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95)
95. 에반 테일러
2년 만에 다시 찾은 LA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화창한 햇살과 건조한 공기가 시우를 반겼다.
“저기 바다아이 아냐?”
“신영민도 있네? 어? 바다다! 윤시우!”
“꺄악! 윤시우랑 신영민이다!”
톰 블래들리 국제선 터미널 앞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한국인 관광객들과 인사를 나눈 시우가 사진을 찍어 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무심코 응하려는 찰나 영민이 나섰다.
“시우는 아직 어리니까 사진은 제가 대신 찍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월드스타 영민의 배려로 시우는 이모와 먼저 차로 향했다.
갓 엔터 직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시우가 뒤에 남겨진 영민과 경호원들을 돌아보자, 함께 걷던 태우가 말했다.
“괜찮아, 시우야. 신경 쓰지 마. 대표님 사진 찍히는 거 엄청 좋아하셔.”
태우의 말대로 영민은 온갖 재밌는 포즈로 포토 타임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시우는 자신을 보호해 주려고 나선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며 차에 올라탔다.
뒤이어 촬영을 마친 영민과 경호원들이 도착했다.
차에 탄 영민은 흥이 오른 얼굴로 자신의 매니저에게 말했다.
“관심을 찾아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바하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빛나는~ 관종처럼 살다 가야지~”
혼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영민이었다.
“아…… 네…… 잘 살고 계십니다.”
“노래가 절로 나오네! LA 오자마자 왠지 느낌이 좋은데? 이렇게 시우가 팬들의 기운을 받고 오디션 들어가면 일이 잘 풀릴 거야. 우리 시우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커리어도 아주 넘사벽이잖아?”
영민의 매니저가 말을 받았다.
시우 실력이야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국 커리어도 똑같이 인정해 준다면 말이죠. XOXO 때는 안 통했잖아요.”
“바다아이는 조금 다르지. 미국에 판권도 팔렸고. 미국 드라마로 리메이크 얘기도 나오는 마당인데. 그거 분명히 섹시한 남자 머메이드가 딱 마이애미 해변 쪽에 있는 고등학교 여학생 앞에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그런 스토리일 거야. 제목은…… 머메이드 다이어리 뭐 이런 거겠지.”
“……네. 그렇군요. 시우야, 피곤하진 않아? 비행기에서 잠 많이 잤어?”
영민의 매니저는 영민이 하는 말들 중, 뼛속 깊이 새겨야 하는 말과 후 불어 날려 보내야 하는 말을 구분할 줄 알았다.
희주와 태우 사이에 앉아 있던 시우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한차례 한 뒤 대답했다.
“후아앙~ 쪼금 잤어요.”
“그래. 잘했어. 좀만 더 버티다 이따 밤 되면 코 자.”
“네. 그런데 이모가 졸고 있어요~”
시우의 말에 영민 매니저와 태우가 희주를 봤다.
시차 적응을 위해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않아 눈이 빨갛던 희주는 어느새 꾸벅꾸벅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태우가 희주의 어깨를 흔들었다.
“작가님~ 우리 같이 저녁까지만 버텨 보자고요.”
화들짝!
놀란 얼굴로 깬 희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차 안이라는 걸 깨닫고 시우를 봤다.
시우는 잠을 제대로 못 잔 아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희주가 손으로 자신의 눈을 꾹 누르며 말했다.
“마흔 되니까 체력이 갑자기 떨어지네. 우리 시우는 괜찮아?”
“응, 난 괜찮아. 이모 힘내~”
“그래. 우리 시우가 사랑해 한 번만 해 주면 이모가 힘이 날 거 같은데?”
시우는 예쁘게 눈웃음을 짓고는 오랜만에 이모에게 애교를 부렸다.
“이모~ 샤앙해~!”
애정 표현과 함께 이모에게 체력 회복 마법도 걸어 주는 시우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데서나, 정말 차 밑바닥에서라도 드러누워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하던 희주는 시우의 애교에 갑자기 몸에 기운이 확 솟는 것을 느끼고 우리 조카의 애교가 정말 굉장하구나 생각하며 시우의 볼을 붙잡고 이마에 뽀뽀를 해 줬다.
며칠 후, 시우는 오디션 현장을 찾았다.
그동안 시차 적응도 하고, 하루는 놀이동산에서 놀면서 긴장도 풀고, 오디션 대본을 가지고 영민과 연습도 한 시우였다.
오디션 현장은 어수선했다.
할리와트 주연 배우 오디션에 지원한 아이들의 숫자만 해도 무려 10만 명이었다.
그중 소설의 주인공 조엘 밀러 역에 지원한 아이가 4만 명이었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앨리스 윌리엄스 역의 지원자도 역시 4만 명.
주연 4인방 중 한 명인 빌 램버트 역은 1만 5천 명.
시우가 지원한 에반 테일러 역에는 5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에반의 경우 동양인 아이만 지원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기에 오디션 참가자 숫자는 가장 적었지만, 소설에서의 비중 자체는 빌보다 훨씬 큰 캐릭터였다.
10만 명의 아이들 가운데 서류 심사와 사진 심사, 영상 심사 등을 통해 고르고 고른 아이들이 오늘 원작 소설 작가와 영화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치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우는 이 중에서도 제작사로부터 직접 오디션 제안을 받고 참가한 유력 후보로 분류되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은 시간대에 오디션장에 도착을 했다.
청명한 하늘에서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축구장보다 넓은 잔디밭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본을 들고 연습에 매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함께 온 아빠와 공놀이를 하며 대기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각양각색이었다.
몇 개의 천막들이 보였다.
시우와 희주, 태우는 스태프를 따라 그중 한 천막으로 들어갔다.
영민은 너무 우르르 몰려가면 시우가 부담스러울 테니 호텔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이름이?”
천막 안에 앉아 있던 스태프가 오디션 참가자 명단을 살피며 물었다.
시우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시우~ 윤~”
“시우…… 시우…… 오케이. 시우.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도록 하세요. 차례가 되면 의상 갈아입고, 건물로 들어가서 오디션 볼 거예요.”
“네!”
시우는 왠지 즐거운 기분이었다.
며칠 전에 놀이동산에 다녀왔는데, 이쪽이 더 신이 났다.
‘사회인이야. 사회인. 일해서 결과를 내는 쪽이 노는 거보다 재밌네. 이번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지~’
시우는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지난달에 더빙한 핑크포로로 극장판 주제가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천막을 나섰다.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호수가 보이는 잔디밭 쪽으로 향하던 시우의 눈에 한데 뭉쳐 있는 일단의 아이들이 보였다.
시우는 8년차 베테랑 연예인의 감으로 무슨 일인지 대충 알아챘다.
‘미국에서 유명한 아역 배우라도 왔나 보네.’
희주도 발견했는지 입을 열었다.
“애들이랑 부모님들까지 되게 많이 모여 있네? 누구지?”
태우가 말했다.
“제가 가서 슬쩍 보고 올까요? 다른 아이들은 누가 오는지 정보가 별로 없으니까.”
이 오디션을 앞두고 미국 아역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한 태우였으나, 누가 오디션에 참가하는지까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태우는 호기심이 일었다.
궁금증이 생긴 것은 태우만이 아니었다.
‘혹시 나랑 같은 에반 역 지원자면 얼굴이나 한번 봐 둘까?’
시우는 가만히 모여 있는 아이들 쪽으로 귀를 기울여봤다.
여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실제로 보니까 정말 너무 예쁘다! 앨리스 역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 널 이길 수 있는 아이는 아마 없을 거야.”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
“루시~ 넌 꼭 붙을 거야! 넌 앨리스 그 자체야!”
들뜬 기분이 여실히 묻어나는 남자아이의 목소리.
“……응?”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루시라는 이름이 흔하긴 해도, 이 정도로 인기 있는 아역 여자아이 루시라면…….
한 명 밖에 없지 않나?
시우가 발걸음을 틀었다.
“왜, 시우야. 시우도 누군지 궁금해? 가 볼까?”
“네~”
태우에게 대답한 시우는 루시 쪽으로 걸어가다 문득 생각했다.
‘잠깐만, 혹시 날 기억 못하면…….’
“헤이~ 루시~” 하고 반갑게 아는 척했다가 “후아유~?” 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이것은 여러 생을 살아온 시우라 할지라도 쥐구멍을 찾고 싶어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우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다가오는 시우를 우연찮게 먼저 발견한 루시가 오른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씨~! 우~!”
단역에 불과했던 시우의 이름까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루시였다.
시우도 손을 흔들었다.
“루~! 씨~!”
루시가 아이들 틈에서 빠져나와 시우에게 달려왔다.
과거 XOXO 촬영장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루시의 엄마도 루시를 쫓아왔다.
루시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과 부모들은 조용하기만 하던 루시가 활짝 웃으며 뛰어가자, 조금 놀란 얼굴로 일제히 새로 나타난 동양인 남자아이 시우를 쳐다봤다.
“네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내 생각에 넌 정말 에반 같으니까!”
“응, 나도 할리와트 읽으면서 앨리스 나올 때마다 너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아…… 으, 으응”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2년 전보다 훨씬 예쁘고 사랑스러워진 금발의 소녀 루시는 뒷짐을 지고 까치발을 디딘 채, 얼굴을 도리도리 흔들었다.
‘약간 낯빛이 창백한데?’
자신을 응원하는 뒤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고는, 입안의 볼을 크게 부풀리는 루시를 본 시우는 루시가 당연히 붙을 거라는 말들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어른스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걱정 말고 편하게 해~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으응! 그, 그럴까?”
“응. 대신.”
“대신?”
“전적으로 너를 믿어야 해.”
시우에게 피아노를 배울 때 들은 추억의 말이 튀어나오자, 루시는 웃음이 빵 터졌다.
긴장이 풀린 루시가 환하게 웃자 오디션에 온 아이들과 부모들은 마법이라도 펼쳐진 것처럼 온 주변이 다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싸울 준비가 된 루시가 말했다.
“알았어~ 열심히 해서 꼭 앨리스 될게! 너도 에반 꼭 해! 알았지?”
“응! 그러려고 온 거야~”
[할리와트 시리즈>의 작가 제니퍼 호킨스와 이번 영화 [할리와트와 드래곤의 알>의 연출을 맡은 감독 마이크 그레이는 오디션에 참가한 아이들의 명단을 앞에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정말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을 봤는데…… 배우 오디션이 아니라 팬 미팅을 하는 기분이 들어요.”
제니퍼가 말했다.
어차피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이기에 전업 배우의 퀄리티를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들 자신이 얼마나 할리와트를 좋아하는지 이 캐릭터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얘기만 늘어놓곤 했다.
그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지만 제니퍼와 마이크가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품에 애정이 넘치는 것은 장점이 되지 못했다.
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까.
그중 제법 연기를 할 줄 아는 몇몇 아이들의 경우에도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조엘과 빌을 결정하기가 꽤 어렵겠네요. 우선 앨리스 역에는 우리의 희망 루시 라일리가 뒤에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 정도 안심하고 오디션을 진행할 수 있는데, 조엘과 빌은…… 에반은 어때요?”
마이크의 질문에 제니퍼는 지금까지 봐 온 동양 남자아이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 봤다.
역시 ‘그 아이’를 넘어서는 느낌을 주는 아이는 없었다.
XOXO에서 짧게 얼굴을 비쳤을 뿐이지만, 자신에게 바다아이 영어 자막판을 정주행하게 만든 그 당돌한 연기력을 가진 꼬마.
오디션은 계속 진행되었다.
“크와아아악!”
녹색 쫄쫄이를 입은 남자가 오디션을 보러 온 아이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푸훗.”
아이는 대사를 치지 못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크와악~?”
“푸화학! 푸우…… 푸우읍…….”
웃음을 참고 대사를 뱉기 위한 아이의 노력이 가상했으나, 원래 알다시피 터진 웃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 법이었다.
“끄윽…… 끄윽…….”
감독 마이크가 미소 띤 얼굴로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웃어도 돼.”
“푸하하!”
어린 남자아이는 얼굴이 빨개진 채 배를 잡고 웃었다.
“아저씨 옷이 좀 웃기지? 촬영할 때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자, 집에 조심해서 가렴.”
스태프들이 웃고 있는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음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몇몇 아이들의 차례가 지나간 뒤-
드디어 시우가 나올 차례가 됐다.
제니퍼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마이크에게 말했다.
“내 마음속 에반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직접 봐야 알죠. 영상은 좋은데 막상 보면 영상이랑 전혀 다른 애들이 너무 많아서.”
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시우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