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32
맞부딪히는 화살들 (2)
황야의 무법자들이라 불릴 정도로 서부에서는 널리 이름이 알려진 가이다르 기병대.
기사들조차도 상대하기 까다로워하는 그들은 특유의 기민함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데 정통한 자들이었다.
나는 닿지만 너는 닿지 못하는 그런 거리, 그런 속도로.
그러한 장점을 통해 상대를 괴롭히는데 도가 튼 가이다르 기병대였으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전원 산개해! 흩어지란 말이다!”
대장의 명령에 당황한 표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기병대원들.
그들은 아직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이 되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악(惡)에는 더 큰 악으로.
지금 무법자들의 뒤에는 그들보다 더 빠르고 악독하며, 굶주려 있는 짐승 하나가 사나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음 뒤로 달려드는 시뻘건 핏물들.
하얀색 빛줄기가 지나간 자리 뒤에는 어느새 자욱한 피 안개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
기병대장 와그너는 빛무리가 스치고 지나간 대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비록 목이 날아간 채였지만.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는 목 없는 시체 아래서 서부의 말이 공포에 질려 마구 울부짖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대원들의 비명과도 같은 욕지거리가 퍼져나갔다.
그러나 방금 기병대를 뚫고 지나갔던 북부의 빛줄기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려 하지 않았다.
“적! 다시 반전합니다!”
역주행을 통해 정중앙으로.
그리고 이번에 뒤에서부터 달려들어 우측으로.
종횡무진 자신들을 휘젓는 블라드를 보며 가이다르 기병대는 실로 오랜만에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기사! 기사들은 모여라!”
와그너는 재빨리 휘하의 기사들을 모아 공격에 대비하고자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며 유일한 수였지만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았다.
“다가오는 녀석을 막아······!”
어느새 옆으로 따라붙은 야만족의 무리.
얼굴 가득 새겨놓은 문신 위로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화살, 화살이 날아옵니다!”
무법자들을 상대하는 무도한 자들.
부다아트 족의 전사들은 적은 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을 틀어막은 채 공간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마치 예전의 자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교묘하게 벌려놓은 간격 사이에서부터 나는 쏘지만 너는 막을 수 없는 화살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와그너는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말았다.
사냥감에게 쫓기는 사냥꾼이라니.
좁은 산길이 아닌 너른 황야의 벌판은 오히려 자신들이 아닌 북부의 야만인들에게 더 알맞은 전장이었다.
“어서 틀어막아!”
그러나 판단은 냉정해야만 했고 자신은 이 난관을 뚫어내야만 하는 지휘관이었다.
와그너의 다급한 손짓을 따라 서둘러 대형에서 떨어져 나가는 4명의 기사들.
어떻게든 블라드가 가속할 거리를 좁히며 기세를 죽여보려 했던 그들이었지만 북부의 검은 말은 이미 기사들의 예측을 아득히 넘어서는 존재였다.
“이런 미친! 가속합니다!”
보고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외침.
와그너는 그 외침에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들의 힘겨운 추격에도 불구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가볍게 따돌려내는 검은 말.
그 말의 이마에서 아까와도 같은 하얀색 빛줄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전원 산개해!”
와그너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고 말았다.
또다시 온다.
저 미친놈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속도.
“다들 흩어지란 말이다!”
어머니 세계수의 희뿌연 흔적만이 남아있는 황량한 벌판 위로 초원의 아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오귀스트의 흔적이 알려주는 틈새를 따라, 라문드가 건네주었던 강체술을 입고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주로.
히이이이힝-!
서로가 맞닿은 경계를 통해 세계를 공유한 누아르는 거칠 것이 없다는 듯 길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점점 넓어지는 세계와 함께 빛과 함께 점점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일각수의 흔적.
그래.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너를 따라온 것이었다.
“지금!”
블라드의 외침과 함께 무법자들을 향해 거대한 화살 하나가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속도를 제압하는 속도.
갈라지는 파도처럼 스쳐 지나가는 선 위로 새빨간 물감들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하하!”
수많은 경악과 공포를 뚫고 마침내 기병대를 넘어 너른 황야 위로 빠져나온 블라드.
이제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기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황혼의 흔적이 블라드를 맞이하고 있을 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에 블라드는 큰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딘과 가이다르 백작에게 전해라!”
핏물이 가득한 끈적한 손으로 무언가를 불끈 쥐고 있는 북부의 기사.
그의 손에는 어느새 꺾여진 깃발 하나가 힘없이 너풀거리고 있었다.
“너희들의 깃발은 내가 가져간다고!”
가이다르의 자존심. 황야의 무법자들.
그들의 상징인 독수리 한 마리가 목이 꺾인 채 블라드의 손아귀 안에서 힘없이 휘적이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정당한 대가다!”
누군가가 알려준 대로 기사는 오직 정당한 대가를 가져가야 하는 법.
목숨 대신 가져간 명예 한 조각.
깃발에서 뚝뚝 떨어지는 무거운 황혼빛이 블라드의 어깨를 따라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
어두운 밤, 밝혀진 횃불이 가득한 도시의 항구.
새까맣게 불태워진 배 사이로 멀쩡해 보이는 범선 두 척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바예지드의 기술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갤리온급 함선.
단연코 이번 약탈품 중에서 가장 가치 있다 말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놈만 떨어져 나갔다고?”
“그렇습니다. 루트거 님.”
그러나 빛나는 전리품 앞에서도 루트거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을 뿐이었다.
계획했던 대로 도시 나사우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마커스의 일행.
사지를 향해 기어들어가는 대신 변수를 따라나선 마커스의 판단은 훌륭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골치 아프군.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나. 오웬?”
“지금은 마커스입니다.”
“이름 좀 통일하지 그래. 매번 헷갈리잖나.”
숨을 헐떡이며 들것에 실려 함선 위로 실려 가는 여인 한 명.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로 그 여인을 따라가던 초록 머리의 소년이 루트거를 보고는 우뚝 멈춰 섰다.
“저 아이가 바로 마지막 라브노마입니다.”
“흠.”
카를은 마커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루트거를 바라보았다.
이 무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당당히 펴져 있는 어깨와 가까이 있음에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마치 당당한 한 명의 군주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었다.
“블라드 경을 기다릴 건가요?”
“······.”
루트거의 어깨 너머로 저 멀리서부터 불타고 있는 성벽이 보인다.
함락된 나사우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진 서부 연합군의 발버둥이 지금 성벽을 거세게 들이받고 있었다.
지금까지야 간신히 틀어막고 있었으나 철저히 불태워진 나사우의 여력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기다릴 거죠? 이거 전해줘야 해요.”
카를이 곱게 접어놓은 검은색의 망토.
루트거는 카를이 건네는 망토를 보며 혀를 쯧 하고 차고 말았다.
자신의 새어머니인 옥사나가 내어준 망토.
그 망토를 입고 스투르마의 저택을 누비던 어린 기사를 루트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준비된 인원부터 승선. 그들부터 먼저 쇼아라로 보내라.”
“안 기다려요? 안 기다릴 거예요?”
자신의 부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관.
루트거의 차가운 태도에 카를은 눈물조차 말라버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안 데려올 것이냐고! 당신들 기사잖아!”
순간, 카를의 기억 속으로 함께했었지만 하나둘씩 사라져갔던 라브노마의 기사들이 떠올랐다.
어린 카를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스러져 갔던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고 더는 그런 이별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기다려야 한다고! 좀 있으면 온다니까!”
“마커스. 모셔라.”
또 다른 이별의 순간 앞에서 발버둥 치기 시작하는 어린 라브노마.
루트거는 그런 카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는 조용히 블라드의 망토를 건네주었다.
“당신이 직접 건네주시오. 카를 라브노마.”
“······.”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검은 눈동자.
그에게서 보이는 진심을 엿본 카를은 얌전히 암행 단원의 품에 안겨 배 위로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소리지를 뿐인 자신과는 달리 눈앞의 기사는 어느새 검을 움켜쥐고 있었으니까.
“어쩌실 겁니까.”
“일단 다 보내놓고, 녀석을 탈출시킬 배 하나만 남겨놓을 생각이다.”
“남아줄 선장들이 있겠습니까?”
마커스의 물음은 타당한 것이었다.
해군 병력이라고는 전무한 바예지드.
지금 이끌고 내려온 배들은 그저 상륙을 위해 차출해 온 상인들의 배였을 뿐이니 목숨이 위험한 지금의 상황에서 흔쾌히 남아줄 만한 선장은 없을 터였다.
“그래도 한 놈 정도는 남아줄걸?”
그러나 루트거는 자신 있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지을 뿐.
루트거는 꼭 두둑한 보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블라드를 기다려 줄 선장 하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멍청한 애송이가 지각을 하고 말았단다! 나와 함께 그 녀석을 기다릴 자원자들 있나!”
자신의 동생이 주워왔고 바예지드가 데려와 먹이고 입히고 씻긴 녀석이었다.
비록 녀석의 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살과 검만큼은 바예지드가 집어 넣어준 것이었다.
그런 아이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꽁지 빠지게 달리는 건 잘하는 녀석이었죠!”
“아마 금방 올 겁니다!”
저 멀리 허물어져 가는 나사우의 성벽과 달리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누군가의 손들.
그들 모두가 바예지드 최고의 용몰이꾼을 기억하는 자들이었다.
※※※※
“여기입니다!”
마커스가 남겨놓은 암행 단원을 따라 해안가를 달리고 있는 블라드와 부다아트 족.
희미한 달빛을 따라 모래사장을 달리던 블라드는 저 멀리서부터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이를 악물고 말았다.
‘너무 늦었나!’
기병대 모두를 죽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그저 깃발만을 빼앗아 온 이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당한 거냐!”
“······모르겠습니다!”
마커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해 최대한 빨리 당도하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음에도 이미 서부 연합군의 불길은 성벽을 넘어 항구를 향해 진격하는 중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적들이 가득한 도시로 진입하느니 차라리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작 열 명 남짓한 인원만으로는 군대를 상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
진입과 퇴각.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블라드에게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세울 수 있었던 예민한 청각.
날카롭게 세운 귀 끝에서는 분명 검과 검이 마주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달려! 달려라!”
연안을 따라 항구로 향하는 바위를 뛰어넘은 블라드와 일행들.
말을 탄 채 어느새 항구로 돌입한 그들의 앞에는 잔뜩 몰려들고 있는 병사들과 그들의 앞을 틀어막고 있는 몇몇 사내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애송이! 빨리 오지 못해!”
“저 자식 빠진 놈이라는 거 알고 있었다니까!”
열 명이 채 되지 않음에도 빛나는 오러와 함께 수백의 병사들을 물리고 있는 기사들.
그들 사이에서 잔뜩 피를 뒤집어쓴 루트거가 웃고 있었다.
“배로 올라타라!”
블라드는 루트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타버린 배들이 가득한 항구 위로 홀로 돛을 올리고 있는 자그마한 배 한 척.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악의 어린 함성 속에서도 홀로 굳건히 버티고 서 있던 그 배 위에서는 지금도 누군가가 세차게 양팔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블라드! 여기야!”
무언가가 불편한 듯 삐딱하게 서 있음에도 흔드는 양팔만큼은 분주한 남자.
그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블라드의 얼굴로 웃음이 번져나갔다.
어디선가 본 듯이 익숙해 보이는 배의 몸체.
그 위에서 자신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뭐해 인마! 빨리 올라타라니까!”
모든 배가 위험을 피해 떠나갔음에도 홀로 블라드를 기다리고 있던 한 척의 배.
멋들어진 선장모를 쓰고 있는 사내는 분명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