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09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3)
블라드는 백작에게 받은 주머니를 펼치고는 그 안에 든 금화를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백작에게 받은 돈, 총 20골드.
“애매하네.”
반짝이는 금화들이 앞에서 반기고 있었으나 정작 블라드는 눈썹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차를 호송한 대가로만 본다면 분명 큰돈이겠으나 목숨값까지 생각해본다면 지나치게 적은 돈이었다.
아마 비츠카야 백작은 모자란 값은 원한으로 대신할 모양이었다.
“고트.”
“응?”
고트는 반사적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동전들을 붙잡았다.
“봉급.”
“오······오오.”
반짝이는 금화 세 개.
평범한 소작농이라면 1년은 바짝 벌어놔야 얻을 수 있는 수입을 보며 고트가 발을 동동 굴렀다.
“뭐야! 앞으로도 3골드씩 주는 거야?”
“돈이 있으면.”
“크으!”
고트는 금화를 깨물며 생각했다.
역시 따라오기를 잘했다고.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주머니를 여는 데 인색하다면 따르기 고달플 것이다.
그러나 여기 있는 기사는 밑의 사람들을 챙기는 것에 아까워하지 않았다.
마치 뒷골목의 보스들이 호탕하게 돈을 뿌리는 것 같이.
“그리고 이건 경비.”
“또!”
무심한 말과 함께 또다시 날아오는 금화 하나.
날아오는 금화를 바라보는 고트의 표정이 새삼 행복해 보였다.
“그걸로 여관비도 내고.”
“당연하지.”
“옆방에 있는 사람 것까지 내주고.”
“당연히 옆방에 있는 사람 것까지 내줘야지. 응?”
반짝이는 금화에 한껏 들떠 있던 고트였으나 지금 들려오는 소리에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옆 방은 왜? 설마 우리 앞으로 그 사람이랑 같이 움직여?”
돌다리 위에서 회색 두건 사내의 공격을 받은 것은 블라드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시퍼렇게 물든 그의 광대뼈가 그날의 고통을 계속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내가 준 3골드 안에는 까라면 까라는 것에 대한 대가도 들어 있는 거야.”
“······그 사람 우리 따라올 말은 있대?”
블라드는 고트의 불만을 간단히 금화로 잠재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슈테판한테.”
사용했다면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게다가 가시나무 용병단은 블라드를 따랐기에 비츠카야의 눈 밖에 나고 말았으니 거기에 대한 대가까지 치러줘야 할 것이다.
“그 사람들 도망 안 쳤잖아. 그 정도면 알아둘 만하지.”
고트는 블라드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업계에 몸담은 적 있던 둘로서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용병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간다.”
“다녀와. 대장.”
짧은 인사말만을 남긴 채 망토를 여미고는 차가운 밖으로 나서는 블라드.
여관의 문을 여는 블라드의 뒷모습을 보며 고트는 턱을 긁어댔다.
“······이제 좀 태가 나는데.”
첫 만남에서의 블라드의 모습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나운 소년이었을 뿐이었지만 지금 밖으로 나서는 블라드의 뒷모습은 누가 보아도 무게감이 있는 기사의 모습이었다.
그때와 같은 겨울이었으나 밖으로 나서는 블라드의 어깨는 어느새 넓어져 있었다.
※※※※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
비록 북부보다는 아니었지만, 중부의 끝자락인 이곳도 춥기로는 매한가지였다.
“돈도 많이 받았다면서 왜 저녁은 이것밖에 안 되냐?”
회색 두건의 남자는 고트가 끓여놓은 솥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쓸 것 아니냐? 기사는 먹을 것에 돈 아끼는 거 아니야.”
고트는 자신이 애써 끓여놓은 스튜를 타박하는 사내를 보며 입술을 부루퉁히 내밀고 있었다.
다만 무어라 말하지 않은 것은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의 실력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타노보의 물가가 미쳤더라고요.”
“아무리 비싸도 그렇지.”
“누구 말까지 사야 하느라 돈이 더 없었어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회색 두건의 사내는 블라드의 말을 듣고는 조용히 휘적이던 국자를 붙잡고는 그릇에 옮겨 담았다.
가장 낮은 곳을 헤매는 자들은 자그마한 후원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스승이 누군 줄 모른다고?”
“알면 진작에 말했겠죠. 그때 검이 목까지 들어왔었는데.”
회색 두건의 사내는 들고 있는 그릇 너머로 블라드를 유심히 바라보았으나 어린 기사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괘씸할 정도로.
“계속 말했잖아요. 나도 누군지 찾고 있다고.”
“음.”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으나 블라드가 스승을 찾고 있다는 말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만약 거짓으로 답했다면 아무리 뒷골목에서 영악하게 살아온 블라드라 할지라도 눈앞의 사내를 속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진실과 거짓을 간파하는데 도가 튼 사람이었으니까.
“황실의 검은 절대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건데······.”
회색 두건의 사내는 블라드의 말을 듣고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수저를 들었다.
“그런데 제가 쓰는 게 진짜 황실 기사단이 쓰는 검술이 맞아요?”
“정확히는 황실의 검이다. 일격필살의 묘리는 황실 기사단에서도 몇몇만이 전수받는 거거든.”
회색 두건의 사내는 말했다.
황실의 피를 타고난 자.
혹은 그들의 최측근인 몇몇의 기사들만이 전수 받을 수 있다는 그런 검술이라고.
블라드는 자신이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검술을 쓰고 있었다는 것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럼 나는 쓰면 안 되는 거죠?”
“아버지가 혹시 황제 되시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럼 곤란해질 수 있지.”
허가받지 않은 자이기에 쓸 수 없다.
일격필살의 묘리는 어디까지나 황실의 것이었으니까.
정확히는 건국왕이자 유일한 소드마스터인 프라우센의 검술이었으니 만약 황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북부 사람들이야 몰라봤겠지만, 중부 쪽으로 갈수록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다. 잘못하면 황실 모독죄로 끌려갈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해요?”
사내의 입에서 엄청난 죄목이 튀어나오자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았다.
평생 황실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 적도 없던 블라드였으니 지금의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회색 두건의 사내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일단 내가 너의 검술을 보았을 때 말이지. 네가 쓰는 일격필살의 묘리는 꽤 예전에 유출된 것 같다.”
모든 것을 꺼내든 일격을 맞이하면서 회색 두건의 사내는 블라드의 검술을 확실히 알아보았다.
블라드의 검술은 분명 황실의 검이 맞았지만, 현재 쓰고 있는 검술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왜 그렇게 생각해요?”
“네가 쓰는 건 좀 더 원형에 가깝거든.”
사내는 국자를 들고서는 스튜가 들어 있는 솥을 살살 돌리기 시작했다.
“이 밍밍한 스튜가 현재 네가 쓰는 일격필살의 묘리라고 한다면.”
스튜 안으로 내일 쓸 소시지들이 잘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향긋한 육향과 퍼져나가는 기름방울들이 끓고 있는 스튜의 풍미를 깊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현재 황실이 쓰는 일격필살의 묘리다.”
세월은 흐르고 형태 있는 모든 것들은 변하기 마련.
제국이 세워진 지 이제 300년이었으니 그 유구한 흐름에 발맞추어 황실의 검 또한 발전을 거듭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보다 좀 더 맛있어졌지.”
“······.”
블라드는 고기 조각들이 떠다니는 스튜를 바라보았다.
회색 두건의 사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그럼.”
“일격필살의 묘리는 의외성에서 나온다.”
사내는 자신의 그릇으로 소시지들을 옮겨 담으며 말했다.
“그리고 의외성이란 정련된 규칙이 아닌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발상에서 비롯하는 법이지.”
마침내 떠다니는 고기 조각들을 다 덜어낸 사내는 블라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여기에 너만의 재료를 넣어보는 거다. 황실의 사람들이 봐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너만의 꽃을 피워내라.
일격필살의 묘리는 그것을 추구하는 검술이니까.
“가능하겠어?”
황실의 검을 쓰는 북부의 기사.
존재 자체가 의외성이나 다름없는 어린 기사.
그런 블라드를 바라보는 전직 황실헌병대장의 얼굴에는 실로 미묘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
“아니······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엘프들의 장식품이 가득한 집무실.
비츠카야 백작은 갑작스레 당도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허둥지둥 움직이고 있었다.
“와달라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래도.”
와달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온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백작은 눈앞에 있는 기사를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용살 기사단장 미르셰아.
그는 그 누구도 쉽게 초빙하기 힘든 고매한 기사였으니까.
“어떻게 차라도 한 잔,”
“······엘프들의 차는 입에 맞지 않더군요.”
금발에 푸른 눈.
비츠카야 백작은 자신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미르셰아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며칠 전 이 도시를 떠난 북부의 뜨내기를 떠올리고 말았다.
“네! 네 그래야죠. 귀하신 분께 내밀만한 차는 당연히 아니죠.”
그러나 같은 푸른색이라 할지라도 깊이가 다르다.
백작은 미르셰아의 날카로운 거부를 알아듣고는 재빨리 새롭게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압실론은 잘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정체 모를 습격자가 있다고 보고 받았는데.”
“해결되었습니다. 잘 해결되었지요!”
시중을 드는 백작과 주인인 양 상석에 앉아 있는 공작의 아들.
마치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듯한 모습은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둘의 지금 모습은 비츠캬야와 드라굴리아의 관계를 확연히 드러내 주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마치 미간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
백작은 미르셰아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며 머릿속까지 차가워지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있는 기사들만으로는 처치 불가능한 실력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그랬었지요.”
백작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는 애써 긴장된 표정을 지운 채 대답했다.
“북부에서 온 기사가 있었습니다. 어린놈이었는데 실력은 좋았지요.”
“······북부에서?”
백작의 보고를 듣던 미르셰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블라드라고 하는 녀석이었는데 그래도 검은 좀 쓰더군요.”
새롭게 홍차를 데워낸 백작은 찻잔에 차를 따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역시 북부 녀석인지라 감히 제 자리를 몰라보고 버릇없이 굴긴 했지만 말입니다”
“······.”
“역시 미천한 핏줄은 어디서나 티가 나는 법이더군요. 야만족들의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
백작은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미르셰아를 바라보았다.
찻잔을 들어 올려 홍차의 향기를 맡는 그의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역시 엘프에게서 배워놓은 다도 실력은 중앙의 귀족도 만족시킬만한······.
쨍강-
깨어지는 소리.
그저 찻잔이 깨어지는 소리였으나 백작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깨어진 찻잔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붉은 찻물이 불길하게 테이블을 적셔대었다.
“정말 그렇게 보였나?”
삽시간에 집무실로 내려앉는 무거운 침묵.
찻잔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집무실의 공기에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네?
“어디서 보아도 티가 나는 핏줄.”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붙잡고 말았다.
자각은 느렸으나 본능은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다닥다닥 울리는 찻잔과 접시의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자네가 알아보았다는 그 핏줄이 정말 미천해 보였느냐는 말이지.”
들려오는 질문에 비츠카야 백작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
그 안에는 귀족의 푸른 피조차 감당하기 힘든 흉포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