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00
두더지는 함부로 건들지 마라 (2)
세계를 통해 본 푸른색의 참나무는 울고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부당한 폭력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아프다 외치며 몸부림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
블라드는 크게 벌어진 나무의 상처 속에서 반짝이는 구슬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지금 검 손잡이에 달아 놓은 노란색 호박석과도 유사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블라드는 그 반짝임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옳은 곳에 찾아왔다는 것을.
“네가 뭘 하려고 했던 건지는 알 것 같은데 말이야.”
트롤은 도끼를 들었고 나무는 울고 있었다.
아이들의 숨결은 종탑 위에 매달려 있었고 부모들은 울고 있었다.
아무리 빛나는 것을 들고 있다 할지라도 지킬 힘이 없다면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는 그런 빼앗긴 눈물들을 깔고 앉은 자들이 가득하다.
“나도 이 나무한테 볼일이 있거든.”
블라드는 눈물을 흘리는 나무를 대신해 검을 치켜들었다.
자신을 지킬 방도가 없는 존재를 대신해 검을 들어주는 것.
“그러니까 건들지 마라.”
소드마스터의 규율은 그것을 기사라 말한다.
※※※※
콰앙-!
블라드는 터져나가는 지면을 뒤로 한 채 재빨리 트롤의 다리 사이를 굴러 지나갔다.
위험을 무릅쓴 전진, 그로 인해 얻은 찰나의 순간.
비록 자세는 엉망이었으나 블라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흡!”
반짝이는 검빛과 함께 터져나가는 핏물.
그아아아아!
날카롭게 베인 오금 사이로 덜렁이는 트롤의 근육이 보였다.
“됐······.”
쓰러질 듯 휘청이는 트롤을 보며 서둘러 후속타를 날리려던 블라드였으나 순간 서늘하게 다가오는 감각에 재빨리 검을 치켜들었다.
까앙-!
“크윽!”
평범한 공격이 아니다.
마치 도끼에 서려 있는 질척한 악의가 달라붙는 것만 같았으니까.
비록 검을 들어 막아내긴 했으나 미처 흘려내지 못한 힘은 블라드를 사정없이 바닥을 구르게 했다.
“······어이가 없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트롤의 목이 당황하는 블라드를 보며 크게 웃음 짓기 시작했다.
어느새 말끔히 회복된 검상.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근육이 덜렁거리고 있었으나 지금은 검이 스쳐 지나간 흔적조차 없었다.
‘회복력 한 번 지랄 같네.’
트롤은 북부에서 활동하는 몬스터가 아니다.
그렇다고 중부라 해서 쉽게 볼 수 있는 녀석은 아니었으니 트롤을 처음 본 블라드가 당황할 만도 했다.
그르르르.
어느새 자신의 머리를 집어 목에 끼워 넣은 트롤은 핏발 선 눈으로 블라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을 담아넣은 트롤의 눈에는 감히 바라보기 힘들 정도의 살기가 감돌고 있었으나 블라드는 침을 내뱉고는 태연히 마주설 뿐이었다.
“새끼. 더럽게 못생겼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더럽게 뛰어난 회복력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목 말고도 다른 것이 떨어져 나가도 죽지 않는지를 확인해 볼 차례다.
“이래도 안 죽나 보자.”
각오를 마친 블라드의 왼쪽 눈에서부터 차마 검에 담지 못한 오러들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여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트롤조차도 정색을 할 만큼 범상치 않은 기운을 지닌 오러였다.
※※※※
뀨우.
두더지는 더는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특별한 존재라 할지라도 누구도 알아봐 주지 못한다면 그저 평범한 두더지일 뿐이다.
그러나 금색 빛을 가진 인간은 달랐다.
입고 있는 갑옷과 들고 있는 검에서 자신과 같은 동류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
그는 비록 희미한 시선이었으나 자신을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안 죽잖아. 이거!”
아무리 단단한 세계가 있다 한들 저 앞에 있는 녀석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뛰어난 공격이라도 격이 다르다면 닿지 못할 테니까.
아직 이 인간의 수준은 불사의 저주를 깨뜨릴 만큼은 되지 않았다.
뀨!
그렇다면 조금은 도와줘야겠다.
어떤 인간은 밭을 넓히기 위해 숲을 불태우고 나무를 잘라내지만, 또 어떤 인간은 배고픈 와중에도 한 움큼의 산딸기를 내어주기도 하니까.
부디 금색 빛을 가진 기사가 격을 높여도 될 인간이길 바랄 뿐이다.
※※※※
팔도 자르고 다리도 자르고 허리도 베어내 보고.
심장도 꿰뚫고 폐도 터트리고 내장도 꺼내 헤집어 보았다.
블라드의 사투는 이미 피로 인해 새빨갛게 물든 금발이 증언해주고 있었다.
“······이거 미친놈 아냐.”
점점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대결 속에서 블라드는 점점 초조해질 뿐이었다.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목소리는 했다고 했는데.’
희미한 기억이었지만 자신의 몸을 빌린 목소리가 목 없는 사내를 쓰러뜨린 것은 알고 있었다.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 시간만 있었다면 끝장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 내 세계가 얕아서 그런가.’
블라드는 어느새 회복해 제 모습을 갖춘 트롤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이제야 한 단계 올라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째서 요제프가 쇼아라에서 자신을 추방했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은 블라드였다.
“쪼개지마. 새끼야.”
그래도 해야만 한다.
아직 지키지 못한 계약이 있다.
블라드는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 채 목소리와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휘두름은 저 뒤에서 울고 있는 나무가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다.
“······!”
베어내도 안 되고 찔러도 안 된다면 이번에는 아예 사지를 절단해서 저 멀리에 흩뿌려주마.
각오를 마친 블라드가 사납게 이빨을 깨문 순간 저 멀리 숲에부터 반짝이는 빛무리가 비치기 시작했다.
‘뭐지?’
멀리 있기에 알아보지 못한 빛.
괴이한 트롤을 앞에 둔 블라드는 또다시 이상한 존재가 나오는 가 싶어 서둘러 경계 자세를 취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히이이이힝-
거침없이 질주하는 초원의 영혼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죽지 않는 트롤이라 할 지라도.
“누아르?”
콰아앙!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달려나온 누아르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트롤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둘이 맞부딪히는 충격에 블라드도 잠시 눈을 감아야 할 정도였다.
그아아아아!
가공할 만한 속도, 도약해온 거리, 그리고 이마 위에 맺힌 새하얀 뿔까지.
잔뜩 힘을 모아온 누아르의 돌격에 이번만큼은 트롤도 사정 없이 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너와 나의 세계는 맞닿음으로써 더 완벽해진다.
좀 더 완벽한 자신을 찾기 위해 숲을 건너온 누아르는 마침내 금빛의 기사를 찾아내었다.
히이이이힝!
“이 자식 어떻게 왔어!”
반가움을 감추지 않은 채 재빨리 누아르에 올라탄 블라드는 서둘러거리를 벌리며 트롤을 바라보았다.
트롤은 자신을 상대했을 때와는 다르게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옆구리에 튀어나온 흉측한 내장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왜지?’
아직 내장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뜻은 제대로 회복이 되고 있지 않았다는 뜻.
누아르의 뿔에 당한 공격은 자신과는 다르게 트롤에게 확실히 유효타를 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누아르가 가진 정령의 피가 먹혀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블라드는 누아르의 고삐를 쥐고는 트롤의 주위를 세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히이이힝!
누아르의 등장으로 주도권을 잡은 지금, 억지로 틈을 만들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달려드는 둘을 향해 서둘러 도끼를 내려찍는 트롤이었지만 누아르의 위에는 블라드가 있었다.
까앙!
퍼억!
기사의 검으로 받아치고 정령의 뿔로 들이받는다.
말의 무게까지 더한 속도에 트롤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땅을 나뒹굴고 말았다.
‘된다!’
꿰뚫린 복부가 이번에도 닫히지 않고 있다.
이건 통하는 공격이다.
“다시!”
블라드가 도약 거리를 벌리기 위해 다시 뒤로 물러선 순간 트롤도 재빨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내려찍던 나무.
트롤은 재빨리 뛰어가 나무를 등지고 서서는 양팔을 벌려 누아르를 붙잡을 준비를 했다.
그르르르······,
피할 수 없다면 붙잡으면 된다.
비록 크게 꿰뚫릴지 몰라도 저 새까만 말의 돌격만 막으면 위에 있는 기사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테니까.
“······!”
트롤을 향해 달려가던 블라드는 양팔을 벌린 녀석을 보고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몬스터가 생각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판단이었다.
“······?”
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블라드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이 조금은 무거워진 느낌을 받았다.
“뭐야. 이 자식.”
어느새 갑옷 안에서 기어 나온 빛나는 두더지.
알리시아가 준 호박석에 매달린 녀석은 자신을 내려보는 블라드를 향해 한쪽 손을 흔들어대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마치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이해할 수 없는 돌발행동을 보이는 두더지를 서둘러 손잡이에서 떼어내려던 찰나, 블라드는 들고 있던 검에서부터 이상한 울림이 퍼져오는 것을 느꼈다.
‘뭐?’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
하이날의 하얀 뱀이 자신을 감싸 안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블라드의 오른손을 뒤흔들고 있었다.
알리시아의 호박석이 빛나고 있었다.
어느 세계는 맞닿을 때마다 서로를 찔러대지만, 또 어떤 세계는 서로를 넓혀준다.
누아르가 그랬고, 하얀 뱀이 그랬으며 목소리가 그랬었다.
“이건······.”
그리고 지금 빛나는 두더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박석에서부터 시작된 두더지의 가호가 검면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면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땅의 가호가 블라드의 검에 서리고 있었다.
땅은 세상 모든 것들을 짊어지는 근본이다.
마치 바닷속에 빠진 추처럼 심상 세계 깊숙한 곳까지 파고 내려간 땅의 가호는 블라드로 하여금 자신의 세계 깊은 곳을 바라보게 했다.
저 아래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근본을 잠시나마 끌어내게 했다.
“가자!”
돌진을 명하는 블라드의 말끝에 어느새 짐승 같은 으르렁거림이 섞여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어찌할 수 없을 것만 트롤이 지금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걸레짝보다 못한 존재로 보이고 있었다.
감히 너 따위가 나를.
그아아아아!
트롤은 점점 다가오는 블라드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느새 기세가 하늘 끝까지 솟아버린 인간.
새까만 말의 하얀 뿔도, 빛나고 있는 검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은 지금 달려오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였다.
“이제 죽어라!”
정령들의 가호와 함께 내지른 검 속에서 트롤이 마지막 단말마를 내질렀다.
날카롭게 맞닿은 세계의 끝에서 죽음을 느낀 트롤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기사의 눈을 기억했다.
서늘한 푸른 눈동자 안에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세상 가장 완벽한 흉포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
후욱-
어두운 방 안.
타오르는 초들이 가득했지만 빛나지는 않는 그곳에서 홀연히 꺼지는 촛불 하나가 있었다.
“······.”
푸르게 시작했으나 검게 끝나는 머리의 여인이 방금 꺼진 촛불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도브레치티의 숲으로 보낸 트롤을 가리키는 빛이었다.
“······구석에 있는 시골 영지에 격이 높은 자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오직 한계를 뛰어넘은 영혼만이 자신의 저주를 부술 수 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여인은 닿지 않는 발끝을 움직이며 작은 종을 흔들어대었다.
“부르셨습니까? 라마슈트 님.”
종소리와 함께 들어온 기사.
그의 가슴팍에는 우트만 남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확인하고 오세요.”
여인은 이미 꺼져버린 초를 남자에게 던지며 말했다.
“얼굴은 새롭게 갈아끼시고.”
“알겠습니다.”
빛나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블라드에게도 해당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두운 방, 흔들리는 촛불들 사이에서 땅에 발이 닿지 않는 여인이 조용히 도브레치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자그마한 동굴 안에 앉아있는 어린 소녀.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주위에 널려 있는 산딸기들 덕분에 굶주림은 면하고 있었으나 퉁퉁 부어오른 발목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훌쩍.”
지난밤은 잠에 들 수 없었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에 그저 눈물만을 흘렸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때 보았던 괴이한 거인이 내지르는 소리 같았다.
착한 두더지라도 빨리 돌아와 줬으면 좋겠는데.
“대장. 여기 맞아?”
“두더지가 맞대.”
“이젠 두더지랑 대화도 하는 거야?”
“너랑도 대화하는데 뭐.”
저 멀리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소녀는 숨을 멈추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을 사람이라 확신할 수만 있다면 소리라도 질러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겠지만 이미 트롤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던 소녀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발자국 소리는 소녀가 어디 있는지 안다는 듯 확실한 걸음걸이로 동굴의 앞까지 다다랐다.
“······!”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움켜잡은 채 공포에 질린 소녀.
마침내 그 소녀 앞에 나타난 남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근사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소녀가 안심했던 것은 남자의 외모보다는 그의 어깨에 걸터앉아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두더지 때문이었다.
“꼬마야. 집에 가자.”
블라드도 두더지도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소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그마한 미소를 지을 힘 정도는 남아있었다.
안아 든 소녀의 몸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