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87)
87. 톱스타 루트
씨름과 유도는 힘이 강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었다.
힘이 강할수록 힘 조절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중심이 흐트러진다.
하물며 씨름을 배운 지 열흘 된 아홉 살 아이 정도야.
시우는 오른쪽 어깨를 빼내면서 몸을 회전시켰다.
태석과 서로 감겨 있던 오른 다리를 들어 올리자, 시우를 넘어뜨리려던 태석의 몸이 오히려 중심을 잃고 빙글 돌아갔다.
파앗!
밭다리 감아돌리기!
태석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태석은 모래판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우와아아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몸이 작은 일곱 살 아이가 순식간에 상대를 넘겨 버리는 광경에 큰 함성이 터졌다.
시우를 응원하러 온 여자아이들은 물론이고, 시우보다는 씨름 승부에 더 관심이 있던 남자아이들까지 한꺼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장난 아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뭔진 모르겠는데 되게 멋있어!”
해설자들도 흥분했다.
“방금 보셨습니까! 무슨 기술인가요!”
“제가 오기 전에 씨름 공부를 하고 왔는데요! 너무 빨라서 못 봤어요…….”
양화초 씨름부 감독은 이번 촬영이 끝나면 씨름부에 입부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는 태석이가 유치원생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그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태석이는 31kg 정도로 체중은 또래 평균에 가까웠지만 기술을 쓰는 센스가 좋은 아이였다.
그런 태석이가 아무리 방심했다곤 하나 자신보다 6-7kg이 덜 나가는 유치원생의 기술에 당해 넘어간 것은 정말이지 황당한 결과였다.
‘뭐, 뭐야! 저 꼬마는! 아냐. 침착하자. 저 기술만 열흘 내내 익혀 왔을 거야. 거기에 태석이가 운 나쁘게 걸려 든…… 거겠지. 아, 아마도.’
우리아이 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렇치이! 시우 잘한다! 역시 연습 때 보여 준 실력이 우연이 아니었어!”
허민국 감독은 만세를 외쳤다.
이기준 코치도 상기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시우가 진짜 똑똑해! 기술 가르치면 스펀지야! 스펀지! 다 흡수해! 양화초 감독님께서 지금 너무 깜짝 놀라셨어! 하하하! 시우야! 더 보여 줘! 오늘 이기고 파티하러 가자!”
시우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우리아이 팀원들과 응원단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보내면서, 두 손으로 당당하게 V를 그렸다.
“와아아아아!”
곧이어 3판 2선승 대결의 두 번째 판이 열렸다.
태석은 방금 전의 패배를 우연이라 치부하며 시우와 다시 마주 섰다.
카메라가 시우와 태석의 표정을 찍고 있는 와중에 태석이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까는 형이 봐준 거야. 이번에는 안 봐줄 거야.”
장난기가 올라온 시우는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귀엽게 조르듯이 말했다.
“왜~ 나는 유치원생이니까…… 형아가 쪼끔은 봐줘야지~”
동생의 애교에 태석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까는 사실~ 많이 봐줬거든? 그러니까 이번에는 쪼끔만 봐줄게.”
“응! 고마워~ 형아!”
“고, 고맙긴 뭘. 어차피 내가 이길 건데.”
시우와 태석은 샅바를 잡고 일어섰다.
삐익-!
휘슬이 울리자 태석이 시우의 어깨에 대고 소곤거렸다.
“형이 속으로 열까지 셀 테니까 그때까지 너 공격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다음에는 봐주는 시간 끝이야. 알았지?”
“응! 알았어.”
말 그대로 봐줄 의도도 있었지만, 시우가 공격하는 것을 보고 아까 자신을 넘긴 기술이 우연인지 확인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시우의 샅바를 감독님에게 배운 대로 꽉 틀어쥔 태석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다.
그리고 숫자를 세면서 시우의 실력을 구경하려는 찰나-
엉덩이를 빼는 태석을 본 시우가 태석의 샅바를 놓고 상대의 몸을 살짝 밑으로 눌렀다.
“……!?”
이제 막 숫자 하나를 세려던 태석의 한쪽 무릎이 모래판에 닿았다.
태석이 멍하니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이, 또 함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
2 대 0으로 시우가 태석을 완전히 이긴 것이다.
“아~ 방금 뭔가요! 시작하자마자 끝났는데요! 윤시우 선수! 대단합니다! 일곱 살이 아홉 살을 이겼어요!”
“김태석 선수가 엉덩이 빼고 무게중심을 뒤에 두면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려는데, 그러다 몸이 너무 앞으로 쏠렸어요! 그때 윤시우 선수가 김태석 선수의 몸을 당기면서 누르니까 그냥 앞으로 고꾸라지네요!”
“와, 일곱 살이 이렇게 씨름을 잘하나요! 프로필을 보면 바둑 신동이라고 적혀 있는데, 아주 영리한 두뇌 플레이를 보여 줍니다! 씨름판의 알파 시우! 윤시우!”
흥분한 해설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정수 PD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질 못했다.
대박이다!
처음 윤시우를 섭외할 때, 설마 일곱 살 아이를 전력 보강 목적으로 섭외했겠는가.
예쁜 얼굴로 귀엽게 샅바 잡고 씨름하는 모습을 젊은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켜 주길 바라고 섭외한 것이었다.
그런데 연습 때 보니 의외로 잘해-
본 시합에서 심지어 이겨-
그것도 두 살 위의 형을!?
[우리아이 예체능>이 포털 사이트 연예 기사 랭킹 상위권을 휩쓰는 미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엄청난 홍보 효과다.
잘하면…… 메이저 예능으로 발돋움할지도?
시우의 활약으로 시청자들이 바라고 있을 시우의 분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었다.
김정수 PD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참고 있을 뿐, 어느 날 자신이 산 주식이 갑자기 쭉쭉 오르는 것을 본 회사원처럼 일어나 소리라도 지르고픈 심정이었다.
“저 지우개 찬스 있어요! 심판 아저씨~ 저 지우개 있어요!”
가장 지기 싫었던 바다아이 시우에게 져서 탈락한 태석은 손을 들고 외쳤다.
지우개 찬스로 태석이 방금 전의 패배를 쓱싹쓱싹 지워 버리자, 2 대 0으로 끝났던 시우와 태석의 씨름 스코어가 1 대 0으로 되돌아갔다.
김정수 PD는 아차 싶었다.
그러나 규칙은 규칙.
극적으로 한 판의 기회를 더 얻게 된 태석은 이를 악물고 모래판 중앙으로 걸어갔다.
시우와 태석은 이번만큼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의 샅바를 잡았다.
씨름판이 조용해졌다.
아이들 씨름 대결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긴장감이 감돌았다.
삐익-!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태석이 첫 번째 대결 때처럼 시우를 들어 올렸다.
그때와 다른 점은 힘껏 들었다는 점과, 전처럼 살짝 던지듯이 얌전히 내려놓는 게 아니라 시우의 발이 땅에 닿기 직전 자신의 발뒤꿈치로 시우의 오른 발목을 걸어 당겼다는 것이었다.
호미걸이였다.
시우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순간, 시우가 왼발을 뒤로 쭉 뻗어 모래판을 찍었다.
파악!
모래판에 시우의 작은 발이 박혔다.
균형을 잡은 시우가 태석에게 걸린 오른발을 들어 빼냈다.
“……!”
태석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시우를 들었다.
그러나 시우가 조그만 몸을 밑으로 딱 숙이고, 무게중심을 낮추자 시우의 몸이 쉽사리 들리지가 않았다.
시작부터 불꽃 튀는 접전에 응원단들과 스태프들은 긴장한 눈빛으로 두 아이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양 팀 감독들이 외쳤다.
“시우야! 잘하고 있어! 들리면 안 돼! 들리면 큰일 나!”
“태석아! 감독님이 어제 가르쳐 준 거! 잡채기! 잡채기!”
잡채기란 상대가 들리지 않으려고 몸의 중심을 밑에 두고 있을 때, 상대의 샅바를 잡아당겨 상대 몸을 자신의 허리에 붙인 다음 왼쪽으로 젖혀 넘어뜨리는 기술이었다.
태석은 씨름 센스를 장착한 아이답게 감독의 말이 들리자 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잡채기라고? 애가 별걸 다 쓰네. 하지만 그렇게 알려 주고 공격하면…… 당하겠어?’
태석이 시우를 붙잡고 잡채기를 시도한 순간, 시우는 몸을 움직여 태석의 중심을 흩트린 다음 전광석화처럼 오른 다리를 뻗었다.
파앗!
“어?”
태석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 * *
[연기 신동 윤시우! 알고 보니 씨름도 신동!?> [우리아이 팀 연패 탈출! 용병 윤시우 대활약!>– 방송 보고 왔는데 얘 진짜 똑똑하더라. 한번 가르쳐 주면 바로 따라 함. 이러니까 대사도 그렇게 외우지. ㄷㄷㄷㄷㄷㄷ
– 예능 찍고 오라고 보내 놨더니…… 히어로물을 찍고 왔다……
– 되치기 장인 ㅋㅋㅋㅋㅋ 자기보다 큰 형들을 되치기로 다 넘김 ㅋㅋㅋㅋ 대박! 진짜 대박! 얼굴은 조그맣고 귀여워 가지고는 씨름판에 혼자 마지막에 서 있는데 포스 ㅎㄷㄷㄷㄷ
– 우리 시우 힘들었을까 봐 걱정이다 ㅠㅠ 중간에 쉬는 시간 있긴 했지만 방송을 혼자 다 하네 ㅠㅠㅠㅠ
– 와 운동 진짜 잘하네. 애가 머리가 좋다. 뭘 배우든 다 금방 배울 듯. 외모에 운동에 머리에…… 형한테 지우개 찬스 양보하는 거 보니까 애가 일곱 살인데 이미 인성도 완성형이야 ㅠㅠ
– [바다아이> 끝나면 또 한동안 시우 못 보는 건가? 뭐라도 고정 하나 했으면 좋겠는데…… 힘들면 안 되니까 욕심 안 부리려고요. 쉬엄쉬엄 시우가 재밌게 일하게 해 주세요~
시우의 매니저 태우는 댓글들을 보며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리 시우는 어디 내놓기만 하면 이렇게 난리가 나네. 타고난 스타라서 어디든 조용히 다녀오는 걸 못해. 하하하.”
자택에서 퇴근 후의 맥주 한 캔을 즐기던 태우는 리모컨을 들고 [우리아이 예체능> VOD를 틀고, 시우가 나오는 장면으로 빠르게 화면을 넘겼다.
시우의 활약상을 한참 감상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아이 예체능의 김정수 PD였다.
“아, 네. PD님.”
[하하하. 매니저님. 진짜 고정 안 될까요? 제발. 제발요. 시우도 재밌어하고.]“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고정은 어렵습니다. 시우 스케줄도 있고, 곧 초등학교 입학하니까 공부도 신경 써야 하고요.”
[그럼 다음번에 딱 한 번 더…… 제발…… 곧 겨울이니까 특집으로 유아 아이스하키 하려고 하거든요. 시우도 되게 재밌어할 거예요.]“죄송해요. 나중에. 내년에나 한 번쯤 회사에 얘기 꺼내 보겠습니다.”
곳곳에서 시우를 섭외하려는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 오고 있었다.
태우는 김정수 PD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하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또 휴대폰이 울었다.
혹시 또 김정수 PD인가 하고 액정을 확인했는데, 회사였다.
“네. 아~ 그 광고 결국 하게 됐나요? 와! 시우 몸값이 진짜 이제는 후덜덜하네요. 시우도 좋다고 했어요. 그 게임 워낙 유명하잖아요. 시우 다니는 태권도 학원 형들도 많이 한다더라고요. 네. 네. 시우 게임 캐릭터 출시요? 귀엽겠네요. 시우 어머님께 여쭤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우는 휴대폰에 시우의 일정을 추가했다.
“지금까지 광고 중에 최고 대우네. 완벽하게 톱스타 루트를 탔어. 이대로 잘만 크면 역대급 스타가 될 거야.”
* * *
뉴욕 맨해튼.
40대 후반의 금발 여성이 자신의 서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장을 고쳐 가며 한참 동안 글을 쓰던 그녀는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옆에 놓인 식어 버린 커피를 들이켰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그녀는 집필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봐야지, 봐야지 예전부터 마음은 먹었지만 손이 잘 가지 않아 시청을 미뤄 두었던 XOXO의 새로운 시즌을 재생시켰다.
초반 시즌은 정말 미친 듯이 재미있었다.
중반부터는 내용이 너무 자극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 어느 순간부터는 피로도가 쌓여 손을 놔 버린 드라마였다.
하지만 내년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소식을 들었기에, 그녀는 이야기의 엔딩을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숙제를 하듯 다시 XOXO를 켰다.
이번 화는 여주인공 엘레나가 엄마의 불륜 사실을 알고, 엄마와 감정싸움을 하는 에피소드였다.
“하아, 피곤해. 이런 복잡한 가정사 피곤하다고.”
가뜩이나 집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데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이런 예민한 이야기를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끌까, 고민하던 찰나-
집안의 막내딸 루시의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루시 나올 때가 제일 평화롭네.”
단역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 루시에게 생일 선물도 건네주고, 함께 생일 축하도 노래도 불러 주는 등 행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루시가 피아노 연주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드레스를 입고 계단에서 내려오는 씬-
루시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한 동양인 남자아이가 계단 밑으로 걸어왔다.
남자아이의 웃는 얼굴을 본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한 빛과 같은 미소-
너무 예쁘고 순한, 그러나 어딘가 개구쟁이 같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느낌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할리와트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떠올린 동양인 아이 캐릭터의 이미지가, TV 속에서 그대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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