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35
뻐꾸기 우는 날에 (1)
온화한 햇빛이 비치는 요제프의 집무실.
알리시아가 요제프를 위해 특별히 내어준 집무실은 쇼아라의 시장실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훌륭한 공간이었다.
“고작 열 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저 앞까지 나가 도발을 저지르고 왔다라······.”
그러나 이 훌륭한 공간에서 들려오는 것은 화기애애한 담소가 아닌 그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뿐.
그의 옆에서 무표정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자야르는 아마 덤일 것이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거의 들이받기 직전까지 갔다고 하던데?”
“······.”
들려오는 질문에 블라드는 그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다.
사실은 들이받기 직전이 아니라 들이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검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몇 명 정도는 냅다 걷어차고 돌아왔으니 사실상 교전이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도발이었다.
“죄송합니다.”
요제프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기도하는 리만이었을 시절 얻었던 소중한 교훈을 되새긴 블라드는 마치 이것이 반성하는 자세의 표본이라는 듯 재빨리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정중하게 뒷짐을 진 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세는 누가 보아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해 보였다.
“······됐다.”
변명할 생각도 없이 그저 잘못했다 말하는 블라드를 보며 요제프는 이제 한숨조차 내쉬지 않았다.
“할만하다고 생각했으니 했겠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루기 어려운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조금은 틀린 판단이었다.
블라드라는 사람은 통제가 아니라 내버려 둬야 빛을 발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부디 너의 도발이 냉철한 판단을 통해 행한 일이었기를 바란다.”
요제프는 피어난 개성을 존중하기로 했다.
모자람도, 잘못됨도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행한 일이었으니 이제는 결과로써 판단해 줘야만 했다.
블라드라는 기사는 이번 작전을 통해 온전한 한 명의 기사가 되었음을 충분히 증명했으니까.
“다만 기억해둬라. 기사의 생각은 진중해야 하며 발걸음은 무거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다만 조금은 더 신중해 줬으면 좋겠다.
이름이 알려진 지금부터는 네가 행하는 모든 결과의 흔적들이 발자국처럼 새겨져 너의 뒤를 따르게 될 테니까.
네가 멈출 테까지. 끊임없이.
“푹 쉬어두도록 해라. 체력을 비축해놓는 것이 좋을 거다.”
“알겠습니다.”
다가올 전쟁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라는 요제프의 말.
블라드는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의외로 큰 꾸지람을 듣지 않아 조금은 당황하고 말았다.
“뭐 해? 나가시라잖아.”
“······네.”
다만 자야르만큼은 아직도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블라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나중을 기대하라는 듯한 스산한 눈빛과 함께.
요제프와는 다르게 자야르는 아직 블라드를 쉬이 놓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끼이익-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정련된 자세로 나서는 블라드를 보며 손님용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보르단은 그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저 녀석은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군요.”
하는 짓은 영락없는 무뢰한, 그러나 보이는 겉모습만큼은 기품있는 기사.
이렇게나 확연히 다른 모습을 지닌 기사를 보르단은 본 적이 없었다.
“기가 막히게 섞인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튀기는 하지만 바예지드에게 있어서 필요한 색깔이야.”
만들어진 기사가 아닌 스스로가 성장한 기사.
요제프는 그런 기사를 원했고 블라드는 그의 기대에 훌륭히 부응했다.
“형님도 탐낼 정도의 색깔이지.”
요제프는 책상 위에 놓인 블라드의 보고서를 집어 들고는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흥분되어 있는 병사들의 모습.
아마 오늘 일어났던 블라드의 도발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하는 중일 테다.
“바예지드의 기사 중에서 그 미친 짓을 하고 싶어서 하는 기사가 몇 명이나 되겠나.”
실로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주둔지의 모습을 보며 요제프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집무실 구석에 세워져 있는 초라한 깃발 하나.
가이다르의 독수리는 이슈트반의 검과 함께 훌륭한 전리품이 되어 또 다른 장식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
“블라드 님.”
“오. 슈테판.”
자그마한 저택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사람들.
몇 걸음만 걸어도 아는 얼굴이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블라드와 슈테판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제가 할 말을 먼저 하시는군요.”
“딱히 할 말도 없잖아.”
용병대장 슈테판은 자연스레 블라드의 옆에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말 보러.”
“아 그 녀석 말이군요.”
“하루에 한 번은 봐주러 가야 해. 성격이 워낙 지랄 같아서.”
슈테판은 블라드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은 뛰어났지만 성질만큼은 더러운 말.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만만치 않았던 녀석이었기에 슈테판은 누아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은 저희가 돌봐드릴까요? 먹이 정도야 챙겨줄 수 있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그래 주면야 고맙겠지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트 정도가 아니고서는 녀석에게 달라붙을 수 있는 마구간지기는 없었으니까.
“안 그래도 보르단 경에게 계약 연장을 신청하고 왔으니까 너무 달라붙지 말라고.”
“······하하하. 꼭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블라드는 슈테판이 자신에게 달라붙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용병들이란 반짝이는 금화를 쫓는 사람들.
다만 누구나 금화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주고받음의 단계에서 항상 잡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쪽 세계였다.
“저희는 그저 블라드 님과 한 번이라도 더 일을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시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요제프 바예지드는 분명 훌륭한 고용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타노보에 있던 비츠카야 백작처럼 사기를 치지도, 도브레치티의 달마티아 남작처럼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이쪽입니다. 예전과는 달리 마구간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익숙한 듯 블라드를 수행하며 길을 찾아내는 슈테판.
마커스를 따라 미리 데어마르에 도착해 있던 슈테판은 그동안 재빨리 저택의 위치를 파악해놓았었다.
이런 사소한 준비 하나하나가 자신의 평가를 높인다는 것을 슈테판은 잘 알고 있었다.
“여기가 맞긴 한데. 그런데 선객이 있는 모양이군요.”
“흠.”
누가 보아도 다른 말과는 다르게 혼자 널찍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말.
그러나 이미 누아르의 옆에는 블라드가 허락하지도 않았음에도 착 달라붙어 있는 자그마한 그림자가 있었다.
낯익은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였다.
“너 여기서 뭐해?”
“······.”
마구간으로 들어서는 블라드를 보며 샤를은 실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불편해하는 것도 같은 표정이었다.
“이런 말은 얼마나 해요?”
“왜? 돈 있으면 사게?”
호출한 마구간지기가 들고 온 솔을 받아든 블라드는 옆에 있는 샤를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누아르의 털을 빗겨주었다.
낯선 항해에 예민해 있던 누아르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블라드의 배려에 마치 개처럼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돈을 아무리 줘도 못 사는 게 있는 법이야. 얘도 그런 종류고.”
“······.”
어찌 보면 무례해 보이는 질문이기는 했으나 아마 진짜 사고 싶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저 할 말이 없으니까 내뱉은 말이었겠지.
블라드와 샤를의 숨 막히는 어색함을 보며 슈테판은 재빨리 마구간에서 나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여자는 괜찮아? 화살 맞았던 여자 말이야.”
“아.”
이제 사람이라고는 둘밖에 없는 마구간 안.
눈치를 줬음에도 꿋꿋이 떠나지 않는 샤를을 보며 블라드는 아이가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새는 블라드에게 있어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기에.
“마르타는 괜찮아요. 많이 나았어요.”
“가서 간호라도 해주지 그래.”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방해하면 안 돼요.”
마르타라는 여자는 샤를을 낳은 어미는 아니었으나 길러준 유모였다.
유일하게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을 구해줬으니 샤를이 블라드의 근처를 맴도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망토요. 돌려드릴게요.”
“······당분간은 가지고 있어. 어차피 전투 중에는 거치적거릴 뿐이거든.”
아이를 감싸 안은 채 차갑게 식어가던 여자를 생각한 블라드는 그녀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서 떠오르는 낯익은 모습이 있었으니까.
블라드는 자신의 망토가 조금이나마 더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거요.”
“이게 뭔데?”
소년처럼 위장한 소녀는 한참을 고민했다는 듯 블라드에게 자그마한 목걸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성의의 표시는 언제나 진지하게 하라고 배웠어요. 라브노마는 그래야 하니까.”
“······.”
샤를이 건네는 갈색빛 목걸이.
금이나 은이 아닌 황동으로 만든 것 같은 목걸이는 그 난리 중에서도 소중하게 닦았던 듯 미끈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걸 나한테 왜 주는데?”
“마르타를 구해줬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샤를은 일행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미끼를 자처했던 블라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블라드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차갑게 황무지를 굴러다니고 있으리라는 것도.
구명의 은혜는 무거운 것이었기에 샤를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약속만큼은 해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내어줄 게 없거든요. 그래도 제가 나중에······.”
“집어넣어.”
들고 있던 솔을 통에 던져 놓은 블라드는 이번에는 누아르의 발굽을 살피며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거 유품이나 가보나 뭐 그런 거지? 난 이제 그런 거 절대 안 받기로 했어.”
“······.”
척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값이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블라드는 이제 그런 물건을 넙죽 받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알리시아를 이리저리 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발굽까지 다 살핀 블라드는 탄탄한 누아르의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내뱉으려 하니 가슴 끝까지 차오르는 기묘한 감정이 있었다.
내가 이 말을 남에게 알려줄 때가 오다니.
역시 세상일이라는 건 알 수가 없다.
“······기사는 정당한 대가만을 받아야 하거든.”
언제나 가슴 속에 담아두었기에 무거울 수밖에 없는 말.
기사는 정당한 대가만을 받아야 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뒷골목의 소년에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를 통해 블라드는 막연한 꿈의 실체를 확인했고 여전히 그를 쫓아 저 먼 하늘 위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푸른 달을 향해 쏘아 올린 소년의 화살은 지금도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난 이미 이번 임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어. 그러니 네가 주는 대가는 받지 않을 거야.”
“······.”
샤를은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는 블라드를 보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무게감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격을 말하는 기사와 아직은 라브노마라 외칠 자격조차 없는 소녀.
샤를은 자연스레 내밀었던 목걸이를 다시 움켜쥐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분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꼭 갚아줄게요.”
거짓된 기사에게서 뒷골목의 소년에게.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내어줄 것 없는 소녀에게.
기묘한 울림을 주는 기사의 맹세는 그렇게 계속해서 누군가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
“앞으로 이틀 후면 도착할 겁니다.”
“알았다. 고딘.”
이제는 눈을 찡그리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데어마르.
이가 갈릴 정도의 견제와 방해가 있었지만 지그문드는 별 무리 없이 본대를 이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빠른 속행이었음에도 이탈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 지그문드의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달이나 늦춰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예상 범위 안이야.”
지그문드의 사나운 미소가 북쪽을 향해 있었다.
자신의 목표이자 목적이 있는 곳.
점점 윤기가 도는 발밑의 검은 흙들을 보며 지그문드는 자신이 원하던 곳에 도착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삭막했던 서부의 바람이 아닌 싱그러운 여름의 향기.
고딘 또한 지그문드처럼 가만히 눈을 감으며 다가오는 데어마르의 바람을 느껴보았다.
‘그렇지.’
저 멀리서부터 아스라이 들려오는 새소리들.
그중에서도 확연히 귓가에 와닿는 새소리를 찾아낸 고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뻐꾸기는 여름에 울어야지.’
뻐꾸기 소리.
질겼던 인연의 시작을 알린 겨울날의 뻐꾸기 소리가 있었다.
어긋났지만 스쳐 지나갔기에 다시는 볼 일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결국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에 서로를 마주하게 하고 있었다.
“가서 찾아올 것들이 많아. 아예 끊어버려야 하는 것도 있고.”
“맞습니다. 백작님.”
같은 것을 생각하는 주군과 기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 연합군 5천의 군세.
지금 그들이 데어마르의 영역 안으로 첫발을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