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31
맞부딪히는 화살들 (1)
도시 나사우.
서부에 몇 되지 않는 항구도시.
그곳의 지배자인 이즈니크 남작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심히도 털어먹었군.”
슬쩍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잇소리가 나는 보고서였다.
빌어먹을 북부 놈들.
누가 야만인들의 피가 섞여 있지 않달까 봐 하는 짓거리가 포악하기 그지없다.
“역시 상종하면 안 될 종자들이야.”
남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고 있던 종이를 치워버렸다.
역시 무슨 일이든지 북부와 엮이면 재수가 없다.
제국에 깊이 뿌리 내린 편견과도 같은 격언이었지만 지금만큼 확연히 와 닿은 적이 없었다.
바로 지금만큼.
“남작님! 큰일 났습니다!”
순간, 부서질 듯 흔들리며 열리는 집무실의 문.
요란함 뒤에 찾아오는 잠깐의 정적 속에서 숨을 헐떡인 채 문턱에 기대어 서 있는 기사단장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
“······남작, 남작님.”
남작의 호통에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숨을 고르고 있는 기사단장.
가뜩이나 블라드라는 놈 때문에 심사가 잔뜩 뒤틀려 있던 이즈니크 남작이었지만 이윽고 들려온 말에 분노보다는 당황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습격······입니다!”
“뭐?”
신음처럼 내뱉은 마지막 말과 함께 허물어지듯 쓰러지고 만 기사단장.
그가 기대고 있던 문턱에서 붉은 핏자국들이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멋들어지게 길러놓은 남작의 콧수염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잔뼈가 굵은 남작이라고 해도 지금의 사태를 바로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으니까.
적들은 북쪽에 박혀있었고 그나마 서부를 휘젓고 다니던 놈들이라고는 고작 20명가량밖에 되지 않는 별동대였을 뿐이었다.
“당신이 이즈니크 남작인가.”
그러나 불행과 사고는 언제나 인지 밖에서 찾아오고는 하는 법이었다.
집무실을 가로막은 채 기울어져 있는 단장의 시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시체를 넘어 들어온 사내가 있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여태껏 눈치채지 못했던 비명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 누구시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얼굴 위로 희미하게 떠올린 미소는 근사했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냉랭함은 북부의 설한보다 차가운 것이었다.
“바예지드의 루트거요.”
“······!”
루트거 바예지드.
북부뿐만 아니라 대륙에도 이름이 알려진 바예지드의 기사.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좀 했지.”
앉으라는 말도 없었지만, 근처에 있는 의자를 당겨와 책상 앞으로 가져온 루트거.
마치 제집처럼 당당히 행동하는 침입자였지만 이즈니크 남작은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역시 짠 바람은 나랑 잘 안 맞는달까.”
‘······바다!’
이즈니크 남작은 루트거의 말을 통해 어디서부터 길이 뚫렸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가장 단단하기에 가장 안심하고 있던 곳.
북부의 침략자들은 과감하게 이즈니크의 심장을 꿰뚫고 들어왔다.
“나는 이번 전쟁의 사령관이시자 나의 아버지이신 페테르 바예지드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소. 남작.”
미소를 지운 사내의 얼굴에서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사나운 냄새가 풍겨온다.
서부의 귀족이자 노련한 상인인 이즈니크 남작은 이런 냄새를 풍기는 부류를 잘 알고 있었다.
“이즈니크 남작가는 이번 전쟁에서 빠져주셔야겠소.”
사납게 치켜뜬 검은 눈동자.
그 너머로 보이는 항구에는 검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나사우에 정박해있던 범선들의 내지르는 비명과 함께.
도시 나사우는 함락당했다.
어울리지 않게 물결을 따라온 북부의 침략자들에 의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북부의 화살 하나가 가이다르의 어깨에 깊숙이 틀어박히고 있었다.
※※※※
“앞길도 막혔습니다!”
“······꽤 빠르군.”
점점 막혀오는 길목들.
그동안은 모래알과도 같았던 서부의 영주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일사불란하게 일행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가 직접 지시라도 내리는 듯이.
“예상보다 영주들의 움직임이 기민해. 잘못하다가는 꼼짝없이 갇히고 말겠어.”
절망스러운 상황을 말하는 마커스였지만 정작 여유로운 태도는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러려고 애쓰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정면에서 뚫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나쁘지는 않지만 그다지 훌륭하지도 않은 방법이군.”
블라드의 제안에 마커스는 눈짓으로 뒤에서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 여인을 가리켰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지 새하얗게 질려가는 여인의 입술.
그녀의 품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소년의 눈빛이 블라드의 시선으로 가득 파고들어 왔다.
“뚫을 수야 있겠지만 말이야.”
길목을 단단하게 틀어막은 서부의 병사들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안한다면 뚫을 수야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소년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러면 어떡합니까?”
“아직 파악해놓은 탈출로가 몇 남아 있네.”
마커스의 말과 함께 앞쪽에서부터 계속해서 날아오는 까마귀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줄어들고 있는 까마귀들의 숫자가 불길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쪽으로 가지는 말지.”
“네?”
물고 물리는 의도의 접전이었지만 마커스는 너무 늦지 않게 가이다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말머리를 돌려라! 우리는 나사우로 향한다!”
길목 한두 개만 뚫으면 곧장 북부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마커스는 굳이 방향을 돌려 나사우로 향하기로 했다.
앞에 보이는 이 길은 탈출로가 아닌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나사우라면······.”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한테 배 하나 빌려 타자고.”
“······.”
바예지드의 내밀한 속사정을 알고 있는 마커스는 지금쯤이면 루트거가 나사우를 점령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블라드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황무지로 간다! 직선으로 길을 꿰뚫겠다!”
마커스의 명령에 따라 지체 없이 말머리를 돌리는 암행 단원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아게와 슈테판이 주저했지만, 이윽고 이를 악물고 따라 움직이는 블라드를 보며 그들도 말을 돌렸다.
“뒤에서부터 따라붙는 자들이 있습니다!”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짓는 마커스를 보며 블라드는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해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무리들.
그러나 갑작스레 따라붙기 시작한 그들을 보며 블라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전장은 나로는 감당 못 해.’
기사는 평시에는 검객이지만 전시에는 지휘관이다.
블라드 또한 타격대의 지휘를 맡고 있었지만 이런 복잡한 양상의 접전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만약 마커스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은 이들의 의도대로 꼼짝없이 앞뒤가 막혀버렸을 것이다.
“앞만 보지 말고 저 너머까지 한번 봐보라고.”
“······.”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블라드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는 마커스를 보며 아직도 자신이 반쪽짜리 기사일 뿐임을 통감하고 말았다.
“화살이다!”
이제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뒤에서부터 날아오기 시작하는 화살들.
그중 악의 어린 화살 하나가 가장 가녀린 목표를 꿰뚫고 말았다.
“꺄악!”
눈 깜짝할 새 여인의 어깨에 박힌 화살을 보며 블라드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어깨에서부터 번져오는 핏자국이 선명해진다.
그와 함께 점점 창백해져 가는 여인의 안색.
“마르타! 안 돼!”
품 안에서 여인을 붙잡고 있는 아이의 울부짖음이 블라드의 기억 하나를 잡고 마구 뒤흔들기 시작했다.
“······다들 방패 메!”
블라드의 외침에 가시나무 용병 단원들이 등 뒤로 방패를 매달았다.
그들의 상징인 가시나무로 만든 나무 방패였다.
“가시나무 후미로!”
블라드의 지시에 뒤를 맡고 있던 아게와 슈테판이 서로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가장 후미에 서게 된 가시나무 용병단.
그들이 임시로나마 방벽을 세우자 날아드는 화살이 조금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못 버틸 겁니다!”
슈테판의 외침에 블라드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자그마한 방패로 막아봤자 임시방편일 뿐.
저 뒤에서부터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는 추격대를 보며 블라드는 당황하고 말았다.
“황무지다.”
“네?”
그런 블라드를 어르듯 전하는 마커스의 목소리.
마커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에 샛노란 황무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숲길이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서부의 시작이었다.
“저들은 가이다르 기병대다. 황야의 무법자들이라고 부르는 녀석들이지.”
넓은 벌판으로 나오자 이제야 온전히 확인되는 추격자들.
하나같이 매서운 눈빛을 지닌 자들 위로 깃발 하나가 휘날리고 있었다.
황야의 독수리를 새겨놓은 깃발.
서부의 지배자 가이다르의 문양이었다.
“어때. 해볼 만하겠어?”
지휘관으로서 한번 판단해봐라.
네가 저들을 저지할 수 있겠는지.
“······.”
마커스의 물음에 블라드는 재빨리 왼쪽 눈을 감아보았다.
사납게 휘날리는 흙먼지들 속, 시선을 통해 쏘아 보내본 오러가 흔들리는 적들의 물결을 감지했다.
‘기사는 5명.’
블라드의 오러에 반응하는 5명의 기사.
말 위에서라면 지닌바 이상의 실력을 보인다는 가이다르의 기사들이었다.
과연 이 상황에서 나는 할 수 있을 것인가.
“······할 수 있습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인가?”
블라드는 감고 있는 왼쪽 눈으로 마커스를 바라보았다.
조금씩 흐르고 있는 블라드의 세계는 분명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귀스트의 흔적이 블라드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요.”
“좋아.”
혼자라면 뚫을 수 있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을 테니까.
하나뿐인 길이 그곳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 나사우에서 보자고.”
마커스의 눈짓에 따라 비틀거리는 여인을 들어 올리는 암행 단원들.
그 사이에서 마주친 소년의 눈동자가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바람을 타고 와 블라드의 볼에 와 닿았다.
‘······.’
소년에게서 소년에게로 이어지는 눈물 한 방울.
바로 앞에 있는 저 아이처럼 누구에게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그런 연약한 시절이 있다.
“아게!”
“왜!”
그러나 블라드는 마주한 눈물 앞에서도 감고 있는 눈을 뜨지 않기로 했다.
이제 자신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저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빠른 기병대라던데!”
“······누가 그래!”
어설픈 도발인 것을 알았지만 아게는 있는 힘껏 넘어가 주기로 했다.
노련한 야만 전사는 블라드의 의도를 확실히 파악했으므로.
서부의 무법자들 앞에서 꿇리지 않는 무도한 자들.
“누가 감히 부다아트 족을 눈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나!”
블라드의 의도에 따라 아게는 큰소리로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시작했다.
그의 외침을 따라 부다아트 족의 전사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슈테판! 마커스 님을 따라가라!”
“하지만!”
“확실하게 임무를 완수해!”
인재는 적재적소에.
지금은 방패로 지킬 때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끄덕이는 고개와 함께 벌려놓은 아게의 진형으로 빨려 올라가듯 마커스와 합류하는 가시나무 용병대.
점점 멀어지는 일행을 보며 부다아트 족의 전사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준비됐어?”
“물론.”
등 뒤에서부터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는 가이다르 기병대가 보였다.
위협적이지만 분명 증명할 수 있는 기회.
다가오는 위협을 향해 부다아트 족의 전사들이 동시에 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말.
그 위에서 오직 허벅지만으로 균형을 지탱한 채 뒤를 돌아보고 있는 부다아트 족의 전사들.
매서운 그들의 눈빛만큼이나 시위 끝에 매달려있는 화살촉이 매섭다.
블라드는 이 무도한 자들의 방식에서 길을 찾았다.
“쏴!”
야만족들의 손에서부터 날카로운 화살이 뻗어나간다.
훈련해도 따라 할 수 없으며 오직 타고난 피로만 이어질 수 있는 특별한 자세.
그동안 북부의 전사들을 괴롭혀 대었던 야만인들 특유의 배사(背射)법이 서부의 황무지에서 시현되고 있었다.
※※※※
“적! 돌아섭니다!”
“뭐야?”
가이다르 제3 기병대장 와그너는 갑작스레 반전하는 북부인들을 보며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몸만, 몸만 돌렸습니다!”
“이 무슨 해괴한······.”
서부에서는 보지 못했던 희괴한 자세.
가능이나 할까 싶은 그 자세 속에서부터 날카로운 화살들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크악!”
“큭!”
난생처음 당해보는 전술에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기병들.
달아나는 와중에도 정확한 명중률을 자랑하는 화살들을 보며 와그너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게 무슨······.”
그러나 그는 당황했음에도 흔들리지는 않았다.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틈을 파고드는 서부의 눈빛이 매서웠다.
“속도를 높여라!”
고삐를 잡지 않고 있으니 속도가 줄어들 것은 당연한 사실.
황야의 무법자들이 잔뜩 약이 오른 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저딴 잔재주를 부릴 바에야 차라리 가까이 다가가 후려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응?”
그러나 북부의 손끝에서 시작된 화살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뭐야!”
눈 깜짝할 새 갈라진 야만인들의 진형.
그 안에서부터 달려 나오는 새까만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 매달린 뿔이 하얗게 빛나는 말이었다.
“······이거 짜릿하네.”
따라잡는 속도와 달려드는 속도.
서로가 마주 보는 역주행의 아찔한 순간에도 블라드의 푸른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가자!”
가이다르의 깃발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기 시작하는 북부의 작은 깃발 하나.
스스로를 증명한 기사의 왼쪽 눈에는 소년의 눈물에서부터 시작된 세계가 흐르고 있었다.
맞닿은 세계 끝에서 한계를 확장하는 기사와 말의 돌격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담겨 있지 않았다.
꽈아아앙-!
소리조차 머물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충격.
그와 함께 사정없이 튀어 오르기 시작하는 누군가의 몸체들.
때 이르게 떠오른 낮의 달 위로 새빨간 핏물들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