… 이거나 일단 좀 놓고…… 아아악…….”
“그리고~ 사람한테 손가락질하는 거 되게 나쁜 거랬어~ 하지 마. 은수가…….”
바다는 은수에게 들리지 않도록, 선배의 귀에 대고 말했다.
“등짝 때린다…… 쟤가 손이 되게…… 찰져.”
바다의 기이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본 선배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아, 안 그럴게요…….”
“은수 또 쫓아다닐 거야?”
“아뇨…….”
고양이가 쥐의 꼬리를 꽉 잡아 누르고 있는 모양새였다.
잠시 후-
바다의 힘과 기세에 놀란 선배가 부리나케 도망을 치자 골목길에는 은수와 바다만 남게 되었다.
“이제 됐지? 물 밖에서는 에너지 낭비가 심하니까 다시 절전할게~”
CCTV를 피해 어두운 곳으로 간 바다는 다시 절전모드로 돌아왔다.
골목길 담장 그늘에서 걸어 나오는 어린 바다를 본 은수는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은수의 속도 모르고, 바다는 기분이 좋은지 통통 튀는 걸음으로 다가와 해맑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내가 오늘 도와줬으니까~ 집에 가서 생선가스 시켜 주면 안 돼~?”
“……생선가스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웅? 기분이 안 좋아? 왜?”
“됐어! 몰라! 나 내일부터 학교 안 나갈 거야!”
“진짜?”
“안 가! 안 가! 절대 안 가!”
“잘됐다. 그럼 우리 앞으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거야?”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 맞다! 아까 어부 아저씨가 왔다 갔어!”
“바다와 어부…… 인어들은 이름을 참 알기 쉽게 짓는구나. 그래서…… 잠깐, 혹시 정말 진주 가지고 오신 거야?”
“…….”
“바다야? 바다야~ 갑자기 왜…….”
신 나게 진주 얘기를 꺼내려던 바다가 은수를 쫓아오다 말고 골목길 가운데 멈춰 서 있었다.
바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었다.
해맑게 웃던 바다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서울 정도로 싸늘해졌다.
바다의 입이 열렸다.
“물고기 썩은 내가 나네?”
그 말과 함께, 골목길 담장 위로 예닐곱 명의 그림자들이 스르륵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근처 가로등의 불빛들이 일제히 파지직 소리를 내며 꺼졌다.
달빛 아래서 어린 바다의 눈이 빛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드라마가 끝났다.
* * *
일곱 살 아이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연기에 감탄하며 TV 화면 앞으로 빨려 들어가던 시청자들은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자는 자막을 보고 분노했다.
– 뭐야! 다음 화 내놔!
– 인간적으로 일주일 기다리게 할 거면 예고편이라도 내보내 주세요 ㅠㅠㅠㅠ
– 인어냐? 인어지? 요즘 인어들 정장 입고 다니네……
– 절전모드 ㅋㅋㅋㅋ 시우 작아진 담에 곧바로 다시 못 커지지 않음?
– ㅇㅇ 시간 조금 걸려요. 파워모드 한번 돌리면 욕조 들어가서 수분 충전해야 하고 ㅎㅎㅎ
– 이런 생선가스 같은 드라마를 봤나…… 최소한 적들 만났으면 대사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시청자들한테 타르타르 맛이라도 좀 보여 주고 끝을 내야지……
– 절전모드는 개귀엽고 파워모드는 개잘생겼다 은수는 여자가 봐도 매력 있고 솔직히 파워모드 연기가 쪼끔 어색하긴 한데……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지석아 ㅠㅠ
– 일곱 살이 끌고 가는 로코의 탄생. 초반에 안 본다던 사람들 몰래 다 보고 있나 봐 ㅋㅋㅋㅋㅋ 시청률 계속 오르네~
열 살 수아는 드라마가 끝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끝난 거야? 내일 또 해?”
“다음 주에 한대.”
“아…… 바다 더 보고 싶은데!”
딸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던 최민아 9단은 웃으며 물었다.
“바다가 그렇게 귀여워?”
“응. 너~ 무~ 귀여워. 나도 바다처럼 예쁜 동생 갖고 싶어.”
“수아는 언니 있잖아.”
“언니 말고 동생~ 엄마, 바다도 TV 나오니까 연예인이야?”
“연예인이지.”
“그러면 바다도 팬 사인회 같은 거 해?”
“팬 사인회?”
“언니가 저번에 핫식스 팬 사인회 간 것처럼 나도 바다 팬 사인회 가면 안 돼?”
최민아 9단은 둘째 딸의 뺨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져 주면서 말했다.
“바다는 너무 어려서 그런 거 안 할 거야. 우리 수아, 늦었으니까 이제 씻고 자자.”
“후응…… 네에.”
조금 실망한 얼굴로 욕실로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던 최민아 9단은 휴대폰을 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 봤다.
어린아이니까 사인회는 말이 안 되지만, 인기가 워낙 많으니 혹시 팬미팅이나 어딘가 행사 같은 데서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별빛도서관 콘서트에서 핑크포로로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바다 이름이…… 윤시우였나?”
윤시우 팬미팅으로 입력을 하자 검색 결과가 좌르륵 펼쳐졌다.
몇몇 기사들을 뒤져 봤으나 원하는 정보는 얻을 수 없었고, 댓글들을 통해 소속사에 윤시우 팬미팅을 요청하는 팬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없네. 우리 수아 기운 좀 나게 해 주려 했는데.”
휴대폰을 끄려던 최민아 9단의 눈에 갓 엔터테인먼트에서 올린 포스팅 하나가 들어왔다.
[바다아이 돌풍의 주역 윤시우! 연기 신동 시우의 A to Z!>최민아 9단은 나중에 딸에게 알려 줄까 하고 포스트를 찬찬히 읽어 봤다.
1. 생일 언제야? – 5월 4일.
2. 데뷔작은? – 미스터 문라이트.
5. 가족? – 부모님과 작년에 태어난 남동생 하나.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
13. 좋아하는 음식? – 치즈돈가스♡♡♡ 치즈 들어간 음식은 다 좋아요!
15. 좋아하는 영화? – 핑크포로로 극장판
[핑크롱 공룡 왕국 대모험>27. 지금까지 찍은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 전부 다~
35. 유치원에서 제일 친한 친구 이름? – 유지호!
36. 혹시 유치원에서 별명 있어? – 시우시우를 줄여서 슈슈~♡
39. 평소에는 뭐 하고 놀아? – 친구들이랑 점핑파크~ 요즘에는 두 발 자전거 연습해요!
41. 연기 말고 또 뭐 잘해? – 바둑!
42. 바둑 신동이라던데 정말이야? – 서울 유치원생 바둑대회에서 우승했어요!
50. 팬분들께 인사! –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 테니까 [바다아이> 많이 많이 봐 주세요! 초등학교 들어가고 좀 더 크면 언젠가 팬미팅도 꼭 하고 싶어요!
“왠지 절반은 회사에서 써 준 느낌이 드는데…… 하긴 아이 말을 그대로 내보내진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서울 유치원생 바둑대회? 그런 대회가…… 있었나?”
아니, 잠깐.
슈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윤시우…… 슈슈…… 윤슈슈?
혹시-?
최민아 9단은 2년 전 홀연히 한돌바둑에 등장해 현재는 한중일 영재들을 죄다 부수고 다니고 있는 윤슈슈 30급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황당한 생각이었다.
윤시우는 겨우 일곱 살이었고, 윤슈슈의 바둑은 결코 어린아이의 바둑이 아니었다.
냉철하고 노련했다.
아이가 재능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형세를 보는 넓은 시야와 절제된 판단력.
윤슈슈에겐 그것이 있었다.
그런데 윤슈슈의 정체가 만약 일곱 살 아이라면?
“……학습 속도가 인공지능 수준이란 얘기지.”
예전에 9살 나이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인천의 한 천재 소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수준…….
“…….”
그런…… 존재가…… 있긴 하네?
최민아 9단은 몇 년 전부터 어린이 바둑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절친한 후배 프로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서울 유치원생 바둑대회라고 알아?”
[서울 유치원생…… 아, 혹시 서울시장배 어린이 바둑대회 말씀하시는 건가요? 작년부터 열리는 초등학생들 대회인데, 유치부 대회도 조그맣게 같이 열려요.]“거기 우승한 아이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
[네. 영화 [신의 이름으로> 나온 아역 배우 친구가 우승했어요. 이름이 윤시우였나? 저도 그때 애들 데리고 참석했었는데, 혹시 사범님 최택 기억나세요? 그 아이가 최택이 가르치는 아이거든요.]“최택? 응답하라 1987?”
[……아뇨, 예전에 연구생 때 저랑 같이하던 친군데. 사범님께서는 기억 못하실 수도 있죠. 프로 못 되고 일찍 떠난 친구라. 하여튼 갑자기 그 아이는 왜요?]“혹시 그 최택이라는 친구가 몸담고 있는 학원 이름이…… 천재바둑학원이니?”
[어? 어떻게 아셨어요?]“…….”
후배의 대답에 최민아 9단은 등골이 오싹했다.
‘맙소사, 정말 윤슈슈가 일곱 살이라고!?’
그러나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게 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맞다면, 왜 이 정도 천재가 아직까지 바둑계에 알려져 있지 않은 거지? 혹시 아이가 연예인이라 과도한 관심이 쏠릴까 봐 학원에서 비밀로 하고 있는 건가?’
어린 천재들에게 지나친 관심은 분명히 큰 부담이었고,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일단 알아봐야겠어’
* * *
[바다아이>는 반 사전 제작 드라마였다.쪽대본과 쪽잠 없이 계획적인 스케줄 아래 촬영이 진행되었고, 후반부는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유동성 있게 만들어 나갈 예정이었다.
[호텔 레드문>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이상철 감독이 이번에도 현장을 잘 지휘하고 있었다.신의 이름으로 관람 이후 트렌디한 드라마들을 전부 섭렵하고 설정과 상황, 대사 등을 젊은 층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노진희 작가도 이미 최종화 대본을 넘기고 혹시 모를 수정 작업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직 미방영된 드라마 중반부부터는 지석의 연기도 제법 나아졌다.
수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노력을 토대로, [바다아이>는 방영 전의 낮은 기대치를 극복하고 대박이라는 결과물을 향해 천천히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나아가는 중이었다.
주연 배우답게 매주 촬영장에서 열심히 연기를 하던 시우는 휴식일을 맞아 오랜만에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타악.
시우가 바둑돌을 살포시 내려놓자 앞에 앉은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졌습니다. 나 왜 진 거야?”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시우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바둑판 옆으로 슥 지나가던 다른 남자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멍청해서.”
“……야! 죽을래?”
“크크크!”
도망가던 남자아이는 사범님 손에 붙잡혀 폭풍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시우의 앞에 앉은 아이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 다시 시우에게 말했다.
“복기해 줘. 복기.”
시우는 바둑판 위의 돌들을 들어 낸 뒤, 상대가 실수한 부분들을 하나씩 짚어 주었다.
“여기서 버티지 않고 겁먹고 물러난 거~ 여기서 사활 착각한 거~ 여기서 손 빼고 다른 데 둔 거~ 또~”
끝도 없이 나오는 지적에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입을 벌리고 유치원복을 입고 있는 동생 시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그렇구나. 그럼 내가 어떻게 뒀어야 돼?”
시우가 형아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고 있을 때, 교실 문이 열리고 최택 사범이 안으로 들어왔다.
최택 사범이 말했다.
“얘들아, 오늘 다른 바둑 학원이랑 시합하는 날인 거 알지? 슬슬 준비해야 돼. 이번에는 유명한 프로 사범님도 오시니까 많이 배우도록 하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