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02
북쪽보다 차가운 곳 (1)
한겨울의 끝자락.
요제프는 평소 앉아있던 의자를 창가로 돌려놓고는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을 통해 보이는 쇼아라의 성문에는 교회의 사제들이 잔뜩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알아봤나?”
자야르는 창을 바라보고 있는 요제프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다가오는 태풍을 보는 것만 같은 긴장된 눈초리였다.
“드라굴리아 공작의 친아들이라고 합니다. 용살 기사단장인 미르셰아와는 이복형제라고 하더군요.”
자야르의 보고가 끝남과 동시에 저 밖에 보이는 사제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용의 목을 긋는 짙은 선 하나.
용살 기사단을 뜻하는 깃발 아래서 기사들이 쇼아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름은 라두라고 합니다. 젊은 나이이지만 이미 수차례 용을 살해한 전적이 있는 기사입니다.”
요제프는 귀는 자야르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나 눈은 성문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깃발 아래서 들어오고 있는 기사는 모두 셋.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앞장서 있는 남자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멀리 있는 집무실에서 보아도 당당함이 전해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용혈공의 아들, 라두 드라굴리아라······.”
바예지드 가문 또한 훌륭한 기사를 배출하기로 유명한 가문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중앙의 드라굴리아 가문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헛되이 전해지는 전승이 아닌 실제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용의 피를 이은 가문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피에르 주교의 정중한 초대와 함께 용의 피를 이은 기사가 쇼아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자야르가 이번에는 말이 아닌 작은 쪽지를 건네며 요제프에게 보고했다.
“바예지드의 눈들이 북부 곳곳에서 수상한 동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
자야르가 건네준 쪽지를 받아든 요제프는 조심히 펼쳐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참으려 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는 침음.
그저 짧은 문장만이 적혀 있는 쪽지였으나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요제프의 미간은 좁혀들어갈 뿐이었다.
지금 들고 있는 쪽지는 사태에 대한 설명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페테르가 조용히 말해주는 경고이기도 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야.”
“네?”
요제프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검을 다루지 못했기에 날카로운 눈과 깊은 생각을 단련했다.
그러나 아무리 치열하게 단련했다 할지라도 평생을 논리의 전장 속에서 살아온 이단심문관에게는 아직 모자랐던 모양이다.
“피에르 주교의 목표는 블라드가 아니었어.”
분명 요제프와 피에르 주교는 쇼아라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요제프에게는 목적이자 목표였던 쇼아라의 권력은 피에르 주교에게 있어서는 그저 언제든지 내버릴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피에르 주교는 요제프보다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
교황청에 속한 북부의 교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깃발을 들어 올린 자는 쇼아라의 주교 피에르였으며 교회의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은 오랫동안 북부에 자리 잡고 있던 영지 중 한 곳.
우트만 남작령의 도시.
모시암이었다.
※※※※
빛나는 두더지의 축복은 실로 강력했다.
블라드와 고트는 도브레치티의 숲을 빠져나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몬스터나 짐승들의 습격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나아가는 발걸음마저 가벼웠을 뿐이었다.
그렇게 순조롭다 못해 매끈하게 진행된 여행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둘을 도브레치티의 숲을 빠져나오게 만들었고 바로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거참. 천천히들 드시지. 아무도 안 뺏어 먹습니다.”
눈으로 인해 하얗게 물든 나무 아래서 피어오르는 모닥불 하나.
따뜻한 열기와 함께 솟아오르는 연기 아래서 허겁지겁 스프를 퍼먹고 있는 두 남자가 있었다.
바로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는 무언가 짠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블라드와 고트에게 말했다.
따뜻한 스프를 입에 대었음에도 아직도 새파랗게 질려있는 둘의 입술이 그동안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먹을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는 감사를 표할 줄 알아야 한다.
소매치기가 되기 이전 어린 동냥꾼이었던 블라드는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의 고마움을 알았고 그렇기에 자신을 구해준 용병들을 향해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
“······이것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러나 정작 블라드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은 용병들은 오히려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움을 표할 뿐이었다.
갑작스레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블라드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라도 한 건 아닌가 하며 재빨리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뒷골목에서 배운 처세술이 숨 쉬듯 자연스레 나오고 있었다.
“기사님은 아무래도 중부 출신이 아니신가 봅니다?”
그러나 용병대장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그저 실실 웃으며 잘라낸 육포를 건네줄 뿐이었다.
감사하다 말한 블라드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중부 출신은 아닙니다. 북부에서 왔죠.”
“오. 그래서 그러셨군.”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블라드는 자신을 신기하듯 쳐다보는 용병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방금 제가 뭐 실수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오, 아니지요. 기사님. 하하!”
곱슬머리의 사내는 블라드의 물음에 크게 웃으며 스프 한 그릇을 더 떠주었다.
“우리 같은 밑바닥 놈들이 기사님 같은 분들께 고맙단 말을 들은 건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자신들을 밑바닥 인생이라 칭하는 용병들을 보며 블라드는 미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정작 밑바닥에서 살아왔던 것은 용병들이 아닌 블라드였으나 새로운 땅에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그저 한 명의 젊은 기사로 보일 뿐인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예의를 차렸나 보네.’
아무래도 중부는 북부보다 계급 간의 상하 관계가 더욱 철저한 모양이었다.
지역 간의 특색에 따라 이런저런 차이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블라드는 앞으로 이런 점들을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님은 어디까지 가시는 길이십니까?”
“타노보로 가는 도중이었지요. 비츠카야 백작령의 도시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블라드는 고개를 들어 올려 빤히 곱슬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용병대장은 수프 그릇을 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블라드를 보고는 그만 웃음 짓고 말았다.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눈 속에 들어 있는 의도가 너무나 빤했으니까.
“이것 참 인연이군요. 마침 저희도 타노보로 가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오오.”
블라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고트가 먼저 속도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다행이다. 대장. 저 사람들만 따라가면 타노보에 도착할 수 있겠어.”
“닥쳐.”
블라드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기어코 한 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떠나기 전에는 자신만 믿으라며 가슴을 땅땅 치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 사단을 만들고 말았으니 블라드는 결국은 사기꾼을 믿어버린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쇼아라의 블라드입니다. 아니, 블라드요.”
“가시나무 용병단의 슈테판입니다. 기사님.”
블라드는 끓어오르는 부아를 참으며 웃는 얼굴로 용병대장을 향해 악수를 건넸다.
맞잡은 손과 함께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블라드는 슈테판의 푸른 눈이 곱슬곱슬한 주황색 머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처음 보는 중부의 도시.
도브레치티처럼 구석진 영지가 아닌 제대로 된 도시인 타노보는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평생을 쇼아라에서 살아왔던 블라드의 견문을 넓히고 있었다.
“중부의 도시는 처음인데.”
“그렇다면 이곳이 나쁘지 않을 겁니다.”
경험상 촌뜨기처럼 보이면 범죄의 대상이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 접하는 도시의 정취는 블라드의 마음을 새삼 들뜨게 했다.
“동쪽에 있는 엘프들과의 무역 거점지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상인과 용병들이 많이 들리는 곳이기도 하죠.”
슈테판은 경험 없어 보이는 기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 보인다고 할지라도 기사는 기사.
고작 수프 몇 그릇과 친절한 말 몇 마디로 기사와 인연을 터놓을 수만 있다면 분명 수지맞는 장사일 것이다.
“어떻게 여관도 알아봐 드릴까요? 몇몇 쓸만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음. 여관은 추천만 해줬으면 하는데. 먼저 이곳의 영주님을 뵐 생각이라.”
“오. 그러시군요.”
당당히 비츠카야 백작을 만나겠다고 말하는 블라드를 보며 슈테판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기사라 하더라도 모두가 가치 있는 자들은 아니다.
기사랍시고 고개를 들고 다니는 자 중에는 자신들 같은 용병보다 더 너저분한 자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애송이 기사는 귀티 나는 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던데다 지금은 백작을 찾아뵙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었으니 슈테판의 눈이 빛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저희는 저 앞 사거리에 있는 여관에서 며칠 묵을 예정이니까요.”
“그러시죠, 아니 그렇게 하지.”
갑작스레 하대로 대하는 블라드였지만 슈테판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렇게 하는 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마웠네.”
“별말씀을요. 기사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하대를 하기란 의외로 어려웠다.
그러나 블라드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언제나 앞에서 권위를 증명해주던 요제프나 선임 기사들이 없었으니 이제는 스스로가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만 했으니까.
“백작님의 저택이야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을 찾아가면 될 겁니다.”
애써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블라드를 보고 있던 슈테판은 다 이해한다는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떠나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용병들의 무리가 조심스레 블라드에게 고개를 숙이며 거리 속으로 사라져갔다.
“진짜 나중에 한 번 찾아가서 술이라도 사줘야겠는데.”
받은 것이 있다면 돌려줘야 한다.
슈테판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차디찬 겨울의 숲을 헤매고 다녔을지도 모르니 적어도 확실히 감사 정도는 표하는 게 좋을 것이다.
“술을 사주려면 좀 비싼 걸 사주는 게 좋을걸. 대장.”
“왜?”
슈테판의 용병들과 함께 뒤에서 걸어오던 고트는 블라드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잘 나가는 용병단인가봐. 차고 있는 장비들도 그렇고 아까 성문에서 검문도 금방 빠져나가는 걸 보면 적어도 이름은 알려진 용병단이야.”
“그래?”
떠나가는 슈테판을 보던 블라드의 눈 또한 빛나기 시작했다.
서로 간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오직 슈테판뿐만이 아니었다.
※※※※
북부의 저택은 실용적인 측면이 강했다.
확실한 용도를 가진 시설들과 높게 세워진 벽들.
어찌 보면 자그마한 성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삭막한 것이 바로 북부의 저택이 가지는 특징이었지만 중부의 양식은 달랐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새하얀 외벽들.
그리고 벽 사이사이 새겨져 있는 조각들은 블라드로 하여금 잠시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였다.
“나는 바예지드의 기사. 블라드다. 이곳의 영주님께 특별히 부탁할 청이 있어 찾아왔다.”
“무슨 일이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처음 보는 쓸모없는 유려함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나의 주군께 급히 전한 일이 있어 마법사의 전보를 빌리고자 한다. 부디 곤경에 처한 기사에게 비츠카야 백작님의 선량한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고 전해주게.”
약속도 없이 급히 찾아온 길이었지만 전보 정도야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영지를 다스리는 군주라면 자그마한 호의만으로 체면을 살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대장. 여관은 나중에 잡을까? 혹시 초대를 받을지도 모르잖아.”
“그래.”
뒤에서 넌지시 말하는 고트의 질문에 블라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에서는 찾아오는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관습이 있었다.
만약 이곳에도 그런 비슷한 관습이 있다면 어쩌면 저녁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고.
주위가 깜깜해지는 시간까지도 블라드를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
요제프가 블라드를 내보낸 것은 혹시라도 모를 교황청의 트집에서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라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요제프의 의도는 지금 확실히 성공하고 있는 셈이었다.
“대답은 언제쯤 오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된다 안 된다 정도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기다리셔야 합니다.”
차가운 무시.
중간중간 들려오는 낮은 비웃음까지.
블라드는 오랜만에 느끼는 차가움에 분노하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얼마든지 참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어째서 신분도 확실히 증명한 자신에게 이런 대접을 보여주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언제까지?”
“······.”
대륙의 중심은 중앙에 있으며 중부의 영주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다.
마른 흙이나 퍼먹는 서부 놈들이나, 야만인들의 피가 섞인 북부 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함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은 것이다.
“백작님이 찾으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을 보았다.
그러나 넓기만 할 거라 믿었던 세상은 또 다른 벽들로 가득할 뿐이었다.
세계의 중심은 북부인들을 이렇게 차별하고 있었다.
블라드는 굳건히 닫혀 있는 백작의 문 앞에서 그렇게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