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59
어둠 속에서 부르는 소리 있어 (1)
도시 모시암의 위로 달빛이 만드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주인 없는 도시이자 아직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시.
중앙에서 보낸 군세에 의해 함락되고만 모시암은 여전히 부서진 성문조차 복구하지 못한 채 발가벗겨져 있었다.
“하암······.”
그리하여 지금 모시암을 지키는 것은 의욕 없어 보이는 병사들뿐.
지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병사들은 북부연합에서 보내온 병사들로 이 도시에 대해 마땅한 애정이나 책임감이 없는 자들이었다.
“피에르 님. 되었습니다.”
“그래.”
저 멀리서부터 그들의 방만한 자세를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경비병들이 느끼기에 오늘의 어둠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더 부드럽고 끈끈한 것이었다.
하나에서 시작되었으나 곧 곳곳에서 들려오는 하품 소리들.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밤의 부드러움에 경비병들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잠들었습니다.”
눈을 붙인 경비병들은 아주 잠깐이라 생각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성문을 통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흐르는 어둠 위로 평안함의 축복을 실어 보낸 정체 모를 사람들은 그들의 의도대로 아무런 제지 없이 도시 모시암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모시암······.”
하염없이 졸고 있는 경비병, 부서져 있는 성문. 그리고 그사이를 통과하는 정체 모를 사람들.
한참 지나가던 사람들 속에서 잠시 멈춰선 피에르는 부서져 있는 성문을 올려다보았다.
“이것도 다 일부러 부순 거란 말인가.”
비쩍 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는 껑충한 키의 남자.
후드를 젖히자 보이는 그의 가슴팍에는 교황청을 뜻하는 낡은 로사리오가 매달려있었다.
※※※※
아침의 운무를 헤치며 걷는 세 사람이 있었다.
검은 말과 어린 나귀를 타고 있는 두 사람.
“헥······ 헥.”
그리고 아무런 탈 것도 갖추지 못한 수인족 남성 한 명까지.
“겨우 그거 걸었는데 숨이 차는 거야?”
“아니, 이게 따라붙기가 좀 힘들긴 하네요.”
“수인족들은 다 체력이 좋다고 그러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들었는데.”
“그것도 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편견에 사로잡히시면 안 됩니다. 기사님.”
“아니, 지금은 편견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그렇지.”
“······.”
혀를 빼물며 걷고 있던 니벨룬은 슬슬 시작되려는 블라드의 핀잔에 재빨리 입을 닫았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심성이 삐딱한 이 기사는 여전히 니벨룬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여기 물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제님.”
“저는 아직 부제일 뿐입니다. 사제라고 부르시면 안 돼요.”
“흐. 그렇다 해도 베푸시는 모습은 이미 훌륭한 사제이십니다.”
쟝이 건네준 물통을 받아든 니벨룬의 귀가 쫑긋거렸다.
니벨룬을 통해 수인족을 처음 본 쟝은 그 모습이 내심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중이었다.
“좀 있으면 모시암이니까 거기에서는 입 닫고 있어라.”
“네.”
“저번 마을에서처럼 하고 싶다고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주저리지 말고.”
“······네.”
핀잔인지 경고인지는 모르겠으나 블라드가 이렇게 신신당부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말은 안 하겠다고 하긴 하는데······.’
며칠간의 여행이었을 뿐이지만 블라드는 대충이나마 니벨룬이라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이한 열정에 사로잡힌 사내.
니벨룬이라는 사내는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자기가 매진하는 분야에서만큼은 광인의 모습처럼 돌변해버리고는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뒷골목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블라드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 앞에 정지! 말에서 내려 신분을 밝히시오!”
투덕거리며 걷는 와중에도 목적지는 가까워졌고, 드디어 저 멀리 짙은 안개 너머에서 보이는 성벽이 있었다.
모시암. 사특한 존재를 품고 있던 도시.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성문 앞으로 다가오는 세 사람을 보고서는 길을 막아 세웠다.
“수인족?”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희 처음 뵙지요?”
상황에는 맞았으나 어딘가 꺼림칙한 니벨룬의 인사.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라 말했건만 기어이 경비병에게 말을 거는 니벨룬을 보며 블라드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 도시는 처음인가?”
“그러게요. 처음이지만 꼭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부서진 성문이 아주 멋지네요.”
“······.”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데는 아주 잠깐의 대화만 있으면 된다.
이미 경비병은 니벨룬의 대화 속에서 무언가 어그러진 조각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마치 저주처럼 들렸던 저번 마을에서 경고처럼 니벨룬은 타인의 세계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이었다.
“거기 남자. 말에서 내려 신분을 밝히시오.”
새파랗게 젊은 기사와 어린 부제, 그리고 어딘가 이상한 수인족 사내.
안개 속에 있었을 때보다 더 수상해 보이는 조합을 보며 모시암의 경비병들은 가차 없이 창을 내리 세웠다.
“꼭 내려야 하나?”
“잔말 말고 내려오시지. 수인족까지 끌고 왔는데 얌전히 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하긴, 그건 그렇긴 하지.”
하긴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지금도 한껏 웃고 있는 니벨룬의 표정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 어딘지 모르게 기이해 보였으니까.
굳이 환영받지 못하는 수인족이라 할지라도 니벨룬의 지금 모습은 충분히 제지할 만한 것이었다.
“여기에 온 목적과 신분을 밝혀라.”
“잠시만. 여기에 넣어두었었는데.”
수상한 자들을 앞에 둔 경비병의 말투는 날카로웠지만 정작 앞에 있는 블라드의 말투는 태연할 뿐이었다.
“아아. 여기 있군.”
니벨룬이 이상하면 어떻고 쟝이 어리면 어떻단 말인가.
성문을 드나들 자격조차 없어 개구멍을 파고 다니던 소년은 이제 더는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블라드는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도 닫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잠깐만 받아봐.”
“응?”
너무나 자연스럽게 건네는 물건들.
무심히 건네는 물건들이었으나 정작 그 물건들을 확인한 경비병은 점점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쇼아라에서 만든 증명서고······. 참고로 바예지드 백작님이 직접 직인 하신 거다.”
“끄윽.”
“그리고 이건 주교 안드레아 님이 보내시는 확인서고.”
“흡!”
“나는 블라드라는 기사인데. 잠깐만, 폼멜에 바예지드의 문장이 새겨져 있거든.”
바예지드 백작이 직접 임명한 기사이자 주교 안드레아가 보증하는 어린 부제의 인도자.
그리고 이미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북부의 기사. 블라드.
“이 신분패는 바르나 교회에서 직접 내어준 것인데 여기도 보면 안드레아 님의 보증이 새겨져 있고.”
“죄송, 죄송합니다······.”
경비병을 바라보는 쟝의 얼굴이 안쓰럽게 변해갔다.
블라드가 주섬주섬 꺼내는 증명들은 일개 성문지기가 받아들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었으니까.
블라드가 품 안에서 무언가 하나씩 꺼내 들 때마다 주위에 있던 경비병들의 얼굴이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 지나가도 돼?”
“제발 지나가 주십시오······.”
경비병들을 보며 웃고 있는 블라드의 모습이 여전히 소년 같았다.
마치 빛나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
블라드는 성문을 지나며 그 위에서 나부끼고 있는 깃발들을 바라보았다.
비록 안개가 가득해 확실히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개중에는 확실히 낯익은 깃발들도 몇몇 걸려 있었다.
‘바라노프, 바예지드, 그리고 하이날이라······.’
북부를 대표하는 7개의 깃발.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우트만의 깃발이 내려간 대신 새로이 하이날의 깃발이 걸려 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깃발이 흔들리는 모습처럼 도시 모시암은 현재 어떠한 영주의 지배 없이 북부연합이라는 공동체의 이름 아래 관리되는 중이었다.
“따라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과하게 군기가 들어버린 경비병들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모시암은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해 보였다.
분명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로였으나 주위에는 문 하나 열어놓지 않은 가게들뿐.
짙은 안개 때문인지는 몰라도 왕래하는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아 괴이한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네요······.”
“그렇기에 부제님께서 이곳으로 오신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의 말씀이 필요한 도시이니까요.”
블라드는 낯선 도시의 모습에 움츠러드는 쟝을 보며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해주었다.
블라드의 말처럼 도시 모시암은 현재 북부의 그 어느 도시보다 신의 위로가 필요한 곳.
안드레아가 말하기를 쟝뿐만 아니라, 때가 된 대부분의 부제는 거의 대부분 이곳 모시암으로 향할 거라고 했었다.
“안개 가득한 모습을 보니 그때가 떠오르네요. 분명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바로 떠나실 건가요?”
여태까지는 씩씩한 척하고 있었어도 쟝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뿐.
여태껏 자신을 든든히 지켜주었던 기사의 임무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쟝은 불안한 듯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가지는 않고 아마 당분간은 여기에 있을 겁니다. 한 일주일 정도는요.”
“아. 다행이네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쟝을 보며 블라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홀로서기의 시작이기는 하겠으나 아직 어린 부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시기이기도 했다.
‘잘 좀 보살펴주게.’
블라드는 안드레아가 굳이 자신을 쟝에게 붙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단순한 임무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보호자가 필요했던 것이겠지.
교회의 규칙에 얽매여 있기는 했으나 어린 아기 때부터 키워온 어린 부제는 안드레아에게 있어 제자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였으니까.
“잠시.”
“네?”
그래서 지금 블라드는 쟝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도시로 들어선 순간부터 인도자의 임무는 끝이었으나 블라드는 여전히 쟝의 보호자를 자처하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앞에 있는 경비병. 잠시 멈춰라.”
블라드의 갑작스러운 제지에 당황하는 쟝과 경비병.
그러나 수인족인 니벨룬만큼은 귀를 쫑긋거리며 안개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를 쫓고 있었다.
“누군가 울고 있는데요.”
“······.”
“여자인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인의 울음소리였다.
얕고 낮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울음소리.
안개와 여인, 그리고 울음소리를 확인한 블라드는 언젠가 겪어본 듯한 기시감을 느끼며 천천히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댔다.
“흑, 흑흑······.”
아무도 없는 도시의 대로 한 가운데.
이제야 다가온 울음소리를 확인한 쟝과 경비병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 좀 찾아주세요. 아저씨 제 아이가요······.”
도시의 자욱한 안개를 뚫고 나온 것은 울고 있는 어느 여인이었다.
비어 있는 포대기를 등에 업고 있던 여인은 경비병을 확인하고는 쓰러지듯 그에게 기대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분위기는 비슷했으나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지금 울고 있는 여인은 사특하지도 그렇다고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지도 않았다.
“아아, 이게······.”
할 수 없이 우는 여인을 안아 든 경비병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블라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 도시에는 이런 미친 여자들이 꽤 있습니다.”
“왜?”
“그것이······.”
다급하게 다른 병사에게 여인을 넘겨준 경비병은 머리를 긁적여대었다.
“이곳에 있던 사특한 존재가 어린아이들을 많이 해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사정은 저도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
울고 있던 여인은 어느새 쟝을 향해 다가가 업고 있던 포대기를 가져다 대었다.
그곳에 들어갈 리 없는 쟝이었으나 울고 있는 여인은 비어 있는 포대기의 부재가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지금 이 도시에는 딱 지금 부제 님 나이까지의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있어도 부모들이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지 않지요.”
“······그래?”
블라드는 병사들에 의해 점점 멀어지는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자신의 가슴팍을 쓰다듬어 보았다.
엘프들에게 받았고 드워프들의 수리해 준 갑옷.
예전보다 더 따뜻해진 그 갑옷의 가슴팍에는 여전히 산 로지노에서 받은 글귀가 남아 있었다.
※※※※
“죄송합니다. 지금 단장님께서 부재중이시라.”
“갑작스레 왔으니 이해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이제는 주인 없는 자리가 된 시청에는 현재 북부정교회에서 온 성기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흐음······.”
임무 때문에 나갔다는 단장을 기다리기 위해 의자에 앉은 블라드는 금세 삐져나오는 하품을 억눌렀다.
‘너무 졸린데.’
어느새 어깨를 기대며 잠들어 있는 쟝과 니벨룬을 보며 블라드는 손가락으로 나른한 눈물 몇 방울을 찍어내며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한 잠은 무거웠고 눈꺼풀은 점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으······.”
차가운 바깥과는 다르게 훈훈한 건물 안의 공기.
요 며칠간 지속해온 야영과 이제야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안도감까지.
언제 올지 모르는 단장을 생각하며 팔짱을 낀 블라드는 그만 고개를 떨군 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
돌자, 돌자, 성냥 주위를 돌자.
즐겁게 노래하는 성냥 주위를 돌자.
새빨갛던 머리가 시꺼멓게 될 때까지.
부르던 노래가 끝날 때까지······.
“······.”
어둡지만 밝은 곳.
축제라도 벌어진 것일까.
저 앞에서부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늪처럼 빠져든 꿈속에는 커다란 모닥불이 하나 있었고 그 모닥불은 잔잔한 불꽃을 품은 채 어두운 사방을 밝히고 있었다.
“······.”
꿈속의 공간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안락한 곳이었다.
이곳은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다.
그런 기분을 느낀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앞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처럼 웃음을 짓고 말았다.
뒷골목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언제나 춥고 배고팠던 그곳에서 고통스러워했던 블라드는 모닥불이 주는 온기에 이끌려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 모닥불 안에는 어렸을 적 블라드가 굶주려 했던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
따스한 수프, 지붕 있는 거처, 포근한 담요, 그리고 어머니의 웃음까지.
그것들 모두가 모닥불 안에서 블라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자, 돌자, 성냥 주위를 돌자.
부르던 노래가 끝날 때까지.
부르던 모두가 넘어질 때까지.
[블라드!]“······!”
순간, 찢어지게 아파지는 어깨.
꿈속이었지만 퍼뜩 정신을 차린 블라드는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당장 이 도시에서 나가라!]그리하여 돌아본 그곳에는.
얼굴이 새까맣게 칠해진 정체 모를 남자가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