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57
검은 말과 어린 나귀 (2)
딱 벌어진 어깨만큼이나 네모진 턱이 인상적이다.
키는 작았으나 덩치는 작다 할 수 없는 사내.
그런 사내가 보내는 눈빛은 지금 방 안을 가득 채운 페테르의 존재감에도 전혀 굽힘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안 드오.”
시구르손은 내뱉은 말만큼이나 삐딱한 시선으로 페테르를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무례한 행동이기는 했으나 시구르손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쇼아라의 시장을 바꾼 이유가 뭡니까? 이건 아무리 봐도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 같은데.”
“······절대로 그런 의도로 행한 것은 아닙니다.”
실각하다시피 자리를 비워버린 요제프의 소식은 드워프들에게 있어 큰 동요를 불러왔다.
함께 일을 잘 진행하고 있던 사람이 갑작스레 사라져버렸으니 누구라도 당황스럽기는 할 것이다.
페테르는 자신이 이 공백을 잘 수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난생처음 접하는 드워프들의 세계는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바예지드가 니다벨리르를 환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다만 그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바뀐 것뿐이니 너무······.”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요.”
끼익-
날카롭게 바닥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시구르손이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사람이 바뀐 것이 문제다 이 말입니다. 인간들의 영주. 페테르 바예지드.”
“······.”
지금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바예지드의 주인이었으나 시구르손은 그런 것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이냐는 것보다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우리가 이곳 쇼아라까지 찾아온 이유는 요제프 바예지드와 기사 블라드 때문이었소. 애초에 그들이 아니었다면 굳이 교류를 터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요.”
오랜 세월 핍박받은 드워프들의 역사는 그들을 폐쇄적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드워프들의 경계심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어린 드워프들과 함께 보내온 요제프의 정중한 편지뿐이었다.
“요제프 바예지드, 혹은 기사 블라드를 불러와 주시오. 우리와 다시 대화하고 싶다면 말입니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단단히 팔짱을 끼기 시작하는 시구르손.
곧은 만큼 직설적인 드워프들의 화법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곧장 가리키고 있었다.
“······요제프 바예지드 또는 기사 블라드.”
옆에 서 있던 조언자 라그무스조차 당황할 정도로 직설적인 요구였으나 정작 그 요구의 대상자인 페테르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을 뿐이었다.
시구르손의 요구에 당황하지도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던 페테르는 그저 생각을 정리할 잠시간의 시간이 필요한 참이었다.
‘그 이름, 참 많이들 불러대는군.’
시구르손은 몰랐겠지만 요즈음 페테르에게 그 둘의 이름을 찾은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하이날의 영주도, 초록 머리의 소녀도 갑작스레 사라진 둘을 찾던 중이었다.
‘이래서 해보겠다고 한 거였군.’
이제야 요제프의 속셈을 확실히 알아챈 페테르는 실로 복잡한 심정을 억누르며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동안 열심히도 모아놨구나.’
교류 없던 니다벨리르.
몰락한 라브노마.
볼품없던 하이날.
그리고 깡말라 있던 뒷골목의 소년까지.
아마 자신의 둘째 아들은 제 형이 밖에서 빛나는 명예를 꿰어갈 동안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들을 줍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들을 반질반질하게 닦아 빛나게 될 때까지 말이다.
※※※※
“살려,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마을의 곡식 창고 안.
어둡기에 서늘한 이곳에서 거꾸로 매달려있는 사내들이 살려달라 나지막이 외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까지 매달려있던 가짜 사제는 이미 하얗던 법복이 새빨갛게 될 때까지 얻어맞은 뒤였다.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사기꾼 일당의 애원을 들은 블라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특수 상해, 협박, 사기, 재물갈취, 거기다 신성 모독까지.”
내뱉는 죄악 하나마다 조금씩 잘려나가는 육포 조각들.
별것 아닌 행동이었으나 그 행동에서 느껴지는 살기만큼은 진짜였다.
“이 죄들을 다 셈하려면 죽은 것도 살려서 다시 목을 쳐야 할 판인데?”
“죄송합니다! 기사님!”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마치 통보와도 같은 블라드의 말에 가짜 사제와 그의 바람잡이들이 살려달라 아우성을 쳐댔다.
저 아래서 웃고 있는 남자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살고 싶어?”
“네! 네!”
“그럼 내놔.”
“네?”
당연하다는 듯 턱 하니 내놓은 블라드의 빈손.
거꾸로 매달린 채 그 손을 보던 가짜 사제는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동안 이 짓 하면서 꿍쳐놓은 게 있을 거 아냐. 보니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
이럴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찬송가와 함께 검을 뽑았던 블라드의 모습은 그 어떤 기사들보다도 빛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뒷골목 무뢰배들처럼 껄렁한 모습일 뿐.
“싫으면 말하라고. 아직 화형대에 불이 안 꺼졌다니까.”
“드리겠습니다! 있는 것 전부 다요!”
아마 지금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사기꾼들은 모를 것이다.
지금 그들의 앞에서 웃고 있는 젊은 기사는 이미 특수 상해, 협박, 사기, 재물갈취, 거기다 신성 모독까지 훌륭하게 저질러낸 사람이라는 것을.
악(惡)을 제압하는 더 큰 악(惡).
어두운 창고 안에서 웃고 있는 블라드의 눈빛이 스산해 보였다.
※※※※
살려준다고 했잖아!
저 빌어먹을 사기꾼 자식! 지옥에나 떨어져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사기꾼의 무리가 요란했다.
순진한 믿음을 파고들어 재물을 취했으며 멀쩡한 사람까지 태워죽일 뻔했으니 아마 죽어도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었다.
“사기꾼? 저게 무슨 소리인가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부제 님. 저런 놈들은 마지막까지 수작을 부리고는 하니까요.”
두둑해진 주머니를 괜스레 한 번 두들겨 본 블라드는 서둘러 쟝의 어깨를 돌리고는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부터 남자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블라드의 얼굴에는 미소만이 감돌 뿐이었다.
“그나저나 매달려있던 남자는 어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까?”
“다행히 살아있어요. 신께서 보호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블라드가 창고에서 사기꾼들을 족치는 동안 쟝은 촌장의 집에서 화형당하던 사내를 치료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사제 안드레아는 치료의 기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이었고 쟝 또한 그런 스승의 기질을 받아서인지 자그마한 신성 정도는 다룰 수 있는 아이였다.
“오오······. 귀하신 분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기다림이 초조했던 듯 아예 문밖에 서서 블라드와 쟝을 기다리던 촌장은 더는 굽힐 수도 없을 만큼 허리를 굽혀가면 둘을 안으로 안내했다.
“정말 두 분이 없었다면 저희 마을은 어찌 되었을지······.”
허튼 사기꾼들에게 당할 뻔했다는 것을 안 촌장은 과할 정도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까 있었던 광기 어린 화형식은 법으로 따지자면 앞에 있는 기사에게 처벌될 수 있는 것이었으며 교리로 따지자면 어린 부제에 의해 비난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근처 마을에서 역병이 퍼지는 바람에 깜박 속아 넘어갔지 뭡니까. 당장 저 남자를 잡아 불태우지 않는다면 저희 마을에도 역병이 퍼질 거라 말해서······.”
그러나 사기꾼들의 말을 따른 것은 촌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사기와 선동은 인간의 불안을 타고 들어오는 법.
지켜주는 영주가 없어 안전하지 못함에 불안하고, 사특한 존재가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에 불안하던 촌장은 역병을 몰고 들어왔다던 수상한 사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으으······.”
“정신이 드나 봐요!”
촌장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집 안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사내가 있었다.
험한 일을 당해서인지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그를 보며 쟝이 서둘러 부축하는 동안 블라드는 조용히 그의 옆에 놓인 소지품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소매치기했던 경험을 살려 눈짓 한 번으로 살펴본 그의 로브 안에는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득했다.
‘이 자식도 수상한데.’
그을음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온통 새까맣던 그의 웃옷들.
초라한 로브 안쪽에 빼곡히 달린 작은 주머니들 안에는 타다만 풀잎들과 이상한 뼛조각들이 가득했다.
“여기가, 여기가 어딥니까.”“정신을 차렸나.”
그리고 무엇보다 수상한 것은 그가 쓰고 있던 기이한 가면.
거꾸로 매달려있던 사기꾼들은 블라드에게 말했었다.
그 기이한 가면은 애초에 사내가 쓰고 있던 것이었다고.
“누구······ 십니까?”
“나는 바예지드의 기사. 블라드다.”
블라드는 들고 있던 가면을 누워있는 사내에게 들이 대어보았다.
얼굴형에 꼭 들어맞는 크기와 모양.
과연 사기꾼들이 말한 대로 이 가면은 이름 모를 사내의 것이었다.
“내가 이름을 말했으니 이제는 너의 차례겠지?”
“······내 이름은 니벨룬이요.”
이제야 더듬더듬 입을 여는 사내에게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제야 입을 연 사내에게서 들린 것은 불길한 단어일 뿐.
“나는 죽음을 쫓아 이곳까지 왔소.”
“······죽음?”
바짝 들이댄 그 가면은 마치 까마귀의 얼굴이라도 박아넣은 듯 기이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로브 위에 기이한 새 부리 가면.
가면의 눈구멍을 통해 본 사내의 얼굴은 고양이를 닮아있었다.
자신을 죽음을 쫓아왔다 밝힌 사내는 북부에서는 보기 힘든 수인족이었다.
※※※※
달빛 아래 비치는 저택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웠다.
아주 오래된 예전에는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겠으나 멋대로 방치되고 만 지금에는 그저 본연의 색을 잃어버린 채 그저 서 있었을 뿐.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 저택은 그렇게 내려오는 달빛을 홀로 맞이하고 있었다.
찰박- 찰박-
“······그러셨구나.”
쓰러져 가는 저택의 안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물을 끼얹는 소리.
마치 누군가를 목욕이라도 시키는 듯한 소리가 낡은 저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가지 못하셨구나.”
천장마저 허물어져 새까만 밤하늘이 보이는 저택의 홀.
그러나 모든 것이 낡았음에도 여인이 기대어 있는 욕조만큼은 상아색 빛을 뽐내며 어둠과 어울리고 있었다.
“가엾으신 분.”
시작은 푸르렀으나 끝은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의 여인.
그녀는 지금 정성껏 욕조의 물을 받아 그 안에 있는 사내를 씻기는 중이었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사내를 씻기는 여인의 손놀림이 많이 해보았다는 듯 능숙해 보였다.
“남아 있는 것들이 걱정되셨겠지요. 저는 이해한답니다.”
하늘 위에 떠 있던 달빛이 천장의 구멍을 통해 서서히 저택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이는 욕조 안의 풍경.
물 대신 가득 들어차 있는 새빨간 핏물.
새하얀 백발의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
여인이 조심스레 붙잡고 있는 그 남자의 모습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시체처럼 잔뜩 주름져 있었다.
“······얼마나 용이 두려우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셨을까.”
땅을 딛지 않는 여인은 어머니처럼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새빨간 욕조 안에서 시체의 손을 끄집어냈다.
지금은 잔뜩 말라비틀어져 있었으나 이 손으로 해낸 업적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일어나셔야죠. 폐하.”
주문과도 같은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시체의 손이 펴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뿌리처럼 천천히 피어나기 시작하는 불길한 손끝.
그 손끝이 펴져 갈 때마다 욕조의 핏물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온전히 하늘 끝에 다다른 달빛이 쓰러져 가는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오직 달만이 볼 수 있는 그곳에는 처참한 형태의 시체들이 목 없이 나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