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0
기도하는 용병 (1)
매서운 겨울바람이 파고드는 숲속에서 용병처럼 보이는 세 명의 남자가 모닥불을 지피며 앉아 있었다.
우물우물-
솥에 코를 박은 채 스프를 들이마시는 소년을 쳐다보면서.
“운이 좋았어. 저 멀리서 토끼 한 마리가 빌빌대며 서 있더라고.”
“좋아. 잘했어.”
사내들이 이미 먹어 얼마 남지 않은 토끼 스프였으나 소년은 그것마저 감지덕지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 마시고 있었다.
지금은 소년에게 말을 걸 시기가 아님을 파악한 용병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사람들을 모은다던데.”
“몬스터 토벌에?”
“이번에는 바예지드 백작의 아들이 직접 나서는 모양이더라고. 둘째라던가.”
“바르나의 주교도 함께한다던데. 규모가 클 것 같아.”
“제 아비의 눈에 들려고 발악을 하는군.”
용병답게 입으로는 몬스터 토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내들의 정신은 온통 금발 머리의 소년에게 쏠려있었다.
‘비싼 놈 같지?’
‘들고 있는 검을 봐. 적어도 사는 집 집안 놈이야.’
‘금발에 푸른 눈이니 그냥 팔아도 돈깨나 받을걸?’
떨어져 있는 소년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눈빛과 속삭임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사내들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묘히 소년이 빠져나갈 퇴로를 틀어막으면서.
“하······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하기는 돕고 살아야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솥을 내려놓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소년을 보며 용병들은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정 고마우면 갚는 방법이 있지.”
“제가 어떻게 하면······.”
“네 몸으로 갚으면 되지!”
소년의 뒤에서 밧줄로 만든 올가미가 날아들어 왔다.
“어? 어어?”
“야 임마! 뭐해!”
그러나 올가미 안에는 정작 잡아채야 할 소년 대신 애꿎은 용병이 낚였을 뿐이었다.
“쥐새끼같이 재빠르기는!”
올가미를 피해낸 소년을 향해 남은 두 명의 용병이 재빨리 무기를 빼 들었다.
“우리 도련님이 아비가 붙여준 사범한테 검술 한 자락 배운 모양인데 세상은 실전이거든?”
“좋은 말 할 때 검 내려놔라. 한 대 쥐어팰 거 열대로 만들기 전에.”
올가미에 묶인 용병이 재빨리 밧줄을 푸는 동안 두 명의 용병이 소년을 가로막고는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맞아. 인생은 실전이지.”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번쩍이지만, 사용감은 없어 보이는 검 한 자루.
누가 보아도 부유한 집에서 가출한 자제의 모습이었건만 지금 소년의 얼굴에 맺힌 미소는 사나운 늑대의 그것이었다.
“뭐?”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생각했어. 정말 이 사람들이 나에게 진심으로 친절을 베푼다면 어떻게 갚아야 하지?”
스르르릉-
용병들이 거칠게 위협하고 있었음에도 소년의 기세는 전혀 죽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검을 빼 드는 소년의 모습에 용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검과 함께 하는 소년에게는 사나운 기세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여태껏 괜한 고민을 했지 뭐야.”
소년은 웃고 있었다.
“이런 니미.”
동류다.
저놈은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 따위가 아니다.
“임마 뭐해! 빨리 일어나!”
“밧줄 하루 종일 푸냐!”
그렇다 할지라도 괜찮다.
저 어린놈은 하나고 자신들은 셋이었으니까.
검술에 자신이 있어 보이지만 실전을 겪은 자신들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으······으으으!”
그럴 것으로 생각했으나 뒤에서 흘러나오는 동료의 신음이 심상치 않았다.
“뭐해!”
“으으! 으!”
올가미에 묶여 있던 동료가 묘하게 굳어버린 모습으로 땅바닥을 긁고 있었다.
정상적인 몸놀림이 아니었다.
‘당했다!’
무언가에 중독된 듯 굳어가는 동료를 보며 두 명의 용병은 심한 낭패감을 느꼈다.
‘도대체 언제!’
누가 한 지는 알 수 있었다.
굳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보며 소년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언제 독을 넣었는지는······.
‘토끼!’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용병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참 쉬운 일이 없어. 그치?”
“이 개자식이 처음부터!”
의외의 행운이라 생각했던 비틀거리던 토끼가 사실은 덫이었다니.
“너도, 너도······!”
용병들은 서서히 굳어가는 자신들의 몸을 느끼며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 나도 먹었지.”
블라드는 혀 밑에 숨겨두었던 나뭇잎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해독제랑 같이.”
“으! 으으으!”
서서히 굳어가는 육체들이 차디찬 눈바닥 위로 쓰러졌다.
“언제 누가 먹힐지 모르는 게 바로 실전이지. 안 그래 선배님들?”
굳어가는 세 마리 토끼들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가 지닌 푸른 눈빛이 그들이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
타닥- 타닥-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 숲속에서 용병처럼 보이는 금발 소년이 홀로 앉아 있었다.
몸에 꼭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차려입은 갑옷과 안에 챙겨 입은 옷들로 보아 겨울날 동사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차림새였다.
“이게 진짜 되네.”
블라드는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뒤적이며 혼잣말을 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운이 좋았다. 노란 줄무늬 버섯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었거든.]“사람을 마비시키는 버섯이랑 그걸 해독하는 나뭇잎도 알고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모른다 그건.]소년은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검을 쥐어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향해 말을 거는 것이었다.
“잡다한 건 알고 있으면서 정작 본인이 누군지를 모르다니.”
[······.]소년의 투덜거림에 목소리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뭐 상관없어요.”
스르르릉-
소년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나한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니까.”
그동안은 그저 지켜만 봐왔던 검이었지만 지금은 소년의 손안에 들려있었다.
이것을 가지기 위해 흘려주었던 눈물을 소년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도와줄게요, 도와주세요.”
[내가 무섭지 않나?]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목소리를 향해 소년은 검을 알려달라 말했었다.
“당신이 악마라 해도 상관없어요.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소년의 검으로 푸른 달빛이 내려앉았다.
영롱하게 비치는 그 빛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제일 두려우니까.”
푸른 달빛처럼 보이는 오러.
그 오러 앞에서 소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생을 진창 속에 있어도 빛나는 것을 좇아 온 소년에게 있어 푸른 오러가 가져오는 무력감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처럼 웅크려서 평생 시궁창에서 썩어갈 인생일 뿐이야.
푸른 달빛을 담은 오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과 함께하면 뭐라도 되겠죠. 하다못해 악마추종자라도.”
[······그래. 알려주마.]그렇기에 소년은 발버둥 치기로 했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무게가 손에 들려있었으니까.
달빛과 모닥불.
최초로 오러를 보았던 그 날과 같은 밤에 무엇이라도 되고 싶은 소년과 자신을 모르는 목소리는 서로를 돕기로 했다.
오직 그 둘만이 내걸 수 있는 계약이었고.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그것의 증인이었다.
※※※※
이제는 한겨울로 입성하는 시기.
빽빽한 침엽수림을 앞에 두고 눈이 내려앉은 하얀 들판 사이로 천막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중 가장 크고 화려한 천막 안.
“무난하군.”
검은 머리의 남자가 이미 식어버린 찻잔을 들어 올리며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젊어 보였으나 눈 밑은 검게 변해있어 남자의 인상을 병약해 보이게 만들었다.
“너무 무난해.”
검은 머리의 사내는 무엇이 맘에 들지 않는지 서류를 들춰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도련님.”
그 순간, 천막을 열어젖히며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애꾸눈의 사내가 들어왔다.
“왔는가 자야르?”
“네. 요제프님 지금 복귀했습니다.”
자야르라 불린 남자는 어깨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대며 병약해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왔다.
“무슨 고민이라도······.”
평생을 모셔왔던 요제프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자 자야르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너무 무난해서 말이야.”
요제프는 눈앞에 서류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들어 갔다.
“몬스터 토벌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상자도 그리 없고 그것 또한 전부 용병들에게서 발생한 것입니다.”
“실종자들이 있지 않나.”
요제프는 식어버린 찻잔을 들이켜며 말했다.
“탈영병이라 봐도 무관하겠지만 말이야.”
요제프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몬스터 토벌 중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오는 것이 더 나았다.
탈영병이 생겼다는 것은 규율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특별할 것 없는 결과에 탈영병들까지. 내 지휘 능력에 다들 의구심을 품겠군. 아버지도 그럴 것이고.”
순간 요제프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안광이 깃들었다.
“나의 배다른 형님 또한 말이지.”
요제프.
요제프 바예지드.
바예지드 백작 가문의 둘째 아들인 그는 지금 초조해하고 있었다.
“형님의 방해를 피해 겨우 일으킨 병력들이야. 지금이 아니라면 나의 군사적 능력을 가신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을 거야.”
요제프는 야망이 있는 사내였다.
그는 바예지드 가문의 적통으로서 같은 피를 물려받은 루트거를 밀어내고 다음 대의 바예지드 백작이 되고자 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가면 파멸이야.”
“······.”
다음 대 바예지드 백작이 되겠다는 것은 단순히 야망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법.
만약 자신이 바예지드 백작이 되지 못한다면 배다른 형인 루트거가 어찌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잘하면 평생 수도원에서 사는 거고,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죽고 말겠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당장 자신의 아버지부터 피를 섞은 형제들을 짓밟으며 올라온 자였으니까.
“쓸만한 검이 부족해. 자야르 자네를 제외하고는 말이야.”
요제프가 다음 대 바예지드 백작이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가신들의 지지 또한 필요했다.
그러나 태생을 병약하게 태어난 요제프로서는 아무리 어머니와 외가의 도움이 있다 할지라도 가신들의 지지를 얻어내기는 힘들었다.
바예지드 가문은 무(武)를 숭상하는 가문이었기에.
“······도련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는 요제프를 향해 자야르가 잠시 주저하며 말을 건넸다.
“수상한 용병이 있습니다.”
“수상한 용병?”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들려오자 요제프의 눈이 가느다랗게 떠졌다.
“형님이 보낸 첩자인가?”
“그런 의미로 수상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의미인가?”
자야르는 기사였다.
그것도 굳건한 기사.
그러나 지금 요제프 앞에서 말을 주저하는 자야르의 모습은 평소에 보아왔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봐라. 자야르.”
생각보다 심각한 일임을 눈치챈 요제프가 대답을 재촉했다.
“직접 보셔야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잠시 따라오시겠습니까?”
“뭔가 일이 나긴 났나 보군.”
자신의 기사가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자 요제프는 지금 자야르가 말하려는 일이 심상치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안내해라.”
요제프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혹시라도 몸이 상할까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거기에 목도리와 장갑까지 둘둘 둘렀다.
“이곳입니다.”
병약한 도련님이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지 않게 하도록 자야르는 기사의 체면 따위는 내던진 채 최대한 잰걸음으로 그를 안내했다.
더러운 천막이었다.
“여기는 도축장 아닌가?”
“그렇습니다. 토벌한 몬스터들의 중요 부위를 발골하는 곳입니다.”
요제프는 재빨리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달려 있는 사체들과 풍겨오는 피 냄새가 역겨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요제프의 정신은 그 어떤 기사보다 강인하였으나 그의 육체는 천막 안에 떠돌고 있는 오염된 공기조차 조심해야 할 정도로 연약했기 때문이다.
“여기로.”
자야르는 그런 요제프를 도축장의 좀 더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도축장 가장 깊은 곳에는 잡다한 종류의 몬스터 사체가 매달려 있었다.
어림잡아 여섯 구는 되는 사체들이었다.
“보십시오.”
자야르는 직접 매달려 있는 사체들을 돌려 요제프에게 보여주었다.
“상처를 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매달린 지 오래되었는지 단단히 굳어버린 고블린의 등짝에는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삐뚤삐뚤하군.”
요제프는 별 감흥 없는 말투로 감상을 내뱉었다.
방금 보여준 검흔은 이제 갓 검을 잡았을 법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였기에.
요제프의 말이 끝나자 자야르는 그 옆에 매달려 있는 몬스터의 사체를 가리켰다.
상처들.
등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 새겨진 검흔들이 사체에 가득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래된 사체에서 지금 막 들어온 오크의 사체까지.
모든 사체들을 살펴본 요제프는 자신도 모르게 손수건을 입에서 떼었다.
“설마 모두 한 사람이 만든 것인가?”
“그렇습니다. 도련님.”
자야르의 대답을 듣자마자 요제프는 다시 최초의 사체가 있던 곳으로 움직였다.
언제나 천천히 걷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뛰어간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말도 안 돼······.”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 사체가 얼마나 되었지?”
“한 달이 좀 넘었습니다.”
“겨우 한 달······.”
자야르의 대답에 요제프는 경악하며 다시 한번 몬스터들의 사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검흔.
삐뚤삐뚤하고 허접한 상처들.
그러나 새로운 몬스터들의 사체에 다가갈수록 누군가가 만들었다던 상처는 또렷하고 깊어지며 또한.
“누군가?”
굳건한 하나의 선을 이루고 있었다.
“리만이라는 자입니다. 금발의 젊은이인데.”
“리만?”
자야르는 요제프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용병들은 그를 ‘기도하는 리만’이라 부르더군요.”
“기도하는 리만이라······.”
요제프는 가만히 자야르가 말하는 칭호를 되새겼다.
“지금 당장 리만이라는 자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봐라.”
“네 도련님.”
요제프의 명을 받은 자야르가 도축장을 벗어났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홀로 남은 요제프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몬스터들의 사체를 살펴보았다.
검을 다루지는 못했지만 볼 수는 있었다.
요제프는 무를 숭상하는 바예지드 가문의 적통이었으며 그의 주위에는 뛰어난 기사들이 즐비했으니까.
그렇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천재로군.”
기본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삐뚤삐뚤한 일격에서.
방금 새겨진 검로로 한 달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이 내려준 인재만이 가능한 것임을.
어제 들어왔다던 오크의 사체는 아직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이 부릅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