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21
너 정도면 어디쯤이냐 (2)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을 곳곳에 가득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새파랗고 곳곳에 장식된 꽃들은 오늘따라 색깔이 선명한 그런 날이었다.
마치 목소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인 것처럼.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블라드는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다.
‘······.’
얼굴에 웃음이 만연한 사람들을 보며 블라드는 괜스레 뺨을 긁적거렸다.
한 몸처럼 어우러지는 저들의 세계에 들어가기에는 블라드는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본인이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도 했고.
“대장. 고마워.”
“뭐가.”
고트의 목소리에 혼자만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블라드는 고개를 돌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길을 헤매던 사이였으나 어느샌가 고트는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고트는 그렇게나 낯설어 보였다.
“돼지 말이야.”
블라드는 고트가 눈을 찡긋거리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사과 한 알을 입에 문 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돼지 통구이.
돼지가 돌아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까닥거리는 마을 아이들의 모습이 흥겨워 보였다.
“······촌장이 주더라고. 대신 1골드 까줬어.”
오늘의 결혼식을 보며 블라드는 예전의 호르헤를 떠올렸다.
호르헤는 조직원들에게 무언가 축하할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보스의 이름으로 술 한 병씩을 보냈었고 그걸 받은 녀석들은 그렇게 좋아하고는 했었다.
“마리가 엄청 좋아해. 기사님의 축복을 받은 거잖아.”
“······그래?”
그렇다면 됐다.
역시 호르헤가 하는 방식이 맞는 거였구나.
처음으로 가져본 보고 배울만한 남자 어른의 존재는 지금도 블라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신랑이 마르시나에 친척이 있다고 했지?”
“그랬지.”
“그러면 이번 결혼식 끝나면 당분간은 그쪽으로 가족들 보내놓으라고.”
블라드의 말을 들은 고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드는 단순히 이방인이었기에 이 분위기에 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즐기는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블라드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 봐. 이제 시작하는 것 같은데.”
블라드에 의해 이틀이나 앞당겨진 결혼식이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시작되어 다행이었다.
“그러네. 가봐야 하겠어.”
그 말과 함께 저 앞으로 마을의 반푼이이자 사기꾼이 바삐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당당한 남자일 것이다.
블라드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한 고트는 여동생의 앞날을 밝혀주기 위해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뛰어 들어갔다.
“오늘의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근처 마을에서 모신 사제의 축언을 시작으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붉은색 천을 밟으며 입장을 기다리는 신랑과 신부.
“······이런.”
그러나 서글프게도 블라드의 눈에는 행복한 누군가의 모습보다는 다가올 위협의 전조가 먼저 보였다.
저 멀리서 자신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슈테판이 보이고 있었다.
“꼬마야.”
“네?”
“바구니에 있는 거 한 송이만 줘.”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아이를 부른 블라드는 그 위에서 가만히 꽃을 골라 잡아들었다.
마침 눈에 띄는 꽃 한 송이가 있었다.
축하해 마리!
잘 살아야 한다!
사제의 부름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신랑과 신부.
이제 곧 떠나야 하는 기사는 그들을 위해 저 멀리서 붉은색 장미 한 송이를 던져주었다.
축하와 환호. 그리고 아름다운 광경을 뒤로 한 채.
“기사님의 말대로 정찰병을 넓게 퍼트려 놓길 잘했습니다. 지금 신원 불상의 무장인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두 시간 내면 닿을 것 같습니다.”
슈테판의 보고를 들으며 블라드는 얼굴을 굳힌 채 조용히 결혼식장을 빠져나갔다.
“결혼식은 어찌할까요? 지금 끝낼까요?”
슈테판의 말에 블라드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다른 세계에 서 있는 사람들.
블라드는 가능한 한 그들을 위해 결혼식만큼은 끝마쳐주고 싶었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저런 광경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십 분만 있다가 끝내지.”
밖으로 나서는 블라드의 뒤로 사람들의 환호성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블라드는 자신이 던져 놓은 붉은색의 장미 한 송이를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
‘······빌어먹을.’
콜린은 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참아내며 침을 뱉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앞에 둔 콜린의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금 저기에 매달려 있는 놈들이 우리 애들 맞는 거냐?”
“······그렇습니다. 저희가 보낸 정찰병들입니다.”
쉬운 임무일 거라 생각했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맡고 싶지 않았던 시시한 임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콜린과 부하들이 기대하고 상상했던 광경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기사라도 숨겨놨었나 보군.”
다급하게 세워놓은 태가 나는 목책.
얼마든지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은 허접한 목책이었지만 그 앞에 매달려 있는 시체들이 강렬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죽음을 매달아 놓은 목책은 이곳을 쉽게 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어쩔까요?”
“뭘 어쩌란 거냐. 여기서 후퇴라도 할까?”
세 명의 정찰병을 보냈건만 단 한 명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잡히고 말았다.
일개 마을의 병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병사들이었으니 분명 마을 안에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있다.
“내가 앞장선다.”
그러나 누군가가 보내는 노골적인 경고에도 콜린은 주저하지 않았다.
쉬운 임무라는 것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임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데어마르에서의 명예 결투 때문에 입지가 좁아져 있던 콜린은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리 나와라!”
일개 산적이라 볼 수 없는 강렬한 기세.
더는 정체를 숨기지 않겠다는 듯 콜린은 큰소리로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감히 어떤 놈이 내 부하들의 목을 잘라놓은 거냐!”
흥분과 분노에 가득 찬 멧돼지의 외침이 등나무 마을을 향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웃음으로 가득하던 마을은 어느새 숨소리조차 죽인 불안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지금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네놈들의 목도 모조리 잘라버리겠다!”
문을 열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듯 당당히 외친 콜린이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담담할 뿐이었다.
“필로스의 기사. 흙멧돼지 콜린.”
사내의 목소리와 함께 목책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게.
“오랜만에 뵙지만 전혀 반갑지는 않군요.”
“······너는 누구냐.”
홀로 마을에서 걸어 나오는 금발의 사내.
한눈에 보아도 기사처럼 보이는 사내는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들고 있던 물건을 콜린에게 집어 던졌다.
투욱-
콜린의 발치로 굴러오는 목들.
하나같이 눈을 부릅뜬 채 굴러오는 부하들의 목을 보며 콜린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다들 한 번에 당했군.’
목에 그어진 상처는 망설임이 없었다.
단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단칼에 베어냈다는 뜻이었다.
앞에 있는 기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실력만큼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콜린. 그러니 지금 돌아가신다면 당신의 무례를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나!”
금발에 푸른 눈.
귀족처럼 보이는 화려한 자태였지만 품은 기세는 짐승처럼 흉포하기 그지없는 기사.
저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지닌 녀석이라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섭섭하군요. 그날 저를 위해 검을 뽑아주시지 않았습니까.”
“······뭐?”
묘하게 여유 있는 미소가 화를 자극한다.
앞에 있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저런 미소를 짓고 있는 기사를 콜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쇼아라의 블라드.”
바예지드의 애꾸눈.
자신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던 그 개 같은 자식.
“저는 자야르 경의 종자였던 사람입니다.”
이제 보니 그놈과 똑 닮았다.
하는 짓도, 흔드는 방식도.
그리고 여유로워 보이는 저 미소까지도.
“네 이노옴······.”
이제야 블라드를 알아본 콜린의 두 눈이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레몬향이 감돌던 땅이 기억난다.
자신을 보며 비웃고 있던 애꾸눈, 혀를 차던 주베르.
그리고 빛나고 있던 파블로와 금발의 애송이까지도.
“개 같은 바예지드!”
이제야 기억난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기사의 제자.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만도 했다.
어느새 한 사람의 기사가 된 소년에게는 예전의 초라했던 모습은 그저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으니까.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는 듯, 그렇게 당당한 모습이었다.
“죽여버리겠다! 북부 잡놈들아!”
시시했을 뿐인 임무는 어느새 새빨갛게 달궈진 복수의 장이 되었다.
그날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 나는 너를 죽이고 차마 주워 담지 못했던 그날의 패배를 지워내겠다.
“콜, 콜린 님!”
성이 난 멧돼지가 두 눈 가득 목표를 포착했다.
필로스의 흙멧돼지 콜린.
후퇴 따위는 모르는 돌격대장이 절호의 움직임으로 블라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젠장! 따라 들어가! 지금 당장 공격해라!”
“콜린 경을 따라라!”
산적처럼 위장하고 있던 필로스의 병사들도 자신들의 기사를 따라 서둘러 돌격하기 시작했다.
훈련을 받은 자들답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름의 진형을 유지하며 목책으로 달려드는 병사들.
“끄아아아악!”
“함정, 함정이다!”
그러나 블라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경험 많은 용병들과 마을 사람들을 닦달해 만든 함정들이 곳곳에서 필로스의 병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까아앙-!
“죽어! 이 개자식아!”
“쇼아라의······블라드라니까.”
온몸으로 멧돼지의 돌격을 저지한 블라드가 이를 악물고는 힘겹게 미소 지었다.
비록 달려오는 기세까지는 완전히 죽이지 못해 마을의 안까지 진입을 허락하고 말았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슈테판! 문 닫아!”
“알겠습니다!”
허접하지만 기능에는 충실했던 목책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지휘관과 병사들을 가로막는 나무문 사이로 비명과 핏물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오늘 너를 죽이고 네놈의 목을 주군에게 가져가겠다!”
“······이제 내 목 정도면······ 가져갈 만한 값어치는 있습니까?”
과연 멧돼지라 불릴 만하다.
고립되었으나 뒤 따위는 보지 않는다는 듯 치켜떠진 두 눈.
섬세함은 없었어도 타고난 용력이 블라드를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콜린은 마주한 블라드를 보며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야르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한 미소는 어느새 흉악하게 일그러져 본연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누구의 미소도 아닌 오직 블라드만의 미소.
시작은 고귀했으나 끝은 잔인할 포식자의 미소였다.
“그럼 당신의 목이면 어느 정도지?”
“뭐?”
오직 포식자만이 지을 수 있는 잔인한 미소가 블라드의 얼굴에 떠오르고 있었다.
“너 정도면 어느 정도쯤이냐고.”
가장 빠른 용 린드부름을 찌르고.
가장 날카로운 용 니드호그를 베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은 인간과 생사결을 펼쳐본 적은 없었던 블라드는 언제나 궁금해했었다.
내가 어느 정도인지.
어디까지 다다랐는지.
“너를 죽일 나는 어느 정도냐고 묻지 않냐!”
블라드는 여전히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남자들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그들을 닮고 싶고, 그리고 넘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까지 올라온 것인지.
소년이었던 기사는 이제 그것을 확인할 시기가 되었다.
감고 있는 왼쪽 눈으로 블라드의 세계가 찬란히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