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86)
86. 오늘은…… 웃는 얼굴 좀 찍었으면 좋겠네
“누나가 티비 보면서…… 바다아이 나올 때마다 쟤랑 저랑 바꾸고 싶다고…….”
“아…….”
시우와 허민국은 아이가 화날 만하다고 인정했다.
허민국이 물었다.
“그래서 서운했어요? 누나 몇 살이에요?”
“4학년이요.”
“혹시 누나 오늘 여기 왔어요?”
“네.”
남자아이는 응원단 쪽을 가리켰다.
시우가 그쪽을 보자 ‘우리바다슈슈’라고 적힌 응원 피켓을 들고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누나가 시우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이따 만약 바다아이 시우랑 씨름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막 반드시 이길 거예요?”
“네! 엄청 세게 이길 거예요!”
“우리 친구는 아홉 살이고, 시우는 일곱 살인데?”
“…….”
“두 살이나 동생인데? 유치원생이야.”
“유치원 다녀요?”
“응.”
“그럼…… 동생이니까…… 살살 안 아프게 이길게요.”
“그래. 하하. 귀여워라.”
아이들 인터뷰를 간단히 마치고, 드디어 열흘간의 특훈 성과를 확인할 시간이 왔다.
시우와 우리아이 팀은 모래판 밑에서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허리에 청샅바를 둘러맸다.
허민국 감독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카메라 두 대가 시합을 앞두고 작전을 짜는 우리아이 팀을 밀착 촬영하고 있었다.
“얘들아, 우리 버스 안에서 정한 출전 순서 있잖아. 그대로 할 거거든? 근데…… 시우야, 감독님이 한 번만 더 물어볼게. 너 정말 지우개 찬스 진구 줄 거야?”
“네!”
시우는 카메라 앞에서 밝게 웃으며 딱 잘라 대답했다.
지우개 찬스란 1회에 한해 패배를 지울 수 있는 찬스였다.
첫 촬영 때 시합 종목을 맞힌 시우가 득템한 찬스였지만, 시우는 진구 형에게 극구 양보를 했고 김정수 PD는 배려심 많은 천사 시우라며 자막을 뽑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휴, 진짜 애가…… 일곱 살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속이 깊어요.”
잠시 후, 씨름판의 악마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채 허민국 감독과 이기준, 신나리 코치는 시우가 너무 착하고 순하다며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었다.
우리아이 팀 허민국 감독과 양화초등학교 감독은 아이들의 출전 순서가 적힌 명단을 서로 교환했다.
“저희는 지우개 찬스 고진구 이 친구가 써요.”
“고진구…… 3학년이네요? 거기다 마지막 선수니까 제일 잘하는…… 에이, 이건 아니죠. 원래 이런 찬스는 퀴즈 맞힌 애가 받는 거 아니었어요? 방송 보니까 그렇던데.”
조작을 의심하는 양화초 감독에게 허민국 감독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원래 윤시우였는데, 그냥 자발적으로 진짜~ 자발적으로 양보한 거예요. 형이 자기 잘 챙겨 줘서 고맙다고.”
미심쩍은 눈길로 쳐다보던 양화초 감독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그냥 잘하는 애 줄걸. 아, 아니구나.”
“네?”
“생각해 보니까 우리도 제일 잘하는 친구한테 줬네요. 우리는 김태석이한테 줬어요. 바다아이 꼭 이기고 싶다고, 아주 의욕이 넘치는…….”
“아아, 태석이요. 태석이가 여섯 번째고 시우가 다섯 번째니까 잘하면 만날 수도 있겠네요. 근데 얘가 제일 잘한다고요? 2학년인데요?”
“태석이가 아주 잘해요. 씨름부는 아닌데, 이 방송 때문에 재능을 발견했어요.”
“그래요? 기대되네요. 우리 시우도…… 보통 아니거든요~ 애들이 연습 진짜 열심히 했어요. 오늘이 연패 끊는 날입니다. 하하하.”
“글쎄요. 쉽지 않을 거라는 말만 드리고 싶네요. 하하하.”
거의 두 달 가까이 지기만 하니 약간 동네북 이미지가 생긴 우리아이 팀이었다.
지난 핸드볼 대결 때만 해도 지고 나서 엄마에게 안겨 펑펑 울던 아이들이 제기차기 대결 때는 울지도 않고 기가 죽어서 그냥 다들 집에 돌아가 버렸다.
그 뒷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던 허민국 감독이었다.
두 감독은 신경전 섞인 악수를 하고 모래판 밑으로 내려갔다.
허민국 감독이 아이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전국의, 전국이란 말 모르나? 우리나라의 모든 시청자분들이 너희를 응원하고 있어. 오늘 반드시 이기자! 감독님이 이따 피자랑 치킨 사 줄게! 힘내!”
이기준 코치가 물었다.
“어? 그럼 애들이 지면…… 안 사 주시는 건가요?”
“아, 아, 아니지! 져도 쏜다!”
“상대팀 아이들은 안 사 주시나요?”
“……사, 사 줘야지.”
“힘들게 일하고 계시는 스태프분들은…….”
“PD님 카메라 잠깐 꺼 주세요.”
* * *
그래도 같은 학교 아이들을 응원하겠다는 양화초 응원단과-
단지 학교만 같을 뿐,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보다는 TV에서 계속 봐 온 친근한 아이들을 응원하겠다는 우리아이 응원단-
두 응원단의 열띤 응원 속에서 카메라 여러 대가 일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합은 양 팀에서 11명의 아이들이 차례대로 나와 이길 때마다 상대를 바꿔 가며 겨루는 연승전 방식이었다.
출전 순서는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1학년이 1-5번 주자, 2학년이 6-8번 주자, 3학년이 마지막 9-11번 주자였다.
우리아이 팀은 처음에 마스코트 겸 서포터로 뽑은 유치원생 아이가 시청자 의견으로 인해 뒤늦게 선수로 합류하게 되면서 유치원생 멤버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핸디캡으로 안고 가고 있었다.
사실 2월생이라 개월 수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우리아이 팀의 첫 번째 선수는 바로 그 2월에 태어난 겨울아이 유치원생 서진이었다.
“갔다 올게에~”
시우와 동료들에게 귀엽게 손을 흔들며 모래판으로 올라간 서진이는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휘청하더니 모래에 엉덩이를 찧고 넘어졌다.
“아~”
우리아이 응원단에서 아쉬움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3판 2선승제라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다.
“서진아~ 힘내애!”
시우는 손을 입에 모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라가기 전에 어른들 몰래 이것저것 조언을 해 줬는데, 운동신경이 부족해서 별반 소용이 없었다.
삐익-
이번에는 쉽게 넘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티던 서진이가 결국 상대의 발에 걸려 옆으로 고꾸라졌다.
촤악!
승리한 양화초 1학년 아이가 모래판을 뛰어다니며 승리 세리머니를 하는 동안 서진이는 조용히 일어나 모래판 밑으로 향했다.
“인사하고 가야지~”
심판이 서진이와 상대 아이를 불러 인사를 시키고 내려 보냈다.
“서진아, 괜찮아?”
시우가 내려오는 서진이를 위로하려 했는데, 서진이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열심히 했는데…… 졌어…….”
신나리 코치가 서진이를 안아 주었다.
“우리 서진이 울지 마.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열심히 하다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어. 근데 열심히 안 하면, 항상 지는 거야. 서진이는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아.”
첫 번째 주자이자 용병으로 온 시우를 제외하면 팀의 막내인 서진이가 눈물을 보이자, 우리아이 팀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3학년인 진구가 아이들을 보며 외쳤다.
“우리 오늘은 꼭 이기자!”
김정수 PD도 서진이의 눈물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본래 이기고 지고 하면서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시작된 연패가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었다.
시청률이 주춤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애들 프로그램 기획할 때 이런 난관은 생각을 못했는데. 내가 무슨 프로야구 감독도 아니고 연패 스트레스를 받고 있네.’
계속 지면 아이들이 슬퍼한다.
처음에는 안타까워 응원하던 시청자들도 마음이 불편해져 채널을 돌린다.
시청률이 떨어진다.
광고비가 줄어든다.
개편 때 칼바람을 맞는다.
애들 시합에 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
물론 이런 복잡한 상황들을 고려치 않더라도, 그냥 매일매일 보는 조카 같은 아이들이 시합에 지고 울면 김정수 PD도 그날은 속이 많이 상했다.
“오늘은…… 웃는 얼굴 좀 찍었으면 좋겠네.”
김정수 PD는 혼잣말을 하며 시합을 계속 진행해 달라는 사인을 심판에게 보냈다.
우리아이 팀의 각오가 한층 강해진 덕인지 이후 시합은 엎치락덮치락하는 형세로 진행이 되었다.
박빙 승부에 응원전은 열기를 더해 갔고, 시우의 바로 앞 차례인 우리아이 팀 1학년 여자아이 은지가 양화초 1학년 남자아이 둘을 밭다리걸기 기술로 모래판에 연달아 넘어뜨리자 응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유럽까지 진출했던 유명 프로 축구 선수의 딸인 은지의 다리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은지는 이기준, 신나리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옆에 있던 시우와도 손을 맞부딪쳤다.
“누나가~ 다 이겨 버릴게! 시우야, 너는 쉬고 있어!”
“응!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한 후, 조용히 몸을 푸는 시우였다.
은지의 운동 신경이 발군이었지만 다음 상대부터는 한 살 많은 2학년들이었다.
게다가 상대 감독이 재능이 있다고 칭찬한 김태석인가 하는 아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가?’
시우는 자신이 시합을 끝내기로 했다.
우선은 연패를 끊는 게 중요했다.
‘적당히 한답시고 상대를 한두 명 남겨 놨다가, 혹시나 역올킬이라도 당하면 애들 또 오열할라. 아, 순서를 고려해서 진구 말고 은지한테 지우개 찬스를 줄 걸 그랬네. 내가 다 이겨 버리면 진구는 나올 기회가 없을 테니까.’
시우의 시선이 모래판으로 향했다.
조그만 아이 둘이 서로의 샅바를 붙잡고 귀엽게 낑낑대고 있었다.
다만 보이는 것과 다르게 두 아이의 표정은 굉장히 진지했다.
은지는 태석을 상대로 연습한 필살기 밭다리를 계속 시도하다, 한순간 되치기에 당해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두 번째 판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좋은 은지였지만 태석의 기술에 꼼짝 못하고 당했다.
“와아아아아~! 바다다! 바다야 힘내!”
다음 선수가 소개되자 이번만큼은 양화초 응원단에서조차 시우를 응원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태석은 입을 삐죽 내밀고 모래판에 서 있었다.
시우는 엄청난 환영을 받으면서 모래판 위로 걸어 올라갔다.
사실 이곳에 모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대부분 시우를 보러 온 것이었다.
“와, 우리 윤시우 군 인기 보세요. 하늘을 뚫습니다.”
“대단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아역계 대배우! 윤시우!”
방송 해설을 맡고 있는 개그맨 두 명이 카메라 앞에 앉아서 시우의 프로필을 읊고 있었다.
시우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어 주고, 팔로 하트도 한번 그려 준 다음 모래판 중앙으로 갔다.
“꺄악! 윤시우! 윤시우!”
“슈슈야 파워모드 온!”
심판의 지시에 따라 모래에 무릎을 대고 앉으면서 시우는 양화초의 남은 아이들을 곁눈질로 흘끗 봤다.
‘2학년 3명, 3학년 3명 남았네. 마나 안 쓰고 6연승이라. 번거롭긴 하겠다.’
시우도 진지하게 각오를 다졌다.
체격 차이가 있으니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태석과 서로의 샅바를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태석이 시우의 어깨에 대고 말했다.
“네가 초등학생만 됐어도 내가 진심으로 했을 텐데. 유치원생이니까 특별히 봐주는 거야. 살살 들어서 내려놓을 테니까, 안 다치게 조심해라~”
“알았어. 형아. 조심할게.”
시우의 순순한 대답에 의외로 착한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태석은 심판의 휘슬 소리를 기다렸다.
삐익-!
카메라 감독이 모래판 바로 앞에서 두 아이의 대결을 찍고 있는 가운데, 휘슬 소리가 울렸다.
태석은 단숨에 시우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얍~!”
그리고 옆으로 휙 돌려 넘어뜨렸다.
아니, 넘어뜨리려 했다.
파팟.
그런데 들려 있던 시우의 발이 정확히 다시 모래판 위를 밟았다.
뭔가……
뭔가 분명히 했는데, 시합 시작 때와 똑같은 자세로 돌아왔다.
“……?”
태석은 재차 시우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더 힘을 실어 시우를 던지듯이 몸을 돌렸다.
시우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모래판으로 떨어졌다.
파팟.
시우의 두 발이 또 모래바닥을 디뎠다.
“지금 김태석 선수가 몸이 가벼운 윤시우 선수를 들어서 던지려고 하고 있는데, 뭔가 어설퍼요! 윤시우 선수를 들었다가 그냥 땅에 내려놓고 있어요! 하하하! 김태석 선수, 귀엽습니다!”
간이 중계석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개그맨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석은 어리둥절했다.
‘……왜, 왜 안 넘어지지?’
한차례 더 시도해 본 태석은 시우가 넘어가지 않자,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시우에게 속삭였다.
“왜 안 넘어져? 아까 안 다치게 넘어지기로 했잖아.”
“넘어지면 지잖아. 형이 조심하래서 조심하고 있어. 안 넘어지게.”
아…… 그 말이 아닌데…….
애가 어려서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보다.
태석은 별수 없이 기술을 쓰기로 했다.
가장 기초적이고 다리 힘 강한 쪽이 유리한 정석 밭다리 기술!
태석이 오른발을 들어 시우의 오른 다리에 밭다리 공격을 거는 순간, 시우의 오른쪽 어깨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모래판 주변을 메우고 있던 어른들과 아이들은 깜짝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