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49
뿌리는 대로 거두리라 (1)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삐걱거리는 나무판자 소리가 들려온다.
강의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룻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인 것만 같았다.
쇼아라의 부둣가 위, 마치 실로 꿰매기라도 한 듯 얼기설기 얽혀 있는 어느 건물 안.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저 담배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술병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꿀꺽거림 뿐이었다.
“자네를 이렇게 앞에 두니 시간 참 빨리 지나간다 싶군.”
술병 하나를 다 해치우고 나서야 입을 연 노인은 다 피워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대며 빙긋이 웃었다.
누렇게 변색된 치아와 흉측한 치열이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정작 앞에 앉아 있는 블라드는 꿈쩍도 않고 있었다.
“사실 몰라도 되는 일이긴 하지만 원래 나도 자네를 데려오고 싶었어. 호르헤 녀석이 날름 채가긴 했지만 말이지.”
“······.”
옛일을 생각하는 노인의 눈빛이 아련해 보였다.
비록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 나오는 이야기가 본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블라드는 가만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뒷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으로서 캡틴 후버라는 보스에게 나름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셀라도 은퇴한다면서?”
“완벽한 은퇴는 아닐 겁니다. 보스처럼 늙은 것도 아니니.”
“하하! 그렇지. 아직 마르셀라 나이라면 한창이긴 하지.”
평범한 뒷골목의 소년이었다면 방금의 말로 날카로운 갈고리에 머리가 찍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치를 보는 자는 오히려 보스인 후버였고 블라드는 손님이었음에도 그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보스에게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름발이인 하벤을 거둬주신 것에 대해서요.”
“그거야 그놈이 똘똘했으니까.”
“비록 구석에다 박아두기는 하셨지만 말이죠.”
“······.”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블라드의 말을 들으며 후버는 왼손에 있던 갈고리로 다시금 술병을 따고 말았다.
과연 쇼아라의 뒷골목이 낳은 최고의 재능.
이미 블라드는 자신 따위가 띄워주기에는 너무 무거워졌고 단단해져 있었다.
“변명은 아니네만 그 일 이외에는 마땅히 쓸 곳도 없었네.”
“압니다. 이해합니다.”
예전 뒷골목에는 다섯 명의 보스가 있었다.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기사는 한 명의 보스를 잃었고 두 명의 보스를 죽인 자였다.
쇼아라의 블라드는 반짝이는 금화도, 신이 내린 면죄부도 막지 못했던 기사였고 후버는 그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은퇴하고 싶네. 편안히, 안전하게.”
그리고 그렇기에 은퇴하기로 했다.
먹히기 전에, 혹은 그의 손에 죽기 전에.
“왜 그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겁니까?”
“자네가 아니라면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뒷골목의 역사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복잡하고 쉴새 없이 움직여왔다.
그러나 멀리서 지켜본다면 결국 하나의 법칙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것은 곧 약육강식의 법칙일 것이다.
“쇼아라의 젊은 시장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아네. 그는 이 도시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하니까.”
늙었기에 보이는 것이 있다.
늙은 선장은 오랫동안 바다를 누벼왔고, 몰아치는 폭풍에는 가만히 돛을 내린 채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디 말씀드려주게. 이 늙은이가 은퇴하고 싶어 한다고.”
“······많이 내려놓으셔야 할 겁니다. 요제프 님이 준비했던 만큼 보상을 하셔야 할 테니까요.”
딱히 끌리지 않는 제안이었으나 블라드는 자신을 이곳까지 소개해 준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며 최대한 성의를 보이기로 했다.
어쨌거나 빌어먹던 시절, 이 사람 덕분에 버틴 기간도 있었으니 나름의 답례이기도 한 셈이었다.
“······당연하지. 섭섭지 않게 준비하겠네.”
블라드의 대답을 들은 후버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크게 가슴을 쓸어내리고 말았다.
역시 나를 노리고 있었구나.
조금만 늦었어도 교수대에 목이 매달릴 뻔했다.
“부탁함세. 후회하지 않게 하겠네.”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지금 일어서고 있는 사내는 고귀한 핏줄, 요제프의 심복이자 쇼아라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잠깐만.”
“······?”
밖으로 나가려 문고리를 잡고 있던 블라드는 갑작스레 날아온 술병 하나를 잡아채었다.
무언가 불쾌한 빛이 나는 갈색빛의 술이었다.
“이건 뭡니까.”
“내 역작이지.”
새로이 담배를 꺼내든 캡틴 후버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무려 이름도 달아놓은 술이지. 캡틴Q라고. 사실 은퇴 후 소일거리로 양조장을 할까 했었거든.”
후버의 말을 들은 블라드는 그제야 지금 들고 있는 술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먹고 죽으려 해도 아무것도 없던 시절, 그야말로 정말 먹고 죽을뻔한 그 술이었다.
“······양조장은 꿈도 꾸지 마십쇼.”
블라드는 아직도 그날 밤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
“뭐야, 어떻게 됐어.”
“이거나 받아.”
조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부둣가를 나선 블라드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하벤을 보고는 재빨리 그에게 술병을 던져버렸다.
마치 그동안 독병이라도 들고 있었다는 듯 질린 표정과 함께.
“이게 뭐야?”
“뭐긴 뭐야. 그 지랄 같은 술이지.”
“아니, 그 영감이 아직도 이걸 만들고 있었어?”
하벤 또한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술병을 받아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당장이라도 술병을 버리고 싶은 모양새였다.
“후버를 고용해. 빼먹을 건 빼먹어 놔.”
“응? 뭐?”
“그 사람 살리려면 그렇게 해야 할 거야.”
블라드는 무심한 듯 말하고 있었고 하벤은 모르는 듯 대답하고 있었으나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블라드와 호르헤만큼은 아니었겠지만, 하벤과 후버는 한 울타리에 있던 사람이었고 뒷골목의 남자들은 이런 것에 민감하고는 했다.
하벤이 후버에게 블라드를 소개해준 것처럼 말이다.
“젊었을 적에는 바다에도 나간 적 있는 사람이라며, 항해술이니 밀수 루트니 이것저것 배워두라고. 안 그래도 바예지드가 요즘 바다 쪽에 관심이 많거든.”
“쉽게 알려줄까. 그게 그 사람 사업 밑천인데.”
“죽기 싫다면 알려주겠지.”
살려서 토해내나 죽여서 뺏어가나 어차피 후버의 모든 것은 요제프가 결정할 일이었다.
그러나 뒷골목의 보스라 해도 살려서 쓸만한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굳이 목숨까지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책잡힐 일 같은 거 하지 말고.”
“알았어.”
하벤은 갑작스레 바뀐 블라드의 분위기를 느끼며 웃음기를 지우고는 고개를 끄덕여댔다.
“한 번 쓸려나갈 시기이긴 하지. 지금이.”
“그래. 애들 관리 잘하고.”
늙은 선장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폭풍을 보았듯이 하벤 또한 흘러 지나가는 블라드의 말속에서 의미심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쇼아라의 시장이 바뀌었을 때도 나름의 변화가 일어났던 만큼 북부연합과 정교회가 나타난 지금이라면 그때보다 더한 물갈이가 시작될 것이 뻔했으니까.
“하벤.”
“응?”
골목의 갈림길 앞.
블라드는 시청으로, 하벤은 장미의 미소로 향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길.
“이거 기회야. 온 거야 지금.”
“······.”
비록 블라드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기회라는 것은 뒷골목의 아이들에게 있어 꿈과 같은 일이었고 그것을 잡기 위해 둘은 쉼 없이 발버둥 쳐왔었다.
그리고 지금 둘 앞에는 새로이 변화하려는 쇼아라가 앞에 있었다.
“잘해보자.”
“그래.”
너는 큰길로, 나는 뒷골목으로.
비록 가는 길을 달랐지만 둘이 노리는 것은 하나였다.
아마 그것은 멍석 하나로 서로를 감싸던 그 시절, 언젠가 하고 말겠다며 나누었던 그때의 이야기일 것이다.
※※※※
히이이이힝-
푸르르륵-
쇼아라의 시청 안에 마련되어 있는 마구간.
말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가득한 곳이었지만 검은 말과 녹색머리 소녀가 있는 곳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너도 다들 피해 다니는구나.”
푸르르륵-
샤를의 말에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를 내는 누아르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지랄 같은 성격의 누아르는 주위의 말들에게 근처에 다가오지 말라 경고하는 중일 뿐이었다.
“그래그래. 나도 그 심정 다 알지.”
그러나 어린 샤를은 아직 누아르의 성정을 알지 못했고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검은 말의 모습을 보며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사용인들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누아르였으나 유독 샤를에게만은 관대했고 그 모습은 마치 제미나에게 보여주는 모습과도 비슷했다.
비록 마음에 드는 빨간색은 아닐지라도 샤를의 머리카락 색이 고향의 초원을 떠올리게 해서일까?
“이게 다 그 애꾸눈 때문이야.”
누아르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샤를의 눈이 누군가를 떠올리며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생긴 것만큼이나 성격도 고약한 기사.
그는 자신을 가르치던 블라드를 보자마자 머리통을 후려치고 발목을 갈긴 사람이기도 했다.
“그 사람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무어라도 배우고 있을 텐데.”
검술을 배우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블라드와 함께 있지 못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샤를의 분노는 오롯이 자야르를 향해 있었다.
애송이 주제에 애송이를 가르친다며 윽박질렀던 기사.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블라드와 함께 목검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재수 없어 진짜.”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자격으로 있기에 뭐라 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이곳이 라브노마의 저택이었다면 크게 한번 쏘아 올렸을 것이다.
샤를은 그만큼 분했고 억울해하는 중이었다.
“야야야! 인마!”
“잉?”
그런 샤를에게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고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나?”
“그래 너! 거기 쪼그만 놈!”
샤를은 혹시나 싶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으나 정작 그 모습을 본 사내의 표정은 더 험악해질 뿐이었다.
“너 이 자식. 그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데. 당장 안 나와!”
“잉? 엥?”
노예로 위장했던 시절이야 당연히 지금 같은 취급을 감내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쇼아라였고 샤를은 고귀한 귀족인 라브노마였다.
손님의 자격으로 있는 만큼 샤를은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뭔 사내자식이 뭔 잉? 엥? 이 지랄이야! 나오라고 인마!”
그러나 지금 윽박지르고 있는 사내도 충분히 이럴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남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여기가 네 자리야?”
“이야. 이 자식 어른한테 반말하는 것 보소. 싹수가 노란 게 아주 누구랑 똑같네 그냥.”
누구라도 겨우 차지한 자리가 위협받는다면 그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블라드의 말인 누아르를 관리하는 것은 여태껏 그의 몫이었으니까.
“헹. 그래도 꼴에 사내라고 목검까지 차고 있네. 네가 뭐 종자라도 되냐.”
“그래 나 종자야! 기사한테 검을 배우면 그게 종자지!”
그러나 가뜩이나 독이 올라있던 샤를은 전후 사정 관계없이 자신에게 윽박을 질러대는 턱이 긴 사내를 향해 핏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사내가 방금 말 한대로 샤를 라브노마는 이미 사람도 죽여본 적 진짜배기 노란 싹수였다.
“기사 블라드의 종자가 바로 나야! 매일 그 사람한테 검을 배우니까!”
“뭐라고?”
당연히 종자도 아니었고 검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악에 받친 샤를은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말이 충분한 유효타가 되었다는 듯 사내의 얼굴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네가 왜 블라드의 종자야!”
어디서 잔뜩 고초를 겪고 왔는지 옷차림이 남루한 사내.
억울한 듯 가슴을 쳐대는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내가 블라드의 종자야 인마!”
길잡이이자 마구간지기, 블라드의 종자이며 사기꾼이기도 한 사내.
고트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