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22
너 정도면 어디쯤이냐 (3)
각자의 검을 빼 들고는 둥글게 결투장을 감싸고 있는 기사들.
여전히 패배의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콜린이었지만 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기로 맹세했음으로.
“소드마스터의 규율이라니······ 진짜 어이가 없군.”
언제나 여유롭던 주베르였지만 그조차도 지금의 상황이 난감한 듯 고개를 흔들어대었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꽃을 위해 검을 치켜든 기사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문장은 가지각색이었으나 지금만큼은 하나의 규율 아래 자신들의 의무를 다할 차례였다.
-너의 이름을 말해라. 소년아!
끌어내려는 자와 피워내려는 자.
지키는 자와 보호받는 자 모두가 하나의 세계 안에 서 있는 모습.
건국왕 프라우센이 그토록 원했던 모습이 지금 데어마르의 결투장 안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피워냈군.”
누군가의 읊조림과 함께 콜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그곳에는 이제야 피어나기 시작한 희미한 빛이 어려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비척거리며 걷는 소년.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소년.
그 녀석이 빛나고 있었다.
피투성이의 손으로 이제야 피워낸 세계를 든 소년.
그 녀석의 이름은 쇼아라의 블라드라고 했다.
※※※※
끼기기기긱-
“······!”
검의 삐걱거림이 가까워질수록 콜린의 두 눈에는 분노가 아닌 경악이 차올랐다.
마치 갑옷처럼 두 팔을 감싸 안은 오러의 형태.
지금 블라드는 필로스 최고의 용력을 가진 콜린을 힘으로 밀어 올리는 중이었다.
“할······ 만하네!”
타고난 힘은 어쩔 수 없으나 피워낸 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블라드는 지금 라문드의 강체술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어디서 희한한 기술을 배워왔군!’
블라드의 기술에 당황한 콜린은 서둘러 검을 떼어내고는 거리를 벌렸다.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봤자 잔재주.
같잖은 재주들은 결국 진정한 힘 앞에서 깨어지고 말 것임을 콜린은 믿었다.
“건방진 놈!”
상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살린다.
살아온 방식대로 믿어왔던 방향대로 검을 휘두르는 콜린.
갈라지는 공기의 흐름이 블라드의 머리를 쪼갤 듯 쇄도해 들어갔다.
터엉-!
“······!”
그러나 콜린의 믿음은 끝내 보답받지 못했다.
꿈에서도 듣기 싫었던 소리.
기억 속, 애꾸눈의 사내가 웃고 있다.
“익숙하지? 이 소리.”
“······이 개자식이!”
지금 앞에서 푸르게 빛나는 것이 검인가 눈인가.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세계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감고 있는 왼쪽 눈에서 튀어 오르는 하얀빛의 번개가 콜린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고작 1년 만에!’
어린 녀석들은 눈 깜짝할 새에 큰다지만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지금 자신과 검을 맞댄 녀석이 그때의 소년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젠 내 차례겠지!”
‘······!’
뜨고 있는 블라드의 오른 눈에서부터 새벽의 여명이 비쳐왔다.
제국헌병대장 오귀스트에게서 허락받은 약점간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멧돼지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빈 곳이 있었다.
‘다리!’
강력한 힘을 받쳐주기 위해서는 단단한 기반이 필요할 터.
콜린의 강인한 용력은 굳게 디딘 두 다리에서부터 나온다.
흐르고 있는 오러의 물결이 그렇게 알려주었다.
‘이런 젠장!’
강했으나 유연하지는 못했던 콜린은 집요하게 자신의 하체를 노리는 블라드의 공격에 심히 당황하고 말았다.
여태껏 자신에게 이런 식의 공격을 펼친 녀석은 없었으니까.
끄가가각-!
검과 검이 부딪힌다.
서로가 바라보는 시선 사이로 검에서부터 튀어 오르는 불꽃들이 가득하다.
‘나는 어느 정도냐!’
가장 빠른 용을 찌른 기민한 검놀림에 콜린의 허벅지가 베어져 나간다.
가장 날카로운 용을 베어낸 잔인함이 집요하게 기사의 무릎을 노리고 있다.
블라드가 보고 배우고 그리고 쓰러뜨려 왔던 모든 세계가 지금 별빛과도 같은 모습으로 검날에 맺혀있었다.
“크악!”
“대답해봐라!”
이제는 알고 싶다.
이 커다란 세계에서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얼마나 더 해야만 하늘 끝에 닿을 수 있을지를.
이제 누군가는 나의 물음에 대답해 줄 때가 왔다.
“이 건방진 자식이!”
까아앙-!
터져 오르는 검붉은 핏줄기와 함께 블라드의 세계가 멈춰 섰다.
감히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이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는 블라드를 보며 콜린은 노호성을 터트려대었다.
“고작 너 따위에게 당하려고 여기까지 온 줄 아느냐!”
검게 물든 피부 위로 새빨간 핏방울들이 터져나갔지만, 콜린은 힘을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또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
위를 향한 꿈을 꾸는 것은 오직 소년만의 특권이 아니었다.
“뒤져라! 이 빌어먹을 애송이놈아!”
콜린의 노호성과 함께 봄기운에 녹아버린 여린 땅들이 폭발하듯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솟아오르는 근육과 함께 터져나가는 콜린의 핏줄과 같이.
“크윽!”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진 콜린의 기세에 블라드는 자신이 때를 놓쳤음을 깨닫고 말았다.
흐름은 파도와도 같아서 나에게서 오는 물결을 타지 못하면 남에게로 넘어가 버리는 법이다.
“나 정도면 어느 정도냐고 물었냐!”
쉴 새 없이 이어지던 공방의 흐름이 어느새 콜린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누구에게나 걸어온 역사가 있고 자신이 세워온 세계가 있다.
콜린 또한 자신의 세계를 쌓아왔던 사람이었다.
“나, 필로스의 콜린은 바로 이 정도다!”
거대한 함성과 함께 콜린의 검 끝에서부터 세계의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오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하게 빠져들어 간 콜린의 의식은 이미 내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과거의 패배에 깔려있던 콜린은 오늘의 패배까지 떠안을 자신이 없었다.
“죽어!”
“······!”
콰아아아앙-!
블라드는 마치 폭발하듯 터져나가는 지면을 피해 데굴데굴 굴러나갔다.
비처럼 쏟아지는 흙더미들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허억, 헉.”
이미 싸움은 끝났다.
오직 결투만이 남았을 뿐.
문에 달라붙어 서로를 찌르던 병사들은 모두 석상처럼 멈춘 채 지금의 대결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둘의 싸움이 오늘의 시작이자 끝이 될 것이라는 걸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흐흐······.”
차마 자그마한 마을이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결투.
모두가 숨죽이며 바라보는 가운데서 블라드는 웃고 있었다.
떨어져 내리는 흙비조차도 가릴 수 없는 웃음이었다.
“왜 웃는 거냐!”
갑자기 실성한 듯 웃는 블라드를 보며 콜린이 크게 외쳤지만 푸른 눈동자에서부터 시작된 미소는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야 웃음을 멈춘 블라드의 검이 휘둘러진다.
쌓여있던 흙먼지들을 털어낸 별의 검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도움도, 배려도 없는 전장.
그러나 블라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신 정도는······. 이제 감당할 수 있겠어.”
“뭐?”
블라드는 그 말과 함께 검을 치켜들었다.
정령들이 만들고 세계수가 내어준 검.
마치 장식 없는 검을 쥐었을 때의 감각을 다시 한번 느낀 블라드는 미소를 지우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대답을 해줘서 고맙다.”
블라드는 눈앞의 사내를 보며 오늘의 답을 얻었다.
필로스의 콜린.
오러를 깨우치고 자신만의 세계를 세운 훌륭한 기사.
그러나 나는 이미 이 남자를 뛰어넘었다.
“그러니 이제 끝내자.”
그리고 지금 그것을 증명한다.
초대 소드마스터가 정립한 검로(劍路) 위로 블라드가 쌓아 올린 세계들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래 덤벼봐라! 쇼아라의 블라드!”
한 송이의 세계를 피워내기 위해 비틀거리며 걷던 소년의 발걸음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위태로웠던 발자국들은 소년의 세계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지금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그래. 애송이 같은 거 말고.”
콜린의 함성을 들은 블라드의 눈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된, 그래서 스스로의 가능성에 눈을 뜬 작은 용의 푸른 눈동자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쇼아라의 블라드라고 불러라.”
오늘 블라드는 기어이 결혼식을 지켜내었다.
자신의 검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지켰고,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냈다.
그러니 이제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붉은색의 장미 한 송이를 던져줄 차례다.
“······!”
순간, 빛이 번뜩였다.
시작은 마주 보고 있었으나 어느새 스쳐 지나간 시선 속에서 블라드와 콜린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보고 있음에도 막을 수 없고 알아챘음에도 피할 수 없는 그런 빛이었다.
“끄어어억······.”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콜린의 눈.
더 이상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 날카로운 말뚝 하나가 그의 심장에 박혀있었다.
점점 저물어가는 심장 박동.
천천히 허물어져 가는 검은색의 형체가 붉은색의 액체를 쏟아내며 자그마한 마을 위로 쓰러져 갔다.
필로스의 기사 콜린.
그는 오늘 블라드가 만들어낸 증거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승자와 패자.
정당한 결투의 대가로 콜린의 숨을 앗아간 블라드는 어깨 위로 닿는 빛을 느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하늘 위에 떠 있는 달 하나.
“조금만 더 하면 닿을 수 있겠어.”
그날과 마찬가지로 처량한 푸른 빛을 가진 달이 블라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블라드는 자신을 내리쬐는 달빛이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
달빛이 비치는 커다란 저택.
그곳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 속에는 모래 알갱이가 가득하다.
척박한 땅에서부터 시작된 건조한 바람은 언제나 서부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백작님.”
커다란 로비.
오직 둘만이 존재하기에는 넓은 공간에서 가이다르 백작은 자신에게 고개 숙이는 기사를 바라보았다.
“때가 되었습니다. 백작님.”
“······자세히.”
로비의 가장 높은 곳.
피를 이은 아들조차도 오를 수 없는 그 계단을 따라 푸른 달빛의 기사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백작에게 다가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들어 낸 피와 시체들이 지금의 계단을 깔아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용혈공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작에게 가까이 다가간 고딘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넓디넓은 로비에서 떠도는 모래 알갱이들이 그의 목소리를 감춰주고 있었다.
“그래?”
고딘의 말을 들은 가이다르 백작은 강하게 의자 팔걸이를 붙잡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찡그려진 그의 얼굴 속에서 두 개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군.”
냉혈한 서부의 지배자.
빼앗는 것을 개의치 않는 찬탈자.
지그문드 가이다르 백작.
그는 오랫동안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고딘. 지루하다 못해 괴로울 지경이었어.”
“충분히 이해합니다. 백작님.”
삼켜도 삼켜도 언제나 배고플 수밖에 없는 것은 서부에서 태어난 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땅은 언제나 자리 잡은 곳이 아닌 저 멀리에 있는 땅을 갈구하게 만들고는 했으니까.
이 끊이지 않는 허기짐은 마치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가라 고딘. 가서 내 아들의 검을 찾아와라.”
빼앗는 자가 빼앗겼음에도 참으로 오랫동안 참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왔고, 서부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겨우 형체나마 유지하고 있던 울타리는 오늘로써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데어마르로 가라. 가서 북부의 관문을 자처하는 계집년을 내 앞으로 끌고 와라!”
“알겠습니다. 백작님.”
주군의 명을 받은 기사.
고딘은 언제나 그랬듯이 명을 수행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가이다르의 뒤에서부터 비치는 창문 밖에서 푸른 달빛이 고딘을 비추고 있었다.
그날 장미의 미소로 내려왔던 달빛과도 같은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