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2
무엇을 원하는가 (1)
진창으로 엉망이 된 뒷골목 거리에서 꾀죄죄한 모습의 어린아이가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가 꺼멓게 죽어만 가는 이 거리에서 어울리지 않는 색을 가진 아이였다.
“저 새끼가······.”
“가만둬라. 배가 고픈가 보다.”
거리 위 가판대에서 팔던 꼬치를 뜯고 있던 남자는 손을 까닥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이리 와봐. 그래 거기 너 파란 눈깔.”
“······.”
남자의 손짓을 따라 가까이 다가온 소년은 과연 뒷골목에서 빌어먹고 사는 아이답게 엉망진창이었다.
“어디서 줘 터지고 왔어?”
방금 어디서 누구한테 얻어맞았는지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겨우 몸이나 가릴법한 누추한 옷은 여기저기 뜯어져 있는 상태였다.
“좋네. 눈빛.”
비록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아이의 눈빛만은 죽지 않았다.
남자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 꼬치 하나 더 주쇼.”
거대한 덩치의 남자는 주인에게 꼬치 하나를 받아들고는 거지 같아 보이는 꼬맹이에게 건네주었다.
“먹어.”
단순한 동정심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골목에 사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자아내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밥값은 했다는 뜻이었으니.
“뭐해. 가져가.”
“······.”
풍겨오는 고기 냄새에 거지 소년의 입에 침이 가득 고여가는 것이 보였다.
“받으라니까.”
아이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꼬치를 잡는 대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잘할 수 있는데요.”
“뭘?”
“뭐든지요.”
아이는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가 건네주는 꼬치가 아닌.
“뭐든지 잘 할 수 있어요. 시켜만 주면.”
꼬치를 건네주는 사람을.
소년이 보았을 때 그 사람은 뒷골목에서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너 이름이 뭐냐.”
아이를 지켜보던 남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뒷골목 거지 자식 주제에 하루를 버티게 해줄 음식을 붙잡는 대신 자신에게 당당히 말을 거는 녀석이 누구인지.
진창에서 구른 듯 성한 곳이 없어 보였지만 눈동자에서만큼은 빛을 간직한 녀석의 이름을.
“블라드요.”
이제야 마주친 소년의 눈은 푸른색이었다.
남자는 그 색 또한 마음에 들었다.
“너, 우리 집에 갈 테냐?”
그래서 주워가기로 했다.
오래전에 두고 갔던 누군가가 생각나는 색깔이었기에.
아이의 푸른 눈은 별을 닮았다.
※※※※
“허억, 허억.”
모두가 잠들어 있는 한밤중에 블라드는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깨었다.
“······잠은 다 잤구만.”
오래전의 꿈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에도 버거웠던 그런 때였다.
잠에서 깨어난 블라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사내들의 쿰쿰한 냄새와 코골이가 가득한 천막이었다.
“장미의 미소에서는 분 냄새라도 났지.”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 블라드는 검을 집어 들고는 밖을 나섰다.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또한 검사의 기본소양이다. 블라드.]“······.”
블라드는 목소리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냐?”
“리만.”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기도.”
“······용병보다는 사제가 어울리겠어 리만.”
불침번을 서던 인원에게 행적을 밝힌 블라드는 달빛 아래 비치는 언덕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고는 검을 쥐고는 눈을 감았다.
[어렵게 살았더군.]“봤어요?”
목소리는 블라드의 꿈을 엿봤다 했다.
[꿈은 강렬한 소망의 발현이니까.]“내가 무엇을 소망했는데요.”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고 싶긴 하네요.”
아무도 없는 달빛 아래에서 기도하는 사내가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금발 머리가 처연한 사내였다.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미친놈처럼 혼잣말해야 해요?”
[네가 너의 영혼 안에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 때까지]“세계를 만들라니, 내가 무슨 신인가?”
[생각만으로 뜻을 통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다. 오직 굳건한 의지만이 너의 세계를 밖으로 표현하게 만들 수 있는 거다.]그렇게 보이는 척하는 사내였다.
“오랫동안 이 미친 짓을 해야겠구만.”
[그건 너에게 달린 일이지.]기도하는 리만.
남들 앞에서 혼잣말하며 중얼거릴 수는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방법이었다.
“기사들은 다 그래요? 막 영혼 안에 세계가 있어요?”
[오러를 다루는 자들은.]“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었다.
기도라는 행위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블라드에게 다른 용병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연출해주기도 했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
그것은 귀중한 것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표현법이었다.
“그런데 아까는 알려준 대로 했는데 제대로 안 되잖아요.”
[그게 왜 안 되지?]그러나 지금, 소년은 후회하고 있었다.
[검을 딱 들고 몸을 기울이면 상대가 슥 하잖아. 그때 슉 하면 된다니까. 몇 번이나 말을 해줘도 왜 모르는 거냐.]“······그게 말이야. 지금?”
정작 기도로 연출하며 얻고자 했던 것이 실패하고 있었기에.
그런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검사라 할지라도 그들 모두가 훌륭한 스승은 될 수 없다는 말.
그 말이 정답이었다.
목소리가 훌륭한 검사였는지조차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게 지금 사람이 알아들으라고 하는 말이냐고요.”
[······아니, 기우뚱할 때 슈슉- 하라니까.]“신이시여. 여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쓰레기 같은 악마를 잡아가소서.”
같지도 않은 설명을 듣는 블라드의 이마에 한 줄기 힘줄이 솟아올랐다.
“이걸 죽여, 살려.”
[다 들린다.]목소리도 자신이 설명을 끔찍이 못 하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모양인지 묘하게 움츠러든 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지금 한 번 보여줘요.”
[녹초가 돼버릴 텐데 괜찮겠어?]“어차피 내일은 토벌 안 나간댔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년과 목소리에는 배움을 주고받을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 오른쪽 눈을 감아봐.]블라드는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오른쪽 눈을 감았다.
“으음······.”
그러자 순간 시야가 멀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세상을 보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잘 느껴봐라.]“······.”
오른쪽 눈을 감은 블라드가 달빛 아래 조용히 검을 빼 들었다.
방금과는 다른 기세, 다른 분위기.
지금만큼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블라드는 주위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과 딛고 있는 대지도.
[의외의 움직임으로 가능성을 선점하고.]세상을 지배하는 감각이 있었다.
[한발 앞서는 통찰력으로 전장을 통제해라.]그리고 휘두름.
[그것이 일격필살의 묘리다.]오직 홀로 빛나야만 하는 달빛 아래 번쩍이는 섬광이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을 일섬이었다.
그러나 블라드는 느낄 수 있었다.
일순간 갈라지는 공기의 흐름을.
찢어지며 내짖는 바람의 비명을.
[눈을 떠라. 블라드.]다시금 오른쪽 눈을 뜬 블라드는 휘청거리며 제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아. 겁나 빡세네.”
블라드는 경련이 일어난 종아리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잠시였음에도 한계를 뛰어넘어 과부하가 걸린 근육들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느꼈냐?]그러나 통증 속에서도 블라드는 미소 짓고 있었다.
“대충은요.”
보았고, 느꼈으며, 또한 엿볼 수 있었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잠시 빌린 블라드의 육체 위에 생생한 경험을 때려 박아 넣었다.
그리고 영민한 소년은 자신에게 남겨진 흔적을 더듬으며 배울 수 있었다.
“다음에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었지.]말로 알려주고 시범으로 보여줌으로써 보여주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가르침이었다.
직접 경험한다는 것.
그것만큼 강하게 남는 가르침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타고난 재능과 생생한 가르침을 통해 블라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 이렇게 될 것이라고 정해져 있다는 듯이.
“오늘은 달이 참 밝네요.”
블라드는 경련하는 다리를 붙잡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달만 보면 그놈 생각이 나네.”
[······.]푸른 달빛을 닮은 기사가 있었다.
그는 소년이 최초로 본 또 다른 세계였으며 자신의 세계였던 호르헤를 부순 자였다.
“······나는 언젠가 달을 부술 거예요.”
[할 수 있을 거다.]블라드는 언제나 빛나는 별을 바라보던 소년이었다.
늙은 대장장이가 만든 별을 바라보기 전에도 말이다.
“호르헤의 복수도 할 겸 말이죠.”
그 별은 뒷골목에서 가장 당당하고 거대한 별이었다.
소년은 자신이 동경했던 부서진 별을 가슴에 품었다.
“오늘은 이만하죠.”
[좋아.]그리고 소녀의 눈물로 산 별을 어깨에 걸쳤다.
별들을 짊어지고 언덕을 내려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푸른 달빛이 지켜보고 있었다.
※※※※
“······그래서 저의 임기응변을 통해 홉고블린에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늦은 밤.
요제프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자신에게 보고하는 기사를 바라보았다.
두툼한 볼과 갑옷으로도 가려지지 못한 비대한 몸.
그리고 당당하지 못한 눈빛까지.
과연 검을 들고 살아가는 자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보르단 경.”
“네. 요제프 님.”
요제프는 흘러나오는 한숨을 집어삼키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병신으로 보이는가?”
“······.”
요제프는 지금 자신이 불같이 화를 내야 할 상황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화보다는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보고를 이딴 식으로 하는 거지?”
“요, 요제프님······.”
눈앞에 있는 기사는 자신을 능멸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공을 부풀리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거나 토벌대의 지휘관인 자신 앞에서 거짓을 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네를 따라간 용병만 스무 명이 넘어. 그들이 하는 말 하나가 나의 귀로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단 말인가?”
“······.”
유구무언이었다.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는 보르단을 보며 요제프 옆에 서 있던 자야르의 숨소리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요제프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죽이라 말만 한다면 저 보기 싫은 면상이 바닥에 구르게 될 것임을.
“······오늘 나의 말을 유념하게.”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제프 님!”
그러나 요제프는 보르단이라 불리는 기사를 죽이라 말할 수 없었다.
무능하고 멍청하며 나이까지 많은 이 빌어먹을 자식은 가문 내에서 자신을 따르는 몇 안 되는 기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쓰레기······.”
보르단이 천막에서 나가자마자 요제프는 머리를 짚으며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다.
무를 숭상하는 바예지드 가문이라 할지라도 모든 기사들이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란 검을 다루는 자를 뜻하는 것이지만, 또한 칭호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저놈 가문이 차라리 폭삭 망하기라도 했으면 좋겠군. 그러면 망설임 없이 베었을 텐데.”
바예지드 가문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는 돈과 인맥이 있다면 보르단 같은 경우의 기사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힘이자 실력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버지는 나를 쓰레기통으로 보시는가? 그래서 내 앞으로 쓰레기들만을 밀어 넣으시는 건가?”
이제야 분이 차오른 요제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덜덜 떨리는 입술로 말을 내뱉었다.
“진정하시지요.”
“······나는 검이 필요해. 저런 쓰레기 같은 검이 아닌 아주 날카로운 검이.”
그늘 가득한 요제프의 눈가에서 불꽃과도 같은 열망이 들끓고 있었다.
“그것만 있다면 내가 형님에게 뒤처질 이유는 없을 테니.”
원통하였다.
실력이 모자란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지 못한 것으로 결정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여태껏 바예지드 가문을 이었던 가주들은 모두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들의 반열에 있는 자들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페테르 바예지드가 그랬으며 자신의 형인 루트거 바예지드 또한 다음 대를 대표할 기사가 될 재능이 있는 자였다.
“신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요제프 님은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으신 분입니다.”
자야르의 말이 맞았다.
요제프는 건강한 몸을 타고 나지 못했을 뿐, 루트거가 가지지 못한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영민한 머리, 침착한 심성, 강인한 정신.
그리고 훌륭한 외가의 지원까지.
물론, 그 모든 것들은 무를 숭상하는 바예지드 가문에 있어 후순위로 평가되는 것들이기도 했다.
“알아봤나?”
“네.”
요제프는 생각했다.
스스로가 검이 될 수 없다면 그 대신 검을 드는 자가 될 것이며.
“귀족인가?”
“아닙니다.”
“아니면 어느 검술길드의 유망주인가?”
“어디에 묶여 있는 자가 아닙니다.”
자야르의 보고에 요제프의 입술이 올라갔다.
“주인이 없는 자로군.”
“그렇습니다. 쇼아라의 뒷골목 출신이라 합니다.”
주위에 내가 들 검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들 것이라고.
그것으로 완벽해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좋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보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자야르가 조용히 천막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요제프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오직 혼자만 존재하는 천막 안에서 가만히 숨을 고른 채 생각했다.
“너는 무엇을 원할까. 블라드.”
요제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을 내어줘야 네가 나를 거부할 수 없을까. 블라드.”
그는 언제나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자였다.
흔들리는 촛불 속에서 기이한 열망을 가진 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