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06
안개 속의 남자 (3)
기이한 분위기가 감도는 테이블 위.
바로 앞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금색의 눈동자가 부담스럽다.
아까와는 달리 얼굴은 무표정하였으나 소녀의 반짝이는 눈만은 환상 속에서 날아다녔던 나비와 같이 빛나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그 눈동자와는 반대로 냉막한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엘프 사내.
바라디스라 불린 엘프의 눈빛은 소녀와는 정반대로 어딘가가 매섭다.
마치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린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당신은 또 왜 그러는데.’
온도가 확연히 다른 두 엘프의 시선을 마주하며 블라드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둘 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자신이 여태껏 상상했던 엘프들의 모습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차는 언제 나오는 거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기사와 엘프들.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고 있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블라드는 차라리 맛대가리 없는 차라도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쏠리는 시선을 받아넘기기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이들의 숨결을 지킨 기사.”
먼저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바라디스였다.
“이게 무슨 뜻이지?”
바라디스의 남색 눈동자가 블라드의 갑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 끝에 매달려 있는 호박석도 함께.
비록 입으로는 갑옷에 새겨진 글귀를 물어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분명 그 이면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북부 교구 산 로지노가 새겨준 것입니다.”
블라드는 바라디스의 반응을 보며 테이블 밑에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까 소녀와 마찬가지로 바라디스라는 엘프 또한 정령이 깃든 물건들을 알아보고 있었으니까.
정령과 호박석에 관해 엘프들에게 물어보겠다는 생각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사특한 존재와 싸우던 임무 중에 나름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희열과는 다르게 블라드의 목소리는 차분할 뿐이었다.
고작 하나의 성과로 일희일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만약 이 자리에 요제프가 있었다면 분명히 이렇게 했을 것이다.
“사특한 존재와 싸웠다라······. 훌륭하군.”
두 명의 엘프는 블라드의 말을 듣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대었다.
겉모습은 전혀 닮지 않았으나 하는 행동만큼은 비슷한 바라디스와 소녀를 보며 블라드는 둘이 오랫동안 같이 움직였던 사이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침 차가 준비되었군.”
오두막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향긋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엘프 병사들이 들고 오는 찻잔에서부터 나는 향기였다.
“종족을 떠나 사특한 존재와 대적했던 기사에게 경의를 표하네.”
“감사합니다.”
표정은 여전히 냉정했으나 보이는 호의만큼은 확실했다.
은괴를 받고 넘길 정도로 귀한 차를 대접할 정도라면 적어도 밉보이지는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잘하면 되겠는데.’
블라드는 이곳까지 따라온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
비츠카야 백작의 일을 도와 이곳까지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엘프들의 숲에 들어가기 위함.
지금 같은 좋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만 진다면 어쩌면 백작을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초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향이 좋군요.”
블라드는 청명한 녹색 빛을 내는 차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비록 입에는 맞지 않는 차였지만 지금의 한 모금으로 좋은 인상을 남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그랬어야만 했다.
“안돼.”
그러나 블라드는 찻잔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너는 마시면 안 돼.”
블라드가 잡은 찻잔을 다급히 잡아채는 하얀 손가락.
간격이 넓은 테이블 때문에 아예 엎드리다시피 한 소녀가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
“······.”
갑작스러운 소녀의 돌발 행동에 오두막 안의 공기가 멈추고 말았다.
엘프들은 물론이거니와 비츠카야의 기사들도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만 돌같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왜?”
얼마 남지 않은 폐의 공기를 끌어내어 간신히 내뱉은 블라드의 한 마디.
그러나 소녀는 얼굴을 파묻은 채 애써 시선을 피하고는 조용히 블라드의 찻잔을 끌어올 뿐이었다.
테이블 끝에서 바둥거리는 소녀의 양발이 애처로워 보였다.
※※※※
티타임은 끝났다.
태어나 처음 겪어본 엘프들과의 만남은 혀끝에 맴도는 맛만큼이나 썼고 블라드는 그 충격에 지금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대장, 진정해.”
“나는 잘못한 게 없거든.”
멍해진 블라드의 눈빛을 보며 고트가 진정시키려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공허할 뿐이었다.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 엘프들이 아직도 대장만 보고 있잖아.”
기이한 분위기였다.
엘프들은 블라드를 경계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마치 신기한 짐승을 바라보는듯한 눈빛이었다.
“게다가 저 꼬맹이는 아무래도 신분이 높은 아이인 것 같아. 아까 마차 위에 올라탈 때도 옆에서 시중들던 엘프들이 있었단 말이야.”
그중에서도 블라드를 가장 열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소녀가 있었다.
바라디스라는 엘프의 허리춤을 붙잡고는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자신을 바라보는 엘프 소녀.
눈빛은 무언가 간절했지만 정작 하는 행동은 자신을 밀어내는 소녀를 보며 블라드는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어쨌거나 엘프들의 숲에 들어가는 건 그른 것 같다.”
비록 자신이 한 실수는 아니었지만 블라드는 방금의 만남에서 무언가 삐끗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인간들을 거부하는 엘프들이니 지금의 상황을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갑시다. 너무 늦기 전에 출발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절벽을 건너야 한다는 비츠카야 기사들의 말에 블라드는 힘없이 누아르의 위로 올랐다.
“잠깐.”
이제 돌아가려 하는 일행의 뒤로 바라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귓속말로 속삭이는 소녀와 고개 숙인 채 듣고 있는 바라디스.
소녀의 말을 듣고 있던 바라디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블라드를 멈춰 세웠다.
“자네를 이렇게 보내기가 미안하군.”
웃는 것인지 화내는 것인지 모를 바라디스의 기묘한 표정.
블라드는 차라리 아까의 냉막한 인상이 더 나은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의······귀하신 분이 자네에게 저지른 실수를 부디 용서해 주시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까 마차에서도 무언가 일이 있었다고 들었네.”
“······.”
무언으로 긍정하는 블라드를 본 바라디스는 피곤함이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블라드에게 악수를 건넸다.
“조만간 한 번 다시 봤으면 좋겠군. 오늘의 무례도 사과할 겸.”
블라드는 가만히 자신에게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엘프들에게도 악수가 같은 의미인가?
“엘프들만의 초대 방식이지. 우리들은 인간들과는 달리 쉽사리 악수를 청하지는 않거든.”
“그렇군요.”
바라디스의 말을 들은 비츠카야 기사들의 숨죽인 경악성이 들려왔다.
자신들은 오랫동안 공들여 행한 일을 단 하루 만에 허락받은 블라드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를 초대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저 멀리서 조그맣게 손을 흔들고 있는 소녀를 보며 블라드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고 있던 사람의 위로 올라타 환상 속으로 빠뜨렸다.
차를 음미하려던 사람에게서 찻잔을 빼앗았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다음에 보자며 엘프들의 숲으로 초대를 하고 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여태껏 보았던 여자 중 가장 변덕스러운 소녀의 행동을 보며 블라드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소녀의 행동이 수상하다 할지라도 내밀어져 있는 손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견문을 넓힐 소중한 기회가 되겠군요.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꼭 한번 와주었으면 좋겠군.”
붙잡은 손 위에서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다.
바라디스의 악수를 보며 잠시 주저하던 블라드의 모습에 긴장하던 비츠카야의 기사들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꼭 그 호박석도 가지고 오게.”
“네?”
“우리의 귀하신 분이 그것에 관심이 많으시네.”
손을 놓은 바라디스는 다시금 냉막한 인상을 지은 채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자네에게도 그렇고 말이지.”
“······.”
블라드는 바라디스의 말을 들으며 저 멀리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등 뒤에 숨어 빼꼼히 내민 고개 사이로 흔들고 있는 손이 마치 다음에 보자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
“결국, 이름도 못 물어봤네.”
블라드는 흔들리는 누아르의 등 위에서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우당탕탕 굴러가는 시간이었기에 마땅히 물어봐야 할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이름은 왜?”
“나중에 볼 때 뭐라고 부르기는 해야 할 거 아냐.”
“하긴 엘프답게 이쁘기는 하더라. 조금만 더 크면 쳐다보기도 힘들겠던데.”
블라드는 자신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고트의 말을 들으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애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싶어?”
“그러는 대장은 도대체 몇 살인데?”
블라드는 받아치듯 물어보는 고트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이제 성인이 된 지 몇 달 안 된 사람이었다.
“······어쨌든 나는 어른이잖아.”
“걔도 어른일 수도 있지. 제미나보다는 성숙해 보이던데.”
치사하게 진실로 반박하는 고트의 말에 블라드는 가만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제미나를 예시로 드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엘프들은 애초에 나이 짐작이 안 된다고. 그렇게 보여도 어쩌면 백 살은 넘었을지도 몰라.”
장수족인 엘프이기에 감히 나이를 추측하기는 힘들었으나 블라드는 분명 금색 눈동자의 소녀가 어른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간간이 보였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분명 성숙한 인격체라 하기에는 모자라 보였으니까.
“이 부근입니다.”
일부러 다물어버린 입으로 대화를 끝낸 사이 비츠카야의 기사가 조심스레 다가와 보고하고 있었다.
‘두들겨 패는 것보다 효과가 좋네.’
어제까지만 해도 북부에서 온 뜨내기라 은근히 무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바라디스의 초대는 분명 그만한 효과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절벽을 건너는 다리까지가 위험 지역입니다. 주로 이 부근에서부터 약탈자 녀석이 튀어나왔죠.”
블라드는 기사의 설명에 재빨리 지도를 펼쳐 들고는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스투르마에서 배웠던 지도 읽는 법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면서 보았던 돌다리가 제일 위험해 보이기는 하더군요.”
“실제로 그곳에서 많은 마차를 잃었었습니다.”
블라드는 점점 떨어지는 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제 곧 해가 떨어질 테니 가능하다면 자리를 잡고 싶었다.
“여기서 밤을 지새우고 떠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불가합니다.”
비츠카야의 기사는 이것만큼은 안된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엘프들의 영역과는 다르게 이곳의 숲은 너무나 춥습니다. 최대한 빨리 타노보로 도착하지 않으면 찻잎이 얼어붙고 말 겁니다.”
엘프들은 투존이라는 차의 잎을 따서 말리기만 했을 뿐 그 외의 공정은 일절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니 빨리 타노보로 돌아가 찻잎들을 가루로 만들고 압축하여 한 덩어리로 만들지 않는 이상 투존의 잎들은 빠르게 얼어붙고 말 것이다.
“지금부터는 자는 시간까지 줄여서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올 때와 돌아갈 때의 조건이 너무나 달랐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제안한 것이었지만 기사들의 반발이 너무 거셌다.
자칫하면 여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으니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은 했다.
“갑시다. 슈테판은 후미로.”
“알겠습니다. 기사님.”
자신은 가장 선두로, 가시나무 용병단은 행렬의 후미로.
비츠카야의 기사들은 마차의 양옆을 둘러싸게 만들어 진형을 갖춰놓은 블라드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기사만 6명인 지금의 행렬을 건드릴 간 큰 산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온다면 분명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이야.’
아무리 엘프들의 차가 비싸다 할지라도 모든 일에는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 여섯에 용병 열 명을 뚫고 차를 탈취하겠다는 사람은 분명 돈보다는 다른 것을 목적에 둔 사람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숲을 보며 블라드는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저 앞, 절벽 사이에 걸쳐진 돌다리.
어둑해지는 하늘 사이에서 보니 더욱 앙상해 보이는 돌다리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
처음에는 별빛인 줄 알았다.
어두운 밤이었고 절벽지대라 경사가 급격하다 보니 하늘과 땅의 경계가 분명치 않았으니까.
“크악!”
그러나 그 별빛이 빠르게 다가오는 순간, 블라드는 그 빛이 하늘에서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습격이다!”
“약탈자다! 약탈자가 찾아왔다!”
세차게 흔들리는 횃불, 울부짖는 말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행렬 속에서 블라드는 어느새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비츠카야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보지도 못했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기사의 흉갑이 얼마만큼의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일단은 방진을······.”
“모두 달려라! 지금부터 다리를 빠져나간다!”
사방이 뚫려 있는 다리 위.
자연스레 진형을 갖추려는 기사들을 보며 블라드가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블라드 경!”
“내 말을 따르시오!”
쓰러진 기사를 재빨리 안장 위에 얹은 블라드가 으르렁거리며 대답했다.
“여기서 멈춰서면 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니까!”
포식자를 이해하는 것은 오직 같은 포식자일 뿐.
굳이 기사 하나를 쓰러뜨려 경고를 보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일 것이다.
“달려! 다리를 빠져나간다!”
“다들 고삐 잡아!”
어두운 다리 위, 큰 소리로 블라드의 명을 반복하는 슈테판과 고트.
그리고 삽시간에 변해버린 블라드의 기세에 눌려버린 비츠카야의 기사들은 서둘러 말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었다.
퍼억!
파악!
“돌멩이가 날아옵니다!”
“횃대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다리를 돌파하려는 블라드의 판단에 당황했는지 어둠 속의 약탈자는 서둘러 횃불을 꺼트리고 있었다.
검을 든 기사라면 능히 위협에 맞설 줄 알아야 하거늘.
그러나 뒷골목 출신의 기사는 도망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다.
“상관 말고 달려라!”
블라드는 재빨리 왼쪽 눈을 감고는 자신의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나를 따라오면 된다!”
검 사이로 맺히는 블라드의 오러.
어두운 다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빛을 따라 마차들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까앙!
‘어딜!’
이번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멩이를 내려친 블라드는 재빨리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부르르 떨리는 검 끝이 방금 날아온 돌멩이의 위력을 짐작하게 했다.
‘한 명이야!’
여러 곳에서 날아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지만 분명 한 사람이 던진 것이 분명했다.
예민한 블라드의 귀는 어둠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잡아내었다.
‘온다!’
블라드는 이를 악물고는 다리의 끝을 바라보았다.
분명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체 모를 약탈자는 지금 자신들이 나아가려는 길목 앞에 서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대로 돌진한다!”
마치 성난 황소처럼 달려나가는 일행들.
가장 앞장서 있던 누아르의 이마 위로 자그마한 뿔이 돋아나고 있었다.
‘뚫는다!’
블라드는 이 기세 그대로 약탈자를 밟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지금 일행을 가로막고 있는 자는 분명 고수였으니 지금의 기세를 잃게 된다면 다시는 다리 위를 지나칠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기사들! 모두 습격에 준비······.”
블라드는 크게 외쳤지만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끝에서부터 마치 새벽의 빛을 받은 것처럼 밝아져 오고 있었으니까.
‘젠장!’
블라드는 순식간에 돌변한 약탈자의 기세를 느끼고는 재빨리 자신의 세계를 불러일으켰다.
오러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러뿐.
이곳에서 오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누아르!”
히이이힝-!
블라드의 외침에 트롤조차 꿰뚫어 버린 초원의 영혼이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일격필살의 묘리는 의외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의외성을 갖추기 쉬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속도.
오직 예상을 벗어난 속도만이 지금 저 앞에 있는 남자의 일격을 틀어막을 수 있다.
“지금!”
여태껏 행렬과 열을 맞추던 블라드와 누아르가 기묘한 엇박자를 타고서는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갔다.
여태까지 달려온 속도보다 서너 배는 더 빠른 속도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체 모를 사내의 눈이 커지고 있었다.
“뚫어!”
일격에 끝낸다.
목소리가 알려준 그 방법 그대로.
애써 감고 있는 블라드의 왼쪽 눈에서부터 차마 담아내지 못한 하얀 번개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콰직-!
콰지지직-!
새벽의 빛과 하얀 번개.
서로 같은 색깔을 지니고 있던 빛들이 한 번의 맞부딪힘과 함께 다리 위에서 커다란 굉음을 만들어내었다.
※※※※
“······검의 길은 옳고 곧게 그리고 망설임 없이 뻗어나가야 한다.”
반쯤 찢어진 회색 두건.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머리와 주름 사이에서 붉은 피가 튀어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여는 것은 의외성에 기반한 망설임 없는 일격뿐.”
“······쿨럭.”
블라드는 희미해지는 정신 사이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을 집기 위해 조금씩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일격필살의 묘리다.”
“······뭐?”
멈춰선 마차들.
쓰러진 누아르.
그리고 땅바닥에 누워 정체 모를 사내를 바라보고 있는 블라드.
“너는 누구냐?”
새하얀 눈썹 사이로 한 방울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는 누군데 황실의 검술을 쓰고 있는 거냐?”
빛과 빛이 사라진 어두운 절벽 위에서 안개가 자욱이 끼고 있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서로를 모르는 두 사내의 시선이 어지러이 얽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