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1
기도하는 용병 (2)
“앞으로 몰아!”
“포위망 좁혀! 빠져나가게 하면 안 돼!”
고요해야 할 겨울 숲속.
모든 생명이 조용히 잠들어 있어야 할 시기였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소음이 가득했다.
끼이이익 끼익-!
“겁나 못생겼네 새끼들.”
퍼억-
무장한 사내들의 입에서 가쁜 입김이 올라올 때마다 어김없이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전진해라!”
고블린 부락 주위로 용병들이 촘촘히 포위망을 굳힌 채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부락이었기에 용병들은 신중히, 그러나 과감하게 진격하는 중이었다.
고블린은 뛰어난 번식력으로 유명한 몬스터.
여기서 몇 마리라도 놓친다면 다음 해 겨울에는 이와 비슷한 규모의 부락이 또다시 생기리라.
그렇게 된다면 바르나에 있을 고용주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뒤져! 새끼들아!”
“키키기익-!”
이족 보행형 몬스터 중에서도 하위에 속하는 고블린이었기에 용병들은 능숙하게 그것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의 연속이다.
“이런 젠장······.”
어제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용병 사내는 오늘 자신의 머리가 터져나갈지 몰랐을 것이다.
퍼억-!
그것도 보기 힘들다는 홉고블린에 의해서.
크아아아아-!
눈으로 뒤덮인 겨울 숲 위로 흉포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5조가 뚫렸다!”
“홉고블린이다! 홉고블린!”
한참 고블린들을 베어 넘기던 용병들에게 고블린이라고 하기에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끈적해 보이는 갈색 피부 위에 웅장하게 갈라진 근육들이 위협적인 그것.
크아아아아-!
이 부락의 대장처럼 보이는 홉고블린 한 마리가 동족을 죽인 인간들에게 아낌없는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미친. 저게 여기서 왜 튀어나와!”
홉고블린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등장하자 용병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태세를 가다듬었다.
“뭐 하는 거냐! 당장 앞으로 나서지 못해!”
“홉고블린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이딴 식으로 하고 보수를 받을 생각이냐!”
“그럼 기사님이 직접 나서시던가!”
용병 중에서도 드센 자가 내뱉는 일갈에 지휘를 맡고 있던 기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이놈이!”
기사는 두툼한 볼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검을 뽑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젊었을 적에도 실력이 그리 신통하지 않던 그는 이제는 늙기까지 해 이미 기사의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으니까.
“빌어먹을! 여러 명이 달려들면 되잖아!”
감히 직접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기사의 말대로 합이 잘 맞는 자들끼리 뭉친다면 홉고블린에게 대항 정도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어느 한 용병단에서 집단으로 파견 나온 자들이 아니었다.
“그럼 비싼 용병들을 부르셨어야지!”
합이 맞을 정도로 오래 같이 한 사람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용병단에서 눈여겨 볼만큼 실력 있는 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스르르릉-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번엔 한다.”
분노에 가득 찬 홉고블린이 다음 사냥감을 찾고 있을 때.
파앗-
홉고블린의 등 뒤에서 하얀 눈발이 튀어 올랐다.
크으?
기척을 따라 고개를 돌린 홉고블린에게 보이는 것은 그저 누군가가 만들어 낸 눈보라뿐이었다.
“흡!”
교묘하게 사각에서 쇄도하여 순식간에 홉고블린에게 다가간 사내.
장식 없는 검이 만들어 낸 반짝임이 순식간에 홉고블린의 발꿈치를 베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아!
[위에.]“봤어요.”
이제야 자신에게 달려든 사내를 본 홉고블린은 분노어린 함성과 함께 거대한 몽둥이를 내리쳤다.
퍼엉-!
“으악!”
“뭔 놈의 힘이!”
가공할만한 힘이었다.
같은 고블린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완력을 가지고 있는 홉고블린.
그것이 내려친 여파가 눈으로 만든 벼락이 되어 주위에 있던 자들에게 튀어 올랐다.
“물러나라!”
“아무것도 안 보여!”
눈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장막이 주위의 모든 것을 덮어가고 있었다.
[지금!]그리고 지금이었다.
사내가 노리고 있던 순간은.
잔뜩 힘을 주어 지면을 내려친 홉고블린.
모든 힘을 쏟아낸 그것이 잠시 경직된 순간.
“이번엔 진짜 하고 만다.”
금발 사내의 푸른 눈동자가 기이한 안광을 토해내었다.
크으?
홉고블린은 보았다.
눈안개 속에서도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는 서늘한 눈빛을.
그것은 여태껏 보아왔던 인간들의 눈빛과는 다른 것이었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눈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
순간, 눈보다 시린 섬광이 홉고블린의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튀어 오른 눈들이 땅으로 낙하하기도 전에 이루어진 깔끔한 횡베기.
모두가 멈춰있는 순간에 홀로 움직인 것이었으며 그저 휘두름이 아닌 의도를 가진 검의 길이었다.
너를 베겠다.
크아아아아-!
단단한 쇠의 감촉이 자신의 가죽을 뚫고 들어오자 방금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홉고블린은 그만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젠장!”
[빠져라!]훌륭했으나.
얕았다.
귓가를 울리는 홉고블린의 비명을 들으며 금발 사내는 자신이 목표했던 것을 일격에 베어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또 실패야!”
크아아아-!
아직 블라드의 검은 홉고블린의 질긴 가죽을 가르고 단단한 뼈를 부술 만큼 여물지 못했다.
퍼엉!
방금 블라드가 굴러나간 지면 위로 스산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멍청하긴. 알려줘도 못해?]머릿속에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블라드는 이를 앙다물었다.
‘알려준다고 다 하면 그게 천재지.’
목소리가 내미는 핀잔과는 별개로 방금 블라드가 휘두른 일격은 검을 본격적으로 잡은 지 한 달 만에 만들어낸 것이라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다.
다만 일격에 숨을 끊지 못했을 뿐.
“좀 돌아가는 것 뿐이라구요.”
다급히 자신의 옆구리를 붙잡은 채 이리저리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홉고블린을 보며 블라드는 눈을 빛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내려치면 되지.”
[실전에서 두 번째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네가 애송이라는 증거다.]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블라드는 다리 근육에 힘을 주었다.
목소리조차 인정하는 탁월한 신체 능력을 이용하여 다시금 눈의 장막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아아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섭게 다가오는 은빛 섬광에 홉고블린은 몽둥이를 내저었지만, 그것은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기도하는 리만······.”
하얀 장막이 걷힌 뒤의 광경.
눈 앞에 펼쳐지는 믿기 힘든 그 모습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보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며 두려워하는 이 구역의 지배자를.
그리고 그것을 망설임 없이 반으로 갈라내는 검로(劍路)를.
하얀 눈밭 위로 새빨간 핏자국들이 퍼져나갔다.
※※※※
토벌이 막 끝난 겨울 숲속.
빛나는 것을 모으는 고블린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용병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부락 이곳저곳에 만들어져 있는 고블린들의 천막을 뒤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몇몇 용병들만.
다른 용병들은 자신들도 약탈의 현장에 다가가고 싶어 하는 눈치가 가득했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인에게 허락받지 못했으니까.
이곳의 주인이었던 것은 지금 엉망이 된 채로 누워 있는 홉고블린이었으며 그것을 눕힌 사람은 지금 눈을 모아 피 묻은 손을 비벼 씻는 금발 사내였으니까.
지금부터 이곳은 그의 땅이었다.
쓰러뜨린 자의 것을 갖는 것은 어느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승자만의 고유한 권리였다.
“대장. 이번에도 대단하잖아!”
피를 닦아내는 블라드에게로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가서 내가 벤 것들이나 챙겨놔.”
“그건 이미 다 해놨지. 애초에 대장걸 건드리는 간 큰놈은 없을걸?”
“내 옆에 하나 있던데.”
기도하는 리만.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토벌대의 용병 속에서도 눈에 띄는 남자.
“이 일 끝나고 나랑 같이 일 하나 같이 해볼 생각 없어?”
“사기꾼이랑은 눈도 마주치지 말자는 게 내 신조야.”
“그러지 말고.”
갈색 머리의 남자는 블라드의 매몰찬 말에도 그저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용병패.”
조용히 들려오는 남자의 말에 블라드가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그거 계속 쓸 수는 없잖아.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위조를 기가 막히게 해.”
“······입이 가벼우면 모가지도 가벼워지는 법이야 고트.”
“너무 섭섭하네. 내가 언제 대장한테 피해준 적 있었나?”
협박인가 제안인가.
누가 볼까 속삭이듯 말하는 긴 턱을 가진 사내를 보며 블라드는 생각했다.
협박이면 죽이고.
제안이면 경고한다.
어떤 의도로든 나의 약점을 건든 자는 대가를 치러야 할 거라고.
블라드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눈치챈 고트는 휘파람을 휘휘 불며 시선을 피했다.
“천천히 생각해봐. 나는 그냥 대장을 생각해서······.”
고트는 블라드가 눈빛으로 하는 경고에 자연스레 뒷걸음질 쳤다.
이 경고를 무시한 몇몇이 어찌 되었는지는 여태껏 블라드의 옆에 붙어 있던 고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블라드가 토벌대에서 맡고 있는 직위는 십인장이었지만 그가 이끄는 용병들은 7명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다들 챙길 거 챙겼냐!”
더는 고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블라드는 큰소리로 조원들에게 외쳤다.
“얼마 없어 대장!”
“홉고블린이 있기에 뭐 쓸만한 게 있나 했는데. 젠장!”
말은 그렇게 해도 사내들의 두 손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들려있었다.
“괜히 허튼 말 걸지 말고 저것들이나 모아서 기사 나리한테 전부 가져다줘.”
“전부 다 가져다줘? 적당히 떼먹어야지.”
고트의 대답에 블라드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빼먹을 게 있어야 빼먹지. 멍청한 놈아.”
“그래도······.”
“그리고 어차피 빼먹을 거면 큰 거로 해 먹어야 할 거 아냐. 괜히 이런 하찮은 거 가지고 서로 힘 뺄 일 있어?”
고트라는 사내의 말은 딱히 틀린 것이 없었다.
어차피 전리품을 받아 가는 기사도 용병들이 이것저것 꿍칠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용병들의 행동이었으며 자연스러운 관행 같은 것이니까.
“좀 멀리 보자 이거야.”
그러나 블라드는 평범한 용병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뒷골목에서 나고 자랐으나 그의 주위에는 배울만한 어른들이 있었다.
하벤이 그랬고, 호르헤가 그랬으며 마르셀라 또한 배울 점이 많은 여자였다.
“역시 대가리들은 다르네. 진짜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니까. 대장의 검이랑 나의 계획만 있으면······”
“머리만 달랑 떨어져 있기 싫으면 뛰어가라.”
말귀를 못 알아 먹는 것들은 피곤하다.
“지금 당장.”
그리고 블라드는 피곤한 것이 싫었다.
“알, 알았어. 지금 간다고.”
아까부터 블라드가 내뿜는 기세에 압도되고 있던 고트는 서둘러 잡동사니들을 모아 두툼한 볼을 가진 기사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깐 내 주위에서 보초 좀 서봐.”
“기도하게?”
“어.”
“참으로 꾸준하시네.”
자신의 조에 속해있는 용병 하나를 붙잡은 블라드는 용병들이 모여 있는 전장을 떠나 근처의 양지바른 곳으로 몸을 옮겼다.
“너무 가까이 오지는 말고.”
곧게 뻗어 있는 침엽수들을 뚫고 오후의 태양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후우.”
블라드는 검을 꽂고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주여······. 오늘도 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트러진 금발 위로 황금색 태양 빛이 머물렀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주변에 있는 모든 용병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 죽이네.”
“진짜 귀족 아냐?”
“최소한 우리 같은 태생은 아닐걸?”
황금빛과 함께 하는 블라드의 모습은 마치 신실한 신자가 하는 기도의 모양새와 같았으며 손에 들고 있는 검과 함께 보면 한 명의 성기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누구는 그런 블라드를 보며 가문에서 가출한 도련님이라 수군거렸고 누구는 어느 귀족의 사생아가 아니겠느냐 말했었다.
그런 말이 나올 만큼 기도하는 사내에게는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신비함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내에게 조금만 더 다가가 보면 누구나 그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싯팔. 그게 안 되네 근데.”
[멍청하긴. 일격필살의 묘리는 언제나 의외성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리만이라는 사람은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신실함으로 위장한 그의 기도문 속에는 그야말로 수상한 대화만이 가득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