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30
최후의 라브노마 (3)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저열한 욕망을 풀러 오는 곳.
그런 곳이기에 가끔은 예상치 못한 사고도 생기는 법이었다.
이곳에 오는 사내들은 고작 빛바랜 은화 몇 개로 여자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고는 했었으니까.
“으아악! 이 미친 애새끼가!”
꺼질 듯 한숨을 내쉬는 희미한 등불 아래, 창관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내.
그 사내 앞에 주저앉아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여인의 목에는 새파랗게 부풀어 오른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꺾여서는 안 될 곳까지 꺾여 들어갔을 상처였다.
“이 미친놈이 감히 나를 찔러?”
차마 손이 닿지 않는 사내의 날갯죽지에는 자그마한 쇠붙이 하나가 달랑거리며 박혀있었다.
그것을 뽑기 위해 양팔을 허우적거리던 사내는 결국 앞에 있는 여인과 아이를 향해 분노를 푸는 것을 선택했다.
“······!”
마치 내가 맞은 듯 깊숙이 울려 퍼지는 진동.
그럼에도 버틸만한 이유는 이를 악문 채 자신의 아들을 온몸으로 가리고 있는 어머니 때문일 것이다.
가장 낮고 비천한 곳에서도 빛나는 모성은 어린 소년을 감싸 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밖에서부터 들리는 빗소리가 가득했다.
블라드는 그 빗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어머니의 비명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블라드는 언제나 무언가를 지키고자 소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고자 들었던 검은 너무나 작고 짧았을 뿐이었다.
※※※※
누아르를 타고 앞장서고 있던 블라드.
그러나 자꾸만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모양새가 무언가 불편한 듯해 보였다.
“······저 꼬맹이가 아직도 나 노려봐?”
“네.”
넌지시 묻는 물음에 조용히 들려오는 대답.
슈테판의 대답을 들은 블라드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어젯밤, 노예 상인들에게서부터 구출해낸 마지막 라브노마.
카를이라는 이름의 어린 꼬맹이는 지금도 여인의 품에 안긴 채 블라드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서 아는 척이라도 좀 해보지 그래.”
“······쟤 지금 칼 들고 있어요.”
“쟤가 아니라 카를 라브노마. 호칭은 정확할수록 좋은 거야.”
앞으로도 쓸데가 많은 백작 가문의 자제였으니 조심히 대하라는 말이었다.
괜스레 마커스에게 타박을 받은 블라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소년.
여자에게 꼭 안겨 있는 모양새가 유약해 보일만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꼭 쥐고 있는 단검만큼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네가 건네준 망토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군.”
“비나 피하라고 빌려준 것뿐인데요. 어쨌든 다시 받아올 겁니다.”
힘겹게 말을 타고 있는 여인과 소년은 지금 검은 망토로 자신들을 가리고 있었다.
금화를 아끼지 않은 북부의 망토.
옥사나가 블라드를 위해 준 망토는 그녀의 의도대로 따뜻한 것이었고 지금 그 따스함은 가장 비천한 곳에서 헤매고 있던 두 사람을 감싸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귀하게 대해주라고. 사이가 나빠서 좋을 것은 없으니.”
애를 다루는 것은 애송이의 몫.
흉악한 얼굴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외모는 블라드뿐이었으니 마커스의 인선은 정확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임무 아닌 임무와 함께 블라드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다급하게 쳐낸 듯 엉망으로 잘려져 있는 녹색빛의 머리.
험한 일을 겪어서인지 홀쭉 들어간 볼은 분명 소년을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외모는 전혀 바래지지 않았다.
‘나중에 크면 여자 꽤나 울리겠군.’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맹이였지만 전직 장미의 미소 초팔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소년의 외모가 여자들이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수준이 될 것임을.
그러나 블라드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꼬맹이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저기.”
“꺼져.”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비수같이 날아오는 거절.
나름 용기를 내어 건넨 첫마디였으나 소년의 냉랭한 반응은 분위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 뿐이었다.
“딱히 말도 안 꺼냈는데?”
“꺼져. 마르타 옆에서 떨어져.”
짧은 손으로 휘적거리는 단검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다만 그 끝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만큼은 매서운 것이었다.
“그래.”
자신을 보며 미안해하는 여인의 눈빛을 마주하며 블라드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비록 은인에게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다는 것을 블라드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잘하고 있네.”
“······.”
상처 입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는 아이를 보며 블라드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래도 넌 나보다는 낫다.
결국, 지키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날,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노예상의 목덜미에는 가느다란 상처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작고 얕았지만, 분명 치명적인 상처.
소년은 확실히 노렸고 여인에게 달려들던 악의를 막아내었다.
어렸을 적의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마무리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비슷한 광경이었으나 전혀 다른 결과.
노예상의 천막 안에서 상처 입은 여인을 가로막고 있던 소년을 보며 블라드는 왜인지 모를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받아.”
“······응?”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던 카를이었지만 맥락 없이 날아오는 종이 뭉치에 당황하고 말았다.
둘둘 쌓여 있었음에도 알아챌 수 있는 고소한 냄새.
종이 뭉치 위에는 칸노르 가문을 뜻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뭔데?”
“먹어. 그거 비싼 거야.”
칸노르 가문의 소시지.
그것은 블라드가 카를에게 보내는 칭찬이자 고마움의 표시였다.
※※※※
타닥거리는 모닥불의 열기와 마찬가지로 저 멀리에 있는 소년의 눈은 여전히 블라드를 쫓고 있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을 뒤로하며 블라드는 가만히 육포를 뜯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카를 라브노마가 자네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인데.”
“······망토에다가 아끼던 소시지까지 내어줬으니까요.”
“하긴, 칸노르 가문의 소시지라면 더 달라 말하고도 싶겠지.”
마커스는 블라드의 대답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순히 무언가를 줬기에 이 만큼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나쁘지 않은 관계 형성이었다.
낮은 곳에서만 살아와 모나게만 행동할 줄 알았더니 그래도 나름 베풀 줄 아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진짜 저 꼬맹이로 가능할까요?”
단검으로 육포를 깎아내던 블라드는 모닥불의 불길 너머로 카를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남은 라브노마.
어쩌면 서부의 또 다른 세력 축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소년.
그러나 그 소년이 짊어진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었다.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가이다르의 뒤에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중립을 지키고 있는 가문들이 있었다.
몇몇 가문은 그저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분명 아직 라브노마를 따르는 가문들 또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가이다르의 기세를 한풀 꺾어만 놓는다면 서부 연합군은 분명 흔들리게 될 거야.”
전쟁은 한 번의 맞부딪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페테르는 데어마르에서의 전투 너머를 보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마지막 남은 라브노마를 서부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전선이 앞뒤로 생기게 되면 아무리 가이다르라 해도 골치가 아파지겠지.”
앞을 노리며 나아가고 있었으나 뒤에서부터 불길이 일어난다면 가이다르라 할지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그동안 라브노마의 핏줄들을 제거해 온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임무는 성공적이었고 예상치 못한 전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블라드가 건넨 육포를 질겅거리며 씹던 마커스는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오랫동안 바예지드의 그림자 뒤에서 활동해왔던 기사 마커스.
그는 언제나 복잡다단한 상황에 투입되고는 했었고 대부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사람이었다.
“이게 일이 너무 잘 풀려서 말이지.”
그런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하나의 미신과도 징크스.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지 않다.
“이런.”
예감이란 말로 설명할 수 힘든 감각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결과물 같은 것이었다.
오랜 경험을 쌓아왔던 마커스의 걱정은 절대 기우가 아니었고 그의 불길한 예감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퍼덕이는 날갯짓 사이로 풍겨오는 피 냄새가 아무래도 좋은 소식을 가져온 녀석은 아닌 것만 같았다.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지.”
누군가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날아온 까마귀 한 마리.
그 까마귀가 가져온 전서구에는 다급하게 흘려 쓴 누군가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야영은 그만두지.”
“심각한 일입니까?”
아직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지만 마커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재빨리 모닥불부터 끄기 시작하는 암행단.
그들의 신속한 모습에 이제야 막 안정을 찾기 시작한 카를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너무 잘 풀려간다 했지.”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는 마커스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바예지드 최고의 용몰이꾼.
그리고 가이다르와 착실히 원한 관계를 세워 온 북부의 기사.
마커스의 예상보다도 블라드를 주시하고 있던 지그문드의 시선은 깊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가이다르는 내 예상보다 자네에 대한 원한이 깊은 모양이야.”
“······.”
블라드에게 피 묻은 전서구를 건네주는 마커스.
받아든 쪽지에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처음 들어본 명칭이 적혀있었다.
※※※※
“길목들은 다 봉쇄했다고 하나?”
“그렇습니다. 백작님. 마법 전보를 통해 영주들에게 확실히 확답받았습니다.”
페테르의 방해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고 만 주둔지의 천막 안에서 지그문드 백작은 조용히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그물은 쳐놓은 셈이 되었군.”
서부를 휘젓고 있던 북부의 타격대.
블라드의 방해에 바짝 약이 올라있는 것은 가이다르뿐만이 아니었다.
서부 연안의 가도를 중심으로 벌였던 블라드의 파괴 공작은 주변에 있던 영주들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어쨌거나 난 놈은 난 놈이로군. 이렇게나 빠르게 원한을 쌓아 놓았으니.”
하나둘 지도위에 있던 길목을 가로막기 시작하는 기물들.
지그문드의 손끝에서 옮겨진 기물들은 마치 체스판의 말처럼 북부로 올라가는 모든 길을 틀어막는 중이었다.
“너무 잘난 것도 문제로군. 쇼아라의 블라드.”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는 서부의 영주들.
블라드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과는 지금 원한이라는 형태로 돌아와 서서히 그의 목을 조르려 하고 있었다.
“얼마면 도착한다고?”
“사흘입니다.”
“좋아.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리하여 남은 마지막 길목.
그 말을 들어 길목을 천천히 가로막는 지그문드의 얼굴에서부터 짙은 미소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 애송이 녀석에게 나의 기병대를 보내라. 빌어먹을 바예지드에게 가이다르의 의지를 보여줘라.”
“알겠습니다. 백작님.”
지그문드의 손끝에서부터 내려앉은 마지막 기물.
그 기물의 위에는 서부에서 가장 빠른 기병대를 뜻하는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그동안 날뛴 대가를 치르셔야겠어. 바예지드.”
서부는 빼앗는 자들이지 빼앗기는 자들이 아니다.
지그문드는 그것을 페테르에게 보여주고 증명해야만 했다.
주둔지를 떠나가는 말발굽 소리가 가득하다.
거친 들판을 서슴없이 내달리는 무법자의 무리.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서부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기병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