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3
무엇을 원하는가 (2)
아침은 괴롭다.
일어나는 것이 괴로우며 눈뜨는 것이 괴롭고 밖의 공기가 차갑다면 더더욱 그렇다.
“고트. 오늘 아침은 뭐야?”
“이상한 고기 넣은 스튜.”
“······기분 나빠졌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블라드는 아침 식단마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오늘 아침 안 먹는다.”
“또 사제님한테 가게?”
이 나간 막그릇을 들고는 배식하는 곳으로 가려 했던 고트는 부럽다는 눈으로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나도 기도나 할까?”
“기도나 라는 단어에서 너는 이미 글러 먹었다.”
블라드가 천막을 젖히자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침 햇살이 보였다.
“춥다.”
멋진 광경이었으나 겨울 들판에서 한 달 정도 야영을 하다 보면 이제는 지겨워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먼저 왔어!”
“아니 왜 우리 솥은 아직 끓지도 않는데!”
짜기만 한 괴상한 맛이었으나 고용주가 식사를 제공해 준다는 것 자체가 이곳이 훌륭한 근무환경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크흠.”
블라드는 스튜 한 그릇을 위해 악다구니 치는 용병들을 지나 어느 천막 앞에 섰다.
그 천막은 토벌대의 지휘관인 요제프 바예지드가 있는 천막보다는 작았으나 대신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사제님. 저 왔습니다.”
블라드가 천막을 젖히자 안에서부터 훈훈한 열기가 다가왔다.
“오오. 리만! 어서 오게. 마침 아침을 먹으려 하는 참이었지.”
천막의 주인인 안드레아 사제가 블라드의 모습을 보고는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사제님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나야 늘 평안하지.”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들어온 사내를 안드레아 사제는 손수 이끌어 탁자 앞에 앉혔다.
“여기 앉으시게나.”
안드레아 사제는 자신을 따르는 어린 부제에게 한 사람 몫의 아침을 더 준비하라 말했다.
“어젯밤에도 기도를 하러 갔다면서?”
“잠이 오질 않아 그랬습니다.”
“추웠을 텐데.”
“주님의 품에 안겨 있는데 추위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하! 나보다 자네가 더 사제같구만.”
안드레아 사제와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으나 블라드의 눈길은 어린 소년이 들고 오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밀빵!’
그것도 딱딱한 흑빵이 아닌 말랑말랑한 하얀 밀빵이었다.
토벌대의 지휘관인 요제프가 신실한 신자라 하더니만 과연 사제에게 쏟는 정성이 갸륵했다.
“기도하지.”
“저는 식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사제님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러······.”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신께 감사하며······.”
겉으로는 아니라 말하고 있었으나 50대가 넘은 안드레아 사제는 블라드의 얕은 수 정도는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며 블라드의 자존심을 챙겨줄 뿐이었다.
“이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선한 사업을 하는데 더욱더 힘쓰게 하시고······.”
안드레아는 슬쩍 눈을 떠 앞에서 기도하는 금발 사내를 바라보았다.
‘실로 훌륭한 젊은이다.’
사제 안드레아는 요제프가 고개를 숙이며 모셔올 만큼 명망 있는 자였다.
그의 명성은 설교나 인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스스로 행함에 있어 나오는 것이었다.
50대가 넘는 나이임에도 곳곳에서 펼쳐지는 몬스터 토벌을 따라다니며 삿된 존재들을 물리치고 병사들을 축복하는 그는 귀족들뿐만 아니라 평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가장 비천한 곳에서도 신실함을 잃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그런 안드레아 신부에게 있어 리만이라는 사내의 존재는 자그마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험한 인생을 사는 용병임에도 언제나 신의 뜻을 찾는 젊은이.
막돼먹은 자들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돌보며 언제나 신에게 고개 숙이는 리만의 존재는 안드레아에게 있어 하나의 계시와도 같은것이었다.
‘이 또한 신께서 내리신 인연일지니.’
그동안 어쭙잖게 기도를 한답시고 머리를 들이밀던 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던 자들이었다.
“먹게나.”
“네 사제님.”
그러나 눈앞의 리만이라는 사내는 자신이 없는 곳에서도 기도를 하며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자였다.
밥을 먹다가도 기도하고 잠을 자다가도 기도하며 심지어는 몬스터와 싸우는 순간에도 기도했다.
누가 보아도 진실된 자였다.
그런 자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그저 따뜻한 아침 식사 정도였으니.
‘여기 있기에는 아까운 젊은이야.’
그러니 자신이 이끌어줘야 한다.
죽을 때까지 피 묻은 전장을 찾아다닐 이 젊은이를.
“밀빵······이 귀한 것을.”
“많이 들게나.”
“넵.”
빵 한 조각에도 감사하며 눈물을 머금는 겸손한 젊은이를 보며 안드레아 사제는 미소를 지었다.
“참 그런데.”
“네. 사제님.”
저 밖에서 괴상한 스튜를 먹고 있을 용병들을 비웃으며 스프에 빵을 적시고 있던 블라드.
“자네 검 솜씨가 괜찮다는 것을 내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요제프 님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야.”
“네?”
그런 블라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안드레아 신부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자야르 경이 나에게로 찾아와서 자네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군. 그래서 내가 참으로 신실한 젊은이다.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해주었지.”
“······.”
볼이 터지도록 밀빵을 쑤셔 넣던 블라드는 안드레아 사제의 말에 잠시 가만히 멈추고 말았다.
“그래. 내가 자네를 추천했네.”
“오, 오오······.”
실로 괴상한 반응이었지만 안드레아 사제는 블라드가 기뻐하는 모습이라 착각하였다.
지금도 자신을 추천해 달라며 연락을 보내는 귀족 자제들이 있었지만, 안드레아는 쉽게 추천장을 써주지 않았다.
그는 세태와 야합하지 않는 강직한 사제였으며 어느 도시의 주교직을 거절할 정도로 오직 신의 뜻만을 찾는 자였으니까.
“요제프 님이 계신 바예지드 가문은 북부에서도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이지.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나은 환경일 거야.”
“감, 감사합니다. 사제님.”
안드레아 신부는 블라드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블라드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꿀꺽-
양 볼에 가득 담아둔 빵조각이 넘어가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리고 있었다.
※※※※
안드레아 사제와의 아침 식사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블라드는 또다시 기도하는 중이었다.
“너무 눈에 띄는 짓을 하고 다녔나 봐요.”
[별수 없었다. 나의 검술은 실전을 통해서만 터득할 수 있는것이니.]블라드가 도시 바르나에서 일으킨 몬스터 토벌대에 자원한 것은 당장 의탁할 곳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목소리가 검술 수련을 하는데 이만한 곳이 없다며 추천한 결과이기도 했다.
[사제와 친하게 지낸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확인해 봐야 했다니까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안드레아 사제와 연을 맺은 블라드는 그를 통해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 내가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확신하는 건가.]검은 벼락과 함께 블라드의 영혼에 깃든 존재.
스스로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말하는 목소리가 정말 악(惡)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앞으로의 행보를 정하는데 심히 유념해야 할 부분이었으니까.
“안드레아 사제는 주교직을 권유받을 정도로 명망 있고 신성력이 강한 자라 했어요.”
그런 자가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블라드 안에 깃들어 있는 목소리가 악(惡)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거나.
“뭐 안 걸렸으니 된 거죠.”
주교급의 사제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고매한 악(惡)이라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안드레아 사제를 만난 것은 여러모로 행운이었다.
“적당히 치고 빠질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도망갈까요?”
[음······그래도 너 정도 실력이면 용병패 위조 정도는 눈감아 주지 않을까?]“눈을 안 감아주면 목을 뎅강 할 텐데?”
명성 있는 사제와의 인연.
그리고 백작 가문 자제와 대면.
모두가 일개 용병으로서는 꿈꿀 수도 없는 호재였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거짓된 이름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 결국 사람 죽인 것까지 들통날 텐데요. 그러면 신분위조에다가 살인죄까지.”
[이제 보니 너 꽤 극악무도하구나.]“당신도 공범이잖아.”
[음. 도망치는 게 낫겠다.]너무 눈에 띄었다.
언제나 뒷골목에서 숨죽이며 살아와 몰랐겠지만 블라드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남들에게 주목받는 존재였다.
“그럼 오늘 저녁쯤에 튀는 거로.”
이번 몬스터 토벌 임무는 한 달에 한 번 보수를 받기로 되어있었다.
다행히 며칠 전 한 달 치 보수를 받았으니 떠난다고 하더라도 그리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꼬드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고트를 데리고 도망친다면 제대로 위조된 신분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지.
근무 조건이 좋아 아쉽긴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때다.
[그런데 도망치기는 힘들겠는데.]“왜요?”
한참 기도하는 척하며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던 블라드에게 목소리가 곤란하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뒤에서 뭔가 다가오고 있어. 기세로 보아 최소한 상급의 기사다.]“응?”
목소리의 경고에 블라드를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내 기척을 읽었나? 생각보다 훨씬 쓸만하군.”
빛나는 흉갑에 등에는 작은 방패를 진 애꾸눈의 기사.
“요제프 님께서 너를 보고 싶어 하신다.”
“······.”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자야르의 눈을 본 블라드는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흐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어제 그냥 튈걸.’
속으로는 낭패한 심정이었으나 블라드는 의연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요제프 님께서 저를 찾아주신다니 영광입니다.”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아무리 궁지에 몰려있을 때라도 무언가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카드 게임에서 흔들리지 않는 표정은 엄연한 기술 중 하나라고 호르헤가 그랬었다.
“안드레아 사제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기대하고 있었죠.”
“흐음.”
새파랗게 어린 용병 주제에 의연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자야르는 한쪽 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눈을 가늘게 떴다.
“따라와라.”
그리고 언제까지 저 당당한 모습이 유지될지도 궁금했다.
앞서는 자야르를 보며 블라드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이라도?’
그러나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블라드는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혹여나 달아날 생각은 하지 마라. 저 정도 수준의 기사라면 너의 발악은 헛된 발버둥에 지나지 않을 테니.]‘······제길.’
목소리에게 마음을 읽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하려고 하는 행동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고 있는 자야르 또한 그 정도는 예측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그의 왼손은 자연스럽게 검 손잡이에 걸쳐있었으니까.
‘별수 없군.’
겉으로 보기에는 당당하지만, 목줄 걸린 개의 심정으로 블라드는 주둔지에 세워져 있는 천막 중 가장 커다란 천막 앞에 섰다.
“요제프 님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라.”
“언제까지 숙입니까?”
“허락이 있기 전까지.”
요제프를 보기 전 간단한 유의 사항을 전해 들은 블라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자야르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외로군.’
겉으로 봤을 때는 크고 화려하기에 안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있을 것만 갖춰져 있으며 그것들 또한 과하지 않을 정도로 배치된 공간.
요제프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하는 광경이었다.
“요제프 님.”
“그래. 왔는가 자야르 경.”
천막 안에서 요제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블라드는 배운 대로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너무 거물인데.’
뒷골목에 있었다면 평생 보지도 못했을 인물이었다.
바예지드 백작의 둘째 아들인 요제프 바예지드.
그는 비록 작위는 없었으나 바예지드 백작령에서만큼은 일국의 왕자와도 같은 지위를 지닌 자였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만나게 되어 반갑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제프 님.”
저 앞에서 요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다운 강인한 힘은 없었으나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래 임무 중 불편한 점은 없나?”
“요제프 님의 배려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감사하고 있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나 막힘없이 대답하는 용병을 보며 요제프는 미소를 지었다.
‘대담해 보이는군.’
그러나 정말 대담한 인물일지는 지금부터 시험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름이 리만이라고?”
“······네.”
“성은 없나?”
“그렇습니다.”
“금발에 푸른 눈이라 어디 몰락한 귀족가의 자제인 줄 알았지.”
평생을 그런 오해 속에 살아온 블라드였기에 이번 질문만큼은 별 동요 없이 대답할 수 있었으나.
“그래 어디 보자. 올해로 나이가······.”
그러나 다음에 들려온 요제프의 질문에는 그만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블라드가 만드는 묘한 침묵 속에 천막의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올해로······31살입니다.”
독을 마시는 심정이었지만 블라드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용병패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자신이 독을 먹여 죽인 리만이라는 용병은 나이가 31살이었다고.
널브러져 있던 세 명의 용병 중에서 그나마 가장 젊은 남자가 바로 그였었다.
“오호?”
요제프가 내뱉은 기묘한 감탄사에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올리고 말았다.
짙은 눈그늘을 지닌 검은 머리의 남자.
“이것 참 동안이로군!”
그는 비록 병약해 보였으나 검은 눈그늘 속에 형형한 안광을 숨기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 안광은 정확히 자신을 향해 있었다.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