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62
다시 돌아온 사람들 (1)
텅 비어있는 감옥 안에서 누군가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겨울의 차가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돌바닥이었지만 그럼에도 경건히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
주교 피에르는 감옥 안에 자그맣게 뚫려 있는 창을 보며 기도문을 읊조리고 있었다.
“······이 일을 드라굴리아가 방조하고 있었다라.”
창살 밖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귄터는 피에르의 마지막 대답에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겠으나 주교 피에르는 지금의 사태와 깊숙이 연관된 인물이기도 했다.
“맹약에 묶여 있는 자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내가 질문할 차례인 것 같은데.”
기도를 마친 피에르가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못다 한 일을 마치기 위해 모시암으로 돌아온 교황청의 주교.
껑충하게 솟아오른 그의 등 뒤로 자그마한 아침의 빛무리가 감돌고 있었다.
“혹시 바예지드의 애송이에게 알려주었소?”
“무엇을 말입니까?”
“장엄한 신의 뜻. 마(魔)를 물리치는 신실한 자의 칼날.”
창살 앞에 선 피에르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취조나 고문 같은 허튼 시도 대신 질문과 대답을 나누기로 한 피에르와 귄터.
귄터의 물음에 솔직히 대답한 피에르는 이제 약속에 따라 하나의 질문을 건네는 중이었다.
“나는 지금 북부정교회가 블라드라는 녀석에게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정수를 가르쳤냐 묻고 있소.”
“······.”
어제의 어두웠던 새벽.
안개 가득한 도시에서 솟아오른 장엄한 신의 뜻이 있었다.
정작 그 술식을 준비한 피에르조차도 놀랄 만큼 곧고 높은 빛의 기둥이었다.
“나눌 것을 나누셨어야지. 본교에서 애써 독립해 나가 하는 짓이 고작 귀족들의 주구 노릇이오?”
그렇기에 피에르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제 블라드가 보였던 일검은 일개 기사의 임기응변으로 해냈다기에는 너무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배우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합일(合一)의 정수가 분명 애송이의 검 끝에 맺혀 있었다.
“무언가를 팔고 싶었으면 차라리 면죄부를 파셨어야지. 그렇게 교회의 정수까지 내줘버리면······.”
“저희는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가르친 적이 없다고?”
그러나 그의 분노는 대상을 잘못 지정하고 있었다.
귄터의 말처럼 북부정교회는 절대 외부인에게 일체의 정수를 가르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 혹시 안드레아가?”
“안드레아 주교님은 구마 사제가 아니십니다. 저희의 기술을 아실 리가 없지요.”
결과는 있었으나 원인이 없다.
피에르는 분명 블라드의 검 끝에 깃들었던 세계의 합일을 목격했었으나 정작 그것을 알려준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바예지드의 애송이에게 그 길을 인도해주었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정통한 근원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정수.
그 정수가 오롯이 서 있기 위해서는 모든 세계를 받쳐주는 바닥 면이 있어야만 했다.
‘옳게 받쳐주는 자가 없다면 쓸 수 없는 기술일진데······.’
피에르의 신성, 니벨룬의 신비, 블라드의 오러.
그리고 이것들을 받쳐주는 가장 밑바닥의 근원.
피에르는 도대체 어떤 이의 세계가 그 밑을 받치고 있었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애송이의 세계는 자신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정통한 자에게서부터 근원 했으리라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어제 블라드가 휘두른 빛이 악독한 역천(逆天)의 나무를 베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
벽난로를 때워 온기가 가득한 방이었으나 정작 침대 위에 누워있는 쟝의 입술은 여전히 파랗게 질려있었다.
파래진 입술만큼이나 점점 얕아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블라드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이제 3일 정도 남은 겁니까?”
“아마도요. 지금 단장님께서도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계십니다.”
저주에 감염되었던 아이들은 공통된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고 했다.
깊은 잠, 같은 꿈, 그리고 점점 떨어지는 체온.
해가 뜰 때는 하염없이 잠들었다가 해가 졌을 때야 깨어나 오한에 떨던 아이들은 다들 하나같이 일주일은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쟝이 저주에 걸려든 지 4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어린 부제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던 안드레아를 떠올리며 블라드는 그만 우울해지고 말았다.
어떻게든 빌어먹을 나무를 그때 끝냈어야 했었다.
그렇게만 했었다면 지금 쟝이 다시 잠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
유스티아는 쟝의 곁을 떠나지 않는 블라드를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자신을 몰아세우는 블라드는 분명 자신을 자책하는 중이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 누구라도 처음 그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블라드 경만큼 해내지도 못했을 거예요.”
문가에 어색히 서 있던 니벨룬도 유스티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대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블라드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쁘신가?”
“힉!”
순간, 침묵만이 가득한 방으로 갑작스레 귄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가에 서 있던 니벨룬조차도 느끼지 못한 그의 기척에 세 사람의 시선이 한 번에 쏠리고 말았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둘이서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잘 빗어놓았으나 조금은 헝클어진 머리가 귄터의 고민을 가늠케 했다.
그러나 붉게 충혈된 블라드의 눈가 또한 보기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으니 같은 고민을 지니고 있던 둘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단 사과하지. 쟝의 신변을 억지로 가져오려 했던 것은 충분히 우리의 힘으로 저주를 파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네.”
복도로 나온 블라드와 귄터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첫 만남은 조금 어긋났다 할지라도 지금의 둘은 서로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내 모자람을 인정하지.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 튀어나왔어.”
“이해합니다.”
“좋아. 그럼 우리 둘 사이의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으로 봐도 되겠나?”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요.”
귄터 정도 되는 위치라면 일개 기사인 블라드에게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쇼아라의 블라드는 역천(逆天)의 상징인 클리포트(Qliphoth)의 나무를 베어낸 사람이었으니 이것은 귄터 나름대로 존중의 의미를 담은 행동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해. 조만간 도시를 봉쇄할걸세. 소개령을 내리고 이 근방을 비울 생각이야.”
“쟝은요?”
“바로 그게 문제야.”
현재 모시암뿐만 아니라 우트만 남작령을 병들게 하는 원인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클리포트의 나무일 것이다.
서로 지키려 하는 것은 조금 달랐지만 귄터와 블라드는 그 빌어먹을 나무를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 나무가 도망간 구멍은 이미 신의 뜻이 닿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네. 물리적으로는 닿을 수 없다는 뜻일세.”
성기사들을 통해 조사한 묘지의 구멍은 이미 끝도 없이 뚫려버린 무저갱과도 같은 것이었다.
입구같이 생겼으나 결국은 속임수.
도시를 둘러싼 희미한 안개와도 같이 실체 없는 그 구멍을 통해서는 절대 역천의 나무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단장님께서도 전혀 방법이 없습니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귄터는 그 말과 함께 블라드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새삼스럽다는 듯 지켜보는 그의 눈빛에 블라드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이지?”
“갑자기 그건 왜······.”
“중요한 거니까 빨리 대답해보게.”
질문은 평범했으나 거기에 따른 박력만큼은 상당했다.
확신과 대안이 있는 자만이 뿜을 수 있는 그런 기세였다.
“스물입니다.”
“지금 나이 말이야.”
“두 달 모자란 스물······.”
“아직 열아홉이로군.”
뒷골목의 버릇대로 나이를 올려쳐 본 블라드였으나 북부정교회의 단장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슬아슬하군.”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자리라니.
귄터는 블라드의 어린 나이가 새삼 다가왔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알맞은 나이이기도 했다.
“갑자기 나이는 왜 물어보십니까.”
“아직 열려있는 입구가 하나 보여서 말이지.”
지금도 어린 부제와 남작령을 좀 먹고 있는 역천의 나무는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물리적으로는 통할 수 없고, 이미 어둠 속에 숨어 밝힐 수도 없다.
그러나 귄터는 그 나무와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어린아이만 걸렸던 저주야.”
귄터는 턱 끝으로 쟝이 누워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때마침 지금 내 앞에는 어림과 젊음 사이에 걸쳐 있는 기사가 한 명 서 있군.”
그리고 이번에는 블라드를 향해서.
지금 귄터의 앞에는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성숙했고 청년이라 하기에는 아직 어린 묘한 인상의 기사가 서 있었다.
“꿈을 통해서라면 그 나무에 접근할 수 있을걸세.”
“······!”
귄터의 말에 블라드는 모시암에서 겪었던 꿈을 기억해 내었다.
어머니의 품과 같았던 어둠과 저 멀리서 타오르고 있던 모닥불.
목소리의 도움으로 탈출했던 그 꿈은 분명 쟝이 꾸었다는 꿈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입구는 아직은 어리다 할 수 있는 자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것이겠지.”
“······이해했습니다.”
귄터의 손짓에 복도에 서 있던 성기사 한 명이 재빨리 다가와 들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보기에도 뭉툭해 보이는 주사기와 함께 찰랑거리는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쟝에게서 추출한 저주일세. 다급했기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것이라면 자네의 세계가 쟝에게도 연결될 수 있을걸세.”
귄터의 예상은 정확했고 겪어봤기에 확신한 블라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입구가 희미해져 있었지만 귄터의 말처럼 아직 나무에게 닿을 수 있는 입구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 입구의 이름은 쟝.
어린 부제와 역천의 나무는 여전히 꿈이라는 실로 연결된 상태였다.
“강요하지는 않겠네.”
주사기 안에서 찰랑거리는 검은 액체가 불길하다.
마치 아이를 찾아 헤매던 여인의 눈물과도 같은 색.
그 익숙한 색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하시죠.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나 블라드는 그 주사기를 쥐어 드는 것에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진창 위에 서 있던 자신처럼 떨고 있을 지금의 쟝에게도 기댈만한 빛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야 주교님께 받은 이름값을 할 수 있겠네요.”
“알겠네.”
블라드의 각오를 확인한 귄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정도 강단은 있어야 어린 나이에 지금 같은 명성을 쌓을 수 있었겠지.
“확실히 준비하고 오겠네. 잠시만 기다려주게.”
귄터의 손짓과 함께 다시금 방의 문이 열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유스티아와 니벨룬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누워 희미한 숨을 뱉고 있는 쟝의 모습까지도.
“후······.”
짧은 한숨과 함께 쟝이 누워있는 침대를 향해 걸어간 블라드는 어린 부제의 손을 잡아보았다.
다시금 맞잡은 쟝의 손은 아까보다 조금은 더 차갑게 식어있었다.
아마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영영 굳어 버릴 작은 손이었다.
※※※※
시간은 없었고 각오는 굳혔으며 준비는 완료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실행하는 것뿐.
쟝의 옆에 나란히 누운 블라드는 귄터가 직접 외우는 기도문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이미 블라드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는 귄터가 고르고 골라온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가득했다.
눈을 떠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유스티아도 이들과 함께 지금 들리는 기도문을 읊고 있을 것이다.
“큭!”
갑작스레 목덜미에 느껴지는 둔탁한 감각.
그 감각과 함께 블라드는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그만 이를 악물고 말았다.
묘하게 따뜻한 그 느낌은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으나 핏속에서 출렁이는 서늘함은 블라드를 끊임없이 몸서리치게 만드는 중이었다.
“흐으으······.”
따뜻한 만큼 끔찍했던 감각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감았던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새까만 어둠이었다.
옆에 있던 쟝도, 들리던 기도문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새까만 어둠.
“······맞게 오긴 했네.”
그때 보았던 모닥불은 보이지 않았지만 옳게 왔음을 느낀 블라드는 조용히 심호흡을 해보았다.
“음?”
그때와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온통 어둠뿐이었으나 조금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이는 빛 하나.
그것은 마치 새까만 구름을 뚫고 내려온 별빛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그곳에서 가야 할 곳을 잃었다면 내가 보내는 빛을 따라오게.
귄터는 모든 부담을 블라드에게만 지우지 않았다.
저주의 세계를 헤맬 블라드를 위해 귄터는 기꺼이 자신이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아마 그는 지금도 별빛을 유지하기 위해 블라드의 옆에서 조용히 기도문을 읊는 중일 것이다.
“끄응.”
아직 몸을 감도는 오한에 굳은 몸을 풀지 못한 블라드.
그러나 블라드는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 하나를 보며 다시금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도망치라고 했잖냐.]불쑥 튀어나온 손과 함께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사내의 정체를 알아챈 블라드는 자그마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쩌겠어요. 빚진 건 갚아야지.”
[하여간 기사 놈들은 말 안 듣기로 유명하지.]받은 은혜가 있고 하겠다고 외친 맹세가 있다.
어둠 속에 서 있던 목소리는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온 블라드를 일으켜 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지금 바닥을 뒹굴고 있는 이 녀석은 내가 한 말 때문에 돌아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가자. 안내해주마.]“손으로 직접 잡으니까 기분이 새롭네요.”
듣기만 했던 목소리를 직접 만지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하다는 듯 웃는 블라드.
목소리는 그런 어린 녀석을 보며 자신도 그만 따라 웃고 말았다.
[멍청한 녀석.]이제야 맞닿은 두 세계는 그렇게 서로를 맞잡고 있었다.
처음 계약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밤하늘에 맺힌 별빛이 둘을 비추고 있었다.
※※※※
이 세상 모든 세계는 존귀하나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지킬 수는 없는 법.
그러나 너희는 지키기 위해 맹세한 자들이니.
만약 너희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면 해야 할 순간에 서 있다면 망설이지 마라.
그것이 나의 두 번째 규율일지니.
맹세를 따라 어둠을 밝힐 횃불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나의 기사들아.