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27
새로운 둥지 (2)
“잘할 수 있을까요?”
햇빛이 가득한 복도를 걷는 두 사람.
“블라드 경에게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다른 기사들 옆에서 좀 더 보고 배우는 것이······.”
“충분할 겁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알리시아와는 달리 요제프의 얼굴은 평온할 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블라드 경은 이미 한 조의 우두머리였거든요.”
“아.”
알리시아는 요제프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은 하이날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바예지드의 기사인 블라드.
요제프 앞에서 그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럼?”
“제가 고용했었던 용병이었습니다. 바르나에서 시작한 몬스터 토벌에서 만났었죠.”
요제프는 지난 겨울날을 생각하며 복도 밖을 바라보았다.
17살 주제에 31살짜리 신분패를 가지고 온 녀석.
지금 생각해봐도 당돌하기 그지없는 녀석의 행동을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전부 거친 자들뿐이지 않나요? 야만인에 용병에, 다들 처음 다루는 부하라 하기에는······.”
“알리시아 님.”
알리시아의 걱정 어린 의견에 걸음을 멈춘 채 그녀를 돌아보는 요제프.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대었다.
“그 녀석을 걱정하시는 이유. 잘 알고 있습니다.”
“······.”
처음으로 나서는 전쟁이라 들었다.
그럼에도 한 조의 대장이 되어 따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리라는 것도.
아직은 어린 나이니 다른 기사들 옆에 붙어 있으며 안전한 곳에 있기를 바라는 알리시아였지만 블라드는 이미 누구의 걱정을 받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증명한 사람이었다.
“포악한 야만인, 닳고 닳은 용병들······. 확실히 아직 스무 살도 안된 기사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사람들이겠죠.”
요제프는 그 말과 함께 복도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이날과 바예지드의 병사들이 모여 있는 임시 주둔지.
그곳에 옹기종기 세워져 있는 천막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고 있는 곳이 보였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택까지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소속과 출신이 다른 남자들이 모두 뒤섞이기 시작했다.
“거칠기로만 따지자면 녀석도 전혀 만만한 상대는 아니니까요.”
“네?”
알 듯 말 듯 한 말과 함께 한 번 보라는 듯 창가에서 비켜서는 요제프.
“직접 보시죠.”
요제프의 안내에 따라 알리시아는 자연스레 창가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응?”
병사들이 모여 있는 임시 주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잔뜩 흥분해 있는 병사들 사이로 커다란 원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두 남자.
“······.”
알리시아는 손바닥으로 햇살을 가리며 멀리 있는 광경을 파악하고자 애썼다.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금발.
그 주위에서 노니는 반딧불들이 있었다.
지금은 밤이 아닌 한낮이었는데도.
※※※※
시원하게 한 방 후려쳐!
힘내라! 데어마르의 기사!
저 야만족 놈들한테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줘!
“후······.”
사방에서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고함에 심장까지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가다듬는 블라드.
그 앞에는 상의를 탈의한 채 험악한 인상을 짓고 있는 아게가 있었다.
불끈거리는 근육 위로 빈틈없이 새겨진 문신들이 살벌해 보였다.
“들어와 봐!”
야만인 특유의 손짓과 함께 블라드를 도발하기 시작하는 아게.
그 모습에 맞춰 원을 둘러싼 병사들의 함성이 커져만 갔다.
“이것들 엄청 시끄럽네.”
지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거칠게 침을 뱉어낸 블라드.
계급장을 뗀 채 지금만큼은 순수한 블라드로 서 있는 그는 천천히 쇼아라에서의 옛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숨을 한 번 몰아쉴 때마다 차오르는 과거의 광기.
기사의 푸른 눈동자 안에는 어느새 거칠기 그지없는 뒷골목의 양아치가 깃들기 시작했다.
“······흠.”
아게는 다가오는 블라드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말았다.
묘하게 자세가 잡혀 있는 가드.
라문드에게 직접 배운 근접 전투술은 확실히 블라드의 빈틈을 가려주고 있었다.
‘뭔 놈의 눈빛이.’
기사의 기술과 뒷골목의 기세를 동시에 품은 채 다가오는 블라드.
그를 보며 아게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온다!’
일격필살의 기술은 간격을 지배하는 기술이다.
비록 검을 들지 않았더라도 이미 블라드의 몸에는 자신만의 공간이 각인되어 있는 상태였다.
‘왼쪽!’
날렵하게 뻗어오는 주먹이 날카롭다.
그러나 아게는 박투술에 관해서는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있는 전사.
재빨리 오른팔을 들어 올려 턱을 가린 그는 곧바로 역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큭!”
오른쪽 발목에서부터 갑작스레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아게의 균형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어야지.”
“······!”
왼쪽은 속임수였다.
아니 어쩌면 속임수가 아니라 그저 빠른 것은 아니었을까.
아게의 반응을 통해 타격점을 바꾼 블라드는 낮은 발차기를 통해 아게의 오른 발목을 후려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아게는 히죽 웃는 블라드를 보며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린드부름을 몰았고 따라잡았으며 결국은 살해한 용살자.
블라드는 자신이 보았던 사람 중 가장 큰 놈을 잡은 사냥꾼이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짖지 마라.”
푸른 눈동자에서부터 시작한 기세가 하나의 선을 이루며 아게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억!”
기세를 뒤엎기 위해 서둘러 블라드를 껴안듯 달려든 아게였으나 곧바로 시작된 연속된 타격에 그만 눈앞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절대로 한 방에 끝내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밀고 들어오는 블라드의 공격.
펑! 펑-펑-!
매서운 주먹이 쉼 없이 옆구리와 복부를 후려갈기는 통에 아게는 숨을 들이켤 수 없을 정도였다.
내뻗는 주먹 하나하나가 마치 통나무가 달려드는 듯한 묵직한 타격이었다.
‘······!’
겉보기에는 단순히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모양새 같았지만 직접 대하고 있는 아게는 느낄 수 있었다.
체격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밑에서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보다 큰 상대와 싸워왔던 블라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 아게를 상대로 자신이 쌓아 올린 경험을 사정없이 풀어헤치는 중이었다.
“크억!”
야만인보다 거칠게.
닳고 닳은 용병보다 질척하게.
그렇게 뒷골목에서 뛰쳐나온 짐승이 기사의 기술을 뒤집어쓴 채 아게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내가 졌다.”
마침내 커다란 북부의 나무를 밀어 넘긴 블라드.
등바닥에서부터 차가운 흙의 감촉을 느낀 아게는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자신을 타고 누르고 있는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태양을 등진 블라드의 얼굴은 온통 새까말 뿐이었다.
“존댓말 해라.”
“······내가 졌습니다.”
아게에게서 떨어져 나온 블라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저 앞에 있는 야만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꼬운 놈 있으면 덤비고, 대신 이번에는 주먹이 아니라 검으로 상대해 준다.”
블라드의 살기 어린 눈빛에 야만인들은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물 뿐이었다.
계약에 따라 같이 오기는 했지만 제국민에게 고개 숙이지 않겠다 말했던 야만인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라도 어느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규칙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블라드는 힘으로써 그들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잠깐!”
“······또 뭐야.”
방금까지만 해도 널브러져 있었으나 외마디 고함과 몸을 일으킨 아게는 큰 소리로 블라드를 불러세웠다.
“대장은 네가······. 아니, 대장이 하는 거로 하는데!”
“하는데?”
아게의 눈동자가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주홍색을 찾기 시작했다.
부다아트 족의 전사 아게.
아직 그는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부관까지는 아니지!”
“······하.”
내가 졌으니 너의 말은 따르겠지만 그렇다 해서 이인자의 자리까지 순순히 내어줄 수는 없다.
아게는 적어도 슈테판에게까지는 고개 숙일 생각이 없었다.
“아 미치겠네.”
“그건 둘이서 알아서 해.”
아게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슈테판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앞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결국, 부하들에 의해 밀쳐지듯 앞으로 나온 슈테판.
그런 그를 보며 병사들의 함성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부관 자리에서 내려오면 봉급도 깎이는 거야.”
“······저놈 힘 많이 빼놓으신 거 맞죠?”
피 섞인 침을 뱉어내는 아게를 보며 슈테판도 천천히 목을 풀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되는 야만인과 용병과의 싸움.
또 다른 볼거리에 흥분한 병사들의 함성이 높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켜봐.”
곳곳에서 다가오는 사내들을 뿌리치며 원 밖으로 나온 블라드.
“······.”
“······.”
그렇게 한적한 바깥까지 나선 블라드는 저 멀리 복도 난간에서 놀란 듯 굳어 있는 고귀한 레이디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블라드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알리시아는 방금의 대결에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눈빛으로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잘할 것 같습니까?”
“······네.”
순식간에 야만인들을 제압한 블라드를 보며 알리시아는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명예로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어린 기사 블라드.
그러나 오늘 보인 모습은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거친 것이었다.
“잘하고 있네요. 앞으로 잘할 것도 같고.”
그리고 알리시아는 그런 블라드의 색다른 모습이 영 나쁘게 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인사와 함께 언덕을 향해 떠나가는 블라드.
그의 뒷모습을 통해 새로운 블라드를 발견한 알리시아의 눈동자가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
서부는 끝없이 뻗어 나가야만 한다.
광대한 땅을 지배하고 있으나 그들이 가진 땅은 풀 한 포기 제대로 나지 않는 황량한 벌판일 뿐.
그렇기에 서부는 언제나 서로가 가진 것을 빼앗고 약탈하며 살아왔었다.
몰락한 용이 그들의 고개를 밖으로 돌려주기 전까지는.
“남작님! 남작님!”
도시 나사우.
이즈니크 남작이 지배하는 항구 도시.
서부 해상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즈니크 남작이었지만 지금 들려오는 보고는 그의 귀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 털렸다고?”
“그것이······.”
“전부?”
“······그렇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단장의 보고에 멋들어지게 세워놓은 남작의 콧수염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무슨 개소리야!”
쾅 소리를 내며 책상을 후려친 이즈니크 남작.
차오르는 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는 속에서부터 시작된 일갈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도대체 누가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약탈을 했다는 거냐!”
산적인가?
아니면 근처의 영주들이 저질렀나?
한참 라브노마와 가이다르가 싸울 때라면 몰라도 이미 이 근방은 나름의 질서가 잡힌 상태였기에 보급품이 약탈당했다는 말은 남작으로서는 믿기 힘든 보고였다.
“누구야! 누가 털었는지도 모르나!”
분노와 함께 충혈되는 그의 두 눈을 보며 기사단장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것이······. 하이날의 병력이라고 합니다.”
“뭐?”
“하이날의······. 레이디 알리시아의 기사라는 자가······.”
기사단장의 보고에 남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말았다.
“하이날? 데어마르? 아니, 거기서 여기가 얼마나 떨어진 곳인데?”
그도 그럴 것이 데어마르와 나사우는 쉼 없이 말을 타고 달려도 일주일은 넘을 거리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다가올 일전에 대비해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할 하이날의 병사들이 여기까지 찾아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단 말이냐!”
먼 곳에서부터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바람같이 사라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약탈자들.
그러나 사태는 이미 벌어졌고 남작이 보낸 보급품은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워진 상태였다.
그들이 남긴 유일한 단서는 레이디 알리시아의 이름 하나뿐이었다.
“그것들을 당장 찾아내! 찾아내서 내 앞으로 데려와라!”
빼앗기는 것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는 서부.
그러나 약탈자들조차 약탈하는 악랄한 무리가 지금 서부의 밤하늘 사이로 숨어들어왔다.
뒷골목의 기사, 북부의 야만인, 그리고 닳고 닳은 용병들.
짙은 눈그늘의 사내가 한 땀 한 땀 기워놓은 악의 어린 타격대였다.
서부와 북부와의 전쟁.
다가오는 서부의 악의에 대항한 가장 빠른 북부의 봉화는 레이디 알리시아의 기사 블라드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