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6
우는 여인 (2)
하얀 눈길을 밟으며 움직이는 남자들이 있었다.
약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남자들은 모두 흉흉한 무기를 든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경계하며 길을 걷는 중이었다.
“믿을 수 있는 놈이냐?”
자야르는 말 위에 앉아 옆에서 걷고 있던 블라드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믿을 수 없습니다. 사기꾼이거든요.”
“으음.”
블라드는 가장 앞장서서 걸어가는 용병 사내를 보며 대답했다.
그곳에는 힐끔힐끔 고개를 돌리며 블라드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고트가 있었다.
어떻게 나의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을 수 있냐 말하는 억울한 눈빛이었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신 나간 놈은 아닙니다.”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지.”
기사 로드릭이 실종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요제프는 모든 복귀 준비를 중단하고 실종자를 찾을 수색대를 편성했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용병이 실종된 것과 가문의 기사가 실종된 것이 가지는 무게는 달랐다.
이것은 요제프의 능력에 강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사고였으며 심한 질책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제프는 자신의 책임하에서 벌어진 사고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쭙잖은 토벌 실적보다 지금처럼 특이한 동향을 발견하는 것이 더 이득일지 모르지.”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며 위기의 순간에도 기회를 찾아 움직이는 남자.
그것이 바예지드 가문의 요제프라는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라······.”
자신의 주군인 요제프와 같은 머리 색깔의 남자들이 실종되었다는 보고에 자야르는 영 껄끄러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하긴 하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언제나 요제프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임무인 자야르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기사 로드릭이 실종된 이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강한 사람이 나서야만 했으며 확신할 수는 없지만 로드릭을 불러내었다는 여인의 존재까지 감안해봐야 했다.
그렇다면 현재 있는 인원 중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인 자야르 뿐이었다.
“주둔지에 기사가 셋이나 남아있는데 크게 걱정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놈들이 하나도 없으니 그렇지.”
“저라도 남아있을 걸 그랬나요?”
“그래도 너보다는 낫겠지.”
“······.”
자야르의 판단이 맞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검을 잡은 지 이제야 한 달이 넘은 블라드보다야 그래도 정식으로 검술을 다룬 지 십 년은 족히 넘은 기사들이 훨씬 나은 수준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직 돈으로 기사 작위를 산 보르단 정도만이 블라드보다 못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블라드는 자야르의 냉혹한 평가에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블라드라는 사람이 형편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 수색대에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저, 저기 앞입니다.”
제일 앞장서서 수색대를 이끌던 고트가 떨리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직 토벌대가 야영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자리.
그곳에서도 고트가 불침번을 섰던 장소이며 로드릭이 실종된 장소에 도착한 수색대는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숲속을 뒤져봤는데 흔적조차 없었다고?”
“네, 네. 그렇습니다. 사냥꾼 출신인 용병이 뒤져봤는데도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로드릭의 부재로 지휘권이 붕 뜬 상태에서 그나마 잠깐이라도 그를 수색하고 토벌대를 이끌고 온 것은 로드릭의 종자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괜찮은 초동조치이긴 했으나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고트가 토벌대에서 탈영해 누구보다 빨리 주둔지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종자의 느슨했던 지휘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좋아.”
자야르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훑어보며 근처에 세워진 말뚝에 타고 온 말을 묶었다.
지금부터는 직접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지금부터 세 명씩 조를 지어 주위를 수색한다. 서로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퍼져 있도록.”
“네!”
기사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사태와 자야르라는 지휘관, 그리고 용병들을 휘어잡고 있던 블라드의 존재까지.
비록 여기저기서 모아온 용병들에 불과했으나 지금만큼은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희는 나와 함께 간다.”
세 명씩 모인 인원들.
그 중 자야르와 함께하는 것은 종자인 블라드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고트였다.
“대장.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사람이,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나중에 뭐라도 좀 챙겨줄게.”
“이건 사기야. 사람의 호의를 이용한 사기라고.”
고트는 비록 자야르를 의식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었으나 점점 목소리에 울분이 차오르는 중이었다.
“미안하다니까.”
사기꾼에게 사기를 쳤다며 원망을 듣고 있는 블라드였지만 눈만큼은 날카롭게 누군가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솔직히 고트의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뭔가 보이나?”
“······아니요.”
열심히 수상한 흔적을 찾아보고 있었으나 눈으로 덮인 산길은 블라드에게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았다.
“쓸모없군.”
“도시 출신이라서요.”
“뒷골목에서는 사람이 실종될 때 어떻게 찾지?”
“일단 아무나 붙잡고 때려보는데요.”
“······정말 쓸모없군.”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던 블라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불이나 피울 줄 알았지 흔적을 찾아내는 추적술 같은 것은 배워본 적도 없는 블라드였다.
자야르는 그런 블라드를 보며 이것저것 가르칠 게 많겠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있으면 날이 지겠군.”
자야르는 점점 뒤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수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지금 수색대가 있는 이곳은 주둔지에서 걸으면 반나절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것을 감안하여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으나 산속에서의 해는 빨리 지기 마련이었다.
“음?”
언제쯤 수색을 멈춰야 할까 고민하던 자야르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얼어붙은 강.
그 너머로 보이는 숲이 있었다.
“저 강 너머까지 수색했었나?”
“제가 알기로는 강은 안 넘었던 것 같습니다. 기사님.”
“······.”
고트의 대답에 자야르는 생각했다.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겠어.’
이미 한 차례 수색한 숲에서는 전투의 흔적은커녕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만약 로드릭을 발견한다고 한다면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머리만 둥둥 떠다녔다는 정체 모를 여인 또한.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곳에서보다 더 멀고 한 번도 수색하지 않은 곳.
“강을 건넌다.”
강 너머로 넘어가야 흔적을 찾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짧은 휘파람 소리로 용병들을 통제한 자야르는 손짓으로 강을 가리키며 저곳으로 모이라 지시했다.
“완전히 얼지 않았군.”
“겨울의 끝자락이니까요. 요즘 따뜻하기도 했고.”
용병들과 함께 강에 다다른 자야르는 자신들이 건널 강이 완벽히 얼어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래도 건널 수는 있겠어요.”
“흩어져서 건너가면 될 것도 같군.”
비록 발을 디딜 때마다 쩌적 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성인 남성의 몸무게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듯싶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의 인원이 먼저 건넌다.”
혹시라도 얼음이 깨질까 싶어 자야르는 인원을 분산시켜 강 너머로 보내기로 했다.
“으으······.”
“왜 그래?”
블라드는 자신의 뒤에서 앓는 소리를 내는 고트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강을 건너는 용병들을 보는 고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감이 안 좋아 감이······.”
“그냥 겁먹은 게 아니고?”
“당연히 겁도 먹었지! 나는 대장같이 잘난 사람들이랑은 다르다고.”
고트는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며 블라드에게 말했다.
“원래 뭐든지 촉이 좋아야 돈을 벌 수 있단 말이야.”
“그래. 사기를 치려면 촉이 좋아야 하겠지.”
“······어쨌거나 그래, 내 감이 저 강을 건너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니까.”
“그럼 네가 자야르 경을 설득해보던가. 감이 안 좋으니 건너지 말자고.”
“······.”
느낌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뒤로 내빼려는 고트를 블라드가 억지로 붙잡아 세웠다.
“나는 감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예측하건대 너 여기서 도망이라도 쳤다가는 곱게는 못 죽을 거다. 유일한 목격자가 사건 현장에서 냅다 도망간다? 나 같아도 잡아서 족쳐보지.”
“그러니까 나를 왜 붙잡아뒀어!”
“그러니까 귀신을 왜 봤어. 네가 귀신 본 게 내 잘못이야?”
뻔뻔하게 응수하는 블라드를 보며 고트는 입술을 찡그릴 뿐이었다.
“다음!”
첫 번째로 지목된 용병들이 무사히 건너자 자야르는 남은 인원들을 이끌고 강을 향해 나아갔다.
쩌적-
“대장, 대장! 이거 깨질 수도 있지?”
“물론이지. 네가 한마디만 더하면 내가 깨부순 다음 처넣어버릴 거니까.”
“흐으으으······.”
처음 봤을 때 감히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 하길래 대담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는 겁이 많은 모양이었다.
“사내새끼가 왜 이리 겁이 많아!”
자꾸 뒷걸음질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 고트를 끌어오느라 블라드는 자연스레 일행과 멀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 건너는 인원들이 강의 중심부에 다다랐을 때조차 아직 고트와 블라드는 초입부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히이익! 못 가! 나는 못 간다!”
“봐주는데도 한도가 있다. 당장 일어나 이 개자······.”
“히에에엑! 끄에에에에엑!”
아예 강바닥에 엎어져 버린 고트를 향해 윽박지르려 했던 블라드였으나 오히려 차례를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고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블라드를 향해 소리 질렀다.
자세히 보면 입에 거품도 맺혀있는 듯싶었다.
“대, 대장! 밑에! 밑에!”
“안 깨진다니까! 그냥 한 대 맞고 기절한 다음에 넘을래?”
“아니 밑, 강 밑에 시······.”
이제는 아예 발광을 해버리는 고트를 보며 분노를 터트리려는 블라드였으나.
그 전에 고트가 간신히 숨을 고르고는 하고 싶은 말을 외쳤다.
“시체! 시체가 있다니까!”
“뭐?”
더듬거리던 고트의 말을 이제야 알아들은 블라드는 자신이 딛고 있는 얼음 밑을 내려다보았다.
물고기들조차 얼어있을 것 같은 어두운 강바닥 밑에서.
뽀글-
자그마한 기포가 올라오고.
“······?”
그 아래에서 천천히 부유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시발.”
아니, 무언가들이었다.
희끄무레한 형상과 함께 점점 다가오는 것들.
그것들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새하얀 손을 내뻗고 있었다.
“자야르 경!”
한참 강을 건너고 있던 자야르는 저 멀리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종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저기인가.”
농땡이라도 피우는가 싶어 한마디 내지르려 하는 순간.
“강 밑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뭐?”
마침내 그것들의 존재가 표면으로 다다랐다.
쾅쾅쾅쾅쾅쾅쾅!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기어 올라온 것들이.
쩌저저저적!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구분 짓던 얼음을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여기서 꺼내 달라며.
이곳은 너무 춥다며.
“으아아아아!”
“얼음이 갈라진다!”
“시체다! 강 밑에 시체가 있다!”
꽈악-!
“······!”
자야르는 강 밑에서 올라온 무언가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서늘한 감각이었다.
끄아아아아-!
발밑을 내려다본 자야르는 경악하고 말았다.
시체였다.
그것도 검은 머리를 가진 사내의 시체.
“이런 빌어먹을!”
강 깊숙한 곳에서부터 조용하게 올라와 기사인 자야르의 감각마저 속인 것들이었다.
용병들의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강에 서린 얼음들이 갈라지고 있었다.
“살려줘!”
“잡아당기지 마! 으아아!”
그것들은 숨을 쉬지 않는 것들이었으며 너무나 차가운 곳에 갇혀 있던 것들이었다.
크아아아-!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손을 내뻗고 있었다.
따뜻한 숨을 내뿜는 자들을 향해서.
“어서 강을 건너라!”
자야르는 재빨리 검을 뽑아 들어 자신을 붙잡은 것을 베어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저 앞에서 자야르가 용병들을 향해 강을 건너라 소리치는 동안 블라드의 옆에서 강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자가 있었다.
“으아! 으아! 대장!”
“빌어먹을!”
어느새 강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시체들.
“흐읍!”
블라드는 자신을 향해 내뻗는 손들을 검으로 후려치며 여전히 자빠져 있는 고트의 뒷목을 붙잡았다.
“이런 씨······!”
[당황하지 마라! 움직이기 전에 나아갈 방향을 정해라!]목소리의 조언을 따라 블라드는 재빨리 주변을 파악했다.
‘앞으로는 못 가!’
그렇다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은 단 한 곳뿐이었다.
나아갈 방향을 정한 블라드는 한 손으로 고트를 질질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매섭게 휘두르며 왔던 방향을 향해 되돌아나가기 시작했다.
블라드가 내뿜는 하얀 입김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일어나! 이 새끼야!”
“흐아아아아!”
갈라지는 얼음. 무너지는 강.
그 위에서 하염없이 비명을 지르는 자들.
그것이 산 너머로 넘어가는 붉은 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강을 건너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색대의 등 뒤로 점점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 그리고 어둠.
그것들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