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96)
96. 할리와트 오디션
시우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먼저 들어간 아이들이 하나둘 다시 나왔는데, 웃는 아이도 있었고 우는 아이도 있었고 멍한 아이도 있었고 반응들이 다양했다.
‘귀엽네.’
“시우 윤!”
스태프가 아이들을 감상하고 있던 시우를 불렀다.
의자에서 내려온 시우는 스태프를 따라 오디션장 앞으로 갔다.
“준비됐니? 들어갈까?”
시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먼저 얼굴을 살짝 내밀자 안쪽에 앉아 있는 여러 외국 사람들이 보였다.
‘와우, 이 진지한 분위기. 좋은데?’
영화 신의 이름으로 오디션을 볼 때가 네 살이었다.
그때는 그냥 자신이 대사를 외워서 친다는 것만으로도 관계자들이 다들 박수를 치며 놀라 뒤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덟 살.
나이가 두 배가 된 것만큼 평가의 잣대도 다를 게 틀림없었다.
시우는 자신의 얼굴을 말없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관계자들을 향해 배시시 웃고는 문을 마저 열었다.
심사위원들이 연기를 시작하라고 말했을 때, 그때 연기를 시작하면 안 된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문이 열리고 에반이 걸어 들어오는 거 같았어요.’ 이 말이 나오게끔 만들어야 했다.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스러운 외모나 뛰어난 연기력보다도 원작 캐릭터와의 매치였다.
그러니까 연기는…….
시우가 문을 여는 순간, 이미 시작된 것이다.
제니퍼는 문틈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민 시우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엄마 미소를 지었다.
[조엘은 긴장된 얼굴로 할리와트 마법학교의 식당을 둘러보았다.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조각상들이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조엘을 사로잡았다. 조엘이 무심코 밖으로 나가는 식당 문을 쳐다봤을 때, 끼이익 소리를 내며 커다란 문이 열리더니 문틈 사이로 한 남자아이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조엘과 눈이 마주친 아이는 배시시 웃고는…….
할리와트 마법학교의 교복을 입은 조그만 아이 시우는 쪼르르 뛰어와 심사위원들의 앞에 섰다.
제니퍼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
“우리가 에반을 찾았군요.”
옆자리에 앉은 감독 마이크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제니퍼는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시우입니다. 에반 테일러 역할이 하고 싶어요.”
마이크는 시우의 영어 발음을 듣고 테이블 밑에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무릎을 피아노 치듯 신나게 두드렸다.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없는 아이인데, 엄마 배 속에서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지 발음이 무척 좋았다.
XOXO 때보다도 더 유창했다.
‘하긴, 그때는 지금보다 어렸으니까.’
“호오~ 그래. 멀리서 왔구나. 할리우드에 온 걸 환영한다. 시우. 감독님이 몇 가지 물어도 될까?”
“네~ 물어보세요.”
“할리와트에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시우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뭐지, 이건? 너무 뻔한 질문인데.’
“에반!”
시우가 대답하자 감독이 다시 물었다.
“왜~?”
느낌이 좋은 몇몇 아이들에게는 맡고 싶어 하는 캐릭터에 대한 생각과 만약 합격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연기를 하고 싶은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곤 하는 마이크였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나오는 대답들은 사실 꽤 단순했다.
조엘을 왜 좋아해?
– 주인공이니까.
앨리스를 왜 좋아해?
– 상냥하니까.
에반을 왜 좋아해?
– 재밌으니까.
빌을 왜 좋아해?
– 멋있으니까.
에반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그 외에도 ‘분위기 메이커니까’,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같은 비슷한 유형의 대답들이 나오곤 했다.
그래서 마이크와 제니퍼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은 시우의 대답 내용보다는 ‘재밌으니까.’라는 이유를 아이가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를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시우의 대답은 달랐다.
잠시 얼굴을 숙이고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던 시우는 눈웃음으로 옅은 장난기를 표현한 채, 더빙 작업을 하면서 배운 영혼이 실린 목소리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에반을 왜 좋아하냐면…… 제가 에반이니까요~”
심사위원들은 멍하니 시우를 보다 파핫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미 에반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당찬 아이였다.
말을 꺼내고 방긋 웃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귀여운 꼬마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마이크는 흡족한 얼굴로 시우에게 말했다.
“네가 이곳에 와 줘서 정말 좋구나. 시우. 자, 이제 연기를 해 볼까? 이미 절반은 에반으로 변해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네~ 어떤 거부터 해요?”
“둘 중에 원하는 것부터 하렴.”
오디션 연기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 제작사에서 정해 준 장면을 연습해 오는 지정 연기.
두 번째, 소설에 나오는 장면 중 자유롭게 골라서 연습해 오는 선택 연기.
시우는 선택 연기를 먼저 하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 선 시우가 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응?”
“레디, 액션 해 주세요.”
“하하하.”
현장 생활을 하다 보니 레디 액션을 들어야 몰입이 잘됐다.
시우가 한국에서 커리어가 상당한 아역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는 마이크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연기를 위해 감독에게 요구까지 하는 당돌한 어린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확실한 프로 연기자라는 생각을 했다.
“오케이~ 레디, 액션!”
감독의 사인을 받은 시우는 준비해 온 연기를 시작했다.
에반과 조엘이 처음 만나 친구가 되는 씬이었다.
할리와트 마법학교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반의 모습을 오디션장에 들어올 때 짧게 보여 준 것도 이 연기를 위한 포석이었다.
시우는 바닥에 끌리고 있는 약간 치렁치렁한 할리와트 교복 가운을 잡고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쪼르르 심사위원들 쪽으로 뛰어가는가 싶더니, 걸음을 멈추고 한곳을 응시했다.
주인공 조엘 역을 맡아 주기로 한 스태프가 있는 방향이었다.
시우는 그 스태프의 발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좋겠다~ 나도 딱 맞는 교복 입고 싶은데.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있는 거야? 배 안 고파?”
스태프가 말했다.
“입맛이 별로 없어서…….”
시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난 입학식 하는 동안 계~ 속~ 밥 먹는 시간만 기다렸거든.”
“나도 배는 고파.”
스태프의 시선이 시우의 등 뒤로 움직였다.
시우는 스태프의 시선을 따라 몸을 뒤로 돌렸다.
시우의 입이 열렸다.
“우와, 저 조각상 되게 멋있다! 드래곤인가? 와이번? 우웅, 가까이서 보니까 얼굴은 도마뱀 같기도 하고…….”
움찔.
말을 잇던 시우가 몸을 휙 돌려 스태프를 봤다.
시우는 약간 놀란 듯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방금…… 조각상이 나 노려본 거 같았어.”
스태프가 말했다.
“응. 나도 아까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조금 무서워서 입맛이 없어진 거야.”
시우는 스태프를 가만히 보다 장난스레 웃었다.
“이유를 알았어~ 조각상 눈 때문이야. 눈이 너무 무섭게 생겨서 그래.”
주위를 두리번거린 시우는 교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잘 봐. 내가 입학하기 전에 엄마랑 마법 상점에서 산 [오징어의 눈물>이야. 누르면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먹물이 계속 나와. 아깝지만 조금 써 볼까?”
“뭐 하려고?”
“무서운 눈에 귀여운 눈동자를 만들어 줄 거야~ 교수님 오시나 잘 봐!”
“걸, 걸리면 혼날 텐데?”
“왜? 칭찬해 주실 수도 있잖아?”
예를 들면 ‘에반,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혹은 ‘무서운 조각상이 네 덕분에 예뻐졌구나, 에반!’ 이렇게 칭찬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해맑게 웃는 에반을 연기하고 있는 시우였다.
마법학교 아이들이 식사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 소란스럽게 짧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동안, 에반은 의자 하나를 가져와 밟고 올라간 뒤 낑낑대며 드래곤의 눈에 오징어 먹물로 눈동자를 그리고 코에 웃긴 수염도 그린다.
처음엔 말리던 조엘도 똑같은 어린아이답게 어느샌가 빠져들어 에반과 같이 키득대고 웃는다.
웃는 조엘을 본 에반이 드래곤을 무찌르고 돌아온 영웅처럼 의자 밑으로 내려온 뒤, 조엘에게 오징어의 눈물 아이템을 건네준다.
시우의 연기가 이어졌다.
“봐, 이제 안 무섭지?”
“진짜 그러네?”
“이거 빌려줄게! 너도 해 봐~”
의자에 올라간 조엘은 소설 속에서 드래곤의 콧구멍을 까맣게 칠할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결국 마지막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에반을 돌아본다.
그리고 에반 뒤에 유령처럼 서 있는 교수님을 발견하고 오싹 소름이 돋은 얼굴로 얼어붙는다.
실제로 조각상에 낙서를 한 것은 에반이었지만, 오징어의 눈물 아이템을 들고 의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조엘이었기에 교수님은 조엘에게 벌점을 주게 되고, 에반은 무서운 분위기 속에 갈등하다 눈을 질끈 감고 교수님 앞으로 나선다.
시우가 씬의 마지막을 연기했다.
“교수님. 사실은…… 제가 그랬어요~!”
불안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억지로 밝게 웃는 시우였다.
감독 마이크는 시우의 연기가 끝나자 기분 좋게 컷 사인을 외쳤다.
오디션이 아니라 진짜 촬영 현장을 본 기분이었다.
“와우! 대단한데?”
“소설 속에 들어온 것 같았어!”
“완벽한 에반이야!”
이곳저곳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마이크가 시우를 불렀다.
“두 번째 연기도 바로 할 수 있겠니? CG…… 가만, 혹시 한국에서 CG 촬영해 봤니?”
“네!”
신의 이름으로 때도 해 봤고, 바다아이 때도 해 봤다.
마이크는 에반이 되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며, 녹색 쫄쫄이를 입고 있는 배우를 불렀다.
“CG 촬영을 하듯이 해 볼 거야. 네가 길들여야 할 몬스터란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연기를 해 보도록 하자.”
“네.”
얼굴만 내놓은 쫄쫄이 배우가 시우의 앞에 와서 섰다.
“안녕, 시우. 연기 잘 하더라.”
“감사합니다~”
“준비되면 감독님께 사인을 보내렴. 그럼 이 아저씨가 뛰쳐나올 거야.”
녹색 쫄쫄이를 입은 배우는 시우에게 윙크를 보낸 후, 오디션장 구석으로 가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시우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감독을 쳐다봤다.
감독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작가 제니퍼와 눈을 맞추고, 시우를 향해 외쳤다.
“레디~ 액션!”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시우는 몸을 낮추고 팔을 움츠렸다.
시우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녹색 쫄쫄이 배우가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작고 귀여운 아이로 해 주세요. 제발요~ 작고 귀엽고…….”
시우가 말을 이을 때,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크와아아아악-!”
다른 아이들과 연기를 할 때는 이 정도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데, 시우의 연기를 본 터라 아이가 아닌 배우를 대하듯 진심으로 몬스터 연기를 펼치는 쫄쫄이 배우였다.
“으아악! 아아아아…….”
뒷걸음질 치며 소리를 빼액 지르던 시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더듬더듬 대사를 쳤다.
“……아, 아, 아까 앨리스한테 나온 괴물보다는 안 무섭게 생겼어!”
“크왁-! 크왁-! 크와아악-!”
쫄쫄이 배우는 바닥에 쪼그린 채로 항변하듯 더욱 무섭게 소리를 질러 댔다.
“멍, 멍멍이같이 생긴 게! 아, 아, 안 무섭거든!?”
시우는 떨리는 손을 앞으로 슬금슬금 내뻗었다.
시우의 작은 손바닥이 찰지게 쫄쫄이 배우의 민머리 위로 찰싹 떨어져 내렸다.
“……?”
대본과는 다른 시우의 애드립에 쫄쫄이 배우와 심사위원들은 무슨 상황인가 하고 의아한 얼굴로 모두 시우를 바라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