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5
우는 여인 (1)
도시 바르나에서 일으킨 토벌대의 임무도 이제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용병들을 동원해 숲에 있는 몬스터 수를 줄여놓았으니 내년 봄에는 안심하고 들판에 양과 소들을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토벌대의 지휘관인 요제프의 성에는 차지 않을 결과였지만 말이다.
“니미······블라드한테는 한마디도 못 했던 놈들이.”
블라드가 자야르의 종자가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용병들에게서 이탈하자 고트는 새롭게 4조의 십인장이 되었다.
이제는 본인 포함 6명밖에 남지 않은 조였지만 말이다.
“거의 다 끝나가니까 참는다.”
보통 십인장이라는 자리는 가장 강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것이 옳겠지만 이제는 토벌이 곧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니 사실상 자질구레한 일들을 떠맡는 자리밖에는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고트는 귀찮은 일에 떠밀리고 만 것이다.
“겨울인데 안개는 왜 이렇게 끼는 거야.”
그런 이유로 고트는 한 조의 조장이었음에도 한밤중에 나와 불침번을 서는 중이었다.
마지막 토벌에 마지막 야영.
고트는 찾아오는 잠과 차가운 날씨, 그리고 주변에 자욱이 낀 안개를 바라보며 주둔지에 있을 자신의 침낭이 그리워졌다.
“별일 없나?”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한참 하품을 하고 있던 고트에게로 안개 속에서 불쑥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머리를 짧게 친 선이 굵은 남자였다.
“정신 차리고 계속 수고하도록.”
“네. 로드릭 님.”
기사 로드릭.
자신에게 충성하는 기사가 몇 없는 요제프에게 있어 자야르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한 기사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성실과는 거리가 먼 고트가 불침번 역할에 집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쯧.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이 딱딱하기는.”
로드릭이 지나가자 고트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 어디서나 규율과 규칙을 중요시하는 로드릭의 존재는 용병들에게 있어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눈 좀 붙여볼까.”
방금 순찰이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한숨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트가 눈을 감으려는 순간.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지?”
자욱한 안개 너머로 로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갔나?’
고트는 감았던 눈을 바짝 뜨고는 여기저기 놓여 있는 횃불에 의지해 로드릭을 찾으려 했다.
“아이를 찾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지?’
어두운 밤. 자욱한 안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분명 로드릭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로드릭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지만, 그와 대화하는 상대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인제 보니 미친 여자였군. 나는 너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
무언가 맥락이 맞지 않는 기묘한 대화에 고트는 자신도 모르게 로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보며 집중하고 있었다.
“······.”
그러나 안개 속에서 들려오던 로드릭의 목소리는 마치 끊어진 듯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고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맡고 있던 자리를 이탈해 조용히 소리가 들려오던 곳으로 나아갔다.
검을 다루는 실력은 별로였지만 사기꾼답게 은밀히 움직이는 기술 정도는 가지고 있던 고트였다.
사박- 사박-
들리는 것이라고는 눈을 밟고 있는 자신의 발소리뿐, 방금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로드릭의 기척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거야?’
그래도 제대로 찾아왔는지 저 멀리 횃불이 밝히는 끝자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로드릭의 모습이 보였다.
‘저건 뭐야.’
그러나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숲을 향해 걸어가는 로드릭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것이었다.
그것이 뭔지 알기 위해 눈을 찌푸리며 집중하던 고트.
‘······!’
그것의 정체를 어렴풋이 확인한 순간 고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말았다.
‘저게 뭐야!’
자욱한 안개 속 희미하게 보이는 형체.
그것은 긴 머리의 여인이었다.
여인의 머리가 로드릭의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마치 달려 있는 몸 따위는 없다는 듯이.
※※※※
“그래서 이번 토벌대가 복귀하는 대로 바르나로 돌아갈 생각이니······.”
요제프는 말을 늘이며 주위에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기묘한 분위기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무언가 민망하다는 듯 쉽사리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기사들.
그리고 그런 그들과는 정반대로 흐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야르까지.
“경들은 그에 맞춰 준비해주길 바라오.”
“······네.”
“알겠습니다. 요제프 님.”
“크흠. 그래야지요.”
요제프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기사들을 빙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기사들의 뒤에 서 있는 종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 기사들의 뒤로 그들을 보좌하는 종자들이 서 있었다.
“······.”
다들 어딘가가 엉망진창이 된 모양새로 말이다.
눈이 시퍼렇게 부어오른 보르단의 종자는 그나마 상태가 나은 편이었다.
시퍼런 눈, 터진 입술, 무언가 겁먹은 눈초리까지.
오직 자야르의 뒤에 서 있는 블라드만이 말끔한 얼굴과 함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럼 해산하시오.”
“크흠. 흠!”
“저렇게 사나워서야.”
“역시 뒷골목 출신들은 쯧쯧.”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그맣게 한마디씩을 내뱉고는 천막 밖으로 나가는 기사들.
자야르를 제외한 모든 기사가 천막 밖으로 나가자마자 요제프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때렸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니까.”
“······어젯밤 잠깐의 신고식이 있었습니다.”
“신고식?”
옆에 있던 자야르의 손이 올라가려 하자 블라드는 망설이지 않고 재빠르게 대답했다.
“선배 대접을 받고 싶어 하더라고요.”
현재 블라드의 공식적인 위치는 자야르의 종자였다.
비록 이것저것 복잡한 이야기들이 있긴 했었으나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원래 신고식이라는 게 신입이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보여준 것뿐입니다.”
본래 기사의 종자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귀족의 자제들이나 기사가 되고 싶어 하는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 맡게 되는 법이었다.
애초에 기사가 되기 위해 거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으니 아무리 종자라는 자리가 허드렛일을 하는 위치라 할지라도 평범한 사람들로는 꿈도 꾸지 못할 위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한 도련님들이 모여있는 세계에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잡스러운 녀석이 하나 껴들어 왔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을 것이다.
“뭐······어디서 얻어맞고 오는 것보다야 백번 낫습니다.”
요제프의 눈길이 자신을 향하자 자야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원래 저 나이대 소년들이란 서로 싸우면서 크는 법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왜인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집에서 기르던 개라도 다른 집 개보다는 낫기를 바라는 법 아니겠습니까.”
졸지에 개가 되어버린 블라드였으나 감히 불만을 표출하기에는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의 존재가 너무 커다랬다.
“뭐······나로서도 그렇긴 하겠군.”
자야르의 말에 요제프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빠악-!
“크으!”
그 순간 블라드의 뒤통수로 자야르의 손바닥이 날아들어 왔다.
“그래. 지금처럼 어디 가서 나 말고는 얻어맞고 오지 마라.”
“이거 칭찬입니까?”
“기사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실전과도 같이 긴장해야 한다. 너는 방금 한번 죽었어.”
시비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자야르의 행동에 블라드는 그저 뒤통수를 쓰다듬는 수밖에 없었다.
“이놈을 쓰실 일은······.”
“지금은 없군.”
“들었지? 나가봐라.”
보통의 기사와는 다르게 자야르는 요제프를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기사였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 말은 다른 종자들과 같이 온종일 자야르의 옆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천막을 나선 블라드는 아무도 듣지 못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루에 두 번 대련 해주는 거로 되게 생색내네.”
[애송아. 그것이야말로 천금 같은 기회라는 것이다.]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조용히 불만을 내뱉는 블라드에게 목소리가 말했다.
[남들 같으면 돈을 들고 와서라도 자야르와의 대련을 원할 거다. 그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기사야.]“그냥 나를 때리고 싶어 할 뿐인 것 같던데요.”
[그렇기에 대련의 질이 더욱 높아진 것이지. 어디서나 의욕이라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
아침과 저녁. 자야르와 함께하는 대련이 블라드에게 유일하게 정해진 일과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블라드에게는 모조리 자유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용병이 아니게 되었으니 숲속으로 토벌을 나갈 일도 없었고 직접 허드렛일을 하기에는 시켜 먹을 용병들이 주위에 가득했으니까.
“안드레아 님한테 가봐야겠네.”
[영향력 있는 자와 친분을 쌓아놓는 것이 이래저래 편하겠지.]리만이라는 가면이 벗겨지고 본모습이 드러난 직후, 블라드는 안드레아의 앞에서 한 마리의 어린 양처럼 자신의 죄를 고해했다.
“솔직한 게 답이 될 때가 있긴 하네요.”
[정면돌파가 제일 깔끔한 방법이긴 하지.]명망 있는 사제와의 인연은 자존심을 내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신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네. 자네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블라드가 자신을 속였다 할지라도 안드레아 사제는 블라드의 고백을 모두 들어주고 용서해주었다.
오히려 자신을 찾아와 모든 죄를 고한 것에 대해 고맙다고까지 말해주었었다.
그는 실로 존경받을만한 사제였다.
[꾸준히 얼굴을 비춰두면 나중에 그의 호의를 얻을 날이 있을 거다.]요 며칠간 이래저래 위기는 있었으나 결국 기사의 종자가 되었고 사제 안드레아와의 관계도 다시 돈독해졌으니 블라드로서는 이번 몬스터 토벌대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가져간 셈이었다.
“그럼 장작이라도 패볼까.”
블라드는 안드레아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기 위해 그가 쓸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대장! 리만······아니. 대장!”
순간 장작을 내려치려는 블라드에게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언제 복귀했냐.”
모아놓은 나무들 사이에서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고트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토벌대도 도착하지 않은 것 같던데?”
블라드의 심드렁한 반응에도 고트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급한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대장.”
“내가 왜 네 대장이야. 나 이제 십인장 아니야.”
“그럼, 블라드.”
“친한 척 하지 마라.”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
뭔가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하는 고트였으나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 장작을 패고 있는 블라드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왜?”
“나 오늘 밤에 여기서 도망칠 거야.”
“왜?”
“내가 이 말을 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호의라는 걸 잊지 마. 나중에 웃으면서 보자는 호의라고.”
사기꾼이 보내는 호의에 블라드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내 말 허투루 들으면 안 돼. 직접 보고 온 거란 말이야.”
평소와는 전혀 다른 고트의 분위기에 블라드는 그제야 장작을 패던 도끼를 내려놨다.
“뭔데 그래.”
이제야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블라드를 보며 고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숲. 우리가 토벌하는 숲.”
떨리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빛.
“저 숲은 저주받은 숲이야.”
“뭐?”
그것들이 사기꾼이 하는 말에 진심을 더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탈영병들이 좀 있었잖아. 여기가 보수도 좋고 근무환경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그랬지.”
점차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블라드를 보며 고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거 전부 숲이 데려간 거야. 탈영병이 아니라 진짜 실종자들이라고.”
“뭐 숲속에 사람 잡아가는 귀신이라도 있다 이거야?”
확실히 괜찮은 근무환경에서도 탈영병들이 있긴 했었다.
그러나 용병들의 생리라는 것이 원래 자유롭길 바라며 자기하고 싶은대로 움직이는 자들이 태반이었기에 블라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것뿐이었다.
“귀신이 있어. 진짜 내가 봤다니까.”
“미친놈이. 그냥 가라.”
뭐 그럴싸한 이야기라도 하나 싶어 들었었지만 영 허무맹랑한 말이 튀어나오자 블라드는 급속도로 관심을 잃고 말았다.
“이번 토벌에서 기사까지 실종됐단 말이야! 거짓이 아니라고!”
고트의 다음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뭐?”
“그리고 내가 복귀하면서 한번 알아봤거든?”
기사가 실종되었다는 고트의 말에 블라드는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했다.
“여태까지 실종된 놈들 말이야.”
사기꾼은 언제 거짓을 말하는가.
그것은 오직 자신이 이득을 보는 순간일 뿐이다.
“전부 검은 머리더라고.”
“뭐?”
그러나 고트에게 있어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블라드는 다시 한번 고트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짜 이상하지? 다들 하나같이 검은 머리였다니까?”
그 속에는 진실된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